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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부터 다롱이가 내 방에 들어와 자지 않는다. 다롱이는 요크셔테리어 수컷으로 벌써 13년째 키우고 있는 반려견이다. 생후 2개월이 채 될까 말까 했을 때 사촌 고모가 우리 집에 반강제적으로 떠맡겨 키우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개를 좋아해 우리 집이 줄곧 개를 키워 온 건 사실이지만, 오빠의 사업 실패로 가산을 말아 먹고 지금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무슨 미친 운명인지 모르겠다. 개 없이 3년을 버티고 견뎠건만 역시 개를 키우던 집은 어떻게든 다시 키우게 마련인가 보다 했다.  

 

개가 없으면 집안은 깨끗해서 좋긴 한데 그 삭막함은 느껴 본 사람만 안다. 어쨌거나 개를 다시 키우게 되니 정막 했던 집안이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크셔테리어 종이 그렇듯 다롱이는 잔신경이 많아서 밤이고 낮이고 현관 출입문을 공략했다. 그러는 통해 거실에 침대를 두고 줄곧 거기서만 생활하는 엄마로선 밤이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밤이면 녀석을 직접 들어다 내 방에 눕히곤 했다. 이것을 한동안 하고 나니 언제부턴가 녀석은 알아서 제 발로 내 방에 들어와 자기 시작했다. 내 방이 제가 잘 곳이라는 걸 안 것이다. 밤에 잠자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살짝 들어와 자는데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그래. 너는 역시 파블로프 개의 후예였어.” 하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조선시대엔 반상의 법도가 있듯 예전엔 개가 아무리 좋아도 개와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애견 산업이 팽창하면서 그건 예사로운 일이 됐다. 뭐 개를 한 공간 안에서 키울 수 있다고 치자. 개를 한 이불 속에서 잔다? 정신 차리고 생각하면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개에게도 자기 집이 있어 잠만큼은 꼭 거기서 자도록 훈련시켜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나곤 한다. 워낙 깔끔하신 분이셨다. 살아생전 아들 집에 놀러 왔다가 개를 안에서 키우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렇다고 그 앞에선 뭐라 할 수는 없고(아들, 손주들이 좋아한다는데 그것을 뭐라 말하랴), 당신 집으로 돌아가 알만한 사람을 붙들고 얼마나 말이 많았을까, 안 봐도 훤하다. 더구나 그런 개를 한 이불을 덮고 잔다고 하면 지금도 저세상에서 혀를 끌끌 차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추운 겨울이면 녀석이 춥다고 이불 속을 자꾸 파고 들어오는 걸.

 

그래서 말인데, 사랑은 가는 사랑 보다 오는 사랑이 훨씬 더 강하다. 사랑해서 스킨십을 할까? 아닐 수도 있다. 스킨십을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외삼촌의 아이들을 꼭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다. 미국에 사는 외삼촌이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귀국했다. 미국 사람들이 워낙 스킨십의 대가들 아닌가. 첫째가 딸이었는데(워낙 오래된 일이라 이름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를 보자마자 좋다고 모가지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고 하는데 그 순간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다사람도 이럴진대 그 작고 앙증맞은 존재가 이불 속을 파고드는데 무엇으로 내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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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나에 의해서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던 다롱이가 지난여름이 되면서 나를 배반한 것이다. 더워도 너무 더운 게 화근이었다아무리 더워도 밤에 잘 때 방문을 열어 놓고 잘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창문은 조금 열어 놓고 자긴 한다. 방문을 꼭 닫고 자는 건 다롱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왠지 녀석이 자다가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동안 내 방에 자도록 훈련시켜 놓은 게 일순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이른 아침까지 내 방에서 자는 습관이 무너지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몽유병 환자처럼 어슬렁 돌아다니거나 시도 때도 없이 현관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벼락같이 짖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 녀석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 엄마의 불평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사실 13년 동안 한 방에서 자면서 내가 편하게만 잤던 건 아니다. 봄이나 여름 같은 경우 해가 일찍 뜨는 관계로 녀석의 각성 시간이 빨라지면, 나는 새벽에 잠이 쏟아지는데 자기는 다 잤으니 문 열어 달라고 문을 박박 긁으면 열어 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물론 닦달질해서 얼마를 잡아 둘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잡아 놓느니 얼른 열어주고 다시 잠을 자는 것이 더 낫다. 어떨 때 자다가 깨면 주객전도라고, 녀석이 이불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자고 나는 그 가장자리로 밀려나 잘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 같이 자서 불편하기 보다 녀석의 그 꼬물락거리는 게 좋아 여태 데리고 잔 것이다. 녀석이 얼마나 훈련이 잘 되어 있냐면, 어쩌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게 되면 내가 나올 때까지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나오면 다시 들어가 자곤 했다.

 

그런데 뭐든지 뜻을 이루려면 0.1mm의 틈도 잘 노려야 한다.
솔직히 녀석도 내 방에 들어와 자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겨울 같은 경우 비교적 해도 늦게 떠오르고 이불 속에 푹 감겨 자느라 늦게까지 잔다고 하지만, 여름은 아무래도 들어와 자는 게 갑갑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방에 들어와 자는 게 의무니 어쩔 수 없이 자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문고리 잡고 문 열어 주기가 싫어 언제부턴가 문을 느슨하게 닫고 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아직 살인적인 더위가 몰려오기 전이었다. 그때부터 녀석은 잔머리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 내 방에 들어와 자는 척하고 2, 3 시간 자고 나면 그 조금 느슨하게 닫힌 문을 공약하는 것이다. 어쨌든 난 오늘도 이 방에 들어와 잤으니 이제 문 열어 주시오 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그 시간이 새벽 1시도 됐고, 2시도 됐다. 그렇게 같은 시간에 나를 괴롭히고 이내 살인적인 열대야가 시작됐으니 내 방에 꼭 들어와 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더워서 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굳이 내가 그 방에 들어가 잘 필요가 있느냐는 뜻으로 버티는 것이다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배반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대야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방문을 열어 놓고 잔 때도 있었다. 그땐 세상없어도 잠은 자던 데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내 방에서 잤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 이제 나이도 먹고 늙으니 그런 식으로 해이해진 것 같다.

 

이때부터 녀석은 너무나 당당하게 엄마의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와 어떻게 잠을 잤을까 배신감도 느껴지고 괜히 민망한 느낌도 교차했다. 그러면서 녀석이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나 이제부터라도 자고 싶은 곳에서 맘대로 자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잠이 없고 보면 엄마한테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TV가 종일 방송을 시작하고부터 그 적적한 불면의 밤을 한결 수월하게 보내겠지만 그래도 그것도 생명 없는 물체이고 보면 그래도 살아 꼬물락거리는 생명체가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쩌다 잠결에 깨서 바깥에서 엄마가 다롱이에게 뭐라고 말을 하며 뚜덕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면 역시 내가 녀석을 엄마에게 양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실 이 생각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처음 다롱이를 데리고 잘 때부터도 내가 엄마한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다 
아유, 이놈의 새끼 때문에 이불 속에서 다리도 맘대로 못 뻗겠고 아주 불편해 죽겠어. 다시 네 방에서 잤으면 좋겠어.”
연로해지면서 불평이 많아진 엄마는 어느 날 결국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자식이 네 방에서 잘 땐 몰랐는데 괜히 밤에도 잠을 못 자면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고, 오줌 안 쌀 것도 싸서 화장실에서 냄새만 풍기고...”

 

엄마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의외긴 했지만 한편 반갑기도 했다. 솔직히 다롱이를 다시 데리고 잤으면 했는데 이렇다 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더위도 한 풀 꺾였겠다 다시 내가 데리고 자 보지 뭐.”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자기 전에 엄마 침대에서 자는 다롱이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다롱이는 그동안 안 불러줘서 못 잤다는 듯 내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역시 개는 개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자던 자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불을 끄고 자려니 조금 있다 녀석은 부스스 일어나 이곳저곳을 퀵퀵대며 무슨 냄새를 맡는 척하다가 결국 방을 나가겠다고 방문을 긁적거리는 것이었다. 그건 또 다롱이가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하기에 눈치가 보인다 싶을 때 하는 주특기이기도 했다나는 몇 번 종주먹을 댔지만 무엇으로 녀석의 고집은 쉬 꺾이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못 버티고 방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렇게 하면 들어먹기도 했지만 나와는 벌써 꽤 오래 떨어져서 잤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내 말은 듣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롱이를 나무라기는커녕 나에게 힐난조로,
너도 참 순진하기도 하다. 다롱이의 고집을 누가 꺾겠니?”
아니, 엄마가 그랬잖아. 내 방에 들어가 잤으면 좋겠다고.”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롱이가 들어 먹겠니?”
엄마는 그러더니 자는 척하는 다롱이를 쓰다듬으며,
그렇지 다롱아. 너 사람 말 원래 안 듣지?”
하는데 엄마는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는 것이다. 

 

나는 엄마와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살았으면서도 가끔 이해 못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다. 기껏 엄마 생각해서 한 일인데 이럴 땐 딴소리를 한다. 다롱이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손길 따라 몇 번 꾸물거리더니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어제 나와 실랑이를 한 피곤이 아직 안 풀렸다는 뜻 같기도 할 것이다. 나만 다롱이를 잡아 끄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같이 몰아주면 말을 들을 것도 같은데 엄마는 현재로선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이 집에서 녀석의 영토만 넓혀준 것 같다. 어쩌다 사람이 개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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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6-12-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찡하네요. 엄마의 마음이 ^^

stella.K 2016-12-05 14:5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누구든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모를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흐~

페크pek0501 2016-12-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스텔라 님의 댓글을 보니깐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ㅋ

stella.K 2016-12-09 14:07   좋아요 0 | URL
같이 살면 살수록 모르겠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게 심지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라도 말이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