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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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에 한번쯤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사실 이 책은 책 자체 보단 독서 행위에 관한 고찰 내지는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훑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 개인적으론 읽기가 수월하지마는 않은 느낌이다. 그것은 꼭 저자의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한문학이고 보면 옛 고서에 관한 이야기나 옛 선비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내가 이쪽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거니와 저자의 평이한 문장이 약간은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나름 얻는 지식도 있고, 옛 선현들이 책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해 왔는가를 엿볼 수도 있어 과히 나쁘지마는 않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는 어떤지 반성도 하게 되고. 특히 이태준이나 이덕무의 일화는 나름 흥미도 있고 새겨 볼만하다. 이태준은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빌리려 하는 사람을 질투한다고 했다.

... 또 그 책을 다 읽은 친구가 책에 대한 평을 하면서 돌려주면 그 책에 대해 아주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고백한다. 흡사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사랑하되 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여인에게 먼저 접근해 그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과 같다!(59p)

과연 흥미로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이라니.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과연 이런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에도 책을 아는 사람에게 빌리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책도 많이 흔해졌고 도서관만 가도 웬만한 책은 다 손쉽게 빌려 볼 수 있으니 남에게 빌리는 걸 구차스럽게 느낄 것도 같다. 또한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받으면 다행이고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또 꼭 그러치만도 않은 것이 책도 개인별로 등급이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책은 귀해서 있는 티도 못 내는 책도 있을 것이고, 어떤 책은 빌려주긴 하되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책. 어떤 책은 돌려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별로 아쉽지 않은 책도 있다. 어떤 책은 쓰레기 같아서 누가 가져간다고 하면 두 말 않고 들어 내줄 책. 이쯤 되면 옛날 처첩 거느린 어떤 남자 마누라 갈아 치우기와 맘먹는 거라고 말하면 좀 심한 말이 되려나? 이게 다 이태준이 그렇게 말을 꺼내서다. 아무튼 그도 대단한 책탐가(책을 탐내는 사람). 또 그만한 탐욕이 있었으니 알아줄만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건 또 약과다. 국어학자인 이숭녕 선생은 더 한다. 이 분은 어찌나 책을 사랑하는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교양 없게 손에 침을 발라넘기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빌려주면 마치 어디 먼 나라로 자식을 인질로 납치하는 심정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책 빌리는 것을 거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들으면 섭섭하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좋은 거라면(그것이 책 아니야 다른 물건일지라도) 빌려주지 마라. 빌려 받는 사람도 불편하고 빌려주는 사람도 욕을 먹어 나중에 의를 상하는 수도 있다. 그는 사치(四癡) 즉 책을 빌려주는 네 가지 어리석음에 대해 말했다. 빌리는 것이 일치고, 빌려주는 것이 이치며, 빌리고 돌려주지 않는 것이 삼치고, 빌렸다가 돌려주는 것이 사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했나 보다. 또한 그래서 책은 빌려주는 것이 없어야하는 것이고. 책을 빌려주기 싫은데 안 빌려주면 괜히 나쁜 사람으로 찍힐까봐 걱정인 사람이 있다면 참고해서 대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면 이덕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은 구서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구서. 즉 아홉까지 독서 방법을 뜻하는 것이다. 독서는 책 읽기다. 간서는 책 보기.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와 간서를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장서는 책을 소장하는 것. 초서는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뽑아 적는 것(박웅현 같은 사람), 교서는 책을 교정하는 것(오탈자 귀신 같이 뽑아내는 사람있다), 평서는 책을 평하는 것, 저서는 책을 쓰는 것, 차서는 책을 빌리는 것. 폭서, 책을 햇볕에 쬐는 것. 맨 마지막 것을 제외하면 우리도 흔히 행하는 방식이다. 단지 우리의 독서행위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 지어진다는 걸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이렇듯 책은 욕심내고 읽을 때마다 몇 번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더불어 내가 정말로 책을 잘 간수하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모으고 있는가. 항상 돌아보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예지(叡智)있게 서재를 몇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 응접실 보다 화려한 기구를 차려놓고, 가난한 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간수해둔 경우. 그럴 때 장서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둘째, 책이 저장되어 있을 뿐 전혀 읽히거나 이용되지 않는 경우. 이는 돈만 모으는 수전노와 같다고 했다. 첫 번째 부류보다 낫긴 하지만. 셋째, 책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대개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경우. 이 서재야말로 이른바 서적과 대결하려는 학자의 전쟁터라고 했다.

 

뭐 꼭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전에 책을 사다 놓기만 하거나 예전에 어떤 이유로든 독서를 보류시킨 책을 다시 보는 경우가 생겼다(물론 독서 보단 간서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때 확실히 책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모은 책이 앞으로 어떻게 읽힐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보물을 찾는 기분이겠구나 싶다. 모름지기 책은 이런 마음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밖에도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지만, 우리 책의 일본 반출기나 전근대적인 학맥 때문에 우리나라 지식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것 등은 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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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2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태준의 심정 이해할 수 있어요. 특정 책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읽는 상황이 애서가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른 애서가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stella.K 2016-12-03 13:31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려면 정말 이태준 정도는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페크pek0501 2016-1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참 싫었어요. 빌려 갈 땐 꼭 돌려주겠단 말을 하고는 그렇게 하더라고요. 저는 책 도둑에게 관대하기 싫어용. ㅋ

stella.K 2016-12-09 14: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전 다시 돌려받지 않아도 될 책만 빌려줍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