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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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보면 유난히 마음 쓰이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감히 영초 언니에 비할 수 없지만)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단지 저자와 내가 공통점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시절은 있을진대 그 시절을 기꺼이 함께 가 준 사람이 꼭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되돌아 볼 때 마냥 힘들고 불행하지만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그런 시절과 사람이 있었다. 매번 고딩 조무래기들과 연극을 하다 몇년 후 제법 갖춰진 곳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수를 만났다. 한때 연극이 좋아 배우로도 활동했었지만 뭐 때문인지 연극판을 완전히 떠났으며 팀 내에서도 그리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했다. 나 보다 세 살이 어렸지만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랐던 후배다. 나는 다소의 낯가림이 있어 평소 그리 살갑게 대해주지도 못했다.

 

갖춰진 곳이니 나에겐 더 잘된 일이긴 한데 그것도 잠시, 왜 난 그곳이 그리도 부담스럽고 외로워했는지 모르겠다. 지나놓고 보면 다 미숙하고 지혜롭지 못해 그런 것이긴 하지만 당시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마음 고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럴 때마다 수는 내 아픔이 자신의 아픔인 양 같이 울어주고 아파해 줬다.

 

하지만 스타일도 성향도 서로 달라 우린 결정적일 때 불화했고, 생채기도 많이 냈다. 세상에 처음부터 마음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로 맞춰 가는 거지. 그게 이론적으론 가능한데 막상 부딪쳐 보면 생각만큼 되질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 크게 싸우고 다시 안 볼 생각도 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또 그런 것이 아니라 다시 화해하고 한동안은 잘 지냈다.

 

모든 것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그도 몇 년을 하고나니 팀의 존폐설이 제기 되었고, 결국 팀을 정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때 나는 그것에 단 1의 아쉬움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고나 할까? 팀이 해체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수 역시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싸늘하더니 팀이 완전히 정리가 되자 마치 대인기피증에라도 걸린 사람마냥 숨어버렸다.

 

나는 수가 그렇게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우린 팀이 해체가 되더라도 서로 연락하고 가끔 밥도 같이 먹으며 옛 추억을 곱씹게 될 줄 알았다. 그러다 거의 1년 반만이던가? 어떤 일이 있어 다시 만났는데 옛날의 수가 아니었다. 뭔지 모르게 막이 쳐져있었고 불편해하는 모습이 영력했다. 나 역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그런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 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우린 다시 만나지 못했다.

 

사람이 잊히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런 식으로 헤어지니 더 많이 기억에 남더라. 그리도 살갑고, 열정적이었는데 그녀가 마치 하루아침에 병든 사람처럼 바뀐 것을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안으로 곪아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때 그녀는 팀을 더 이어갈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나에게 화살을 돌려댔던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지만 그래도 그때를 되돌아보면 수만큼 나를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은 없었고, 연극판의 그 치열한 여정을 함께 견뎠던 사람도 없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생각나는 사람이다.

이 책을 보며 난 그때의 수가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이 이야기를 가슴에만 묻어놓고 살았을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서전을 쓰고 싶어지는 법인데 저자는 참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꽁꽁 묻어놨겠구나 싶다. 더구나 저자는 언론인 출신이다. 온갖 사건과 사고, 남의 이야기는 발 빠르게 취재하고 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말하지 않은 걸 보면 그 시절에 대한, 또 영초 언니에 대한 빚진 마음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다.

 

덕분에 우린 민주와 항쟁, 그 뜨거웠던 시절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됐다. 어느 한쪽에서는 또 옛날 고리짝 이야기를 곱씹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시절 민주화 투사들과 독재 정권에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선량한 시민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도 민주화 운동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아직도 친일 세력을 비롯한 일부 보수 세력이 이것을 자꾸 덮으려고만 한다. 그래도 정권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지난 박근혜 정권과 보수 세력은 할 수만 있으면 죽은 박정희의 망령을 다시 살려 내려고 안달이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보니 해결하지 못한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진상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이 책이 그저 한낱 개인의 과거사에 대한 한풀이나 하자고 쓰인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여성인 만큼 그 시절 여성들이 어떻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어떻게 고문과 학대를 받아왔는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어 그 시대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 역시 박정희 키즈로 자라왔고,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은 일어났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그를 대신할 사람이 있었을까?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을 보고 난 그때야 비로소 나의 믿음을 의심했고, 박정희를 의심했다. 그도 죽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 권력은 남용되어선 안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을 그제야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의 민주화 열망은 그 보다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저자도 말하지 않는가? 우린 그저 박정희가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길 바랐지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고. 그 덕분에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었고, 제적당했던 학생의 신분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었으며, 소위 말하는 서울의 봄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국가가 그들에게 입힌 폭력과 상처는 보상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들이 어떠한 보상을 바라고 투사의 길에 뛰어 들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또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민주화는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피기도 전에 시들어져 가는 꽃이 됐던 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가 언제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우한 적이 있던가?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저렇게 건재한데, 국가 유공자란 명예는 주면서 그들이 정작 어떻게 사는지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런 것처럼 민주화 투사들 역시 나 몰라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관이 좁은 나라도 흔치 않은 것 같다. 모 아니면 도다.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또 한 번 역사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는가?

 

무엇이 그토록 역사의 망령을 놔주지 못하는 걸까? 그걸 단순히 향수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새 역사, 새 역사 하지만 우린 아직 새 역사의 주인이 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되는 길을 돌아 가보고 그 끝에 닿아봐야 깨닫는 우리 민족은 그다지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며, 진취적이지 못하고, 현실 타협적이며 안정만을 지향하는 그것이 발목을 잡아 온 것은 아닌가?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했다. 사람들이 억압 받고, 피 흘리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짐승도 그렇게 안한다. 돕는 사람을 핍박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정말로 잘못된 사회다. 이런 사회의 미래가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런 사회에 내 자식을 맡길 수 없어 그토록 분노했던 것이 아닌가?

 

그나마 정권이 바뀌니 진상 규명이라도 한다지. 앞으로 또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발굴하고, 제시하고, 증명되었으면 좋겠다. 말했다시피 우리나라는 역사를 보는 스펙트럼이 넓지가 못하니 또 언제 잠자고 있는 역사의 망령이 나와 그것을 잡아먹고 흐려 놓을지 알 수가 없다.

 

영초 언니가 그리된 건 정말 다시 생각해도 마음 아픈 일이다.

그리도 민주화를 열망했던 그녀였지만 이 나라에서 내 아이를 온전히 키울 자신이 없어 이민까지 불사했건만 그것이 죄였을까? 그녀가 캐나다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으니 이제 행복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그녀에겐 조금치의 행복도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그런데 또 영초 언니를 생각하면 그게 어디 저자 개인만이 아는 언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민주화 운동을 하다 상처 받은 사람들을 보듬었을까? 사랑했을까? 언제나 그렇지만 생은 내 편인 적이 없다. 과연 영초 언니가 그리된 것이 그 언니 개인만의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생은 그녀의 편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녀 편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한 개인의 체험으로서 그 시절을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마치 우리에게 이런 사람을 알고 있노라고 소개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린 영초 언니를 어떻게 해야 할까? 2, 3의 천영초가 또 있지 않을까?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상처 받고 쓰러진 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영초 언니에 대한 어떤 부채 의식 때문에 이 글을 썼을 것이다. 한때는 함께 민주화의 험한 강을 건넜던 사람. 그런데 또 필요에 의해 그를 멀리했다. 또한 그것이 언니를 그리 만들었을까 죄책감도 있었으리라. 무엇이 영초 언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읽는 나도 마음이 착잡했다.

 

이 책은 영초 언니에 대한 저자의 참회록이자, 민주화 운동의 여성사이기도 하며, 한때 뜨거웠던 열망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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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9-2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일의 잔재를 뿌리뽑지 못한 역사가
한스럽네요
그들이 살아남기위해 공산당 때려잡는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016년, 휘날리는 태극기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지 않나 싶습니다.

stella.K 2017-09-28 14: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우리나라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과거사 진상 규명이지 우린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 쿨까당 잠깐 보니까 전두환이 비자금만 1조라더군요.
최근까지 했던 국회의장이 전두환 끄나풀이었다는데
누굴 말하는 건지 가물가물하더군요.
아무튼 그만큼 아직까지도 정치계에 줄을 대고 있다는 거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2017-09-27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9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27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 하나 생겼어요. 천영초 님의 과거 모습이 있는 사진을 단 한 장이라도 실려 있지 않았을까요? 사진도 역사가 되는 기록인데 말이죠.

stella.K 2017-09-28 14:46   좋아요 0 | URL
그러게. 그게 좀 실렸으면 좋았을텐데...
근데 그러면 오히려 작가의 자서전 같은 분위기가 나서일까?
아니면 그 부분은 비밀로 하고 싶었나 보지.
아무튼 좀 그분은 정말 안타까웠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ㅠ

2017-09-27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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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난쟁이 말고 '축소형 인간'으로서의 난쟁이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인가 그랬고, 여자아이였다. 그때의 키가 약간 큰 인형 정도랄까?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거의 숙녀가 다 돼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보도를 접해 봤으니 이 전기 소설의 주인공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의 실존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의 초상으로 보이는 그림 한 점이 보인다.

정말 작다. 역자의 설명대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골 무형성증의 탈비례 난쟁이'가 아니라 신체의 비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구만 작게 발달한 '축소 비례 난쟁이'인 것이다.   

그는 1739년에 태어나 백 살에서 2년이 모자른 98세를 살고 삶을 마감했다. 그를 본 의사는 20년도 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그에 몇 배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으니 사는 것에 있어서는 여한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옛날 시대에.

그러나 그 세월을 사는 그 조그만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얼마만 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도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커 보인다.

그나마 타고난 배경이라도 남 보다 유리하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유제프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고, 그의 형제들은 병으로 죽거나 가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머니는 귀족 친구에게 유제프를 맡긴 후로 다신 만날 수가 없다. 그뿐인가, 훗날 그 자신도 자신의 첫째 딸을 양자로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튼 유제프는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터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무엇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귀족들 앞에서 춤과 재롱을 피워야 했다. 그리고 그건 유제프란 본래의 이름 보다 장난감이란 뜻의 주주로 더 많이 인식이 되었고, 당대 귀부인들 사이에선 행운의 마스코트쯤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 덕분에 일생 육체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적은 없다. 귀족을 상대한다는 건 그들 앞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불어 그들은 유제프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니까.

실제로도 그는 두 번의 양어머니가 바뀌는 동안 나쁘지 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유제프가 당대 주류 사회에 섞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 더불어 그 시대 귀족들이 무작정 난쟁이 같은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를 짐작해 본다. 어느 정도는 너그럽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있는 사람이 베푸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책에는 그런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귀족 교육 중엔 노블레스 오블리지에 대한 교육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줘야 하는지를 나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제프에 대한 귀족들의 환심은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약자니 돌봐줘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러니만큼 사람들은 그를 장난감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유희만을 얻으려 했다. 바로 이것에 유제프의 고독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랑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 이잘린을 만나기 전 잠시 직업이 배우인 여자를 만나고 나름 서로 진지한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진실하지 못했고 뭔가 어긋나 있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잘린은 달랐다. 그녀만큼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잘린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려면 지금까지 두 번째 양어머니 집에서 누렸던 호사를 뒤로하고 그 집을 나와야 한다.

그 선택에 유제프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하게 집을 나왔고 신혼 때 잠깐의 행복을 제외한다면 그의 삶은 매번 산 넘어 산이었다. 매번 고비의 순간이었고, 망하고 파산할 것만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파산하지 않는다. 그게 또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난 책을 다 읽어나갈 즈음 그의 삶에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부자로 생을 마쳤든, 가난하게 마쳤든, 짧던 길던 우리의 삶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마지막엔 다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만큼 살아오기가 쉬웠겠는가.

물론 유제프는 그렇게 힘들 게 살지 않아도 되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양어머니 그늘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될 것이다. 사랑도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뭐 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는 평생 먹고사는 문제와 애증의 문제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양어머니의 집을 나오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한 걸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담대한 자기 선언이었고, 자기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므로 인해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일생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은 언젠가 꼭 한 번은 자기 선언과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이지 어떻게 주워진 환경 속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짐승도 아니고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라면 말이다. 그 욕망은 유제프로선 더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말 인간의 삶이란 책의 한 구절처럼, 모든 것을 가졌으나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삶의 자조는 가지지 못한 사람 보다 가진 사람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한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랬다고 유제프는 양어머니 집을 나온 순간 나그네로서의 대로의 삶이 펼쳐졌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어느 한 군데 말뚝 박고 살았다는 말이 없다.

물론 그래서 그는 훗날 회고록을 세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당시로선 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니 어딘가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유제프의 몸으로서는 더더욱. 그러나 그런 감행이 있었기에 저자는 유제프의 회고록을 접했으며 우린 또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당대 유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제프는 인생 어느 지점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만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는걸. 자신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살았다 뿐이지 사람들 저마다 삶의 짐을 가지고 다른 식의 수모를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미에 보면,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었다며 당대 최고 권력자들의 명단이다. 사람은 그 인생의 시작은 다 달라도 그 끝은 비슷하다. 이것을 깨달으며 사는 것이 또한 인생 아닌가? 집채만 한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겁이 나 미리 죽음에게 자신의 생명을 양도해버리는 건 또 얼마나 슬프고 어리석은 일인가?

소설이 나름 꽤 훌륭하다. 어찌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클래식 버전을 보는 것도 같고(이 작품은 조만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비유가 읽는 내내 즐거웠다. 꼭 읽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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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2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의 역사》라는 책에 난장이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에 유제프가 나오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stella.K 2017-04-12 21:24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책도 있었구나.
이 책 정말 괜찮아. 재밌어.
너도 기회되면 읽어 봐.^^

cyrus 2017-04-12 21:57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기형의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정말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이 소설, 꼭 읽어봐야겠어요. ^^
 
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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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작품이 읽기가 쉽지 않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을 읽은지가 꽤 되고 그동안 나름 독서 내공을 키워왔으니 이쯤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더구나 사랑에 관한 소설이 아닌가?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연애를 잘하는 방법한 책엔 애저녁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가 또는 같은가에 관한 책엔 관심이 가지만 그것도 내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사랑을 심리학이나 인문학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도 뭐 나름 나쁘지는 않겠지만 사랑이 과연 그렇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인간은, 사랑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어서 그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손끝에 닿지 않는 그런 신비스러운 것이길 바라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사랑은 답이 없는 것. 오직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다양한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그 과업을 성실하게 이행해 온 건 소설과 영화는 아닐까? 그것들은 해답을 내놓을지는 몰라도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역시 그것에 아주 성실해 보인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의 특징은 대개는 육화되기 보단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란 느낌을 갖는데  이 작품도 그 예견을 빗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슨 사랑에 대한 철학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설을 가장한 묵직한 에세이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칭찬의 의미로만 쓰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이 작가에겐 이룩하고자 하는 문학적 성과에 어느 정도 도달했겠지만 독자와의 소통엔 어느만치 근접해 갔는지 그건 좀 의문이다. 물론 소설가가 꼭 독자와의 소통을 늘 의식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것에 꼭 어떤 책임 의식 같은 건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이 작품에서 오히려 지켜보게 되는 건 사랑이 뭐냐라는 질문 보단 작가의 성찰적 언어가 돋보인다고나 해야할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위해 그때 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어떤 작가가 그러지 않겠는가). 그래서일까? 정말 읽다보면 그랬을 거란 흔적이 느껴진다. 또 그래서 일까? 언어의 질깃질깃한 힘줄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도 그냥 헛투로 쓴 건건 없어 보인다. 언어의 미묘하지만 어떻게 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곡예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군데군데 받는다. 또 어쩌면 단어의 라임을 이용해 언어의 유희를 모색하는 것도 같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쉽게 읽혀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 와서 누구의 가슴에 머물며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말하려고 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건 인간의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지혜를 갈구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사랑이 안 들어가는 것도 있을까? 이야기는 곧 사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애증은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애증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다.  

누구는 사랑을 끝내려고 하고, 누구는 그 끝에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며, 누구는 자기 집착을 사랑이라고 우기고, 누구는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의 대표로 여기기도 하며, 신 앞에 맺어진 사랑만이 진실하고 거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사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태도만큼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하고 낭만적인 것마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하기를 거부하거나 미성숙을 보이지는 말자. 물론 사랑 끝에 남는 것이 이별의 아픔이 될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아의 완성을 위한 것임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정복의 대상 또는 작업의 완수여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보는 건 상대를 더 이상 인격으로 보지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으로 아니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사랑에 대한 모험과 수고를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그럴진데 사랑을 지능적으로 이용하는 종은 인간밖엔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너무 어렵고 두렵다고 시작조차 못하는 인간은 또 얼마나 불쌍한 존재랴.

이 책은 단 한 번의 독서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훗날 다시 한 번 정독해 봐야할 것 같다고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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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3-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념적이고 사변적에서 숙제로 남긴다 까지 읽으며 내겐 좀 어렵겠네 싶다가도 이 궁금증 참을 수 없는 호기심도 슬금슬금 올라옵니다 ㅎㅎ 저는 아직 이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혹시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작품의 작가님은 아니실런지요. 아직 이 작품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에서 프랑스 작가님이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라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stella.K 2017-03-17 13:49   좋아요 0 | URL
이전에 제가 읽은 건 ‘생의 이면‘ 딱 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억지로 읽어서 거의 기억엔 없구요.
그래도 이승우 작가가 꾸준히 책을 낸 덕에 지금은 꽤 팬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좀 무섭기도 해요.
오래 전에 이분에게서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제 워크샵 작품을 보고 어찌나 뭐라고 하시던지 무안해서 혼났습니다.
유머 감각 거의 제로고 오직 외골수로 소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인데
그런 거 생각하면 존경할만 하죠.
독자와 소통하는 글을 쓰면 좋을 텐데 한마디로 소설에 순정을 바치신 분
같습니다. 한 번 슬슬 읽어 보시죠.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얻는 것이 있을 수도 있잫아요.^^

2017-03-16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17 13: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왜들 작가나 철학자들은 사랑을 어려운 것으로
표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배풂, 포용, 아량만하는 것도 평생 다 못할 텐데 말입니다.
백날 천날 말로 글로 치대는 사랑 밀가루는 열정이란 행위가
들어가지 않으면 빵이 안 된다...!
과연 지당하시고 훌륭한 말씀입니다.^^

페크pek0501 2017-03-21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제가 열광하던 작가였어요. <생의 이면>을 읽고 반해 버려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었어요.
여행을 가서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우면서 재독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낡은 책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 <지상의 노래>를 구입해 읽을 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사랑의 생애>를 더 읽고 싶군요. 아마도... 사랑에 관해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줄 듯 기대되네요.

님이 쓴 이 리뷰는 청소되어 반짝이는 마루를 보는 듯 깔끔한 글솜씨가 느껴집니다.ㅋ

stella.K 2017-03-21 13:0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브리핑으로 언니 글을 읽는데
한때 언니가 작가라고 하시는 줄 알았어요.
요즘 눈이 안 좋다보니 이렇게 착각하는 게 많아요.ㅠㅋ

이승우 작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가 본데
저는 아직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어렵기만 하던데...

사실 리뷰도 어떻게 써야하나 좀 막막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청년의사 장기려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 개정판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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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가 공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 그들의 이름 석 자 정도만 알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기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의학 박사라는 정도밖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언젠가 중고 서점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발견하고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손에 넣었다. 다소 청소년 위인전기 같은 표지가 조금 그렇긴 한데 작가가 손홍규라고 하니 더 주저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난 아직 손홍규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선택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유려하게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풀어냈다.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6. 25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는 아니었을까 싶다. 난세에 영웅이 있다고 하지만 이 시기 기억하고 싶은 몇몇 의인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손양원과 주기철, 김구 등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가운데 또 기억할 사람이 바로 장기려 박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우수한 편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친구의 어머니가 의사 한 번 만나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일본인 의대생들의 차별을 견뎌가며 그들 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조선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기도 한다. 당시 그는 스승인 백인제 교수 밑에서 의술을 연마하며 폐암 환자의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는데 그런 이력이면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에 그 모든 걸 버리고 인술의 길을 간다. 또한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늘 희생하며 사셨던 그의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였던 아내의 역할이 더해지기도 했고. 그는 나중에 월북해 김일성대학에서 교수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에 발발한 6. 25와 그로인한 가족과의 생이별과 월남해서도 연좌제로 인한 고통 등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작가는 당시의 사회 풍경, 장기려 박사의 의사로서의 시대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하기도 했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풍경도 꼼꼼하게 되짚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전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바로 직전 흥청망청 대는 사회 배경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본에 복수라도 하듯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일본 여성을 어떻게 농락했는지 말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전에 이 시기의 일본 여성을 조명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이 맹위를 떨쳤다고 해서 그 나라 여성들이 꼭 행복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위안부는 이렇게 일본 정부에 항의라도 할 수 있지 그들은 어디 가서 항의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건 그와 더불어 동시대인으로 함석헌이나 김교신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책을 읽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바로 이럴 때다.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런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은 그 목적이 변질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다는 것이다. 하긴 입신양명을 위한 마음이야 어느 시대고 사람의 하나같은 마음이니 그걸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어두운 시대 장기려 박사와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적지 않는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월남하여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의 상흔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만 평생 신앙에 의지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 손홍규는 장기려의 전기와 수상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정말 그 이름으로된 기독교 신앙 서적이 눈에 띈다. 슈바이처가 의사면서 신학자인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그도 그랬던 것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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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9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각적인 문장의 손홍규 작가 책이네요! 덕분에 알아가요!^^ 한해 동안 감사했어요! 새해에도 복 많이 북 많이 ~~^^

stella.K 2016-12-31 10:56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우리 소설 많이 읽으시니까 손홍규 작가를
잘 알고 계시겠군요. 저도 이 책 덕분에 손혼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감사했어요. 그장소님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더욱 행복하세요.^^

[그장소] 2016-12-31 11:21   좋아요 1 | URL
아~ 네.^^ 문장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Stella. k 님 포스팅으로 만나니 더 반가워서요!^^
새해 행복 .일. 애정 뭐든 ...희망하시는대로 이뤄지시길!!^^

북프리쿠키 2016-12-29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 않았다˝는 말이 좀 거북합니다만..

아들은 훌륭하게 컸네요~
손홍규 작가 한분 또 알고 갑니다^^;

stella.K 2016-12-31 11:00   좋아요 1 | URL
그래서 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베풀며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손자가 보고 자란 거고.
나중에 해방되고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오지 않고 있어서
좀 아쉽긴해요. 부역자라고 고초를 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 덕에 그걸 피해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뭐 공부는 어려움없이 한 걸 보면...
작가도 작가지만 나중에 장기려 박사도 읽어보세요.^^

yureka01 2016-12-30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위인 또 한분 만난 느낌이네요..^^..

stella.K 2016-12-31 11:02   좋아요 2 | URL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만 난세에 의인이 나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hnine 2016-12-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이 또 바뀌었네요! 예쁜 심장 사진~ 좌심방 위에 눈이 집중적으로 쌓였어요 ㅋㅋ
한동안 장기려 박사에 대해 방송에서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이산가족 찾기 즈음인지, 민간인 방북이 이루어지기 시작할때인지...이름이 독특하기도 해서 기억하고 있지요. 손홍규 작가는 소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책도 썼군요.

stella.K 2016-12-31 14: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심장으로 보니 정말 그러네요. 왜 그럴까요...?
소피 마르소는 예뻐서 그냥 잠깐 달아 본 거구요.ㅋㅋ

그랬나요? 그런데 전 왜 기억이없을까요...
정말 이름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먹을 것 같아요.
이런 분 많이 계셔야 할 텐데. 어딘가 찾아 보면 있겠죠?
제2, 제3의 장기려...ㅠㅠ
 
연애 감정
원재훈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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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은 오래 전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읽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괜히 선택했나 잠깐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남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후일담 같은 건 읽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질질거림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연애 감정이 뭔지 단순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이다. 물론 난 작가의 이름 하나 보고 선택한 게 더 타당하지만. 표지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느낌부터 얘기하자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초반에 질질거림이 싫다고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뭔가 그 사랑에 다가가지 못했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어영부영 멀어져간 기억들이 건드려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연애 감정은 아닐까? 지금은 그 때보다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유치하고, 미숙함, 미성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되어질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은 기꺼이 미숙했던 나와 마주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필 작가는 우리가 한때 불렸던 386 세대들을 그렸다. 물론 연배는 나 보다 조금 앞서긴 하지만.

 

지금의 386 세대는 어떠한가? 다들 50줄을 타고 있고 어떤 이는 60이 코앞이다. 아이들은 막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것이고 보통은 대학들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어떤 이는 한번 정도 이혼을 했을 것이며, 한 가지 이상의 병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도 송년회를 갖다 왔는데 같이 모이기로 한 사람의 형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서 못 나왔다. 그런데 연배가 그래서인 건지 아니면 의학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딱 그런 세대의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왜 하필 그런 세대의 사람을 소환한 걸까? 사람은 죽으면 모를까 사랑은 언제 어떻게든 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나 보다. 아니 그 보다 자신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산다면 정말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얼개도 약간 복잡하다. 두 남녀간의 (이루지 못한)사랑에 대해 올곧게 그린 게 아니라 이를테면 주인공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동시에 저 사람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강도나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도 한다. 존경의 의미로. 누구는 순수고, 누구는 정염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또한 그 순수함이 오히려 정염에 불을 지피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금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글 줄기를 타고 주인공의 고뇌와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교양과 사유가 돋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대단하다 싶다.

 

이 작품은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관망적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며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저변엔 죽음이 깔려 있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이야기가 제법 묵직하다. 읽고 나면 우린 모두 다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없는 나약하고 미숙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한때 좋아했고 애인 때문에 불교에 입적한 학교 선배 월명 스님이 그런 말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 같아 갈증이 나는 상태가 반복되거든. 육체보다 영혼의 갈증이 더 심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시절일 거야, 이 갈증이 사라지고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면 그땐 늙은 거지. 젊은 우리는 항상 갈증이 나거든.(201p)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도 같다. 갈증의 시절이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이르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구는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주인공이 나영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제법 의미심장하다.

...... 어떤 사람은 그자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다가가기 전과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 생각의 꼬리가 자꾸 이어지는 거지. 결국 사람과 사랑은 자웅동체의 생명체야.”(238p)

 

잡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랑의 실체. 과연 그럴듯한 명제 같다. (물론 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어쨌든 그러고 나니 내 이루지 못한 사랑도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삶을 비극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말이다. 서문은 첫사랑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지 1년 되는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기도 한다. 어찌 보면 참 사랑과 인연이 먼 사람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괜히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미에 가면 주인공 서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 서술되어지는데 소박한데도 장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의 첫사랑 나영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는데 죽어야 이루어지는 사랑이 쓸쓸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저자는 이 소설을 지금도 가끔 지나간 옛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이런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들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조용히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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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죽음이 저변에 깔려있고, 묵직하다. 그나마 이런 소설류가 저에겐 좀 더 어필하는듯 합니다 ㅎㅎ 원재훈이란 작가 기억할께요^^

stella.K 2016-12-28 13:24   좋아요 1 | URL
쿠키님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였으면 저도 안 읽었을 거예요.
글빨 좋은 작갑니다. 영화에 몽타주 기법이란 게 있잖아요.
일명 모자이크 기법.영화 보는 기분도 나고
엣날 기억도 나고. 아무튼 전 좋았습니다.
나중에 함 읽어 보세요.^^

2016-12-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