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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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난쟁이 말고 '축소형 인간'으로서의 난쟁이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인가 그랬고, 여자아이였다. 그때의 키가 약간 큰 인형 정도랄까?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거의 숙녀가 다 돼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보도를 접해 봤으니 이 전기 소설의 주인공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의 실존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의 초상으로 보이는 그림 한 점이 보인다.

정말 작다. 역자의 설명대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골 무형성증의 탈비례 난쟁이'가 아니라 신체의 비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구만 작게 발달한 '축소 비례 난쟁이'인 것이다.   

그는 1739년에 태어나 백 살에서 2년이 모자른 98세를 살고 삶을 마감했다. 그를 본 의사는 20년도 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그에 몇 배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으니 사는 것에 있어서는 여한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옛날 시대에.

그러나 그 세월을 사는 그 조그만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얼마만 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도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커 보인다.

그나마 타고난 배경이라도 남 보다 유리하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유제프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고, 그의 형제들은 병으로 죽거나 가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머니는 귀족 친구에게 유제프를 맡긴 후로 다신 만날 수가 없다. 그뿐인가, 훗날 그 자신도 자신의 첫째 딸을 양자로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튼 유제프는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터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무엇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귀족들 앞에서 춤과 재롱을 피워야 했다. 그리고 그건 유제프란 본래의 이름 보다 장난감이란 뜻의 주주로 더 많이 인식이 되었고, 당대 귀부인들 사이에선 행운의 마스코트쯤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 덕분에 일생 육체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적은 없다. 귀족을 상대한다는 건 그들 앞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불어 그들은 유제프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니까.

실제로도 그는 두 번의 양어머니가 바뀌는 동안 나쁘지 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유제프가 당대 주류 사회에 섞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 더불어 그 시대 귀족들이 무작정 난쟁이 같은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를 짐작해 본다. 어느 정도는 너그럽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있는 사람이 베푸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책에는 그런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귀족 교육 중엔 노블레스 오블리지에 대한 교육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줘야 하는지를 나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제프에 대한 귀족들의 환심은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약자니 돌봐줘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러니만큼 사람들은 그를 장난감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유희만을 얻으려 했다. 바로 이것에 유제프의 고독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랑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 이잘린을 만나기 전 잠시 직업이 배우인 여자를 만나고 나름 서로 진지한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진실하지 못했고 뭔가 어긋나 있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잘린은 달랐다. 그녀만큼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잘린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려면 지금까지 두 번째 양어머니 집에서 누렸던 호사를 뒤로하고 그 집을 나와야 한다.

그 선택에 유제프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하게 집을 나왔고 신혼 때 잠깐의 행복을 제외한다면 그의 삶은 매번 산 넘어 산이었다. 매번 고비의 순간이었고, 망하고 파산할 것만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파산하지 않는다. 그게 또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난 책을 다 읽어나갈 즈음 그의 삶에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부자로 생을 마쳤든, 가난하게 마쳤든, 짧던 길던 우리의 삶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마지막엔 다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만큼 살아오기가 쉬웠겠는가.

물론 유제프는 그렇게 힘들 게 살지 않아도 되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양어머니 그늘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될 것이다. 사랑도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뭐 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는 평생 먹고사는 문제와 애증의 문제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양어머니의 집을 나오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한 걸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담대한 자기 선언이었고, 자기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므로 인해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일생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은 언젠가 꼭 한 번은 자기 선언과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이지 어떻게 주워진 환경 속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짐승도 아니고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라면 말이다. 그 욕망은 유제프로선 더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말 인간의 삶이란 책의 한 구절처럼, 모든 것을 가졌으나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삶의 자조는 가지지 못한 사람 보다 가진 사람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한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랬다고 유제프는 양어머니 집을 나온 순간 나그네로서의 대로의 삶이 펼쳐졌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어느 한 군데 말뚝 박고 살았다는 말이 없다.

물론 그래서 그는 훗날 회고록을 세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당시로선 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니 어딘가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유제프의 몸으로서는 더더욱. 그러나 그런 감행이 있었기에 저자는 유제프의 회고록을 접했으며 우린 또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당대 유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제프는 인생 어느 지점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만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는걸. 자신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살았다 뿐이지 사람들 저마다 삶의 짐을 가지고 다른 식의 수모를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미에 보면,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었다며 당대 최고 권력자들의 명단이다. 사람은 그 인생의 시작은 다 달라도 그 끝은 비슷하다. 이것을 깨달으며 사는 것이 또한 인생 아닌가? 집채만 한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겁이 나 미리 죽음에게 자신의 생명을 양도해버리는 건 또 얼마나 슬프고 어리석은 일인가?

소설이 나름 꽤 훌륭하다. 어찌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클래식 버전을 보는 것도 같고(이 작품은 조만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비유가 읽는 내내 즐거웠다. 꼭 읽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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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2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의 역사》라는 책에 난장이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에 유제프가 나오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stella.K 2017-04-12 21:24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책도 있었구나.
이 책 정말 괜찮아. 재밌어.
너도 기회되면 읽어 봐.^^

cyrus 2017-04-12 21:57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기형의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정말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이 소설, 꼭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