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다 - 정홍수 산문집
정홍수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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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형철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을 거의 극찬하다시피해서 혹했다. (나는 일단 제목에 '소설'이 들어가면 눈이 간다. 실제로 소설은 많이 못 읽지만. 병이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그가 부러 자신의 책에 소개할 정도면 그냥 못 지나 차지 싶었다. 근데 엉뚱하게도 잔뜩 눈독 들인 책은 사지 못하고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건 중고샵 때문이다. 급한 대로 이 책을 사 보자 했다. 막상 사 놓고 이게 뭔가 얼떨떨하긴 했다. 풋) 그런 걸 보면 난 아무래도 책보단 작가에게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의 직책이 문학 평론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엔 평론가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보니 아주 모르는 작가도 아니었다. 오래전, 고 김소진 작가를 기리는 <소진의 기억>이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책의 동인 중 한 사람이었다. 만날만한 사람은 만난다더니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내내 평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산문집'이다. 하지만 평론집으로 읽어도 그렇게 크게 속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실 산문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하기도 하는데 평론가가 쓰면 평론적 산문이 된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1996년 <문학 사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의 길을 걷지만 그의 본업은 편집자다. 나는 평론가라면 대학교수들이 하는 줄 알았더니 편집자도 평론을 한다. 새삼 나의 시야가 완전 좁았구나 했다. 편집자라면 문학 생산의 현장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아닌가. 대학교수들이 쓰는 그것과는 좀 결이 다를 것 같다. 좀 더 생생하고 핍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다가 저자는 문학(야)사에 나올 법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저자가 80년대 중후반 첫 직장으로 민음사에 들어갔을 즈음 다른 동료 직원들은 퇴근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교정을 보고 있을 때 글로만 접했던 문인을 봤다고 한다. 바로 서정인 선생이다. 당시 선생은 <세계의 문학>에 '달궁'을 연재하던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로 쭉 밀고 들어오더니 도트프린트에 연재된 <달궁> 원고를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때 저자는 사무실 한쪽에서 '아!'했단다. 왜 안 그랬을까. 연예인 좋아하는 사람은 뒤통수만 봐도 "꺅!" 소리 내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작가 보고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겨우 '아!'라니. 역시 문학 종사자들은 너무 점잖다. 근데 저자가 오래된 얘기를 하고 있긴 하다. 도트프린트. 이게 뭔가 순간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뿐인가, 김수영문학상 심사가 있는 날엔 김우창, 유종호, 황동규 선생이 사장실에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나 베니어판에 귀를 쫑긋하고 들었단다. 또한, 중앙일보 기자였던 기형도 시인은 당시 민음사 편집장이었던 이영준 형과 서로 친구라며 그 인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때는 또 성석제 형(이란다)은 소설은 엄두도 못 내던 때(!)라 어쩌다 시를 한편 완성하면 이영준 형에게 팩스로 보내 강평을 들었다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성석제가 맞나 싶다. (대작가분껜 좀 죄송하지만 문득 깎아놓은 밤톨이 생각났다.ㅋ) 무엇보다 사무실 저자의 뒷자리엔 그 무렵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나선 김소진이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가 다닌 편집 학교'중에서) 이런 글을 읽는 건 나에겐 큰 기쁨이다. 그림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은데 난 재주가 없)다.


또한 저자는 뒤에 황석영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난 황석영의 소설을 두어 권 읽은 것 같긴 한데 별로 좋은 줄 몰라 더 이상 읽지 않고 있다. 민망한 일이다. 황석영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가 본데 사람이 덜 됐는가 보다. 그런데 루카치가 그런 말을 했단다. 소설은 '남성적 성숙의 형식'이라고. 그러면서 저자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황석영을 떠올렸다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황석영은 남자답게 선이 굵은 작가가 아니던가. 문제는 난 그런 남성적 카리스마가(보통 이걸 허세라고도 하지) 강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그래서 <대화의 희열 3>에 첫 번째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조금 부담스럽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나중에 그의 자전 <수인>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막상 읽어보니 과연 신형철 작가가 극찬할만한가, 물론 그가 소개한 <소설의 고독>은 어떨지 몰라도 이 책은 적어도 내가 볼 때 문체는 좀 기대만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읽다가 포기하게 되지는 않는다. 난 분명히 책을 완독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주로 소설과 영화에 대한 단상을 썼는데 소박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 읽히고, 읽어주고 싶다. 문체가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평론가들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주례사식 평론을 한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은 그 말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얼핏 듣기론 외국은 평론가와 작가가 거의 견원지간이라고 들었다. 외국 평론가들은 작가의 작품을 혹평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양진영에 상향평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과부 상정 과부가 안다고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온정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예전엔 일반인이 책을 사는데 평론가들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나 SNS의 발달로 평론가들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인들도 서평집을 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평과 평론은 엄연히 다르다. 서평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지만 평론은 일반인이 할 수 없다. 그건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이고, 많은 식견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물론 분명 오늘날 독자의 책 선택에 평론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을 분석하고, 의미 있게 하고, 기록하는 일이 그들의 일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환호해 마지않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작품은 앞으로 1년 뒤 또는 3년 안에 우리의 관심에서 완전히 살아질 확률은 매우 높다. 물론 부지런해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면 아주 잊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문학도 일종의 산업이라 새로운 신예 작가가 나오면 그쪽으로 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때도 누군가는 어떤 시기에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으며,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상기시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평론가의 할 일 아니겠는가. 서평가들은 오직 그 책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옛 문학가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것 같지만 사실은 평론가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요즘의 평론가들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그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로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평론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은 더 이상 동굴 안에 있지 않다. 예전에 누가 평론집을 읽었던가. 그건 정말 문학을 지극히 사랑하거나 학자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읽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자구적 노력이 아직은 다소 미미해 보이긴 하지만 언젠가 일반 독자들도 본격 문학 평론집을 가지고 토론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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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3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평론집의 느낌이 있는 산문집인가 보네요. 서평과 평론의 차이를 하나 알고 갑니다~!!

stella.K 2021-09-14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니 대충 그렇겠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1-09-18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작가 하면 삼포 가는 길, 이란 단편이 유명하죠. 국어교과서에도 나왔을 것 같아요.
제가 읽은 건 두 권으로 된 <무기의 그늘>이었는데 그야말로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소설 같아요. ^^

stella.K 2021-09-18 18:45   좋아요 0 | URL
지나치게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작품은 전 별로 더라구요. ㅎㅎ
근데 황석영은 정말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더군요. 부럽기도 하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