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태껏 담배를 단 한대도 피워 본 적이 없어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백해무익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하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든 안 갖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늘 존재해 왔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 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뇌의 해마와 반응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집중력이 높아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냥 평상시로 돌아가지만 담배를 피웠을 때 극대화된 자신을 경험한터라 그것을 안 하면 상대적으로 무기력 하다고 생각해 결국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그래서 담배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얼마 전, 나는 엄마와 식사를 하면서 무슨 말 끝에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당신이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얘기라면 나도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또 들어야 하나 시큰둥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좀 다른 말을 한다.

물론 엄마는 오래 전에 담배를 끊긴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주방에서 일하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그러니까 엄마는 어느 때부턴가 당신이 담배 피우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그때 엄마는 속이 메스꺼워서라고 했다. 분명 담배는 안 좋은 거긴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이유 때문에 피우겠다는데 나는 그것을 말리지 못했다그리고 그 말을 꽤 오래도록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엄마는 담배에 관해서만큼은 그것을 끊지 못하는 동생에게 할 말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생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의 입막음을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고.
"옛날에 내가 동현(동생의 이름. 가명)이한테 담배 가지고 하도 뭐라고 그러니까 그러는 엄마는 왜 피웠냐고 그러더라. 그런데 지가 묻고 지가 답하는 거 있지. 하긴, 엄마는 아버지가 속을 썩여서 그런 거지 뭐. 그러면서 히히 웃더라고."

그런 거라면 당시 어린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아버지의 외도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동생이 너무 어려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속이 메스꺼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엄마는 그때 왜 아버지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엄마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알게 되길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비록 엄마한테는 원수 같은 남편이지만 아이들에겐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길 바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엄마가 느끼는 불행을 공감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아니면 어쨌든 외도라는 건 관계를 배신하는 일로 교육상 좋지 않은 것이니 우리가 외도의 외자도 알게 되길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디 그뿐인 줄 아니? 늬 할머니하고 고모들 속 싹이지,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마땅치 않지."
그런 거라면 또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그때 엄마는 또 한 번 시월드 사람들의 만행을 떠올리는 것이다우리들은 우리들대로 별로 자랑하고 내세울 것 없었으니 결국 그래서 담배를 입에 대셨다는 말씀. 그런데 엄마는 새로운 해석 하나를 더 보탰다.

", 게다가 양쪽 할머니 그렇게 담배 피지, 큰 고모 피지. 씹할어디 그게 어떤 건가 피우고 싶더라구. 그런데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거야. , 이래서 담배들을 피우는구나 알겠더라구."
 
그 시절 나의 눈에도 양가 할머니와 고모가 담배를 피우는 건 너무도 당당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나 자랄 때만해도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담배는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것으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남자에게 도전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도 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스스럼이 없었던 건 나이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에 스스럼이 없어지고 남자들도 묵인해 주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분들에 비해 나이가 젊었으니 그렇게 숨어서 피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양가 할머니는 그렇다고 쳐도 엄마와 큰 고모의 나이는 많아야 4, 5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쪽 할머니, 고모가 담배 피우는 거 알겠더라구.
늬 할머니 재취로 시집 와 청상이 되었지, 외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의가 좋지 않았지, 큰 고모도 그렇지뭔 낙이 있었겠니?"
나의 큰 고모가 그렇다는 건, 모전여전이라고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큰 고모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흠이 없는 결혼이라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그도 그렇겠다 싶다. 지금 같이 결혼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절 남편과 자식 바라보고 사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엄마를 포함해서 그 시대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회의와 외로움을 그렇게 담배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의 할머니와 고모는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생각 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담배 피워왔을 것이고 그게 늦게까지도 계속 되어 온 것일 게다. 그에 비하면 엄마는 그분들 보다 오히려 늦거나 비슷한 나이에 담배를 피운 것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따진다면 담배는 남자보단 여자에게 더 필요한 기호품은 아니었을까아니 적어도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들에게도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인 건, 엄마의 흡연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 흡연 욕구가 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는 전이라고 해서 술과 담배를 금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엄마는 기쁨이 충만해서 교회에서 금하는 것들을 하지 않았다.

 

더 다행인 건, 엄마가 교회를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아버지는 망령된 행실(외도)을 끊고 착실한 신자로 거듭났고,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에게 잘했다는 것이다. 하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이 되면서 가장 큰 성과중 하나는 축첩제도의 폐지 아니었던가.

 

아버지가 엄마에게 잘하니 엄마도 자연 아버지에게 잘했고 부부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선 그런 좋은 부부관계를 좀 더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혼한 지 30. 이제 겨우 부부관계가 뭔지 알 것만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이제 다 거쳐 왔는데 하필 그 시점에서 영영 이별이라니. 그래도 서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사별을 했으니 여자에게 담배 보다 좋은 건 신앙인 것 같다.

 

, 근데 우리 아버지 그 망령된 외도는 끊었지만 술과 담배는 완전히 끊지는 못하셨다. 뭐 심하게 하셨던 것은 아니니까 그냥 봐 드린다.

 

 

누구는 종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종교의 유익을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역사적으로도 봤을 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축첩제도가 철폐되는 등 사회적으로 이로운 측면이 더 많았던 걸 알 수가 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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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버지는 담배를 싫어하지만, 술은 엄청 좋아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담배 피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지금도 비흡연자로 살아가고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어요. 맞선임이 흡연자라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

stella.K 2017-07-01 18:1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구나.
내가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지 몰라도
코가 담배 피우는 사람한테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스치기만 해도 알겠더군.
담배가 옷에 베나봐.
그러니 너도 참 괴로웠겠어.
술 먹는 사람 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하던데
내 동생은 술은 싫어하면서 담배는 피운다. 걱정이야.ㅠ

cyrus 2017-07-01 20:56   좋아요 0 | URL
술이 제일 해로워요. 술을 많이 마시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술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일수록 홍조 현상이 심해요. 몸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인 거죠. 그런데 이 경고를 무시하고 술을 마셔요. 울 아버지가 그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