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끌리지가 않았다. 나름 호화 캐스팅임에도 불구하고 조영남이나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등 한때 포크계의 정성기를 이끌었던 당대 유명한 가수들을 짝퉁으로 등장시킨다는 게 못 마땅했었나 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법. 이제야 볼 생각이 들더라. 근데 보고나니 정말 안 봤으면 큰 일 날뻔했다. 배우들이 각자 맡은 배역에 얼마나 충실하던지 정말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나는 배우들이 실제로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는데(아님 말고), 단순히 노래를 똑같이 부르기 보단 각 가수의 창법을 꽤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겠구나 느껴졌다. 그러니 배역에 대해선 말해 뭐하겠는가. 배역 역시도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색적인 건, 원조 착한 교회 오빠 윤형주(강하늘 분)가 이 영화에선 이미지와 달리 쌈닭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송착식 역을 맡은 조복래도(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긴 하다) 사실은 진짜 송창식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꽤 근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쎄시봉의 결성 과정을 이장희의 나래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말에 의하면 원래 쎄시봉의 시작은 세 명이라고 한다. 특히 윤형주와 송창식은 잘 알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오근태란 인물을 조명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다큐(또는 재현) 드라마나 전기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실을 바탕으로한 어느 특정 인물을 찾는 미스터리 영화는 아닐까 싶다. 그런만큼 오근태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일 거라는 것. 또 그에 따라 그의 여자 친구인 민자영도 동일하게 가상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가 제법 그럴 듯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윤형주나 송직창이 오근태와 함께 쎄시봉으로 활동한 적은 없고 듀엣으로 트윈폴리오로 활동했다. 그러므로 영화는 마치 트윈폴리오의 전신이 쎄시봉이라는 가설로 전개 되지만 실제로 쎄시봉은 그들의 주활동 거점이었다는 것. 그런데 어쩌면 이야기를 새끼 꼬듯 잘도 꽈놨는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든 김현석 감독이 누군가 그의 필모를 봤더니 <YMCA 야구단>, <아이 캔 스피크> 등 우리가 알만한 여러 작품을 만든 감독이었다. 그 유명한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런...그런 유명한 감독을 몰라 봤다니!
특히 영화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뮤즈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오근태는 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여자 친구 민자영 때문이다. 하지만 짐직하듯 뮤즈는 항상 양날의 검이다. 뮤즈는 예술을 더 풍성하게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위에서 열거한 가수들은 실제로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것을 영화에서는 오근태가 민자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으로 비튼다. 여기서 궁금한 건, 정말 예술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 뮤즈가 과연 필요한가, 없으면 예술 활동을 못하는 건가. 끈끈한 공동체, 소속감 뭐 그런 의식만으로는 예술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오근태와 민자영이 관계가 이어질듯 이어질듯 이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사랑으로 끝을 맺는데 그런 것처럼 예술 역시도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암튼 요즘 계속 꿀꿀했는데 의외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아 흡족했다. 김현석 감독의 나머지 영화도 기회있는대로 챙겨봐야겠다.
영화는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에서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