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영화 보다가 완전 뒤집어졌다. 

물론 이 영화 절대로 웃긴 영화 아니다. 보고나면 정말 우울해지는 칙칙한 영화다. 


원래 드라마의 법칙 중 하나가 밝고 환하고, 잘나고 잘 사는 사람이 나와줘야 한다. 그래야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다. 이렇게 칙칙하고 우울한 것이 통하는 장르가 있는데 그건 소설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그 반대되는 영화가 나와줘도 용서가 되는 영화가 있다. 물론 흥행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나름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밀레니엄 전후로 우리나라에도 여성 감독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명단 거의 첫줄에 올릴만한 감독이 임순례 감독은 아닐까 한다. 


솔직히 남자 감독들도 살아남기 어려운 영화판에 무슨 영화를 만들었을까 싶은데,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임 감독은 뚝심과 부지런함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리틀 포레스트>와 <제보자> 정도는 웬만한 사람은 알지 않을까. 그걸 임순례 감독이 만들었다는 걸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런지.


아무튼 나도 분명 이 영화를 본적이 있긴 하다. 상영관에서 봤는지 아니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는지 아니면 tv에서 봤는지 기억은 잘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상영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보고나서 어찌나 떨떠름 했던지. 워낙 영화에 대한 찬사 때문에 함부로 욕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좋았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니 대략남감이었더랬다.


솔직히 난 남자들이 삶에 쩔어 가지고 술 먹고 꼬장 부리는 거 딱 질색인데 이 영화는 거의 95% 이상이 그렇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나마 편집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런데로 봐 줄만하다고 용서를 했을지도 모른다. 장면 넘어가는 게 너무 아마추어적이라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나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삶을 보여줬다는 게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나야 워낙 온실속의 화초처럼 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물론 뭐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면 되는거긴 하지만 크게 공감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볼 생각을 거의 안하고 있었다. 어젠 조금 보다 말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 장난 아니다. 코미디 영화는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나를 웃겨줄 수 있나, 웃긴다면 얼마나 웃겨줄 것인가를 지켜보겠지만,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그건 와이키키 브라더즈의 4인방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다. 고등학생으로 어렵게 어렵게 동년배의 여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한창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선배들이 끼어 들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와이키키 4인방은 뭐 씹은 기분이 되어 한쪽에 찌그러지는 형국이다. 그러다 기분이 나빴던지 누군가 술에 취해 결국 선배들을 받았고 결국 한판 뜨게 된다. 그걸 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정말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웃음의 포인트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그 장면을 보면 뭘 그렇게까지...? 라며 오히려 벙쩌하거나 나를 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어쨌든 난 이제야 이 영화의 진가를 발견한 셈이다. 그때부터 중간중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지금도 비실비실 웃음이 난다. 이런 영화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누구는 그러지 않았나, 드라마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걸 가장 잘 수행한 몇 안 되는 영화중 하나는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처음 봤을 때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던 영화가 이제 다시보니 이렇게 웃기다니! 도대체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나의 비극은 누구에겐 희극이 될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인생의 한 시기를 통과해 가고 있었구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일까. 지금의 중견 배우들이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을 때 찍은 영화다. 박해일이 아역 배우로 나온다는 걸 그때는 몰랐는데 두번째로 보니 알겠다. 황정민 못지 않게 박원상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도 이 영화를 보니 알겠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성우 역을 맡은 이얼이란 배우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 배우를 언제부터 알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4, 5년전에야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해서 S 본부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야 비로소 확실히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 보다 <라이브>란 드라마가 먼저다.) 그때 거의 스러져가는 야구 감독의 역을 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기를 곧잘해서 연극판을 한동안 굴렀겠구나 했다. 그런데 아깝게도 지난 5월 식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58세다. 이 영화에선 상당히 참하게 나오는데 역시 보고 좀 놀랐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세상에 80% 이상이 남자 이야기다. 이 남자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긴하다. 보통 남자 감독이 남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드물게는 여자가 하기도 한다. 여자 감독이 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확실히 그 질감이 다르긴 하다. 남자 감독은 당연히 거친 느낌이지만 여자하면 글쎄, 이렇게 웃프게 표현할 수도 있다니! 감독이 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뚝심 하나로 만들었겠구나 새삼 존경심이 느껴진다. 지금의 MZ 세대는 잘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5, 60대는 옛날을 추억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추억을 팝송도 들을 수 있고. 지금은 밴드라고 하지만 예전엔 그룹사운드라고 했다. 그 시절의 영화다. 

참, 배우 류승범의 앳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새삼 우리나라에 탈색머리의 역사가 깊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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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15 2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흐 이 영화 좋아하면 연식 나오는건데 말이죠. 저도 좋아해요. ㅎㅎ 웃프고요. 노랑머리 류승범 지금은 코로아티아에선가 멋지게 살고 있더군요. 박해일 파릇한 얼굴도 나오고요. 이얼 배우 참 안타까워요. 누드로 서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 ㅠ 마지막에 오지혜가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 좋아합니다. ㅎㅎ 수안보 온천 개발 초기 때라 시위하는 사람들이며 그런 시대 배경도 슬쩍 담은 임 감독^^

stella.K 2022-10-16 18:47   좋아요 0 | URL
사실은 웃긴데 슬픈것이 아니고 슬픈데 웃기죠.
유승범 나이들어가면서 멋져지는데 왜 연기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한창인데. 결혼해서 잘 사나 모르겠어요. 이얼 배우 그 장면 정말 처연하죠? 아까운 배우여요. 😢

바람돌이 2022-10-15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말씀처럼 연식 나오는 영화. ㅎㅎ 며칠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님 사진을 보는데 뭔가 변하지 않은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이 영화 본지 오래 됐는데 다시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에요. ^^

stella.K 2022-10-16 18:24   좋아요 0 | URL
임순례 감독이 왔군요. 오래오래 감독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스산한 기을에 보기 좋은 영화죠. 함 보세요. 새로운 걸 발견하게될지도 몰라요.ㅋ

나와같다면 2022-10-15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늦가을 이였을거예요. 씨네큐브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나와서 광화문을 걸었던 그 날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오지혜의 ‘사랑밖에 난 몰라‘ 가 계속 맴돌던 그 날.

stella.K 2022-10-16 18:30   좋아요 1 | URL
앗, 그렇다면 나와같다면님 연식이...? ㅋ 엔딩이 그렇게 끝날 줄 몰랐어요. 그렇게 끝나는 것도 괜찮구나 싶더군요.^^

책읽는나무 2022-10-16 0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화 평이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번 봐야지~ 했었는데 여적 못봤어요.
임순례 감독님 영화였었군요?
그래서 유명했었나 보군요!
저는 <리틀 포레스트>는 재미나게 보았어요.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
이얼 배우를 잘 몰라서...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이브> 드라마도 오래 전에 참 재미나게 봤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ㅜㅜ
앗!!! 금방 검색해서 봤는데 얼굴을 보니 알겠어요!!! 에궁~ㅜㅜ
참 친근감있게 연기하신 분이었는데..안타깝네요.ㅜ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22-10-16 18:35   좋아요 1 | URL
이거 꼭 보세요. 리틀포레스트는 뭐 워낙 원작이 좋으니. 아무래도 임순례가 좀 더 잘 만들지 싶어요. 울나라 음식 가지고 만들어 일까요? 암튼.^^

호우 2022-10-16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유명해서 익숙한 느낌인데 보지는 못 했네요. 2001년이면 한창 육아 전쟁을 치르면서 일도 하고 살아내느라고 주변을 잘 못 돌아 볼 그런 때 였네요. 영화 한 편으로 인해 또 나를 돌아보게 되네요. 한 번 봐야겠어요. 스텔라님, 감사해요~~^^

이얼 배우는 <인사동 스캔들>에 나왔던 역할이 기억에 남았어요. 우정 출연인데도 내공이 느껴져 아주 강렬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22-10-16 18:39   좋아요 1 | URL
와, 그럼 호우님 자녀분 지금 다 컸겠네요. 이제 함 보세요. 여유롭게.
이얼 배우 인사동 스캔들에 나왔다는데 전 기억이 없어요. 나중에 다시 봐야겠어요.^^

북프리쿠키 2022-10-16 14: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챙겨보는데, 얼마전 봄날은 간다를 보며 느낀게 유지태가 엄청 앳되게 나와서 놀랬습니다. ㅎㅎ
우리도 리즈 시절이 있었겠지요 ?? ㅎ

stella.K 2022-10-16 18:45   좋아요 2 | URL
아, 봄날은 간다 정말 좋죠. 이때까지만해도 유지태 좋아했는데 그후 악역을 해서일까 좀 싫더라구요. 그러다 작년에 유키즈에 나와서 노는 모습 보니까 나쁘지 않더라구요. 제가 무려 이럽니다. ㅎㅎ 근데 쿠키님은 그 악명 높은 악령도 완독하시고 영화제 수상작도 챙겨 보시고. 대단하세요.👍

희선 2022-10-17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있다는 건 아는군요 임순례 감독 이름도 들어봤는데, 그 영화 만들었다니... 시간이 지나고 나서라도 저 영화를 보시고 예전과 다른 걸 느끼는 것도 괜찮겠지요 영화뿐 아니라 책도 그렇겠습니다 그때 함께 느끼면 좋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희선

stella.K 2022-10-17 10:2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리틀 포레스트 함 보세요. 희선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 시와 소설과 그리스도인
이정일 지음 / 예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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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를 시작할 때 문학부터 읽기 시작했다. 흥미롭기도 하고, 독서 습관들이기에도 이만한 분야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문학도 어느 순간 갑자기 흥미가 떨어진 때가 있었다.


거미(?)가 다리가 여러 개인 지네를 놀려줄 요량으로 어느 날 이렇게 물어봤다지. 너는 움직일 때 몇 번째 다리부터 움직이냐고. 그러자 순간 지네는 자신이 정말 어떤 다리부터 움직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그것이 하나도 문제가 안 됐는데 말이다. 과연 이 다리, 저 다리 움직여 보지만 과연 자신이 어떤 다리부터 움직이는지 알지 못했고 결국 모든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당연한 걸 질문받았을 때 또는 한 번도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도 당황하게 된다. 다리가 꼬인 지네처럼.


내가 그랬다. 좋아서 읽기 시작한 문학이 갑자기 왜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 나니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고 권태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멀어졌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자기 좋아하는 분야도 권태기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 한 번도 안 해 본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도 한때고, 지금은 오히려 문학을 많이 못 읽어서 아쉽다.


하지만 역시 문학을 왜 읽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은 달지 못했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냐고 얼렁뚱땅 넘어갈 판이다. 학교 때 그렇게 책을 읽어라, 그것도 고전을 읽어라. 독서의 유익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었으면서 정작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물론 몇 마디로 진부하게 대답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얼핏 기독교 서적 같지만, 우리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안 믿는 사람이더라도 기독교에 별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면서 한 번쯤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읽어 봤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어찌 보면 논문 제목 같기도 하지만 분류를 하자면 독서 에세이다. 그것도 지극히 기독교적인. 그러면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 문학만을 대상으로 삼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다방면의 책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했다. 이 책은 '기독인이여, 제발 문학을 읽어라.'라고 외치며, 왜 그런지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문학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문학은 문학이고, 신앙은 신앙이지 이 둘을 같이 생각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동양 문학은 몰라도 서양 문학은 그 뿌리를 성경에 두고 있음에도 현대 문학은 꼭 그렇지만도 않으니. 그렇다고 신앙에 도움이 안 되니 무조건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다면 문학의 반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기독교 세계관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걸쳐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문학을 대하는 수준이 놀라우리만치 일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문학을 대하는 수준은 오직 하나다. 잘 읽히는 작품이냐, 아니냐. 내가 좋아하는 문체냐 아니냐. 감동스럽거나 사유적 문장이 얼마나 많이 깔려 있느냐. 한마디로 지극히 원초적이다. 세계적인 명작이든 아니든 내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겐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별로 연연해 하지 않았다. 세상에 읽어야 할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그 작품이 안 읽힌다고 징징대는가.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다. "문학을 모르면 자신을 돌보는 것이나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 들고 말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그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는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 말은 이 책에 적잖이 반복되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문학은 그렇게 되어버릴 수 있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쐐기를 박는 가장 좋은 약인지도 모른다.


우린 때로 남의 삶, 남의 생각 속에 나를 비쳐보곤 한다. 그럴 때 문학은 남의 생각과 삶을 알기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을 문학이란 도구로 보지 않으면, 남의 삶의 한 단면만 보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흉내 내거나 묻어가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다양한 것을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필요 없는 경험까지 하므로 시간과 정력까지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할 수도 없고. 그런 건 문학이 한다. 사람들 중엔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특히 소설 같은 허구를 왜 좋아하냐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과학과 이성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과연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던가. 하루키도 <언더그라운드>란 책에서 똑똑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사이비 종교에 빠지더라고 했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평소에 문학을 읽었다면 극단적인 상상력을 신비 혹은 초월로 포장한 조잡하고 단순한 사이비 교리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은유, 초월적인 것을 이해하는 비논리의 힘을 모르면 인간은 거짓을 분별할 수 없게 된다고.


또한 저자는, 무모할 정도의 확신도 필요하지만 유연하고 통찰력 있는 사고도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은 세상대로 적극적 사고와 온갖 처세술을 강조하는 책으로 넘쳐난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유연한 생각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저자는 소설 읽기는 일종의 복기라고 했다. " ... 승패가 결정된 판을 다시 되짚는 것이다. 어떤 수에서 승패가 갈렸는지, 승자는 보았지만 패자는 보지 못한 경우의 수가 무엇인지를 간단히 되짚는 것이다. ...... 이 복기가 일상에서는 자기 검증이며, 바로 소설이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실패한 인생을 글로 복기한 것이다. ......


소설은 인생, 특히 실패한 인생에 대한 관찰 보고서와 같다. 보고서는 팩트에 근거하여 정보를 전달하지만 소설은 그 정보가 뼛속까지 느껴지도록 만든다. 실패한 인생을 다양한 시점으로 복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뼛속까지 알게 하는 것이다."(154쪽)


역사는 승자의 보고서지만 문학은 패자의 보고서라고 했다. 그러니 소설을 단순히 상상력과 허구의 산물이라고만 취급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면서 저자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회개는 잘 하지만 복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박할 여지는 없지만, 복기를 안 하기는 비기독교인도 마찬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역시 똑같이 반응하고 허탈해 한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에 한 번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회고록이 아니라 온갖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고백록을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나도 어느새 저자의 생각에 동화된듯하다. ​이 책은 어디를 펼쳐 읽어도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득한다. 어찌 보면 교회 오빠에게서 받는 과외 수업 같기도 하다. 과외수업에서 중요한 건 맥을 잡아주는 일 아닌가. 문학뿐만 아니라 신앙의 맥도 잡아주니 일석이조(?)다. 믿음 있는 사람은 어디 이런 과외 선생 없나 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도 두 번 이상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사람은 잔소리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저 사람은 얼마나 확신에 차있으면 저렇게 잔소리도 각잡고 하는 것일까 싶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난 이 말에 꽂혔다. "세상에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선택은 본능적으로 나타나는데, 문학이 그 과정을 설명한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 힘에 대해, 우리는 사랑의 섬광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지상에 머문다.'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이런 빛나는 통찰을 어떻게 붙잡았을까? 문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창문을 열어주는데, 그것이 상상의 힘이다."(254쪽) 과연 문학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이런 문학을 향유하길 거부한다면 우린 인생에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난 저자의 사유의 깊이와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다시 각 잡고 문학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아쉬운 건 설득은 좋은데 다소 동어반복적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건 확실히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너무 자세히 쓰다 보니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런 것만 견딜 수 있다면 이 책은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굳어진 사고에 자극을 주는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뭐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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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13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주에 가까운 말 ㅎㅎㅎ 소설이 일종의 복기라는 말, 패자의 역사란 말 참 좋습니다 ~

stella.K 2022-09-13 19:03   좋아요 2 | URL
그렇죠? 저도 소설이 패자의 역사여서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2-09-13 14: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를 알게 되었죠.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내용을, 강연을 흥미 있어 합니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김경일(지혜의 심리학, 의 저자) 님의 강연을 티브이로 보게 되었는데 참 흥미로웠어요.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가장 많이 보이는 태도나 결정을 알아보는 실험의 결과를 소개했는데 신기하더군요. 인간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상품 만드는 기업은 성공할 테고, 연애를 하는 사람은 연애에 성공할 테고, 인간 관계에서도 비교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듯해요.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stella.K 2022-09-13 19:10   좋아요 2 | URL
아, 저도 그랬습니다. 소설이 시들해지자 심리학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래도 지금은 다시 소설이 좋아요.
사실 알고보면 소설이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시대를 알아야하고, 등장인물도 알아야하고, 문체도 좋아야하고
기타 등등.
근데 말만 이렇게 합니다. ㅋㅋ

레삭매냐 2022-09-13 1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연 그러합니다.

독서는 자아 성찰의 순간이자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으며 새로운 문학도 끊임
없이 등장하니 쉬이 지루해질
틈이 없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22-09-13 20:00   좋아요 2 | URL
캬~! 역시 매냐님이십니다.
소설은 매냐님처럼 읽어야 하는데...!^^

희선 2022-09-14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에도 대단한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이 더 많이 나오죠 그런 사람을 보면서 위로 받는 거겠지요 자기 삶을 살다간 사람 이야기, 그런 것도 괜찮네요 이런저런 상상도 하게 하는군요 거기 담긴 걸 다 알지 못할지 몰라도...


희선

stella.K 2022-09-14 10:27   좋아요 1 | URL
대리만족 같은거죠. 내가 실제로 그렇게 다 살 수는 없으니까. 매력적이긴한데 요즘엔 좀 힘들더군요. 묵직하고 괜찮은 소설읽으면 좋긴한데 살 빠지는 느낌도 들더군요. ㅋ

han22598 2022-09-18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소설을 안 읽다가 요즘에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그래서 비소설을 거의 읽고 있지 못하지만요. 그런 차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내내 ..끄덕거리며...계속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stella.K 2022-09-18 21:18   좋아요 1 | URL
아, 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정말 읽는내내 소설과 시를 다시 붙들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마구 들더군요.

저자가 비교적 젊은 사람인 것 같더군요.
노련미는 다소 아쉽긴한데 이런 깊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감탄스럽기도 하더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 시와 소설과 그리스도인
이정일 지음 / 예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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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긴한데 뒤로 갈수록 동어반복적이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신앙에 왜 문학이 필요한지 알겠는데 뒤로 갈수록 도서 리뷰를 보는 것 같아 좀 지루했다. 약간 내용을 덜어내도 좋지 않았을까.
그래도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독교 세계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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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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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몇 번째 책인지 모르겠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자 역시 빠지지 않는 장서가 겸 독서가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첫 책을 낸 이후 매년 한 권 내지 두 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 가히 전방위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음번엔 무슨 책을 낼까 항상 궁금해진다.


그래도 저자가 다루는 주제 중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건 역시 책에 관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한 권의 소설과 그와 관련된 인문학 책을 하나로 엮은 리뷰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받고 좀 놀랐던 건 저자가 언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전방위적 독서가인 만큼 소설이라고 안 읽었겠는가만 남자들은 보통 소설은 잘 안 읽지 않나? 나만 하더라도 독서의 시작은 소설이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은 소설보단 에세이나 대중을 겨냥한 인문학서를 읽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건 뛰어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했다. 나는 저자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나이 들면 총기가 떨어지는지 소설 읽기가 좀 자신없어 진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자꾸 의심하게 되고, 읽었던 걸 다시 뒤적이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니 자꾸 선택에서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설에 더 매달려야 한다는 걸 안다.


멋모르던 시절엔 소설 읽기에 대해 회의를 한 적도 있다. 한 번 읽고 말 걸 뭐하러 읽는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문학을 알면 소설 읽기도 깊어진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인문학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 잘 몰랐던 것을 인문학에서 해답을 얻거나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더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자의 책들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핵심을 전달해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개인적으론 '개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했을까'란 글이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먼저 아키야마 마쓰코의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갓>란 작품을 소개했는데(이 책은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울 메이트>와 비슷해 보인다), 우린 흔히 개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런 말이 전해졌는지 그 출처를 알지 못했는데 여기서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무지개다리'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시에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앞부분만 잠시 살펴보면,


천국 바로 앞에 걸린 '무지개다리'

이 땅에 있는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였던 동물들은,

멀리 여행을 떠난 뒤, 이 다리로 향합니다.

다리 건너에는 초원과 언덕이 펼쳐져 있어,

누군가에게 있어 특별한 '파트너'였던 동물들은,

같이 뛰고 장난도 치며 놀고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듬뿍, 햇살이 내리쬐면,

모두가 모여 따뜻하게 누워 쉽니다. (207p~ )


내가 유독 이 챕터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개를 오래도록 키웠었고 다롱이를 무지개다리로 보낸지 이제 1년이 되어오는 시점(정확히는 이달 15일이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녀석만 생각하면 코끝이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녀석은 정말 무지개다리 건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시를 지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상의 시인이 있었다니 새삼 위로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개와 친해졌는가를 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개를 키워왔으면서 한 번도 이것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아는 건 늑대가 조상이란 정도? 지면상 길게 쓸 수는 없고, 저자는 콘라트 로렌츠가 쓴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란 책을 소개하면서, 개의 조상은 자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읭? 그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나무위키를 보니, 자칼은 여우와 늑대를 섞어놓은 승냥이과 동물이란다. 그렇다면 이 개라는 동물은 그 조상이 한 가지로만 특정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잡종'이겠다 싶다.


이 책에 의하면, 개와 사람이 친해지는 데는 생각 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옛날 (거의 선사시대를 의미하지 않나) 인간이 고기 한 점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 어느 날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는데 누군가 정신이 나갔는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개에게 무의식적으로 한 점을 던져줬단다. 그것은 인간이 개에게 고기를 줄 줄 몰라서가 아니다. 한 놈에게 그걸 던져주면 더 많은 녀석을 불러들여 어떠한 통제 불능의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또한 사람 먹기도 부족한 것을 짐승에게까지 주냐며 공분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사람은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먹다 남은 고기나 뼈를 개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호해 줬고, 공생관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놀랍잖나? 


그런데 개인적으론, 뭔가 책 제목이 좀 불만스럽다. 무엇보다 제목이 좀 얄밉지 않나? (저자에겐 좀 미안하지만 웃자고 하는 말이다. 용서하시길.ㅠ) 솔직히 나이 4, 50이 되어도 책을 못 읽거나 안 읽는 사람도 많을 텐데 뭔가 모를 괴리감 같은 게 느껴질 것 같다. (이런 경우 저자의 의도보단 출판사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독서 세대론을 부각시킨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마흔에 읽는 동양 철학 시리즈 같은 거 말이다. 그건 정말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왠지 마흔둥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마흔이 아직 안 됐거나 50줄 타기 시작한 사람은 별로 손이 안 갈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일부를 제외하곤 책을 잘 안 읽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40줄 타기 시작하면 노안이 오기 시작한다. 40대 인구가 타인구에 비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고. 물론 불혹이라고 해서 나이에 대한 자각이 책으로 이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무튼 그래서 또 쉰둥이들을 위한 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40에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50에 읽을 리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 책은 오십에 책을 읽기로 하고 그 나이를 두 번 그러니까 100세가 돼야 한 번 읽을 것 같다. 더구나 제목이 그래서 나는 저자가 독서 노하우나 독서론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다른 제목이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움이 든다. (살짝 치곤 너무 적나라했나? >.<;;)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고, 늦은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하지만 유독 독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서 습관은 한 해라도 젊었을 때 들이고, 책은 조금이라도 눈이 좋을 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력이나 집중력도 예전만 같지 않다. 오십은 오히려 독서를 잘 해왔던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책에서 멀어지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실제로 난 얼마 전 한 달 정도 책을 안 읽은 적이 있다. 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 읽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내가 나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는데 얼마나 편하던지.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전, 알고 지내는 번역가 한 분이 자신은 요즘 책도 안 읽고 리뷰도 안 쓰는데 그게 너무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는데 정말 이해가 갔다. 지지난 달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았고, 나도 다시 붙들긴 했지만 한때 있을 수 있는 독서 사춘(추)기 쯤으로 해두자. 그리고 다시 붙드는 데는 이 책의 공이 컸다.


10대 초반부터 책을 읽어 왔고 여전히 좋아하지만 갈수록 독서보단 책이란 물성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틈을 다른 것이 메운다.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 교양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갈수록 눈도 나빠지고 버팀력도 떨어지는데 무엇으로 나의 독서를 세워 갈까 가끔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책을 선택하는 시야도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고. 그때 누군가는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서는 계속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느슨해지는 나의 그 알량한 독서에 도끼질이든 채찍질이든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는 현재를 즐길 줄 모른다. 50이면 금방 60 된다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독서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다. 그동안 계속 붙들고만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덥기도 하고, 제목이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위에서 말한 딴짓도 해야 하고 해서 쉬 쓰질 못했다. 그러던 중 문득 10대 시절 우리 옆집에 살던 노부부가 생각이 났다. 얼핏 보기에도 60대 중반은 넘어 보였는데 꽤 교양 있어 보였더랬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무슨 식자층으로 은퇴를 했다고 들은 것 같다. 난 그 노부부가 참 좋아 보였다. 막연히 지식인이어서가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고, 그때 난 늙을 때를 생각하기엔 너무 젊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늙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나 어렸을 땐 책 읽는 중년, 노년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늙을 땐 많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노년이 되었으면 한다. 또 그렇게 같이 늙어 갈 책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과는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그러기 위해 앞서한 푸념은 푸념으로 남기고 어제처럼 오늘도 책을 읽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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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8-10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문학과 인문학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독서였달까요? 조만간 저도 리뷰를 쓰야 하는데 지금 도서관 반납해야 하는 책이 너무 재밌어서 리뷰를 미루고 있네요. ㅎㅎ 제목은 저도 좀 불만이네요. 인문학과 문학을 잇는 뭔가 좀 더 근사한 제목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굳이 오십이란 나이를 강조할 필요하 전혀 없는 내용이었어요.

stella.K 2022-08-11 15:24   좋아요 1 | URL
이책의 저자님께서 점점 인기작가가 되가시나 봅니다.
리뷰나 제법 많이 쌓였더라구요.
바람돌이님 리뷰 쓰시면 엄청 나겠는데요? ㅎ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기란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출판사의 고민도 참 크겠어요. 제목이 반인데…

기억의집 2022-08-10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천운이죠. 저는 아직 눈이 괜찮아서 종이책 전자책 다 읽을 수 있는데 남편이나 언니가 잘 안 보여 안경을 만지작 거리며 눈을 위로 뜨면서 글자 볼 때마다 아 나도 이제 얼마 안 난았겠구나 싶어요. 저는 일했을 때도 꾸준히 읽었는데.. 일주일 이상 책을 안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어요. 로렌츠의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다 라는 책에서 친구자 빠졌어요. 저는 로렌츠의 책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요. 개의 조상이 늑대가 아니고 자칼이었던가요!!!

stella.K 2022-08-11 15:16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저도 비교적 노안이 늦게 온 편인데 안경 쓰기 시작하니까
정말 불편하더군요. 누워서 책을 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물론 정 불편하면 그렇게도 하지만 한 두 페이지나 읽을까요?ㅠ
눈을 잘 지켜주세요. 그래야 천운도 잘 지켜질수 있습니당~^^

희선 2022-08-11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개다리라는 말 누군가 쓴 시에 나왔군요 그 시가 있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네요 무지개다리, 말은 예쁜데 슬프기도 하네요 곧 15일이네요 다롱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서 지금도 생각나겠습니다 앞으로도 떠오르겠네요

요즘은 책 제목에 나이를 붙일 때가 많군요 예전부터 나왔군요 그렇게 하면 책이 잘 팔릴지도 모르죠 정말 이 책 제목은 출판사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 것 같네요 소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를 알 텐데, 그렇게 못 볼 때가 더 많습니다 여전히 이야기를 보는... 역사나 예술을 잘 알면 재미있는 소설도 있지요 그런 거 몰라도 소설은 재미있지만...


희선

stella.K 2022-08-16 13:42   좋아요 1 | URL
사람이 죽은 것만 같겠습니까만 사랑을 줬던 미물이라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소설은 쉽게 읽히는 것도 많지만 어려운 것도 많더라고요.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 것도 많고.
희선님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2-08-1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롱이가 떠난 지 일 년 되었군요 어제.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아직은. 더 많이 시간이 흐르면 좀 잊혀지려나요. ㅠ 요새 울집 냥이가 저한테 딱 붙어서 잠을 자요. 새벽에 깨서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생명이 짠해서.

stella.K 2022-08-16 13:51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뭐 처음 보다는 낫습니다. 작년 이맘 땐 정말 많이 슬프더라구요. 냥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덜 섭섭하답니다.
근데 다시 키우라고 그러면 못 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 노인은 로봇 강아지 키우고 그러나 봐요.ㅋ

프레이야 2022-08-16 14:54   좋아요 0 | URL
ㅎㅎ 털은 안 날리겠네요
감촉이 어떨지…

stella.K 2022-08-16 15:00   좋아요 0 | URL
그도 그렇지만 개집사 노릇 안 해도 되잖아요. 얼마나 손이 가는지. 그걸 좋다고 20년 가까이 했으니. 이젠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이가 됐어요.🤣
 
인생극장 -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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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 <기억 수집가>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무조건 옛 기억들을 모았던 적이 있다. 이 책은 한창 그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때 샀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샀을 때 난 그 작업을 (잠정) 멈추었을 것이다. 나란 인간이란 뭐든 처음 시작만 반짝하고 마무리가 없으니 그 작업도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될지, 언제 마무리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왜 자서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저 사람이 어느 정도 삶을 살았다면 갈무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쓰다 보면 별의별 기억들이 다 떠오른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절 사회 문화적인 현상과 사건까지 굴비 엮듯 잘도 엮어진다. 난 그 모든 것들로부터 별 상관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별 수없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구나 싶다. 



저자가 책에서 적시했던 시절을 바탕으로 보자면, 난 그 시절 가수 정훈희와 김추자를 흉내 내길 좋아하고, 월트 디즈니의 만화를 좋아했으며, 평일 날 6시만 되면 시작하는 어린이 프로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던 평범한 어린이였다. (김추자는 당대의 인기에 비해 너무 일찍 잊힌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낮에 영부인이 한 저격범이 쏜 총탄에 죽을 수 있다는걸, 그로부터 5년 뒤 대통령 역시 하룻밤에 비슷한 운명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죽음이 있기 1년 전이었던가? 그가 대의원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연임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나는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그 한 사람밖엔 없는 줄 알고 그의 천하무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침 그때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 그리기가 한창이었고, 난(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리다 못해 유치한) '북한이여, 물러가라'란 표어가 들어간 포스터를 그려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연임과 죽음은 어린 나에게도 한 나라의 정치와 권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내 전공이 아니지만.) 이렇게 쓰니 난 그 시절 대단히 불행한 나라에 대단히 불행한 어린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을까. 그 시절엔 어린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학교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는 소식은 좀처럼 듣지 못했으니.       



폐일언하고,  저자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자서전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거지 그 누구의 삶도 대신 쓸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면 그건 전기가 되겠지. 물론 쓰기에 따라선 자신의 자서전에 부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할애를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저자는 아직 자신의 자서전을 쓸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부모님의 전기가 반, 자신의 자전이 반이다. 그것은 또 독특한 사회학 텍스트기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이 무척 신선했고 좋았다. 또한 침착하다 못해 침울한 분위기도 좋았고.



독특한 사회학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양친의 삶을 쓰려니 한계를 느껴 당시 유행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양친의 족적을 투영해 보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영상물만큼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게 또 있을까.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양친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었다. 난 아직 모친이 살아계시긴 하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부모나 나의 부모나 참으로 비슷한 신산한 삶을 사셨구나 싶다. 하다못해 가정 분위기조차 흡사하다. 그 시절 중매를 통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별로 애정도 우애도 없는 가정의 일원으로 살았다. 그나마 저자의 어머니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관계로 의지가 될까 싶어 나이 많은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지만, 나의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25살이면 당시로는 상당히 늦은 결혼을 했는데 엄마는 할 수만 있으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외할머니 등쌀에 결국 결혼을 했고, 출산과 시월드에서 여전히 신산한 삶을 살았다. 신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국민학교도 온전히 마치지 못했지만 엄마는 어느덧 가정의 보탬이 되는 성인이 되었으니 뭔가의 꿈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 적어도 당신의 앞가림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절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면서 왜 그토록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아야 했는지 엄마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자신을 구박했던 어머니도 딸이 더 이상 함부로 구박할 수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본격적인 자유를 구가하며 살 수도 있건만 그렇게 결혼으로 자신을 속박시켜야 했으니 아버지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을 리 없을 것이다. 솔직히 아버지가 나에겐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한 셈인데 그 정도라면 미남은 아니어도 나름 빠지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아버지가 못생겼다고 했다. 특히 그 코는 늘 생기다 말았다고 흉을 보곤 했다.



그 시절은 정말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 힘든데도 아이는 여덟, 아홉을 낳았으니 어찌 보면 모순 같다. 우리 집은 비교적 안정적인 집안에서 4남매를 밖엔 안 됐지만 우리 역시도 먹고 사느라 아주 힘들었다. 방금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픈데, 또 뒤돌아서면 내 몫의 군것질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 우린 (서로) 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위아래도 없이 목소리 크고, 힘센 놈이 이기는 법이다. 그러자 부모님은 평화를 위해 뭐든 4등분 하셨다. 그러자 휴전이 찾아왔다. 그래도 우린 뭔가 모르게 서로에 대해 불만이 많아 툭탁거리고 많이 싸웠다. 물론 그것도 너무 힘들고 귀찮아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차단했다. 가족끼리 싸워봤자 피곤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애틋하지도 않으면서 무덤덤한 게  한국의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 분위기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부부지간은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인지. 새삼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3부 <꿈꾸는 순간>의 '3장 여자 그리고 어머니, 아니 엄마'(332p)는 얼마나 공감하며 읽었는지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자애로운 어머니란 옆에서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결코 남편의 뜻을 거스르거나 독립적인 자기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집 안에서 어머니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아내 이외의 사람에게는 화통하고 친절했지만, 정작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남자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익힌 안과 밖의 희한한 구별법에서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339p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해 툭하면 오밤중에 지인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시곤 했다. 당시는 야간 통행금지도 있었고 9시만 얼추 넘으면 한밤중인 줄 알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런 사정도 안 봐주고 엄마는 잠자다 말고 술상을 차려내야 했으니 그 고충은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오죽했으면 자고 있는 어린 언니를 보며 절대로 사업하는 남자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뿐인가,  엄마는 누구의 아내라기보다는 일당 2천 원을 받는 가정부 같은 존재였다. 나도 기억하는 건, 아버지는 항상 아침이면 2천 원을 화장대에 무심하게 던져놓고 출근을 하곤 했다. 지금이야 2천 원의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70년대 초중반엔 먹성 좋은 우리 4남매 하루 군것질과 반찬값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것도 주일은 제외다. 



엄마는 그것에 꽤 자존심 상해했다. 당시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업으로 벌이가 꽤 쏠쏠했는데, 남자는 돈 있으면 외도 아니면 노름을 한다는 '남자의 공식'에 따라 아버지는 노름은 하지 않았지만 외도는 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렇게 일당을 줬던 건 자수성가를 한 탓도 있지만 할머니의 세뇌도 한몫했다. 여자에게 돈을 맡기면 친정으로 빼돌린다는 것이다. 막상 당신이 그런 삶을 사셨으면서 며느리가 그러는 건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할머니는  그 시대 여자들이 그렇듯 당신의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에 팔려 가듯 어느 홀아비의 재취가 되었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 받아 목재소 일을 했던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제법 유지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부자인 할아버지 덕에 돈을 친정으로 빼돌릴 수가 있었다. 그게 왜 당신은 되면서 당신의 며느리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가 진짜 그런 비행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면서. 모르긴 해도 그 시대 '여자의 공식'은 그런 거였나 보다.



엄마는 할머니에겐 맏며느리였다. 우리는 맏며느리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알고 있 다. 엄마는 그것을 훌륭히 감당해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엄마에게 온갖 패악을 저질러도 어디 가서는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며느리임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니셨던 것이다. 그건 엄마에게 또 하나의 족쇄였을 것이다. 엄마는 말했다. "난 너희들만 아니면 아버지와 진작에 이혼했어. " 



한때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듣기 싫어했던 때가 있었다. 이혼하려면 하는 거지 누구 때문에 못했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시대 이혼한 여자가 겪어야 할 수치와 모멸보다 억울해도 꾸역꾸역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로 사는 것이 그나마 나으니까. 내가 엄마의 입장이라면 난 셋 중 하나가 되었을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살을 하거나. 내가 엄마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건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우리 시대도 녹녹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시대보단 낫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건 노화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호르몬의 변화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자가 좀 당당해질 수 있었다는 건 저자의 어머니나 나의 엄마가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군림할 줄만 알았던 저자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야단 아닌 야단도 쳤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8, 9년 전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시고 회심한 후 엄마에게 나름 잘했다. 사실 아버지가 의리는 좀 있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니 엄마를 한 여인으로 사랑했다기보단 그냥 의리로 잘 했다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건 그야말로 엄마에겐 구원이고 복음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외도도 끊어버린 게 그 무렵이었다. 당시 비슷한 입장이었던 구역 성경공부 리더는 그런 엄마를 꽤 부러워했다. 게다가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의 위세도 한풀 꺾인 때이기도 했으니 엄마는 나름 꿈만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재밌는 건, 그 시대의 교육열이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무학이거나 학력이 낮지만, 부모가 못 배웠으면 자식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표준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 그래서 학교를 찾아가는 부모는 거의 없지만 선생님껜 "전적으로 선생님만 믿겠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는 저자의 지적(367p)이 그렇다. 그때는 정말 학교의 위세라는 건 대단해서 거의 국가 권력의 축소판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느 날, 같은 반 남자 아이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 생면부지의 담임 선생님께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시종 어색한 웃음을 띠며 몇 번이고, "말을 안 듣거든 그저 때려 주세요. 때려 주세요."를 반복하고 있었다. 10살도 되지 않는 아이가 잘못하면 얼마나 잘못한다고 선생님의 매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게 정말 때려 달라는 간청이었겠는가.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겠지.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좀 달랐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가끔씩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가곤 했다. 그 공포 효과에 그 아이도 동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르긴 해도 그걸 그 아이 부모가 알았다면 배신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2학년이 마치기 전까지 다시 선생님을 만나러 온 적이 없는걸 보면 그때만 해도 아이는 나름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시절 촌지 남발이란.           



나는 저자를 존중하지만 책 제목을 '가족극장'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는 가부장 아래 가정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여자는 자애로운 어머니란 옆에서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꼭 다 그런 건마는 아니다. 가정의 모순을 자애로움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지. 



엄마는 어느 때부턴가 우리 집에 대해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친가 쪽 사람들에 대해 좋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평화로웠는데 엄마는 한 가정의 비밀을 폭로하듯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난 좀 혼란스러웠다. 그건 어쩌면 여자만큼 가족 문제를 냉정하게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지적했던 '자애로운 어머니'는 반은 맞고 반은 여러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가족극장'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것이고.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 한국의 가정은 불행도 비슷하게 닮아있지 않나 싶다. 그건 또 후진국으로 갈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를 포함한 저자의 시대는 결코 자신의 자서전에 여성과 가정의 행복에 대해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시대가 되면 이것이 가능해질까.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자서전은 한 번도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사람을 위한 거울이고 치료제다. 언젠가 다시 자서전을 붙들게 되면 좀 더 엄마와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쓰고 싶다.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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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18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얼마전 강의를 듣는데 강사님이 예시로 들었던 책이 바로, 노명우 교수의 [인생극장]

더더욱 반가워요.

˝때려 주세요. 때려 주세요.˝는....듣기만 해도 무서운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신 선생님이 계셔거 더 충격입니다....

stella. K님께서 쓰실 부모님 인터뷰록도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2-07-18 18:24   좋아요 1 | URL
아,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극장>이 맞는 것도 같아요.
사실 ‘가족극장‘은 흔한 제목이죠.
이 책이 유명하긴 한가보군요. 저자의 책이 몇권 더 있던데
읽어보고 싶더군요.

예전엔 정말 그랬어요. 베이붐 세대라 그런지 한 반에 아이가
7,80명이었으니 일일이 돌보기가 쉽지 않았죠.
더구나 담임 선생님이 남자분이셨으니. 잘할 땐 잘하셨는데
한 번 화가 나시면 공포 그 자체였죠.

저의 자서전은 제가 혹시 유명한 사람이 되면...ㅎㅎㅎ
아시다시피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출판사에서 안 내주거던요.ㅋㅋ

조선인 2022-07-18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어머니 이야기와 너무 닮은 꼴 인생이라 마음이 스산해지네요...

stella.K 2022-07-18 18:26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어요 조선인님.^^
그렇죠? 우리네 어머니들은 왜 그러신지 모르겠어요.
좀 행복하면 좋을텐데...ㅠ

yamoo 2022-07-18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중해서 심각하게 읽어가다가....‘북한이여 물러가라‘에서 빵터졌네요...ㅎㅎㅎ
우수상 받은 포스터 그림이 북한이여 물러가라...ㅋㅋ
그럼 그림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네요..ㅎㅎ

아, 계속 웃음이...ㅋㅋㅋㅋ

stella.K 2022-07-18 18:3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야무님 빵터지셨다니 왜 제가 웃음이...ㅋㅋㅋ
그 포스터 내용이 참 별거 아니었어요.
도화지 중앙에 우리나라 지도 하나 그려 넣은 것뿐인데
선생님이 뭔가 영적으로 끌리셨던 것 같아요.
그림도 별건데 끌리는 그림있잖아요.ㅋㅋ
당시는 반공의 시대였잖아요. 지금 같으면 있지도 않거니와
뽑아 주지도 않았을겁니다.ㅋ

페넬로페 2022-07-18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의 얘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대가 주는 힘듦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세월 견디며 열심히 잘 살아오신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지는 않겠지만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계속 정훈희의 안개가 나오고 그 노래듣고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송창식과 함께 부르는 버전도 좋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그 노래 모르겠죠^^

stella.K 2022-07-18 18:47   좋아요 2 | URL
어멋, 정훈희의 ‘안개‘가 나옵니까?
이 노래가 시대별로 영화에서 리메이크가 되는가 보군요.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영화 주제가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신성일하고 윤정희 주연의 <무진기행>인가에 흘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송창식은 또 어떻게 불렀을까요?
아, 그 영화 아무래도 봐야겠습니다.ㅠ

희선 2022-07-19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이 쓰지 못하니 자신이 대신 쓰고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도 돌아봤군요 이 책 인세로 책방을 냈다고 합니다 인세가 책방을 낼 만큼 될지 모르겠지만... 니은서점... 거기엔 부모님 사진도 있다고 하더군요 부모님을 이렇게 기억하다니, 누구나 그걸 하지는 못하기도 하죠 stella.K 님은 이 책을 보고 stella.K 님 부모님을 떠올리셨군요


희선

stella.K 2022-07-19 18:45   좋아요 2 | URL
니은서점이 있는 건 아는데 이 책 인세로 낸건 몰랐습니다.
그럼 이책 대단한 책이네요.
인세라는 게 참 그래요. 처음 책을 내는 사람은 좀 그런데
떳다하면 굉장한가 보더라구요.ㅋ

mini74 2022-07-19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때려잡자 김일성도 인기표어였죠. ㅎㅎㅎ 그 시대 어머니들의 삶은 고난의 끝판왕같단 생각들어요. 저희 엄마 이야기같기도 하네요.. 다들 장편소설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사시죠. 그 장편소설에 미운놈 나쁜놈 억울함 그런게 없었음 좋겠어요. 하..그럼 너무 재미없을려나요. ㅎㅎㅎ

stella.K 2022-07-19 18:51   좋아요 1 | URL
ㅎㅎ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고무줄 놀이 할 때 부르는 노래도 있었죠.
그거 부르며 한창 놀때는 이런 때가 올까 싶었는데 과거를 돌이켜보게 만드니
그 세월이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ㅠ

미운놈 나쁜놈 억울함 없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소설에 그거 없으면 재미없을 걸요?^^

그레이스 2022-08-10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명우님 제가 좋아하는 작가신데, 이 리뷰는 제가 놓쳤네요.
이렇게 읽게 되서 정말 다행입니다.

stella.K 2022-08-10 18:09   좋아요 2 | URL
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2-08-12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stella.K 2022-08-12 10:45   좋아요 1 | URL
아, 강나루님도 축하드립니다.
날씨가 오늘부터 다시 더워지려나 봅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님도 즐거운 연휴보내십시오.^^

mini74 2022-08-12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저도 축하드려요 *^^*

stella.K 2022-08-12 10:4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미니님도 축하해요.^^

thkang1001 2022-08-12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2-08-12 10:47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님도 행복한 하루되십시오.^^

thkang1001 2022-08-12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2-08-14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조그만 가게를 오랫동안 운영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ㅜㅜ 노명우 교수의 부모님에서도 그런 부모님 세대의 모습을 또 봅니다.

stella.K 2022-08-15 09:48   좋아요 2 | URL
아고, 별것 아닌데ᆢ고맙습니다. 초란공님 부모님께서도 힘든 삶을 사셨군요.
그렇죠. 당연히 그렇게 못하죠. 그래도 시대가 좋아져서 그렇게 안 해도 좋은 세상이 됐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네 부모님들은 다행이다 하실거예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한 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