-
-
죽은 시인의 사회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990년 작이니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영화에 나왔던 소년 티 팍팍 나던 아이들은 어느새 나이들어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고, 키팅 선생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는 세상을 등졌다. 슬픈 일이다. 나는 로빈 윌리엄스라면 이 영화와 <쥬만지>가 떠오르던데. 그만큼 그는 소년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년의 영혼을 지녔다.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배경이 늦은 가을에서 눈 오는 겨울 사이에 찍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게 처음 봤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까? 포스터의 배경은 키팅 선생이 아이들에게 럭비공을 차면서 뭔가의 구절을 힘껏 외치게 하는 장면이다. 그것이 또 나름 신이 났던지 키팅 선생을 번쩍 들어 헹가레를 친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던 음악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다. 문득 문학수 기자가 말했던 소설과 영화에서의 음악의 용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는 문학에서 음악을 얘기하려면 될 수 있으면 대중이 잘 모르는 음악으로 하라고 했다. 이를테면 하루키는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심포니에타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너무 잘 아는 곡을 쓰면 흥미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비해 영화는 흔히 잘 아는 곡을 써도 상관이 없고. 글쎄, 이 장면에서 베토벤의 곡이 아닌 다른 듣보잡의 음악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
아무튼, 그때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선생이 아닌 그야말로 존경해마지 않는 스승을 만나 전혀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으니. 교과서에 밖힌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산 지식을 배우고, 뭔가 자아의 일깨움을 받았으니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그것을 고운 눈으로 바라 봐 줄 리가 없다. 학교는 규율이라는 것이 있어 그 규율에 위배되는 걸 원치 않는다. 많은 학생들을 통솔해야 했으니 그랬을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똑똑한 바보를 양산할 뿐이다.
키팅 선생의 교수법은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산지식을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다 지혜로워지고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잠자던 욕망을 깨우는 일이며, 더 많은 부조리에 휘말리도록 만드는 것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저 럭비공을 차는 장면 뒤에 닐 페리가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으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처음으로 찾은 닐 페리. 그것은 연극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그가 의대에 진학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분출되자 그만큼 반대 급부로 의대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연극 무대에 섰다는 건 생의 환희를 맛 보았다는 것이고, 그 이후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설정이 너무 뜬금없는 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설정도 아닌 것도 사실이다. 입시 전후로 해서 자살하는 수험생이 그렇게도 많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아무튼 그랬을 때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자식을 강압적으로 자신의 뜻에 맞추려고 하는 그의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는 교과를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르친 킹팅 선생이다. 모르긴 해도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당시는 민주화의 열망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 끝자락이고 보면 영화가 갖는 울림이 더 하지 않았을까?
키팅 선생의 교수법은 겉으로 봤을 땐 실패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실패할 때까지 실패는 아니다. 지금도 어디에서 어느 선생님은 키팅 선생님 같이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 것이다.
나의 경험을 봐도 학교 때 기억 나는 교수님은 교과서 대로 가르치는 교수님이 아니었다. 시작만 교과서 대로 가르치고 그 나머지를 현실 비판으로 꽉꽉 채웠던 교수님이셨다. 내가 볼 때 그 교수님의 학식이란 가히 석학이라 불리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지성을 갖추고 계셨다. 하지만 듣기론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핸가, 그 다음 해에 학교 도서관 관장으로 좌천됐던가 그랬던 것 같다. 안타까운 건 그 분이 조금만 젊으셨더라면 교수법을 달리해서 현직을 유지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때 교수님은 이미 초로의 나이였고, 융통성이 좀 없으셨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한 번 닐 페리를 생각해 본다. 인생의 환희를 맛 보았을 때 돌연 죽음을 택한 소년. 거기에 생의 모순이 있고, 부조리가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다시 봐도 좋다. 영화사에 남을만한 명장면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