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영화화 된 것 같다.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지고일단 소피 마르소가 안나 역을 맡은 버전을 뒤늦게 챙겨 봤다. 이것도 순전히 박웅현 때문이다. 물론 그는 영화로 만들어진 안나 카레니니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책에서 이 작품을 다루었고, 그의 말의 향연에 굴복해 영화라도 먼저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물론  중학 시절 책을 사긴 했다하지만 두께에 압도 돼 결국 읽다가 포기했다.

 

영화가 생각 보다 그다지 감동스럽지는 않다. 박웅현은 가정을 이룬 사람이나 가정을 이룰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글쎄내가 볼 땐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봐야할 작품은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대문호인 톨스토이를 비판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보고 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캐릭터에만 집중해서 보고, 작품 전체에 대한 느낌은 언제고 원작을 보고 다시 하는 걸로 하자.

 

언제나 그렇지만, 영화고 (동화를 포함한)소설이고 지간에 왜 미남과 미녀만이 사랑의 역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하거나 못 생긴 사람은 이야기 축에 끼지도 못하던가 끼어도 들러리다. 물론 이게 이야기의 법칙 중 하나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또 한 번 나의 잠자고 있던 불만이 일깨워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영화가 너무 연극적이다. 물론 당연한 것이고 19세기만 하더라도 낭만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다. 사랑이 전부인 것만 같고, 그 시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로미오처럼 구애를 하고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진 그 무엇이라도 다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글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세기가 달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의 사랑을 보면 오글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또 그러니만큼 아무도 19세기적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거나, 그 시대엔 그렇게 사랑을 했구나 하며 신기해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난 모르긴 해도 톨스토이 할배가 여자를 잘 알고 작품을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남자로써 여자를 그만큼 묘사한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 여자들이 뭐 그리 대단한 대우를 받고 인권을 위해 투쟁을 했겠는가. 그저 남자의 꼭두각시. 들러리 정도밖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안나는 겉모양만 아름다울 뿐이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결혼은 해야 하니까 했을 뿐이고, 아이는 생기니까 낳았을 뿐이며, 부잣집 귀부인이니까 그렇게 살았고, 사랑을 단호히 거부하거나 쟁취하려고도 않았다. 그저 웬 알지도 못한 장교 청년이 사랑한다니까 거부하는 척 하다가 마음을 홀랑 드러내 줬고 집에서 나가자고 하니 그러겠다고 할뿐이다. 남편은 차치하고라도 아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선택한 사랑인데. 자식을 두고 집을 나와야 했다면 그 자식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야 했던 것 아닌가. 물론 아들에게 다 이해받을 수는 없겠지만, 엄마도 엄마의 인생과 사랑이 있었노라고 말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솔직히 톨스토이가 안나를 그렇게 밖에 그리지 못한 것에 좀 화가 나기도 했다. 어쩌면 여자가 그리도 덜 여물고 멍청할까. 사랑은 선물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 나머지도 책임져야하고 감내해야 할 것들은 감내해야 한다. 사랑을 해줬더니 아들이 보고 싶다고 징징거린다. 결혼한 여자를 사랑한 것은 어떻게 책임진다고 해도 아들이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여자는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나중엔 아편에 중독되고 자실까지 한다. 솔직히 이런 여자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톨스토이의 의도가 읽혀지기도 하는데, 아마 톨스토이뿐만 모든 소설가가 거의 다 그럴 거라고 보는데 주인공을 어떻게 불행에 빠트릴 것인가. 될 수 있으면 처절하게 불행에 빠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희극일 때 보다 비극일 때 더 여운이 오래남고 기억되는 것이고 보면 얼마나 잘 주인공을 불행에 잘 빠트리느냐에 따라 소설가의 능력은 입증될 수 있는 것이다. 보라. 안나를 사랑했던 장교도 그렇고, 안나의 남편도 그렇고. 얼마나 이성적이고 담담한가. 오직 안나 혼자만의 선택이고 괴로움인 것처럼 하다 죽음조차 막지 못해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가.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를 그렇게 그리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톨스토이가 21세기를 산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다른 캐릭터가 되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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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09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피마르소의 미모대비 작품자체는
그저 그랬습니다 저도ㅎ
키이라나이틀리 주연의 안나까레리나가
궁금해집니다^^;

stella.K 2016-12-09 19:56   좋아요 0 | URL
올레 tv 평점에서 지금까지 젤 높은 건 비비안 리가
나온 영화더군요.
암튼 비교하며 보는 것도 좋긴한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러닝 타임도 생각 보다 길지 않더군요.
꼭 긴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렇게 평범한 걸 보면 충분히 표현을 못한 걸까 아니면
역시 원작을 못 뛰어넘는구나 싶기도 해요.^^

cyrus 2016-12-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소피 마르소의 모습이 있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요.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저 포스터를 흘깃 쳐다보면 야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는 저 영화가 뭔지 몰랐고, 야하게 생긴 여자가 소피 마르소라는 것도 몰랐어요. ㅎㅎㅎ

stella.K 2016-12-10 13:2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좀 야하긴 하지. 근데 저 장면만 야해.
얼마나 건전한 영환데. 등급이 15세잖아.
트로이카가 있었잖아.
소피 마르소, 부룩 쉴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는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책받침 배우였짢아.ㅋㅋㅋ
 

 

박웅현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이 영화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 영화는 잘 알려진 대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 소설이 번역되어 나온 지는 대략 20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다한창 상종가를 치고 있었을 때 나도 한 권 사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읽고 나서의 나의 느낌은 과유불급이었다. 비슷한 시기 나는 창작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알게 된 원생으로부터 멋모르고 말했다 어떻게 그 책을 두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죄라면 내가 유치원을 나오지 않은 것과 들은 것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지적여 보인 나의 외모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보지 않고 있었던 것도 원작에서 은혜를 못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작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좋은 영화는 계속 줄을 이었으니 잊히는 것도 당연했다. 하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혔다 어느 날 문득 툭 튀어나와 보게 되는 게 영화 아닌가? 마치 잊힌 앨범을 생각지도 않은 때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보니 왜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가 그러한지 알 것도 같다. 나는 이 영화에 별 세 개를 주겠다. 네이버 영화의 평점은 평균 네 개인데 쿤데라의 작품을 영화화 한다는 건 모험이란 점에서 다들 감히 (영화감독 나부랭이가) 쿤데라의 작품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 만들었다면 동정표로 네 개를 줄 수도 있겠지만 평점은 평점이다이런 쉽지 않은 원작을 별 세 개면 가히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우도 짱짱하지 않은가? 다니엘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충분히 예술 영화로 손색이 없다.   

 

         

 

내 책에도 그런 얘기를 썼지만, 나는 문학이 영화와 이종교배가 가능한 요즘의 행태가 못 마땅했다. 물론 예술이란 측면에서 크게 보자면 필요한 일이긴 하겠지만(그리고 그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문학은 더 문학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영화화 하겠다고 덤비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화 하겠다고 하는 또라이 같은 감독이 있을 수 있는데 그가 진짜 예술을 사랑하고 영역을 확장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그런 점에서 결코 자기를 쉬 열어 보여주지 않았던 쿤데라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고.

 

이 영화가 실패한 성공작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문학은 문학적 서사와 문체가 있는데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려니 오히려 밋밋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와 문체는 작가 고유의 권한 아니던가. 박웅현의 발대로라면 쿤데라는 그 작품에서 키치를 말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키치 보다는 어쩐지 세 사람의 존재 방식에만 집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 원작엔 프란츠도 있지만 영화에선 그다지 비중 있게 나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토마스와 테레사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사실 토마스와 테레사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결코 성립될 수 있는 커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 있는 의사와 시골 웨이트리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점에서 키치를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더 앞서는지도 모르겠다그건 또 차치하고, 언제나 그렇지만 커플은 서로 다른 점 때문에 커플이 된다토마스는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뜨거운 남자지만 테레사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타입이다. 누가 들으면 웃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 영화가 사랑의 온도 맞추기 과정? 뭐 그런 거란 생각이 든다. 즉 토마스는 테레사를 만남으로 그 바람벽이 차츰 가라앉지 않는가? 테레사도 딴 남자와 관계를 갖지만 그건 그 남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토마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다. 즉 누구는 끌어 내리고 누구는 끌어 올려 수평을 맞추는 것.

 

그렇지 않더라도 토마스의 바람벽은 언제나 갈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차츰 노쇠해지니까. 그의 뜨거움도 언젠간 식지 않겠는가. 남자와 여자는 원래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맞지 않는 사람끼리 맞추며 살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그런데 그리도 철학적인 쿤데라도 극적인 것을 좋아했던 걸까? 이제 겨우 서로 행복을 느끼며 살만하다 싶을 때 토마스와 테레사는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러한 일이 현실에서 기인된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가 그러니까 현실이 따라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부모님도 그랬으니까. 20년 가까이 서로 토닥거리며 살다가 이제 겨우 부부의 정을 느낄 만하다 싶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의 오빠도 오랜 세월을 계약직으로 떠돌다 겨우 정규직으로 전환을 앞두고 홀연히 저 세상으로 갔다. 살만하던가. 생의 의미를 깨달을 즈음 돌연 죽음을 맞이하는 게 인간인 것인가 아니면 그 시기 죽음을 맞이하려니 그 죽음을 앞두고 생이 찬란해 보이는 걸까. 법정 스님이 그런 말을 했단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 날 한 시에 간 토마스와 테레사는 변화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겠지. 나의 아버지도, 오빠도. 아무튼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보았다.

 

거기에 러시아와 폴란드의 불안한 정세가 끼어들기도 한다. 프라하의 봄.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이름을 따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지금 광화문과 청와대에서 데모하는 양상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과연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니 원작이 읽고 싶어졌다. 지난 번 윤동주의 전기 영화를 봤을 때도 그렇고 우리에게 문학은 이런 식으로 소비가 되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떤 건 영화를 봐도 꼭 원작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어떤 영화는 꼭 원작이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는 것. 영화와 문학이 공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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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6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 원작의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봐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소설을 읽으면, 영화에서 원작 내용을 누락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거든요.

stella.K 2016-12-06 17:55   좋아요 0 | URL
이상적인 자세라고 생각해.
그런데 난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그나마 원작도 잘 안 보지.
선행학습 하는 거지 뭐.ㅋㅋ

yureka01 2016-12-06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원작에 비해 실망했던 경험이 많았습니다..문학은 문학이고 영화는 영화이더군요. 실제 그런 영화평도 좀 있긴 하거든요.

stella.K 2016-12-06 17:59   좋아요 1 | URL
그건 그래요. 그런데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영화 작업은 원작과 다른 재창조 작업은 아닐까 그러니까 어떤
작품은 원작과 다른 것으로 봐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북프리쿠키 2016-12-06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는 <향수>가 떠오르는군요.
문학과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스텔라님 말씀처럼 원작과는 다른 재창조의 새로운 분야이기에 그저 원작만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는 십중팔구 실패할 위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파트리크쥐스킨트의 <향수>의 영화화는 예술이었습니다ㅎ

stella.K 2016-12-07 13:28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저도 향수 봤어요.
그로테스크한 게 정말 잘 만든 영화죠.

아무래도 원작과 좀 달라야 문학은 문학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이문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같아 버리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만 보지 않겠어요?
그게 영화일 확률은 아주 높을테고...ㅋ

hnine 2016-12-08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대학생때였던가, 극장에 혼자 가서 봤는데 그때만해도 영화가 너무 적나라하다고, 소위 야한 영화라고 혼자 보며 당황했더랍니다 ㅋㅋ
저 난해한 영화 제목, 지금도 완전히 이해못하겠어요.

오~~ 영화 안나 카레리나에서 소피 마르소로 대문 사진을 바꾸셨네요!

올해가 stella님에게는 잊지 못할 한해가 되겠어요. 더 좋은 일 많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stella.K 2016-12-09 19: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 밖에는 봐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포르노와 에로는 한끗 차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ㅋㅋ
소설도 만만찮게 어렵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좋아지려나 모르겠어요.

엊그제 안나 카레니나 봤는데 소피 마르소가 정말 예쁘게 나와
잠깐만 걸어 두기로 했어요.ㅎ

올해는 좀 남다르긴 했어요. 고맙습니다.
h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십시오.^^



2016-12-09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9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12-09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저는 책으로 읽었어요.
아무리 원작이 있어도 영화는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겠지요.
예전에 박완서 작가인 것 같은데 자기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드라마가 맘에 안 들면 화를 내기도 했대나 봐요. 원래의 자기 작품과 다르다는 것이죠. 그런데 드라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걸 받아들인 다음부턴 상관하지 않았다는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잘 지내죠?

stella.K 2016-12-09 14: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심지어 예전에 저 연극할 때 제 작품 연출가가
지 맘대로 재단해서 작품이라고 올리는데 화가 나더라구요.
이런 식일 것 같으면 작가가 뭐가 필요하냐고
노발대발 했는데 나중에 지내놓고 보니 그것도 내 작품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뿐인데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후회가 되더군요.
그 친구한테 좀 미안했어요.
작가의 작품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요.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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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부터 다롱이가 내 방에 들어와 자지 않는다. 다롱이는 요크셔테리어 수컷으로 벌써 13년째 키우고 있는 반려견이다. 생후 2개월이 채 될까 말까 했을 때 사촌 고모가 우리 집에 반강제적으로 떠맡겨 키우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개를 좋아해 우리 집이 줄곧 개를 키워 온 건 사실이지만, 오빠의 사업 실패로 가산을 말아 먹고 지금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무슨 미친 운명인지 모르겠다. 개 없이 3년을 버티고 견뎠건만 역시 개를 키우던 집은 어떻게든 다시 키우게 마련인가 보다 했다.  

 

개가 없으면 집안은 깨끗해서 좋긴 한데 그 삭막함은 느껴 본 사람만 안다. 어쨌거나 개를 다시 키우게 되니 정막 했던 집안이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크셔테리어 종이 그렇듯 다롱이는 잔신경이 많아서 밤이고 낮이고 현관 출입문을 공략했다. 그러는 통해 거실에 침대를 두고 줄곧 거기서만 생활하는 엄마로선 밤이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밤이면 녀석을 직접 들어다 내 방에 눕히곤 했다. 이것을 한동안 하고 나니 언제부턴가 녀석은 알아서 제 발로 내 방에 들어와 자기 시작했다. 내 방이 제가 잘 곳이라는 걸 안 것이다. 밤에 잠자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살짝 들어와 자는데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그래. 너는 역시 파블로프 개의 후예였어.” 하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조선시대엔 반상의 법도가 있듯 예전엔 개가 아무리 좋아도 개와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애견 산업이 팽창하면서 그건 예사로운 일이 됐다. 뭐 개를 한 공간 안에서 키울 수 있다고 치자. 개를 한 이불 속에서 잔다?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개에게도 자기 집이 있어 잠만큼은 꼭 거기서 자도록 훈련시켜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나곤 한다. 워낙 깔끔하신 분이셨다. 살아생전 아들 집에 놀러 왔다가 개를 안에서 키우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렇다고 그 앞에선 뭐라 할 수는 없고(아들, 손주들이 좋아한다는데 그것을 뭐라 말하랴), 당신 집으로 돌아가 알만한 사람을 붙들고 얼마나 말이 많았을까, 안 봐도 훤하다. 더구나 그런 개를 한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하면 지금도 저세상에서 혀를 끌끌 차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추운 겨울이면 녀석이 춥다고 이불 속을 자꾸 파고 들어오는 걸.

 

그래서 말인데, 사랑은 가는 사랑 보다 오는 사랑이 훨씬 더 강하다. 사랑해서 스킨십을 할까? 아닐 수도 있다. 스킨십을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외삼촌의 아이들을 꼭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다. 미국에 사는 외삼촌이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귀국했다. 미국 사람들이 워낙 스킨십의 대가들 아닌가. 첫째가 딸이었는데(워낙 오래된 일이라 이름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를 보자마자 좋다고 모가지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고 하는데 그 순간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다사람도 이럴진대 그 작고 앙증맞은 존재가 이불 속을 파고드는데 무엇으로 내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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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나에 의해서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던 다롱이가 지난여름이 되면서 나를 배반한 것이다. 더워도 너무 더운 게 화근이었다아무리 더워도 밤에 잘 때 방문을 열어 놓고 잘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창문은 조금 열어 놓고 자긴 한다. 방문을 꼭 닫고 자는 건 다롱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왠지 녀석이 자다가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동안 내 방에 자도록 훈련시켜 놓은 게 일순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이른 아침까지 내 방에서 자는 습관이 무너지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몽유병 환자처럼 어슬렁 돌아다니거나 시도 때도 없이 현관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벼락같이 짖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 녀석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엄마의 불평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사실 13년 동안 한 방에서 자면서 내가 편하게만 잤던 건 아니다. 봄이나 여름 같은 경우 해가 일찍 뜨는 관계로 녀석의 각성 시간이 빨라지면, 나는 새벽에 잠이 쏟아지는데 자기는 다 잤으니 문 열어 달라고 문을 박박 긁으면 열어 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물론 닦달질해서 얼마를 잡아 둘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잡아 놓느니 얼른 열어주고 다시 잠을 자는 것이 더 낫다. 어떨 때 자다가 깨면 주객전도라고, 녀석이 이불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자고 나는 그 가장자리로 밀려나 잘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 같이 자서 불편하기 보다 녀석의 그 꼬물락거리는 게 좋아 여태 데리고 잔 것이다. 녀석이 얼마나 훈련이 잘 되어 있냐면, 어쩌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게 되면 내가 나올 때까지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나오면 다시 들어가 자곤 했다.

 

그런데 뭐든지 뜻을 이루려면 0.1mm의 틈도 잘 노려야 한다.
솔직히 녀석도 내 방에 들어와 자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겨울 같은 경우 비교적 해도 늦게 떠오르고 이불 속에 푹 감겨 자느라 늦게까지 잔다고 하지만, 여름은 아무래도 들어와 자는 게 갑갑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방에 들어와 자는 게 의무니 어쩔 수 없이 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문고리 잡고 문 열어 주기가 싫어 언제부턴가 문을 느슨하게 닫고 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아직 살인적인 더위가 몰려오기 전이었다. 그때부터 녀석은 잔머리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 내 방에 들어와 자는 척하고 2, 3 시간 자고 나면 그 조금 느슨하게 닫힌 문을 공약하는 것이다. 어쨌든 난 오늘도 이 방에 들어와 잤으니 이제 문 열어 주시오 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그 시간이 새벽 1시도 됐고, 2시도 됐다. 그렇게 같은 시간에 나를 괴롭히고 이내 살인적인 열대야가 시작됐으니 내 방에 꼭 들어와 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더워서 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굳이 내가 그 방에 들어가 잘 필요가 있느냐는 뜻으로 버티는 것이다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배반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대야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방문을 열어 놓고 잔 때도 있었다. 그땐 세상없어도 잠은 자던 데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내 방에서 잤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 이제 나이도 먹고 늙으니 그런 식으로 해이해진 것 같다.

 

이때부터 녀석은 너무나 당당하게 엄마의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와 어떻게 잠을 잤을까 배신감도 느껴지고 괜히 민망한 느낌도 교차했다. 그러면서 녀석이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나 이제부터라도 자고 싶은 곳에서 맘대로 자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잠이 없고 보면 엄마한테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TV가 종일 방송을 시작하고부터 그 적적한 불면의 밤을 한결 수월하게 보내겠지만 그래도 그것도 생명 없는 물체이고 보면 그래도 살아 꼬물락거리는 생명체가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쩌다 잠결에 깨서 바깥에서 엄마가 다롱이에게 뭐라고 말을 하며 뚜덕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면 역시 내가 녀석을 엄마에게 양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실 이 생각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처음 다롱이를 데리고 잘 때부터도 내가 엄마한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다 
아유, 이놈의 새끼 때문에 이불 속에서 다리도 맘대로 못 뻗겠고 아주 불편해 죽겠어. 다시 네 방에서 잤으면 좋겠어.”
연로해지면서 불평이 많아진 엄마는 어느 날 결국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자식이 네 방에서 잘 땐 몰랐는데 괜히 밤에도 잠을 못 자면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고, 오줌 안 쌀 것도 싸서 화장실에서 냄새만 풍기고...”

 

엄마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의외긴 했지만 한편 반갑기도 했다. 솔직히 다롱이를 다시 데리고 잤으면 했는데 이렇다 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더위도 한 풀 꺾였겠다 다시 내가 데리고 자 보지 뭐.”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자기 전에 엄마 침대에서 자는 다롱이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다롱이는 그동안 안 불러줘서 못 잤다는 듯 내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역시 개는 개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자던 자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불을 끄고 자려니 조금 있다 녀석은 부스스 일어나 이곳저곳을 퀵퀵대며 무슨 냄새를 맡는 척하다가 결국 방을 나가겠다고 방문을 긁적거리는 것이었다. 그건 또 다롱이가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하기에 눈치가 보인다 싶을 때 하는 주특기이기도 했다나는 몇 번 종주먹을 댔지만 무엇으로 녀석의 고집은 쉬 꺾이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못 버티고 방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렇게 하면 들어먹기도 했지만 나와는 벌써 꽤 오래 떨어져서 잤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내 말은 듣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롱이를 나무라기는커녕 나에게 힐난조로,
너도 참 순진하기도 하다. 다롱이의 고집을 누가 꺾겠니?”
아니, 엄마가 그랬잖아. 내 방에 들어가 잤으면 좋겠다고.”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롱이가 들어 먹겠니?”
엄마는 그러더니 자는 척하는 다롱이를 쓰다듬으며,
그렇지 다롱아. 너 사람 말 원래 안 듣지?”
하는데 엄마는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는 것이다. 

 

나는 엄마와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살았으면서도 가끔 이해 못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다. 기껏 엄마 생각해서 한 일인데 이럴 땐 딴소리를 한다. 다롱이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손길 따라 몇 번 꾸물거리더니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어제 나와 실랑이를 한 피곤이 아직 안 풀렸다는 뜻 같기도 할 것이다. 나만 다롱이를 잡아 끄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같이 몰아주면 말을 들을 것도 같은데 엄마는 현재로선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이 집에서 녀석의 영토만 넓혀준 것 같다. 어쩌다 사람이 개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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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6-12-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찡하네요. 엄마의 마음이 ^^

stella.K 2016-12-05 14:5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누구든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모를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흐~

페크pek0501 2016-12-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스텔라 님의 댓글을 보니깐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ㅋ

stella.K 2016-12-09 14:07   좋아요 0 | URL
같이 살면 살수록 모르겠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게 심지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라도 말이지요.ㅋㅋ
 
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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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에 한번쯤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사실 이 책은 책 자체 보단 독서 행위에 관한 고찰 내지는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훑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 개인적으론 읽기가 수월하지마는 않은 느낌이다. 그것은 꼭 저자의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한문학이고 보면 옛 고서에 관한 이야기나 옛 선비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내가 이쪽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거니와 저자의 평이한 문장이 약간은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나름 얻는 지식도 있고, 옛 선현들이 책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해 왔는가를 엿볼 수도 있어 과히 나쁘지마는 않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는 어떤지 반성도 하게 되고. 특히 이태준이나 이덕무의 일화는 나름 흥미도 있고 새겨 볼만하다. 이태준은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빌리려 하는 사람을 질투한다고 했다.

... 또 그 책을 다 읽은 친구가 책에 대한 평을 하면서 돌려주면 그 책에 대해 아주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고백한다. 흡사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사랑하되 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여인에게 먼저 접근해 그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과 같다!(59p)

과연 흥미로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이라니.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과연 이런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에도 책을 아는 사람에게 빌리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책도 많이 흔해졌고 도서관만 가도 웬만한 책은 다 손쉽게 빌려 볼 수 있으니 남에게 빌리는 걸 구차스럽게 느낄 것도 같다. 또한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받으면 다행이고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또 꼭 그러치만도 않은 것이 책도 개인별로 등급이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책은 귀해서 있는 티도 못 내는 책도 있을 것이고, 어떤 책은 빌려주긴 하되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책. 어떤 책은 돌려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별로 아쉽지 않은 책도 있다. 어떤 책은 쓰레기 같아서 누가 가져간다고 하면 두 말 않고 들어 내줄 책. 이쯤 되면 옛날 처첩 거느린 어떤 남자 마누라 갈아 치우기와 맘먹는 거라고 말하면 좀 심한 말이 되려나? 이게 다 이태준이 그렇게 말을 꺼내서다. 아무튼 그도 대단한 책탐가(책을 탐내는 사람). 또 그만한 탐욕이 있었으니 알아줄만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건 또 약과다. 국어학자인 이숭녕 선생은 더 한다. 이 분은 어찌나 책을 사랑하는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교양 없게 손에 침을 발라넘기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빌려주면 마치 어디 먼 나라로 자식을 인질로 납치하는 심정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책 빌리는 것을 거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들으면 섭섭하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좋은 거라면(그것이 책 아니야 다른 물건일지라도) 빌려주지 마라. 빌려 받는 사람도 불편하고 빌려주는 사람도 욕을 먹어 나중에 의를 상하는 수도 있다. 그는 사치(四癡) 즉 책을 빌려주는 네 가지 어리석음에 대해 말했다. 빌리는 것이 일치고, 빌려주는 것이 이치며, 빌리고 돌려주지 않는 것이 삼치고, 빌렸다가 돌려주는 것이 사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했나 보다. 또한 그래서 책은 빌려주는 것이 없어야하는 것이고. 책을 빌려주기 싫은데 안 빌려주면 괜히 나쁜 사람으로 찍힐까봐 걱정인 사람이 있다면 참고해서 대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면 이덕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은 구서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구서. 즉 아홉까지 독서 방법을 뜻하는 것이다. 독서는 책 읽기다. 간서는 책 보기.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와 간서를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장서는 책을 소장하는 것. 초서는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뽑아 적는 것(박웅현 같은 사람), 교서는 책을 교정하는 것(오탈자 귀신 같이 뽑아내는 사람있다), 평서는 책을 평하는 것, 저서는 책을 쓰는 것, 차서는 책을 빌리는 것. 폭서, 책을 햇볕에 쬐는 것. 맨 마지막 것을 제외하면 우리도 흔히 행하는 방식이다. 단지 우리의 독서행위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 지어진다는 걸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이렇듯 책은 욕심내고 읽을 때마다 몇 번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더불어 내가 정말로 책을 잘 간수하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모으고 있는가. 항상 돌아보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예지(叡智)있게 서재를 몇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 응접실 보다 화려한 기구를 차려놓고, 가난한 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간수해둔 경우. 그럴 때 장서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둘째, 책이 저장되어 있을 뿐 전혀 읽히거나 이용되지 않는 경우. 이는 돈만 모으는 수전노와 같다고 했다. 첫 번째 부류보다 낫긴 하지만. 셋째, 책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대개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경우. 이 서재야말로 이른바 서적과 대결하려는 학자의 전쟁터라고 했다.

 

뭐 꼭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전에 책을 사다 놓기만 하거나 예전에 어떤 이유로든 독서를 보류시킨 책을 다시 보는 경우가 생겼다(물론 독서 보단 간서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때 확실히 책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모은 책이 앞으로 어떻게 읽힐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보물을 찾는 기분이겠구나 싶다. 모름지기 책은 이런 마음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밖에도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지만, 우리 책의 일본 반출기나 전근대적인 학맥 때문에 우리나라 지식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것 등은 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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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2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태준의 심정 이해할 수 있어요. 특정 책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읽는 상황이 애서가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른 애서가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stella.K 2016-12-03 13:31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려면 정말 이태준 정도는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페크pek0501 2016-1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참 싫었어요. 빌려 갈 땐 꼭 돌려주겠단 말을 하고는 그렇게 하더라고요. 저는 책 도둑에게 관대하기 싫어용. ㅋ

stella.K 2016-12-09 14: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전 다시 돌려받지 않아도 될 책만 빌려줍니다.ㅋ
 

 

 언제부턴가 먹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게 되었다. 식욕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굳이 맛 있게 먹으려고 애쓰지 않는단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먹방이니 쿡방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거 다 쓰잘떼기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장 그걸 먹을 수가 없는데 무슨 대리만족인가. 그런데 이게 인간사 에피소드와 연결이 되면 한편의 영화가 된다. 정말 이 영화 이상하게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실제로 이런 식당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가지고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없는대서 쓰기란 불가능하고 일본 번화가에 어울리지 않게 저런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이 있을 것도 같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실내포장마차쯤이 되지 않을까? 거기선 주문을 받고야 비로소 요리를 하는 주인겸 주방장이 있다. 손님도 거의 대부분 단골 손님들이다. 그렇게 주인과 손님이 이웃처럼 격이 없고 친근한 식당 하나쯤 알고 있는 것도 혼자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생존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저 주방장 아저씨 저렇게 밤에 장사하는 거 오래 안 했으면 한다. 물론 저 아저씨 보면 그냥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밤에도 잠 못 자는 사람을 위해 일종의 위로와 힐링이 되라고  밤이면 저렇게 장사하는 것 같긴 하다만 저러다 지레 건강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 밤에 일하는 게 얼마나 몸이 축나는 일인데...

 

일본이 또 이런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카모메 식당>을 비롯해 일련의 영화들이 생각나는데 잔잔하게 좋았다. 우리나라도 음식을 주제로한 영화가 없진 않은데 생각 보다 그렇게 많이 감동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화가 먼저인지 TV 시리즈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다. 작년에 한국판 심야식당을 TV 시리즈로 본 적이 있는데 나름 가능성 있게 잘 만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성적이 저조했는지 모르겠다. 호응이 있었다면 시즌2도 나왔을 텐데 별 말이 없다. 아무튼 이 영화 뭔가 헛헛한 마음이 들 때 보라. 뭔가 마음을 채워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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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6-12-01 1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키모메 식당도 재미있게 봤구요~ 한국판은 김승우가 마스터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심야식당은 일본판이 나아보입니다~

stella.K 2016-12-02 06:50   좋아요 1 | URL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저도 이의는 없는데 저는 자막을 볼 필요가 없어서인지
한국판이 좀 보기가 편하더라구요.
내용만 좀 달랐다뿐이지 일본판 그대로 가져왔잖아요.

yureka01 2016-12-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에 심야식당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ㅎㅎㅎ

Conan 2016-12-01 22:07   좋아요 1 | URL
심야식당 차리는거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 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하게 될지도^^

stella.K 2016-12-02 06:54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안 됩니다. 그러면 주량이 더 늘 것 아닙니까?
건강을 위해 밤엔 일찍 주무십시오.ㅎㅎ

코난님, 그러다 건강해치면 어쩌시려고...

cyrus 2016-12-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려하면서도 손님을 많이 들어올 수 있는 넓은 식당일수록 좋다’라는 편견 때문인지 소규모 식당이 우리나라에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어요. 동네서점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요. ^^;;

stella.K 2016-12-02 13:04   좋아요 1 | URL
그게 함정이야. 그런덴 솔직히 사람만 많이 받을 줄 알지
음식은 별로인데가 많거든.
메뉴표 많이 붙은 곳 가지 말라잖아.
허름하고 몇 가지 안 되더라도 그게 진짜 맛집일 확률이 높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