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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이드님 페이퍼를 보니 생리대가 문제긴 문제인가 보다.

뭐 안 그런 제품도 있겠지만 유명 생리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아직도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건 몇 년 전에도 지적이 있었다. 그동안 잠잠해서 시정이 됐나 보다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휘발성 독성물질은 물론이고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그 보도가 더 짜증이 났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제품이 어떤 건지 명확히 나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저 단순히 A, B ,C. D, E... 제품이라고만 나왔다. 어떤 제품인지가 알아야 그 제품을 안 쓰고 불매 운동이라도 벌이지 이런 변죽만 울리다마는 거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건 모르긴 해도 그 제품을 만든 회사의 명예를 생각하거나 또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마찰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런 소극적인 보도는 남성주의 편향 프레임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한데, 생리대나 종이귀저기를 남성들이 만드는가 보다. 그러면서 그들이 얼마나 제품에 열정적인지 직접 차보기도 한다면서 자랑을 하더라. 난 그때 멋도 모르고 대단하다 암, 그래야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왜 그걸 남자들이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여성의 생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이 생리대를 백날을 착용해 보면 뭐하겠는가? 해봐야 오줌을 질금 거리는 것이 다 일 텐데 그것 가지고 생리대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당연히 여자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여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적지않은 여성들이 생리통을 경험한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생리대 때문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그렇다면 한국일보의 그런 보도도 있겠다 언제까지 이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 볼 것인가?

 

이왕 생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상담학 석사를 시작한 지인인 J를 만나고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들 중엔 여자의 생리가 파란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게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생리대 선전에서 제품 비교를 보여주면서 파란 액체를 쏟아 붓는 장면이 나왔다. 그걸 단순하게 믿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더 황당한 건 남자들 중엔 여자의 생리가 하루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여성의 생리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도 간다. 더 웃긴 건, 여자들은 생리를 중요한 순간 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 화를 내면서 그것도 못 참느냐고 윽박지른단다. 지네들도 생리 현상 못 참으면서 누구더러 뭘 참으라는 건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라면 여성의 생리에 대해 뭐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엔 여성계를 중심으로 생리 바로 알리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부터 생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무슨 시크릿이니 그날이라고 돌려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생리대를 사러 약국에 들어가면 남자 고객이 있으면 눈짓으로 생리대를 가리키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편의점 계산대에 남자 점원이 있거나 말거나 당당하게 생리대를 집어 계산한다. 그게 창피한 일인가? 그거 산다고 실실 얼굴이나 쪼개고 있는 남자 녀석이 있다면 그게 잘못 된 거지. 생리대는 위생용품이다. 화장지를 사는 것과 같다.

 

그날 J에게서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J의 아는 지인이 숙박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게 연인이든 불륜이든 한 쌍의 남녀가 오면 그걸 정상으로 본단다. 남녀가 떼로 몰려와 아예 한 층을 점령하고 조금 있다 CC TV를 보면 서로 이방 저방을 바꿔가며 돌아다니는 것이 포착이 된단다. 즉 스와핑을 하는 것이다. 

 

그럼 그들이 음란마귀라도 씌웠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극히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단다. 이쯤 되면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설파했는데 이를 두고는 음란의 평범성 또는 성적 타락의 평범성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그러면서 자신도 자식을 키우지만 모텔은 못해 먹을 짓이라며 할 수만 있으면 정리하고 싶어 한단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남자아이들은.

보통은 야동이 성교육이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실제로 부부치료를 위해 야동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런 목적을 제외하면 야동은 가급적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야동도 중독이 된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뇌가 그렇게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에 큰 차이를 보이고 혼란에 빠지고 웬만한 자극에 만족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일정 기간 동안만이라도 야동을 보지 말아야 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챙긴단 말인가.

 

우리나라처럼 성교육이 엉망인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의 생리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데 콘돔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옛날이나 딸들에게 남자는 다 늑대다. 남자를 조심하라는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 말이 통하는 세댄가? 그래서 구성애 같은 성교육가가 남자 아이들에게도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아들 가진 엄마들부터 들고 일어난단다.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이상한 일이다. 구성애 씨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 거의 20년 전 일인데 그때 그녀가 한창 TV에서 웃겨가며 성교육에 대해 부르짖을 때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여자들 곁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언제까지 그녀들의 아들을 어린 아이로만 볼 것인가? 그러다 어느 날 내 아들이 어느 집 귀한 딸에게 임신이라도 시키면 그 뒷감당할 자신 있는가? 정말 사람이 안 변하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옛날 엄마들이나 그래도 배웠다는 요즘 엄마들이나 이렇게 안 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이 얘기를 지금은 할머니가 된 울엄마한테도 하면 별반 다르지 않다. “, 그러니까 지지배들이 조심해야지. 남자들이 그런 종잔 줄 몰라 그런다니?” 대번에 이런다. 그 남자들 뒤에 그런 엄마들이 있는 줄 알고 하는 소린지.

 

피임도 그렇다. 남자들이 콘돔 사용을 기피하는데 정관 수술이라고 좋아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심야에 하는 한 예능 프로에서 경기 지역의 모 시장이 나와서 자기 정관 수술했다고 자랑하던데 처음에 그게 어디 자랑할 일인가 했다. 아내를 위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말 자랑할 만하다 싶다.

 

여자들 원치 않는 임신을 위해 루프 시술하기도 하는데 남자들은 그것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을 할 경우 거의 대부분 요통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오죽 고통스러우면 시술한 것을 다시 풀 생각을 하겠는가? 그랬더니 요통이 사라졌다.

 

그럼 경구용 피임약은 어떤가? 그건 루프 시술 보다 더 위험하다. 여성암의 발병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경구용 피임약을 버젓이 선전한다. 옛날에 마누리가 죽으면 영정 앞에선 울고 뒷간 가서는 웃는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요즘에도 통할 말인가? 재혼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세상인가 말이다. 특히 마누라가 그런 이유로 죽은 거라면 이런 남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남자가 정관 수술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간단하다는 말씀.

 

그날 J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페미니즘, 페미니즘 하는데 이 성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여성 문제의 반은 해결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J의 두 딸은 공부를 잘해 사립 명문대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관이 우리 때와는 또 다르다. 큰딸은 결혼에 긍정적이긴 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고, 둘째 딸은 결혼을 하기엔 자기 인생이 너무 소중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단다. 그런데 또 그렇게 말하는 속내를 들여다보며, 둘째 딸은 엄마를 닮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데 교회 다니는 형제들은 어딘가 모르게 덜 채워진 것 같고, 교회 안 다니는 남자애는 믿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도 결혼하지 않겠단다.

 

요즘 여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직도 남아 선호사상의 그늘이 깊은데 옛날이나 아들 낳은 게 유세지 앞으로 그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닐 때가 도래하겠구나 싶다. 이젠 아들 낳은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아들 장가 잘 보내려면 지금부터라도 잘 가르쳐야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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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8-20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걸스데이의 유라양이 콘돔 광고를 찍는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남성 여성 모두에게 콘돔사용이 일상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하라 2017-08-2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관수술에 대해서 말씀한 대목에서 남자로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여성은 수술도 피임약도 건강상 해선 안되는거니 다 남자가 하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정관수술 받은 남성들도 통증을 느끼고 심리상태에도 악영향을 받아 불안과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가 되지않을 방법은 무얼지 신속한 의학적 발견에 무게를 두는게 좋을 것같아요

stella.K 2017-08-21 13: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말이있습니까?
그거 그냥 기분상 그럴 수 있다고 들었는데
민감한 남자들도 있는가 봅니다.
저의 집안에 아는 누가 정관수술했는데 그런 얘기 못들었거든요.
그래도 똑같이 안 좋은 거라면 여자 보다 남자가 하는 게 낫지 않나요?
어떻게 연약한 여자한테 피임 수술을 권합니까?
이도저도 어렵다면 콤돔 사용이 답이겠네요.

2017-08-2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1 13:4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그런 게 특히 더 심한 것 같아요.
생리에 대한 인식부터도 이렇게 잘못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파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ㅠ
 

 

 

1.

오랜만에 지인인 님을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는 거의 1년만이다.

온라인에서 안지는 꽤 오래됐지만 작년 내 책이 나온 직후 저자 사인을 핑계 삼아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다.

우리가 만난 곳은 강남역.

강남역은 한때 나의 나와바리였다. 다니던 교회가 근처에 있던 관계로 나의 청춘은 그곳에서 다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가끔 강남역을 나오곤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나와도 교회가 있는 쪽은 웬만해서 잘 안 가게 되고 주로 중고샵과 극장이 밀집해 있는 11번 출구 쪽과 그 뒷골목을 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책을 좋아하는 탓에 누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겸해서 꼭 한 번 들릴 욕심에 그쪽을 선호하게 된다.

강남역을 그렇게 오래 다녔음에도 어디가 어디 보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에 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강남역이면 다 강남역이지 그런 비교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보단 나의 회로가 그쪽으론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강남역이야 강북의 홍대나 신촌과 함께 젊음의 거리로 손꼽지 않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곳을 나이 먹은 사람은 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젊었기 때문에 그 차이를 못 느끼는 것을 나이 들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겠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게 된 것은 지난 달 지인 J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때도 별 생각없이 강남역 11번 출구쪽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간 2층으로 꾸며진 뭐라고 하면 알만한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로 갔다. 그전에도 두어 번 왔지만 그곳 화장실이 남녀를 통틀어 하나 밖에 없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순간 그곳에 대한 선호도가 확 떨어졌다. 위생도 위생이지만 뭔가 비인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도 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있고 그것도 몇 칸씩은 돼 있다. 어떻게 이렇게 번듯한 베이커리에서 남녀 구분 없이 딱 한군데만 있을 수 있을까? 그 상식 밖의 놀라움은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그곳을 들어가는 사람마다 놀라고 특히 여자 보단 남자들이 더 놀라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 내부는 꼭 여자용처럼 꾸며져 있었으니. 어쨌든 난 다음부턴 여길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디를 갈까?

가만 생각해 보니 같은 강남역이라고 해도 11번 출구 쪽이 젊은이들이 더 많이 출몰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물도 좀 더 촘촘하고. 그나마 조금 트인 곳이 옛 교회 건물이 있는 10번 출구 쪽이다. ,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전에도 그쪽을 안 다녀 본 것도 아닌데.

    

 

2.

상가 밀집 지역은 하룻밤에도 몇 개의 점포가 새로 생기고 새로 문을 닫는다. 더구나 역세권은. 강남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꼭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새로 문을 열고 닫는 것 같아도 주요 거점 상가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곳도 많다. 그중 하나가 ㅁㄷ 칼국수.

칼국수 마니이던 아니던 한번쯤 들어 본 상호일 것이다. 그게 강남역 10번 출구 뒤쪽에 자리 잡은 게 언제쯤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못해도 15, 아니 그 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어디 가서 점심을 먹나 고민했었는데 여전히 건재한 걸 보고 조금은 반갑기도 했다.

토요일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얼마만인가? 그동안 한 번도 수리를 안했는지 내부가 그대로다. 의자도 식탁도. 계산대에서 돈을 받는 주인장도 낮이 익다. 하다못해 일본에서는 돈을 내야 먹을 수 있다던 김치도 수저통 옆에 비치 되어있었다. 설렁탕집에 항상 파를 잘게 썬 통이 비치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손님이 제법 많은 중에도 우리 두 사람 정도는 앉을 곳은 있었다.

은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 탓에 멋모르고 칼국수와 만두국을 시키려 하는 것을 내가 얼른 칼국수와 만두로 정정했다. 물론 만두국도 나쁘지 않지만 그곳의 주 메뉴는 칼국수와 만두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음식이 국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 정도는 국물이 없는 걸 시켜줘도 좋지 않을까?

누가 칼국수를 먹고, 누가 만두를 먹을 것이냐 정하지도 않는다. 의례히 딸려 나오는 조그만 앞접시가 있고 중앙에 칼국수와 만두를 놓고 조금씩 덜어 먹으면 그만이다. 중국집에 둘이 들어가면 하나는 짜장면을 시키고 하나는 짬뽕을 시켜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처럼 그곳은 그렇게 먹는 것이 거의 상식처럼 통한다.

 

맛은 곳 기억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꼭 주인공만이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나도 만두 한 점과 칼국수 한 젓가락을 먹는 순간 옛 기억으로 빠져 들었다.

교회에서 연극을 하던 30대 시절 함께했던 수가 생각났다.

그녀를 꽃으로 표현하자면 코스모스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녀는 어딘가 수수하면서도 내면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강인함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후배였다.

한때 팀을 이끌기도 했던 그녀는 나와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굳이 친한 척 할 필요가 있을까, 난 애초부터 그녀와 잘 지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나쁘게 지낼 생각도 없었지만. 사람 사귀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상대가 하는 것만큼 나도 한다가 아닐까?

그녀는 확실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잘 챙기고 먼저 다가가는 끈끈한 친화력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굳이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린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

서로 친했으니 잘 맞쳐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109개를 맞추고도 하나가 맞지 않으면 결코 좋은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만남이고 관계는 아닐까? 하긴, 어떤 경우는 9개가 맞지 않는데도 유독 한 가지가 맞아 못 떠나고 맞춰 사는 사람도 있다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아이러니한 존재다. 그런 것처럼 그렇게 완벽한 만남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멀어졌던 수가 그것을 먹는 순간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녀는 겉으론 명랑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도 그럴 것이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비교적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20대 후반으로 어머니를 여읜지 3년 됐다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보다 조금 더 일찍 돌아가시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딸이 연극하는 것을 반대해 집에 감금당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연극에 미쳐있었고, 또 뭐 때문인지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교회에 연극 팀이 처음 생겼고 뭐 때문인지 그런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뭔가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서 온 것 같았다.

처음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는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어느 틈엔가 팀을 장악해 버렸다. 워낙에 몸이 재고, 전에 소위 있어 본경험도 있으니 팀을 장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초기엔 간식을 담당했다. 나야 팀에 나와도 별로 할 일이 없으니 그런 일이라도 맡는 것도 나름 보람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격상 오래 할 건 아니고, 적당히 나이 어린 후배가 들어오면 넘겨 줄 생각이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알았을까 아니면 연장자로서 나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설까,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자신이 모임에 나오는 길에 간식을 사 가지고 오겠다며 말하자면 내 일을 빼앗아버렸다. 그녀는 나름 나를 배려하겠다고 한 것이겠지만 나는 좀 섭섭했다. 이걸 넘겨주고 나면 난 팀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작가는 그런 존재였다. 글을 다 쓰고 연출가에게 대본을 넘겨주고 나면 할 일이 없는 존재. 그래서 늘 연극판 주위를 배회하는 존재. 그나마 내가 사 온 간식을 팀원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도 즐거웠는데 이제 난 뭘 해야 하나 좀 막막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하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모임 때마다 이번엔 무슨 간식을 준비해야할까 고민하는 것도 일이긴 했다. 그런데 비해 이런 일을 일상다반사로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수가 그랬다. 당시 그녀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니 그런 거 준비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엄마는 평소, 작가는 그림 같이 책상 앞에 들어앉아 글이나 쓸 줄 알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이 옳은 것도 같았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누군가가 하겠다고 할 때 넘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팀을 장악했던 첫 번째 일은 아니었을까?

 

 

3.

전에 연극을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렇게 적극적이어도 되는 걸까 싶게 그녀는 열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녀만 찾는 것 같았다. 그게 상대적으로 나를 외롭게도 했다. 하긴 난 어딜 가도 그렇게 적극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그녀는 교회에서 하는 연극은 여타의 그것과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교회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자신의 상처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교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건 즐겁고 기쁜 일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이미 얼고 있었던지라 그녀가 처음부터 너무 섣부른 낭만적인 생각은 안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안 하고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자유지 그것을 내가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바라기는 여기서 잘 견뎌주면 앞으로 어딜 가서도 잘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그녀는 다른 어딜 가서도 다시 연극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저 이를 다소 불안하게 지켜 볼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일을 해오는 동안 그녀는 알게 모르게 힘들어하고 지쳐했다. 하지만 아주 많이 그랬던 것도 아니다. 버텨볼만하게 힘들어 했고, 버틸만하게 지쳐했다. 그건 아마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힘들고 지쳤으면 나동그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때론 그녀가 그래줬으면 할 때도 있었다. 차라리 나동그라지고,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어줬으면 할 때가. 공연을 앞두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을 보는 건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함부로 그녀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런 상처 중에도 이만큼 해내는데 어떻게 입바른 소리로 소금을 뿌릴 델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그런 입바른 소리에 그럼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부메랑을 날리게 되면 그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받아주는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막 추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와 수 그리고 KE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으러 이 집을 찾았다.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라 우린 약간의 허기져 있었고 습관처럼 칼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오랜만에 먹으니 그도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와 같이 칼국수를 먹던 K가 무슨 배려심이인지 다 먹지 않고 수에게 내밀면서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덴 스스럼이 없어 찌개도 같이 먹고, 술잔도 돌려먹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먹던 칼국수를 먹으라고 권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기도 했다. 난 어렸을 때 외엔 같은 집안 식구라도 남이 먹던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특히 국물 음식은.

나는 과연 K가 권하는 그 칼국수를 수가 먹을까? 속으로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그녀는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특히 무슨 향순지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평소 그녀가 잘 쓰는 향수는 그런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설마 남이 먹던 음식을 먹을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기다렸다는 듯이 K가 내민 칼국수 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더니 어깨에 닿을 듯한 생머리를 한쪽 귀 뒤로 몰아 넘기고 그것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건 확실히 반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늘 입맛이 없다며 먹는 것에 별로 욕심을 내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래서 일까? 처음 만났을 땐 나름 통통하니 보기 좋았는데 몇 년 새 살이 빠져 턱선이 갸름하다 못해 다소 날카로워져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통은 살이 찐다고 하던데 그녀는 그 반대였다. 낮엔 직장에 나가고 밤엔 연극 연습하랴 귀찮다며 먹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그런 그녀가 그때는 정말 허기가 졌던지 K가 먹던 칼국수를 남김없이 다 먹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까지 근래에 보기 드문 그녀의 먹는 모습이었다.

나는 차츰 그 먹는 모습에서 처음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의 그녀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누구나 그렇긴 하겠지만 그녀에겐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그만의 외로움과 고독이 있을 것이다. 또한 혼자 먹었을 식사는 얼마나 될까? 비록 남이 먹던 칼국수라도 잠시나마 허기를 달래주고, 이렇게 함께 먹어줄 사람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면 나의 그런 판단과 편견은 잠시 접어둬도 좋지 않을까? 그날 먹었던 칼국수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그 누구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수는 만날 수 없다.

서로 티격태격은 많이 했어도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랐던 후배였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내가 여길 안 오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다녀갔을까? 왔다면 얼마나 맛있게 먹고 갔으며 연극과 인간관계의 치열함으로 살았던 인생의 한때가 있었음을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돌아갔을지 알 수가 없다.

사실 그날 과 함께 먹었던 칼국수와 만두는 예전에 먹던 그 맛이긴 하지만 나에겐 다소 짰다. 그것은 그 집 탓만은 아닐 것이다. 평소 외식을 자주하지 않는 나의 혀가 그것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그 집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입구 맞은 편 벽에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입니다란 글귀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겸손이라고 하기엔 뭔가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고 뭔가 의미가 있는 말일 텐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웠다. 그 집을 자주 다녔던 시절에 몰랐던 것을 이렇게 한참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오니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그만도 내가 많이 똑똑해졌다는 건가? 인간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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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의 맛 다음으로 중요한 게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입니다. 혼자 가서 맛집에 음식을 먹는 일보다 친구 여러 명 같이 맛집에 가는 일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혼자 가든 여러 명 같이 가든 음식이 맛있는 건 똑같아요. 그래도 친한 사람이랑 같이 먹는 게 기분 좋죠. 술집도 그래요. 술집에 여러 명 같이 가면 좋은 추억, 나쁜 추억이 될 만한 일이 하나쯤은 생겨요. 그래서 그 문제의 술집을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

stella.K 2017-08-17 18:07   좋아요 0 | URL
그렇지. 사실 나도 미맹이 오는지 맛집이라고 가지만
맛은 있지만 다음에도 생각나는 궁극의 맛?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다 분위기고.
누구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었다는 뭐 그런.
그래. 술집도 잊을 수가 없지.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이 나네.^^

qualia 2017-08-18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독특한 글맛을 느꼈습니다. 옛 추억도 더듬게 되었고요. 흐음... 오정희 작가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가 읽은 여성 작가 중 기억나는 작가는 오정희 작가밖에 없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분명 오정희 작가의 분위기 혹은 문체 같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밀(內密)한 혹은 사밀(私密)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소설 혹은 수필(에세이)이라는 형식을 빌어 오히려 가감없이 풀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tella.K라는 한 존재의 사적 공간에 들어가 이것저것 몰래 구경하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이런 글은 독특한 그 무엇이 있어요. 미지의 타인에게서 섬세한 감정의 체취를 맡는 느낌이랄까, 비밀스런 내적 고백을 엿듣는 느낌이랄까 그런 것 말이죠. 제가 워낙에 제 관심 분야 글들만 골라 읽는 타입이랄 수 있는데요. 윗글은 희미하게 잊혀진 제 옛 취향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데자뷔일 수도 있죠. 칼국수, 저도 좋아합니다. 칼국수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추억들이 저도 있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셨던 수제비 칼국수의 원초적인 그 맛, 일터 동료가 사줬던 잊지 못할 진국의 칼국수, eastT와 오붓하게 맞상하고 먹었던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그 따끈한 칼국수... 근데 칼국수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둥근 멍석처럼 펴는 나무 방망이하고 나무 판자를 뭐라고 하죠? 따로 이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네요. 꼭 칼국수가 아니더라도 언제 한번 stella.K 님 같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시간만 여유가 더 있다면 제 특유의 썰렁하고 뜨악한 얘기를 더 풀어놓을 수도 있겠지만서도 stella.K 님 칼국수 이야기 때문에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인’ 상태입니다. 오늘, 아 시간을 보니 어제네요. 어제는 라면 한 끼로만 때웠는데 배고파 죽겠네요ㅎㅎㅎ 오뚜기 진라면 순한맛 끓여 먹어야겠습니다. stella.K 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제 기억과 추억을 더듬고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셨네요.

stella.K 2017-08-18 13:39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이거 쓰면서 문체가 누군가 닮았지 했습니다.
그런데 님은 오정희 작가라고 알려주시네요.ㅋㅋ
저도 좀 통통 튀게 쓰면 좋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괜히 차분해지더라구요.

사실 이 글은 애초부터 쓰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래 전 칼국수집을 다시 갔더니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랐고
며칠에 걸려 썼죠. 이렇게 qualia님 칭찬을 받고 보니
공들여 쓴 보람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거, 홍두깨와 밀대는 아닌가 싶어요.
밀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홍두깨가 맞을 걸요?
아, 그러고 보니 뭐하나 정확히 아는 게 없네요.ㅠㅋ

qualia 2017-08-18 21:37   좋아요 2 | URL
주로 오정희 작가의 문학소녀 혹은 데뷔 시절 작품을 읽었더랬죠. 그때의 오정희 작가 비슷한 분위기를 stella.K 님 윗글에서 느꼈습니다. 오정희 작가의 젊은 시절 싱그러운 이미지의 사진이 작품집마다 실려 있었는데요. 윗글 읽는데 자꾸 그런 이미지가 미지의 stella.K 님 이미지로 오버랩되더라고요. ㅋㅋ 왠지 꼭 그럴 것 같다는... 뭐 제가 암것도 모르는 stella.K 님한테 오히려 실수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느낌이니까 용서해주세요. 오정희 작가 특징이 섬세하고 깊은 묘사가 압권이었던 것 같아요. 시각적 표피를 뚫고 들어가 존재와 세계의 숨어 있는 진실과 접촉하는 그런 묘사 말이죠.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다부지고 야무진 인식이 예사로운 작가완 많이 달랐죠.

오, 맞아요. 홍두깨가 맞습니다. 그리고 나무 판자는 걍 도마 혹은 칼도마라고 통칭했나봐요. 밀가루 반죽 밀 때 도마를 썼으니까요. 어머니께 전화해 여쭤보니까 그렇게 알려주시네요. 밀대는 홍두깨와 같은 도구를 가리키기도 하고 다른 도구도 가리키는 것으로 네이버 사전에 나오네요. ‘밀개’라는 명칭은 어렸을 때 들어본 것도 같아요. 아래에 인용해 놓을게요.

밀대 [발음 : 밀ː때]

1. 물건을 밀어젖힐 때 쓰는 막대.

[예문] 박 첨지 며느리는 됫박 위에 수북이 메밀을 담아 놓고 있었다. 밀대로 싹 밀어 되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안수길, 북간도

2. <군사> 소총 따위에서 노리쇠 뭉치와 연결되어 밀었다 당겼다 하는 긴 쇠. 큰 밀대와 작은 밀대가 있다.

3. ‘대걸레(긴 막대 자루가 달린 걸레)’의 잘못.

4. [방언] ‘밀개(1. 밀가루 반죽 따위를 밀어서 얇고 넓게 만드는 기구)’의 방언(충북).

관련 규범 해설

‘대걸레’의 의미로 ‘밀대’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대걸레’만 표준어로 삼고, ‘밀대’는 버린다.

관련조항 : 표준어 규정 3장 4절 25항

이렇게 작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군요. 인간 세상사 인연이 그렇게 맺어지는 것이겠죠. 아무튼 흥미진진한 세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stella.K 2017-08-19 15:08   좋아요 2 | URL
그래도 둘중 하나는 맞혔군요. 홍두깨.
전에 TV에서 들어 본 것 같아 그냥 한번 찔러 본 건데 말입니다.ㅎㅎ

오정희 작가 그랬군요.
모름지기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하는지 qualia님이 팁을
알려주신 것 같아 저는 오히려 고맙네요.
저도 글을 쓸 때 그렇게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시각적 표피를 뚫고 들어가 존재와 세계의 숨어 있는 진실과 접촉하는 그런 묘사 말이죠.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다부지고 야무진 인식˝이라.
명심하겠습니다.

qualia님 싱그럽게 느끼신 건 저의 젊었을 때의 한 일화를
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 친구가 싱그럽기도 해서일 겁니다.^^

blanca 2017-08-2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글도 좋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칼국수 얘기를 하시니 지금 감당이 안 되네요...한때 칼국수집에서 약속을 하면 전날 밤 칼국수를 생각하며 잠들고는 했었는데.... 저는 요새 드는 생각이 사람간의 관계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인연이 다하면 굳이 서로가 노력하거나 노력하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평생 함께 하는 줄 알았는데...이젠 그럴 수도 없고 그런다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stella.K 2017-08-28 15:37   좋아요 0 | URL
앗, 브랑카님이 이리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글을 잘 쓰긴 했나 봅니다.
뭐 칭찬은 이미 들어 알고는 있었습니다만.ㅎㅎㅎ

브랑카님도 칼국수 좋아하시는군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관계의 유효기간.
저도 한때 브랑카님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런 생각 때문에 어떻게든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보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못했네요.
세월이 흘러가듯 관계도 흘러가는 법인데 말입니다.
고마워요.^^
 

오늘 대출 연장을 위해 은행엘 갔다.

빚없이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냐만

이놈의 대출은 언제 쫑이 날런지 모르겠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내가 이 땅에 죽어 없어져도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울오빠가 끝맺지 못하고 간 것을 나와 엄마가 대신하고 있는 거니까

돈벼락을 맞거나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계속 바통을 이어 받아 연장의 연장을 거듭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을 위해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오후엔 붐빌 것을 예상에 오전에 갔는데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업무를 보는 창구는 몇 개가 되는데

대출업무를 보는 창구의 직원은 한 명이다.

원래는 두 명이 더 있나 보다.

그런데 하나는 뭐 때문인지 직원이 없고,

다른 하나는 공석이다.

그러니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릴 수 밖에.

 

은행이 시원해서 좋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가 되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불평이 절로 나왔다.

은행이 돈 회수하는 거야 신나겠지만

돈을 내주거나 연장 신청 반갑지 않으니까

갑질은 못하겠고 이런 거에서 지 잘난 척 하는 거 아닌가.

 

얼마만에 우리 차례가 돼서, 많이 기다렸다고 한 마디 했더니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하면서 직원이 없어서 그렇단다.

은행 전체적으로 감원을 3천명을 했다나?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점점 은행이 줄어들 거라더니 3천명씩이나?

그렇다면 이 3천명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차장이란 직함을 달긴했지만 그도 언제 짤릴런지 모르고

이 업무를 보고 있는 거겠지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 시간인데도 우리 다음 손님을 맞이하느라

여전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작년에 우리를 맞아줬던 직원은 어떻게 됐을까?

개설된 나의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약간 거들먹대며 한마디 했었는데  그는 지금도 잘 살고 있나

새삼 궁금해졌다.

 

만기에 의한 연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금리가 적용이 될 거라고 했다.

미국의 금리가 올랐기 때문에 따라서 은행 금리도 오를 거라고.

난 이게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덩달아 우리나라 금리도 요동을 쳐야하는 걸까?

뭐 나비효과니,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린 독감에 걸린다며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가 좌지우지 되야한다는 게 마땅치가 않다.

물론 그게 우리나라뿐이겠냐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부탄이라고 한다.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나라가 행복할 수 있는 건

세계화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세계화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복의 길을 모색해 가는 것 말이다.

우리도 그럴 수는 없는 걸까?

 

아무튼 우린 오늘 은행을 다녀 옴으로 다시 한 번 1년 동안 지금의 집에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걸 허락 받았다.

오른 금리의 이자를 내면서 말이다.

우리 집을 우리 집이라 말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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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근처 시장 안에 있던 은행이 갑자기 폐쇄되는 바람에 ATM을 이용하려면 좀 더 걸어 가야해요. 은행 직원이랑 안면이 있어서 이별 인사 한 마디라도 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stella.K 2017-08-02 20:22   좋아요 0 | URL
와, 우리가 어느새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예전에 은행원도 희망 직업 수위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말야.
그렇다면 내년에 나도 은행 찾아 삼만리를 할지도 모르겠구만.
지금도 거래 은행이 지점이 가장 작은 줄 알고 있거든.

그런데 이번 휴가 때 일본 간다고? 부럽구만.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너를 위해 마구 져줄게.
근데 너 휴가 가서도 책 본다고
크레마나 종이책 몇 권 싸 가져갈 것 아니냐?
눈 생각해서 그런 거 싸 가져가지 말고
그냥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나 많이 먹고오렴.
그게 내 소원이다.ㅠㅠㅋㅋ

cyrus 2017-08-02 20:22   좋아요 2 | URL
일본에 가는 이유가 실컷 먹고 쉬려고 가는 거예요. 책을 들고 가면 일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을 못 챙겨와요. ㅎㅎㅎ

stella.K 2017-08-02 20:23   좋아요 0 | URL
내 선물도 사와!ㅋㅋㅋㅋ

cyrus 2017-08-02 20:24   좋아요 0 | URL
받고 싶은 거 있어요? ^^

stella.K 2017-08-02 20:27   좋아요 0 | URL
왜, 진짜 사서 보내주게...?
아냐. 됐어.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야.ㅋㅋㅋ

2017-08-02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8-03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이나 마트의 계산대에서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답니다, 여긴. 사람을 줄여서 얻는 이익, 고객이 대신 일해주는 셈이니 거기서 얻는 이익, 물건값이나 서비스비용의 상승으로 얻는 이익은 다 어디로 가는 건지 얼마전에 유PD가 던지더라구요. 이거 향후 10년 안에 지금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듯.

stella.K 2017-08-03 13:29   좋아요 0 | URL
문명의 이기 앞에 인간이 철저히 굴복하고 마는 거죠.
기계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쓸 줄 아는 자만이
세상을 지배하려나 봅니다. 으흠~
 

한해의 반이 가고

또 반이 시작되었다.

한해 동안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이를테면,

1월1일,

설날,

봄의 시작 또는 학년의 시작인 3월,

그리고 오늘 같은 날.

 

남은 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올 한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민지

가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7월의 첫날, 저녁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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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7-0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절반 지났네요. 좋은 일들 앞으로 많이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stella.k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7-07-01 19:53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남은 한 해 좋은 일들로
쌓여 가게 되길 바랍니다.^^

cyrus 2017-07-0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알라딘 18주년 기념 통계 구매 기록 공개했던데 확인해보셨어요? ^^

stella.K 2017-07-03 14:27   좋아요 0 | URL
컥, 그런 게 있었나?
뭐 재미라고는 하지만 늬들이 우리 책 얼마나 샀나
똑똑히 보고 있다는 뜻 아니겠니?
난 중고샵 주로 이용해서 말이지.ㅋ
중고샵이나 휑하니 다녀오면 좋겠는데
책 사면 읽게되지는 않아서 참고 있다.ㅠ

cyrus 2017-07-03 16:23   좋아요 0 | URL
그거 매년 이맘때쯤이면 나와요. 지금쯤이면 통계 자료를 공개하는 글들이 나와야 하는데 조용하네요. ^^
 

나는 여태껏 담배를 단 한대도 피워 본 적이 없어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백해무익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하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든 안 갖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늘 존재해 왔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 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뇌의 해마와 반응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집중력이 높아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냥 평상시로 돌아가지만 담배를 피웠을 때 극대화된 자신을 경험한터라 그것을 안 하면 상대적으로 무기력 하다고 생각해 결국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그래서 담배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얼마 전, 나는 엄마와 식사를 하면서 무슨 말 끝에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당신이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얘기라면 나도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또 들어야 하나 시큰둥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좀 다른 말을 한다.

물론 엄마는 오래 전에 담배를 끊긴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주방에서 일하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그러니까 엄마는 어느 때부턴가 당신이 담배 피우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그때 엄마는 속이 메스꺼워서라고 했다. 분명 담배는 안 좋은 거긴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이유 때문에 피우겠다는데 나는 그것을 말리지 못했다그리고 그 말을 꽤 오래도록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엄마는 담배에 관해서만큼은 그것을 끊지 못하는 동생에게 할 말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생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의 입막음을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고.
"옛날에 내가 동현(동생의 이름. 가명)이한테 담배 가지고 하도 뭐라고 그러니까 그러는 엄마는 왜 피웠냐고 그러더라. 그런데 지가 묻고 지가 답하는 거 있지. 하긴, 엄마는 아버지가 속을 썩여서 그런 거지 뭐. 그러면서 히히 웃더라고."

그런 거라면 당시 어린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아버지의 외도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동생이 너무 어려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속이 메스꺼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엄마는 그때 왜 아버지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엄마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알게 되길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비록 엄마한테는 원수 같은 남편이지만 아이들에겐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길 바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엄마가 느끼는 불행을 공감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아니면 어쨌든 외도라는 건 관계를 배신하는 일로 교육상 좋지 않은 것이니 우리가 외도의 외자도 알게 되길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디 그뿐인 줄 아니? 늬 할머니하고 고모들 속 싹이지,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마땅치 않지."
그런 거라면 또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그때 엄마는 또 한 번 시월드 사람들의 만행을 떠올리는 것이다우리들은 우리들대로 별로 자랑하고 내세울 것 없었으니 결국 그래서 담배를 입에 대셨다는 말씀. 그런데 엄마는 새로운 해석 하나를 더 보탰다.

", 게다가 양쪽 할머니 그렇게 담배 피지, 큰 고모 피지. 씹할어디 그게 어떤 건가 피우고 싶더라구. 그런데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거야. , 이래서 담배들을 피우는구나 알겠더라구."
 
그 시절 나의 눈에도 양가 할머니와 고모가 담배를 피우는 건 너무도 당당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나 자랄 때만해도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담배는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것으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남자에게 도전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도 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스스럼이 없었던 건 나이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에 스스럼이 없어지고 남자들도 묵인해 주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분들에 비해 나이가 젊었으니 그렇게 숨어서 피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양가 할머니는 그렇다고 쳐도 엄마와 큰 고모의 나이는 많아야 4, 5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쪽 할머니, 고모가 담배 피우는 거 알겠더라구.
늬 할머니 재취로 시집 와 청상이 되었지, 외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의가 좋지 않았지, 큰 고모도 그렇지뭔 낙이 있었겠니?"
나의 큰 고모가 그렇다는 건, 모전여전이라고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큰 고모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흠이 없는 결혼이라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그도 그렇겠다 싶다. 지금 같이 결혼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절 남편과 자식 바라보고 사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엄마를 포함해서 그 시대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회의와 외로움을 그렇게 담배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의 할머니와 고모는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생각 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담배 피워왔을 것이고 그게 늦게까지도 계속 되어 온 것일 게다. 그에 비하면 엄마는 그분들 보다 오히려 늦거나 비슷한 나이에 담배를 피운 것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따진다면 담배는 남자보단 여자에게 더 필요한 기호품은 아니었을까아니 적어도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들에게도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인 건, 엄마의 흡연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 흡연 욕구가 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는 전이라고 해서 술과 담배를 금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엄마는 기쁨이 충만해서 교회에서 금하는 것들을 하지 않았다.

 

더 다행인 건, 엄마가 교회를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아버지는 망령된 행실(외도)을 끊고 착실한 신자로 거듭났고,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에게 잘했다는 것이다. 하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이 되면서 가장 큰 성과중 하나는 축첩제도의 폐지 아니었던가.

 

아버지가 엄마에게 잘하니 엄마도 자연 아버지에게 잘했고 부부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선 그런 좋은 부부관계를 좀 더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혼한 지 30. 이제 겨우 부부관계가 뭔지 알 것만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이제 다 거쳐 왔는데 하필 그 시점에서 영영 이별이라니. 그래도 서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사별을 했으니 여자에게 담배 보다 좋은 건 신앙인 것 같다.

 

, 근데 우리 아버지 그 망령된 외도는 끊었지만 술과 담배는 완전히 끊지는 못하셨다. 뭐 심하게 하셨던 것은 아니니까 그냥 봐 드린다.

 

 

누구는 종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종교의 유익을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역사적으로도 봤을 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축첩제도가 철폐되는 등 사회적으로 이로운 측면이 더 많았던 걸 알 수가 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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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버지는 담배를 싫어하지만, 술은 엄청 좋아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담배 피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지금도 비흡연자로 살아가고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어요. 맞선임이 흡연자라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

stella.K 2017-07-01 18:1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구나.
내가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지 몰라도
코가 담배 피우는 사람한테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스치기만 해도 알겠더군.
담배가 옷에 베나봐.
그러니 너도 참 괴로웠겠어.
술 먹는 사람 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하던데
내 동생은 술은 싫어하면서 담배는 피운다. 걱정이야.ㅠ

cyrus 2017-07-01 20:56   좋아요 0 | URL
술이 제일 해로워요. 술을 많이 마시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술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일수록 홍조 현상이 심해요. 몸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인 거죠. 그런데 이 경고를 무시하고 술을 마셔요. 울 아버지가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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