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감정
원재훈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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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은 오래 전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읽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괜히 선택했나 잠깐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남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후일담 같은 건 읽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질질거림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연애 감정이 뭔지 단순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이다. 물론 난 작가의 이름 하나 보고 선택한 게 더 타당하지만. 표지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느낌부터 얘기하자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초반에 질질거림이 싫다고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뭔가 그 사랑에 다가가지 못했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어영부영 멀어져간 기억들이 건드려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연애 감정은 아닐까? 지금은 그 때보다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유치하고, 미숙함, 미성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되어질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은 기꺼이 미숙했던 나와 마주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필 작가는 우리가 한때 불렸던 386 세대들을 그렸다. 물론 연배는 나 보다 조금 앞서긴 하지만.

 

지금의 386 세대는 어떠한가? 다들 50줄을 타고 있고 어떤 이는 60이 코앞이다. 아이들은 막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것이고 보통은 대학들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어떤 이는 한번 정도 이혼을 했을 것이며, 한 가지 이상의 병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도 송년회를 갖다 왔는데 같이 모이기로 한 사람의 형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서 못 나왔다. 그런데 연배가 그래서인 건지 아니면 의학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딱 그런 세대의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왜 하필 그런 세대의 사람을 소환한 걸까? 사람은 죽으면 모를까 사랑은 언제 어떻게든 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나 보다. 아니 그 보다 자신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산다면 정말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얼개도 약간 복잡하다. 두 남녀간의 (이루지 못한)사랑에 대해 올곧게 그린 게 아니라 이를테면 주인공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동시에 저 사람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강도나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도 한다. 존경의 의미로. 누구는 순수고, 누구는 정염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또한 그 순수함이 오히려 정염에 불을 지피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금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글 줄기를 타고 주인공의 고뇌와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교양과 사유가 돋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대단하다 싶다.

 

이 작품은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관망적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며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저변엔 죽음이 깔려 있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이야기가 제법 묵직하다. 읽고 나면 우린 모두 다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없는 나약하고 미숙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한때 좋아했고 애인 때문에 불교에 입적한 학교 선배 월명 스님이 그런 말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 같아 갈증이 나는 상태가 반복되거든. 육체보다 영혼의 갈증이 더 심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시절일 거야, 이 갈증이 사라지고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면 그땐 늙은 거지. 젊은 우리는 항상 갈증이 나거든.(201p)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도 같다. 갈증의 시절이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이르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구는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주인공이 나영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제법 의미심장하다.

...... 어떤 사람은 그자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다가가기 전과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 생각의 꼬리가 자꾸 이어지는 거지. 결국 사람과 사랑은 자웅동체의 생명체야.”(238p)

 

잡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랑의 실체. 과연 그럴듯한 명제 같다. (물론 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어쨌든 그러고 나니 내 이루지 못한 사랑도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삶을 비극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말이다. 서문은 첫사랑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지 1년 되는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기도 한다. 어찌 보면 참 사랑과 인연이 먼 사람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괜히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미에 가면 주인공 서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 서술되어지는데 소박한데도 장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의 첫사랑 나영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는데 죽어야 이루어지는 사랑이 쓸쓸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저자는 이 소설을 지금도 가끔 지나간 옛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이런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들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조용히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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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죽음이 저변에 깔려있고, 묵직하다. 그나마 이런 소설류가 저에겐 좀 더 어필하는듯 합니다 ㅎㅎ 원재훈이란 작가 기억할께요^^

stella.K 2016-12-28 13:24   좋아요 1 | URL
쿠키님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였으면 저도 안 읽었을 거예요.
글빨 좋은 작갑니다. 영화에 몽타주 기법이란 게 있잖아요.
일명 모자이크 기법.영화 보는 기분도 나고
엣날 기억도 나고. 아무튼 전 좋았습니다.
나중에 함 읽어 보세요.^^

2016-12-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