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이어 어제와 오늘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을 연속해서 봤다. 


이번에<용과 주근깨 공주> 개봉 기념으로 올레 tv에서 그의 작품전을 한다. 그것도 9월 동안 무료로. 덕분에 눈호강을 하고 있다. 알고 봤더니 그 유명한 <원피스>의 감독이다.



몇년 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이지만  

정말 빛의 음영을 잘 살린다고 감탄했는데 이제 그건 신카이 마코토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일본 애니에선 기본으로 가져가는 것 같다. 솔직히 그의 애니는 영상은 좋을지 몰라도 내용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은 정말 좋다. 


또한 상상력의 끝판을 보여주기도 한다. 웃음 짓게 만드는 유머 코드도 좋고. 특히 <썸머워즈>에서의 SF적 상상력은 정말 끝내준다. 거기에 나오는 집과 등장인물이 정말 좋다. 


<늑대 아이>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우울한 작품은 아닌가 싶다. 인상적인 장면이 많이 있지만 유키가 전학생에게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사이로 자신의 존재를 고백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한다지. 그러므로 더 끈끈한 관계로 묶이길 바라지만 또 그것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밀은 웬만해서 공유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사람이 어디 그런가. 


<미래의 미라이>는 아이의 질투와 소외. 어른이 아이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마음에 든다. 또한 이들의 가족사는 미래와 과거를 오가기도 한다. 이를 통해 가족의 화목을 강조했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다. 어느 일이나 처음은 있다는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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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6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소다 그런 인간인 줄 몰랐을때
애니 섭렵 했었지만
지금은 전부 폐기 처분 해 버렸습니다

스텔라 케이님 한국산 웹툰 보세요

잼나는게 가득 임. ^ㅅ^

stella.K 2021-09-27 07:33   좋아요 0 | URL
헉, 호소다 마모루도요?
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가 그런 줄 알고 있는데...
네*버에 가면 좋다고 날리던데.
그럼 이번에 <용과 주근깨 공주>가 어떻게...?

희선 2021-09-28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소다 마모루도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몰랐던 거네요 저는 《미래의 미라이》 소설로 봤어요 그런대로 괜찮게 봤습니다

stella.K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09-28 15:2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스콧님이 자세히 안 가르쳐 주시네요.ㅠ
저 개인적으론 다 좋은데 그중 <미래의 마라이>가 가장
좋지 않나 싶어요. 무슨 장면인지 조금은 뜬금없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거 빼면. 소설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워낙에 영상이 뛰어나서.
<괴물의 아이>도 좋긴한데 이건 앞의 작품들 보단 좀 별로였어요.
<원피스>도 있긴한데 내내 좋은 영상 보다 보려니까 피로감이
느껴져 패쓰할까 해요. <디지몬>도 그렇고.
호 감독의 작품은 여기까지. <용과 주근깨 공주>는 나중에 기회있으면 보기로.

지금 카카오톡 계정을 잃어서 오늘 하루는 좀 못 보낼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선님은 좋은 하루 되시길.^^
 

일본 애니매이션을 보고 실망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작품은 특별히 더 좋다. 스토리, 영상, 재마까지 뭐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줄거리를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보라고 밖에는.

맨 마지막 치아키의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대사가 참 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문득 내 곁을 떠나간 사람들도 생각해 보면 미래 어디쯤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하다못해 다롱이도. 녀석이 말을 못해 그렇지 세상 떠나면서 그랬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영계는 물질계와는 달라 언어가 아닌 뭔가의 특별한 교감 능력으로 소통하지 않을까.


내용이 감동스러워서 혹시 원작이 있나 했더니 있긴 있었다. 하지만 절판이고 원작이 출판되고 굉장한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원작자가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정액을 묻혀야 한다는 둥 하며 일본의 극우 쓰레기를 자처했던 것. 그러고 보니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일본 SF계 유명 작가라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꽤 컸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그런 사건이 터지고 말았으니 피해를 본 건 그 출판사일 것이다. 


남의 나라 작가나 내 나라 작가가 정치적으로 중립을지키고 도덕적으로 건전하면 안 되는 건가 싶다. 작품은 작품이고 사람은 미워하되 작품은 미워하지 말자. 뭐 좀 그러고 싶은데도 막상 그러기는 쉽지 않다. 작품도 싫고 사람은 더더욱 싫고가 되어버린다.한창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성폭력과 표절 사건이 붉어져 나왔을 때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작품이 그 사람인 것이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원칙적으로 성립하기는 하려운 것 같다.


어쨌든 출판계가 스스로 원작 소설의 출판을 고사했다면 영화(애니 포함)도 상영이나 수입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는 버젓이 볼 수 있으면 얼마든지 본다. 그런 걸 보면 출판계에만 족쇄를 채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출판사가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런 난리가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쯤되면 작품과 작가를 별개의 것으로 봐야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욕을 해도 독자의 몫이고, 칭찬을 해도 독자의 몫.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지금도 쓰쓰이 야스타카는 사죄할 마음이 전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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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9-21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작자 때문에 호평 받은 애니메이션까지 외면 받고 말았죠. 그런데 저는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결점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를 두둔하면서 그 사람의 신작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SNS을 통해서 언급하는 행위를 삼가야 해요. 논란 있는 작가의 팬들에게는 가혹하지만, 작가에 대한 팬심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

stella.K 2021-09-21 18:08   좋아요 1 | URL
글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또 막상 닥치면 그렇지 안 더라고.
예전에 <은교>땜에 박범신이 좋아서 다른 작품도 읽어야지
했는데 두어 권 읽고 안 읽게 되더라고.
하지만 정말 독자의 읽을 권리까지 박탈해도 되는 건가 싶어.

새파랑 2021-09-21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문제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 🙄
작품과 개인은 별개인거 같으면서도 동일하게 봐야 할거 같기도 하고...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지만 이것도 모든것에 적용하기는 힘들고...

근데 이 에니는 정말 좋게 봤어요😆

stella.K 2021-09-21 19:47   좋아요 2 | URL
친일 작가들은 아직도 편하게 생각할 수 없잖아요.
그나마 100년쯤 지나니까 작품은 작품. 작가는 작가하는 거죠.
그런 것처럼 다른 문제로 연루된 작가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한 나라의 문학으로 봤을 땐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 오니.

희선 2021-09-22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재미있게 봤는데, 소설은 안 봤던 것 같네요 언젠가 볼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몇해 전에 그런 말을 하다니... 그 기사 우연히 봤어요 그건 개인 문제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에도 그 작가 책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작가 나이 몰랐는데 꽤 많네요


희선

stella.K 2021-09-22 21:12   좋아요 1 | URL
헉, 나이가 많습니까? 전 젊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암튼 그 원작 가지고 지금까지 다양한 변주를
했다는군요. 더 풍성하게. 여러 장르에서. 그러니 더 솔깃할 수 밖에.
근데 그것이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출판사 어디엔가 잠들어 있다니
많이 아쉽더군요. 중고샵만 돌아도 미친 척하고 사 볼 것 같기도 한데...ㅋㅋ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줄 알았더니 몇몇 장면이 낮설지 않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그것도 개봉관에서. 얼마 전 예술영화 전용이었던 서울극장이 패관했다고 들었는데 그곳에서 보지 않았을까.


그 시절엔 프랑스 영화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승전결도 없는 것 같고 소설이라면 차라리 용서해 주겠다. 비싼 필름으로 뭐하는 건가. 보고 나오면서 대놓고는 못하고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고, 욕하면서 닮는다고 난 언제부턴가 프랑스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신 잘 안 보기 시작한 건 허리우드의 스펙타클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영화. 그래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렇다쳐도 <반지의 제왕> 정도는 봐 줘야할 것 같은데, 내가 이걸 봤는지 안 봤는지 확실히 기억에 없다.


90년대 프랑스의 여배우 트로이카 하면 줄리엣 비노쉬와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가 아니었을까. 이들은 어느 새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견 배우들이 됐다. 지금은 이 배우들 활동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을 나름 적절히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파란빛을 써야했던 감독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색을 쓰기는 <그랑 블루>만한 영화가 또 있을까.


그런데 장면중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 줄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고 재산을 정리해 어느 낡은 아파트로 거쳐를 옮긴다. 거기에 한 매춘부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서명운동으로 이 매춘부를 아파트에서 쫓아내려고 하는데 만장일치가 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줄리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매춘부는 그곳에 계속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줄리와 매춘부는 친구가 된다. 


그 장면을 보는데 좀 의외다 싶었다. 우리나라라면 모를까 그렇게 개인주의가 발달된 나라에서 매춘부를 쫓아내기 위해 서명운동이라니. 그도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의도는 성공할 수 없다. 과연 이런 법도 있었나 싶다. 우린 보통 좋은 게 좋은 거고, 다수결을 따르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언제나 소수의 의견을 가진 자들은 원치 않음에도 따라야 한다. 분명 불공평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룰을 만들기도 한다니 프랑스 정치가 이런 식으로 움직여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이게 똘레랑스란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배운 건 써 먹어 봐야한다고 내가 속한 모임에서 한 번 실험해 봤다. 그 모임은 최근 더 이상 말이 없어 끝났나 보다 하는 사안을 보스가 끄집어 내어 내가 관리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여름 그 일을 내가 맡아 관리하긴 했다. 그런데 보스가 그 일에 대한 취지를 자꾸 바꿔 가면서 연장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럴 것 같으면 처음부터 취지를 명확히 하실 일이지 자꾸 바꾸면서 연장하는 건 뭐란 말인가. 그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홧김에 보스 단독으로 하지 말고 전체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다. 요는 우리나라가 보스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인데 생각의 전환을 해서 한 사람이라도 찬성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하지 않을 권한도 있는 것 아니냐고. 각설하고 결과는...? 내 생일 날 케이크를 받은 걸 보면 알지 않겠는가. 결국 난 모임에서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찬성하는 사람만 하기로 했는데 역시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다. 결국 난 따를 당하는 건지 존중을 받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일을 안하지 공공연히 모임에서 막내가 일 하나를 더 떠앉게 되었고. 근데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격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다. 아무래도 조만한 다시 그 일을 맡아야지 싶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결국 매춘부를 내쫓는데 성공하지 못한 주민들은 그후 이 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줄리는 남편이 죽은 후 남편에게 정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그 정부의 뱃속엔 남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줄리는 이에 조금 동요되는 것 같더니 나중엔 정부가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예전에 살던 집을 내어준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까. 그러나 남편은 죽었고 정부의 몸엔 남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오히려 줄리는 죽음에서 생명을 보고 있다. 그래서 살아갈 힘을 얻는가 보다. 


근데 이도 좀 나를 의아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귀족들은 배우자 외에 정부를 두는 것이 관행이라고 들었는데 줄리의 남편은 저명한 작곡가다. 귀족의 자손이었을 확률이 높을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셀럽이라면 관행 아닌가. 그것 가지고 놀라고 당황한다면 이때만 해도 줄리가 너무 젊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삼십 하나로 나오던가 했으니. 내 나이 30을 넘겼을 땐 뭔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하긴 지금 생각하면 그때 비슷한 똥고집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 보이니까 그렇게 싸우기도 했겠지만 사실은 여전히 뭘 몰랐던 시절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남편의 죽음에서 줄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찌보면 나 보다 낫다 싶다. 죽음이 꼭 불행한 것만도 아니고. 

영화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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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8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09-20 13:09   좋아요 1 | URL
앗, 궁금하셨구나.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자세히 쓸 걸.ㅋㅋ
제안하면 뭐 합니까?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는 걸요.ㅠ
전 한쿡 사람들 모이면 의견이 없다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의견 없는 건지, 리더나 보스 의견에 순종만 해야하는 건지
제가 좀 잘 못 됐나 봐요.ㅋ
좀 있다 제가 다시 맡아야죠.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희선 2021-09-19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떤 건 모두가 찬성해야 되지 않을지... 재개발... 그런 것도 해야겠다 하는 사람이 밀고 나가서 모두가 억지로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세들어 사는 사람은 나가야 하고... 집이 있는 사람은 다 한다고 하겠습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 더 어른스럽지 않나 싶기도 해요

stella.K 님 명절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09-20 13:16   좋아요 1 | URL
그렇죠. 예전에 재개발 문제가 많았어요.
한 사람이라도 개발에 반대하면 못하는 건데 철거반
무자비하게 포클레인 밀고 강제 철거했다는데 믿을 수가 없더군요.
예전 5, 6공 때.지금은 안 그런가 봅니다.
대신 지금은 인종문제가...

희선님도 명절 잘 보내고 계시죠?^^

scott 2021-09-20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추석 연휴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보름달님에게 소원을~~**
ʕ ̳• · • ̳ʔ
/ づ🌖 =͟͟͞͞🌕

stella.K 2021-09-20 13:24   좋아요 1 | URL
아웅~ 저도 이모티콘 만들 줄 알면 띄워 드렸을텐데
아시다시피 전 그런 창의력은 없는지라...ㅠ

내일이 추석인데 비가 많이 올거라는군요. 보름달을 볼 수나 있을지...
그래도 비구름 위로는 보름달이 분명 떠있겠죠?
스콧님도 좋은 소원 비시고 이루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1-09-25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브이로 영화 보다가 중간쯤 되니 예전에 본 영화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도 책처럼 목록 노트를 만들어놔야 하나 생각했는데 뭐 또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든 영화든 두 번 보는 게 유익한 것 같으니까요.
저는 중간부터 끝까지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부터 중간까지 보는 방식도 흥미롭더라고요.
결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어서요. ^^

stella.K 2021-09-25 18:55   좋아요 1 | URL
ㅎㅎ 맞아요. 특히 tvn에서 하는 드라마를 저는 가끔 그렇게 봐요.
워낙에 재방송을 많이 하니까 꼭 본방사수 안 해도되고
중간부터 봤다가 다음 날 처음부터 중간까지 보죠.ㅋ

정말 영화나 소설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어떤 사람은 같은 영화를 10번 20번 봤다고 하던데 전 그렇게까지는
못 볼 것 같아요. 좀 아까 일본 애니 <썸머 워즈> 중간쯤 보다가 말았는데
재밌더군요. 그림이 정말 예술이어요. 어떻게 그렇게 그릴 수 있는지.ㅠ

2021-09-2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6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8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 건다 - 정홍수 산문집
정홍수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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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형철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을 거의 극찬하다시피해서 혹했다. (나는 일단 제목에 '소설'이 들어가면 눈이 간다. 실제로 소설은 많이 못 읽지만. 병이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그가 부러 자신의 책에 소개할 정도면 그냥 못 지나 차지 싶었다. 근데 엉뚱하게도 잔뜩 눈독 들인 책은 사지 못하고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건 중고샵 때문이다. 급한 대로 이 책을 사 보자 했다. 막상 사 놓고 이게 뭔가 얼떨떨하긴 했다. 풋) 그런 걸 보면 난 아무래도 책보단 작가에게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의 직책이 문학 평론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엔 평론가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보니 아주 모르는 작가도 아니었다. 오래전, 고 김소진 작가를 기리는 <소진의 기억>이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책의 동인 중 한 사람이었다. 만날만한 사람은 만난다더니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내내 평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산문집'이다. 하지만 평론집으로 읽어도 그렇게 크게 속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실 산문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하기도 하는데 평론가가 쓰면 평론적 산문이 된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1996년 <문학 사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의 길을 걷지만 그의 본업은 편집자다. 나는 평론가라면 대학교수들이 하는 줄 알았더니 편집자도 평론을 한다. 새삼 나의 시야가 완전 좁았구나 했다. 편집자라면 문학 생산의 현장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아닌가. 대학교수들이 쓰는 그것과는 좀 결이 다를 것 같다. 좀 더 생생하고 핍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다가 저자는 문학(야)사에 나올 법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저자가 80년대 중후반 첫 직장으로 민음사에 들어갔을 즈음 다른 동료 직원들은 퇴근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교정을 보고 있을 때 글로만 접했던 문인을 봤다고 한다. 바로 서정인 선생이다. 당시 선생은 <세계의 문학>에 '달궁'을 연재하던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로 쭉 밀고 들어오더니 도트프린트에 연재된 <달궁> 원고를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때 저자는 사무실 한쪽에서 '아!'했단다. 왜 안 그랬을까. 연예인 좋아하는 사람은 뒤통수만 봐도 "꺅!" 소리 내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작가 보고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겨우 '아!'라니. 역시 문학 종사자들은 너무 점잖다. 근데 저자가 오래된 얘기를 하고 있긴 하다. 도트프린트. 이게 뭔가 순간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뿐인가, 김수영문학상 심사가 있는 날엔 김우창, 유종호, 황동규 선생이 사장실에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나 베니어판에 귀를 쫑긋하고 들었단다. 또한, 중앙일보 기자였던 기형도 시인은 당시 민음사 편집장이었던 이영준 형과 서로 친구라며 그 인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때는 또 성석제 형(이란다)은 소설은 엄두도 못 내던 때(!)라 어쩌다 시를 한편 완성하면 이영준 형에게 팩스로 보내 강평을 들었다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성석제가 맞나 싶다. (대작가분껜 좀 죄송하지만 문득 깎아놓은 밤톨이 생각났다.ㅋ) 무엇보다 사무실 저자의 뒷자리엔 그 무렵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나선 김소진이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가 다닌 편집 학교'중에서) 이런 글을 읽는 건 나에겐 큰 기쁨이다. 그림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은데 난 재주가 없)다.


또한 저자는 뒤에 황석영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난 황석영의 소설을 두어 권 읽은 것 같긴 한데 별로 좋은 줄 몰라 더 이상 읽지 않고 있다. 민망한 일이다. 황석영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가 본데 사람이 덜 됐는가 보다. 그런데 루카치가 그런 말을 했단다. 소설은 '남성적 성숙의 형식'이라고. 그러면서 저자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황석영을 떠올렸다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황석영은 남자답게 선이 굵은 작가가 아니던가. 문제는 난 그런 남성적 카리스마가(보통 이걸 허세라고도 하지) 강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그래서 <대화의 희열 3>에 첫 번째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조금 부담스럽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나중에 그의 자전 <수인>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막상 읽어보니 과연 신형철 작가가 극찬할만한가, 물론 그가 소개한 <소설의 고독>은 어떨지 몰라도 이 책은 적어도 내가 볼 때 문체는 좀 기대만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읽다가 포기하게 되지는 않는다. 난 분명히 책을 완독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주로 소설과 영화에 대한 단상을 썼는데 소박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 읽히고, 읽어주고 싶다. 문체가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평론가들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주례사식 평론을 한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은 그 말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얼핏 듣기론 외국은 평론가와 작가가 거의 견원지간이라고 들었다. 외국 평론가들은 작가의 작품을 혹평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양진영에 상향평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과부 상정 과부가 안다고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온정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예전엔 일반인이 책을 사는데 평론가들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나 SNS의 발달로 평론가들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인들도 서평집을 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평과 평론은 엄연히 다르다. 서평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지만 평론은 일반인이 할 수 없다. 그건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이고, 많은 식견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물론 분명 오늘날 독자의 책 선택에 평론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을 분석하고, 의미 있게 하고, 기록하는 일이 그들의 일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환호해 마지않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작품은 앞으로 1년 뒤 또는 3년 안에 우리의 관심에서 완전히 살아질 확률은 매우 높다. 물론 부지런해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면 아주 잊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문학도 일종의 산업이라 새로운 신예 작가가 나오면 그쪽으로 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때도 누군가는 어떤 시기에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으며,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상기시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평론가의 할 일 아니겠는가. 서평가들은 오직 그 책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옛 문학가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것 같지만 사실은 평론가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요즘의 평론가들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그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로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평론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은 더 이상 동굴 안에 있지 않다. 예전에 누가 평론집을 읽었던가. 그건 정말 문학을 지극히 사랑하거나 학자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읽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자구적 노력이 아직은 다소 미미해 보이긴 하지만 언젠가 일반 독자들도 본격 문학 평론집을 가지고 토론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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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3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평론집의 느낌이 있는 산문집인가 보네요. 서평과 평론의 차이를 하나 알고 갑니다~!!

stella.K 2021-09-14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니 대충 그렇겠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1-09-18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작가 하면 삼포 가는 길, 이란 단편이 유명하죠. 국어교과서에도 나왔을 것 같아요.
제가 읽은 건 두 권으로 된 <무기의 그늘>이었는데 그야말로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소설 같아요. ^^

stella.K 2021-09-18 18:45   좋아요 0 | URL
지나치게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작품은 전 별로 더라구요. ㅎㅎ
근데 황석영은 정말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더군요. 부럽기도 하고.ㅋ
 

이 오래된 영화를 볼까말까 많이 망설였다. 물론 난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다. 1997년작이니 벌써 25년을 바라보는 영화다. 그땐 그저 야하다는 것 외엔 이 영화를 그 무엇으로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벗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 영화를 다시 보기를 망설였던 건 영화 도입 부분에 방울(신은경 분)이 갔던 곳이 사창가인지도 모르고 서너 명의 장정으로부터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나와서였다. 물론 그게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장면을 보는 순간 역시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 VOD를 꺼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매리 린 브락트가 쓴 <하얀 국화>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하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위안부가 되는가를 초반에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는데 그게 왠지 모르게 이 영화와 겹쳐 보이는 것이 있어서 였다. 


분명 일본의 과거사는 규명되어야겠지만 비록 시대는 다르다고 해도 남의 나라 남자들이 여자들을 짓밟는 건 안 되고 같은 내국인 남성들이 짓밟는 건 된단 말인가 이거야 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같은 나라의 남자들이 여자를 짓밟아 온 역사는 일본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은 역사 보다 훨씬 길다. 그것은 밝히지도 않은 채 일본의 과거사만 들먹여도 되는 걸까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무리 거장 소리를 듣는 감독(임권택)이 만들었다고 해도 뭔가 영화적으로 문제는 있을테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자고 했다. 물론 과도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 여자가 어떻게 창녀로 사육되어 지는가(전락이 아니다. 사육이다.)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서 윤락녀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를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살려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감독의 특기인 한국의 한의 정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제목이다. '노는 계집 창'이란다. 뭔가 다분히 여성 비하적이고, 논다는 건 의도적이고 자유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어느 샌가 모르게 주인공 방울이 원해서 창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환치시키는 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신이 원해서 창녀가 되겠는가. 요즘엔 그러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만,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여자들이 창녀가 되야 한다면 그건 자신이 원하는 바와 상관이 없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특히나 방울이는 윤간으로 창녀가 된 것이 아닌가. 과연 감독이 그것을 간과한 것이 아니라면 제목은 다분히 반의적 의도로 사용했을까? 


만일 이 영화를 오늘 날 여성 감독이 재해석 해서 보여준다면 어떨까?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그건 그저 영화적으로 잘 만들었을뿐 창녀인 여성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었을까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좋던 싫던 창녀촌에 발을 들인 방울에게 선배들은 하나 같이 도망갈 생각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아무도 의기투합해서 그곳을 벗어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곳은 정말 창녀로 사육되기 위해 있는 것처럼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속 시대 배경은 여성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시대다. 여성은 여전히 남자에 의해 종속된 존재들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사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창녀가 있음을 지적한다. 역사는 곧 남성의 역사인만큼 남자들은 유사이래로 이 창녀라는 직업을 아주 잘 관리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자 앞서 소개했던 책과 관련해서 이 위안부의 문제가 이토록이나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이 문제를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겠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남성이 성의 문화를 지배해 왔다는 것의 충돌에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기는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아무튼,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사창가의 융성은 70년대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구로공단은 시골에서 대거 올라온 여공들이 차지했겠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에서 안착하지 못한 여자들은 남의 집 가정부가 되거나 영화의 방울이처럼 창녀촌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일과와 시대적 변화는 그곳에 터잡고 사는 구멍 가게 주인 아저씨나 브로커(?)로 일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이 창녀(또는 윤락녀)에 관해 어렴풋이 기억에 나는 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유난히 뉴스나 시사 잡지 같은 것에서 심심찮게 우리 나라 집장촌을 다뤘었다는 것이다. 뭐 이렇다할 뾰족한 대안도 없었으면서 왜 그 시절 그렇게 그곳의 문제를 다룬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침 80년대 초중반이었던가? 그때 경찰계에서 첫 여성 청장이 나왔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어느 잡지에 난 그 여성 청장의 인터뷰 기사를 비교적 꼼꼼하게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독특하게도 우리나라에 공창제의 도입을 역설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난 사창을 없애도 부족할 판에 공창을 하자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주장이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요는 기존대로 사창을 하면 성을 더 음성화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은 물론이고 직업적으로도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암암리 사창가를 단속한다면서 경찰계의 검은 압력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주장대로 우리나라가 공창화가 이루어졌을까. 잘 모르겠다. 오히려 창녀 스스로가 문제를 극복하고 진화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지 않았을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방울이 처음 창녀가 되면서부터 영화가 진행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를 주목해 볼만하다. 괜히 이상한 음란한 영화 보지 말고, 이 영화 보면서 야한 것만 떠올리지 말고 철저하게 짓밟혀진 여성도 고독한 영혼이었음을 또한 누가 그 고독을 위로해 줄 수 있는가를 지켜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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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강동원 출연의 <검사외전>과, 김강우 출연의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티브이로
흥미롭게 봤어요. 운 좋게도 거의 시작하자마자 봤어요. 강동원의 연기에 감탄했어요.
강동원이 아니면 그 누구도 그렇게 귀엽고 매력적이게 사기 치는 역을 못 할 것 같았어요.
완전히 당신 역이야,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위안부 문제를 다른 영화나 소설도 꼭 봐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다른 작품으로 봤는데도 기억 못할 수 있음ㅋ)^^

stella.K 2021-08-27 20:01   좋아요 0 | URL
검사외전을 제가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안네요.
저도 기회가 닿으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08-27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7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