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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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그 제목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으니 사이다 같은 책일 것이고, 믿는 사람은 좀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이 책에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전자에 동조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사실 처음엔 좀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라 그다지 많이 화가 났던 것도 아니다. 먼저 저자는 1장에서,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느냐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저자가 시작부터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와 도덕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종교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 안에 도덕성이 포함되는 것이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요는 저자는 이것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논리가 타당함을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얘기를 하자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게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인을 핍박하거나 거부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들었던 카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부도덕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 무종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종교에서 도덕이 결여된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 할 얘기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선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겠다. 

 

구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은 그 어디에도 구원에 관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즉 종교없는 삶이 그토록 타당한 것이라면 구원이 의미가 없고 그것을 반박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구원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거나 지나친 채 그저 현상학적 측면만을 나열했다. 저자는 신자로부터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꽤나 귀찮았던 것 같고, 그것을 위협적(?)으로까지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한 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번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교회에서 전도 프로그램 수련자가 실습하겠다고 재수없이 접근해 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뭔가 반박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판대신 조금씩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다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꼭 그리 틀린 말도 아니겠다 싶다. 사실 저자도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그렇지, 사실 책에 언급한 내용 거의 대부분은 이미 종교 진영 특별히 기독교에선 이미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무종교 진영에선 타당한 것들을 기독교에선 위기로 보는 시각의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예를들면, 저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종교를 찾지 않는 이유라고 했는데 그도 맞는 얘기다. 직장 일하랴, 육아까지 떠안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인다. 더구나 교회 생활이 안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성과 의무를 요구한다면 집에서 쉬거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지 교회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엔 여성들이 사회진출이 그리 많지 않으니 교회 나오기는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교회엔 아직도 남성의 비율 보단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남녀를 떠나 그렇게 피곤해서 교회 안 나올 것만 같지만 나오는 사람은 나온다. 요는 저자가 무종교의 타당성을 증명하려면 교회 나오는 사람은 왜 나오는가에 대해서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어느 한 측면만 부각시키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지고 설득력도 별로다. 

 

물론 저자는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논증을 뒷바침해 줄 사람만 만났나 보다.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미국에 국한시켜 연구를 했던 모양인데 세속화를 언급하면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 역시 보면 별 것 아닌 수준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으니. 그러나 모든 교인들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그래도 얼마간은 구원을 믿으며 경건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비율에 낮아서 그렇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저자가 잘 써 먹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급진적이고 맹신으로 매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희화화시키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것은 빠뜨린 채 도덕성 운운하는 건 좀 넌센스 아닌가?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중 또 하나로 성소수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당연하긴 하다.기독교에선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물론 요즘엔 일부나마 동성애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동성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 저자가 제시한 것이 최근에 나온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요즘 나온 문제처럼 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교회를 기피하는 것도 맞는 것 같긴하다.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여 보자. 정말 기독교만이 동성애를 부정해 왔는가? 그래서 마치 기독교는 이 성소수자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고, 또한 그로인해 그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기독교인만이 피박해 왔을까? 무종교나 타종교인들 중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인에 집중되어 온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교없는 삶을 짚어내고 있지만 기독교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때로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역시 세속화가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세속화가 믿지 않은 사람에겐 신앙을 갖지 않을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전에 모 교수가 TV에서 과학은 하나의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고, 여전히 가설로 연구 대상인데 진화론은 마치 과학의 신이요 끝판왕처럼 신봉하는 반면, 창조론은 특정 종교를 표방한다고 해서 배제시켜 왔다. 가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과학이라면, 창조론도 같은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이 기독교적 이념에서 출발한 국가가 아니라면서 대통령이 성서를에 손을 얹고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대통령을 지목하기도 하고, 그밖에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비기독교 내지는 비종교인임을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저들의 입장에선 기독교 진영에서 위대한 기독교인을 추들며 기독교의 위대성을 말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위대한 사람은 종교인에서건 비종교인이건 다 나올 수 있다는 것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 국가적으론 패망이었지만 기독교가 그 시대에 했던 일은 가히 놀랍다 못해 위대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역사 교과서에선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대학만 들어가면 급속하게 신앙을 버리는 것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낀다. 게다가 나라 정책이 점점 비신앙을 옹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다못해 미션 스쿨에서도 성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이것을 단순히 저자가 나열한 무종교의 탁월한 예를들어 그냥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저자는 죽으면 내세는 없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럴 듯하긴 하다. 하지만 내세관 역시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철학이다. 그것을 단지 몇 페이지 또는 몇 줄만으로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내세관이 없는 것 보단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세상에서 싫은 사람을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만날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사별의 슬픔은 좀 덜 하지 않을까? 또한 나쁜 사람들을 지옥이나 가라고 저주할 수도 없다. 아무리 비종교인의 우수한 도덕성과 교육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죄까지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깊어지면 죄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걸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이미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고, 이런 논의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또한 이러는 나 역시 처음부터 종교적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회의속에서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종교의 삶이 종교의 삶 보다 나을 거란 근거를 못 찾겠다. 저자가 이만큼 고민해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한 왜 종교적 삶이 합당한지 고민해 보겠다.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종교적 삶과 무종교의 접점을 찾는 책중 하나로 봤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고가 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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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전 언제 쓰죠? 오늘 도서관 못 가고 부모님 호출로 시골에 와서 노가다했네요 아 일정이 어그러졌네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18-09-29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내일 쓰시면 되죠.
카알님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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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1년된 일이구나.

작년, 운이 좋아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의 비리를 추격한(파헤친) 책이 나와  북콘서트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게스트로 그가 나왔다. 평소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나는 그의 진가를 거기서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어찌나 사람의 혼을 빼놓던지 게스트가 그렇게 훌륭하면 주인공이 기가죽는 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가 죽을 주 기자도 아니겠지만. 물론 그날 그도 알았던 것 같다. 자신이 메인이 아니고 게스트란 걸. 그래서 그리 오랜 시간 무대를 장악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1년여 후, 그는 이 책을 가지고 독자들을 공약하러 나섰다. 바로 얼마 전 북토크쇼에 메인이 됐던 것. 공히 말하건데 TV에 나온 그는 상당히 점잖게 나오는 것이다. 라이브에 강한 가수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라이브 토크에 강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때 또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원래 예정이 1시간이었는데 거의 2시간을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게스트 없이 혼자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과연 대단하다 싶었다.

 

주진우 때 헌법을 술술 외워서 속으로 야, 대단하다 했다. 외우는데 잼병인 나는 그저 부러울 밖에. 그런데 알고 봤더니 헌법이 그렇게 크고 두꺼운 책이 아니었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30쪽 내외나 되려나? 그런 것이었다. 물론 난 여전히 못 외울 것이긴 하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무대 밥 먹고 사는 사람이야 당연히 외우지 않을까?

 

그는 헌법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헌법 내용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 문체가 좋다고 했다. 어쩌면 그리도 딱딱 떨어질 수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시 대신 법전을 읽는다던 김훈 작가가 생각났다. 작가의 단문이면서 딱 떨어지는 명징한 문장은 법전을 읽은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랬구나. 문득 법전은 고사하고 헌법이 어떻게 씌여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이라는 건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거지 나같은 일개 시민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게 아니어도 난 법에 대해선 도통 모르겠으니 일단 그것에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야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면 그가 언제 헌법 전도사요 예찬자인지 놀랄 정도다. 과연 그는 언제부터 그러고 살았던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법에 관한 대중서가 의외로 찾아보면 많다. 그것들은 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썼을 것이다. 법을 대중에 알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고 생각한다. 나도 몇년 전 그런 류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물론 그런 걸 재미로 읽을 수는 없다. 쉽게 접근하려고 여러 가지 사례를 곁들이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왜 읽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물론 이런 책은 어떻게 써져 있을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득 왜 우리나라 법조인은 김제동처럼 쓰지 못할까를 생각했다.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를 일깨워주는데서부터 시작해야 맞는 거 아닌가? 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어떤 법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것만 딥따 알려주려고만 있으니 뭐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 필요나 지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 우리가 뭐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례를 보여줌으로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지만 지나고보면 그것도 주입식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엔 차라리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찌감치 접어둔 직업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법조인이었다. 물론 그만한 깜냥도 못 되지만 그 어마어마한 법을 어떻게 다 외울까 싶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법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건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 것도 이 책 때문이다. 책의 기획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을 가지고 에세이를 쓰려고 하다니. 가히 깜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법조인도 아닌 (일개의)연예인이! 하긴 그래도 김제동이나 하니까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을까? 어느 알지도 못하는 법조인이 썼다면 읽을 마음이 이토록 간절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참 독특하다. 물론 전혀 어렵지 않다. 그 특유의 웃김말도 깨소금처럼 뿌려져 있다. 문체는 시종 구어체다.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그 특유의 사람을 위로하는 화법이 느껴진다. 더 나아가선 사실 우리나라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야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잘 생긴 헌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면서. 거기에 이랬으면 좋겠어요, 저랬으면 좋겠어요 하는 그의 바람이 더해졌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정제된듯 하다. 토크쇼에 참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린 법을 모른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그랬다. 헌법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 정도 밖에 없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라가 할 일이고 위정자가 할 일이라고. 오히려 위정자들이 헌법에 명시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법 앞에서 위정자들 앞에서 절대로 쫄지 말라고. 아,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이책 참 괜찮은 책이다. 읽으면 위로 받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부럽다 못해 살짝 샘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는 이상하게도 좀 그랬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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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험 과목에 헌법이 있어서 대충 대충은 알지만, 그래도 다 외우지는 못해요.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예요. 법조문 자체를 아예 외우면 좋겠지만, 그것말고도 외울게 많아서(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데다 암기력이 좋지 않다는 점이 진짜일지도 모릅니다만) 아직도 못외우고 있습니다. 외워야 하는 걸까요.;;

stella.K 2018-09-21 21:48   좋아요 1 | URL
아유, 뭐 그런 자책을...
안 외워도 우리 사는데 지장 없잖아요.
안 외워도 되요.ㅎㅎ

진짜 외우는 것도 한땐 것 같더라구요.
어렸을 때 외운 건 어렴풋하게 생각은 나요.
그게 기억나면 신기하더라니까요.^^

카알벨루치 2018-09-2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헌법>이랑 <우리 다시 헌법>인가 그 책 사뒀는데 함 읽어봐야겠네요 김제동씨 책은 한번 읽고는 싶은데 잘 안되네요 스텔라님 추석 잘 쇠고 오세욧! ^^

stella.K 2018-09-22 15:08   좋아요 1 | URL
그런 책 있으시면 이책은 굳이 읽으실 필요는...ㅋ

저는 특별히 명절 때 어디 가지는 않습니다.
언니랑 조카들이 외가라고 해서 오는 게 다죠.
녀석들이 많이 큽니다. 막내만 빼고 둘이가 다 사회인이죠.
다 컸는데도 녀석들 보는 게 기대되고 좋습니다.ㅎ
카알님도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세상틈에 2018-09-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무도 감시도 꼼꼼히.^^ 그나저나 헌법과 김제동이라... 의외의 조합이네요.

stella.K 2018-09-22 15:10   좋아요 0 | URL
좀 의외긴 하죠? 그런데 의외로 있어보이긴 하더라구요.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2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지만.텔라님이 좋다하시니 얇디얇은 귀가 팔랑팔랑ㅎ 추석 잘 보내시고 찌짐 많이 드십시오^^

stella.K 2018-09-22 15:1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법에 관한 거니까 뭔가 지식을 원할 수도 있는데
김제동 특유의 사람 사는 얘기, 약간의 유머 그런 거라
혹시 나중에 중고샵에서 발견하시면...

ㅎㅎ 네. 찌짐 많이 먹겠습니다. 쿠키님도
행복한 명절되십시오.^^

2018-09-22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9-24 13:37   좋아요 0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페크pek0501 2018-09-2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 비리는 <닥치고 정치>를 보고 진작 알았어요. 이 책에 거짓이 있다면 그가 명예 훼손으로
고발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이 책 내용이 사실이구나 생각했었죠.

stella.K 2018-09-29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김제동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더라구요.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여유롭게 자신의 과거 가지고 웃어가며
얘기하는데 다행이죠.
책이 재밌어요. 김제동 팬이라면 모를까 어떤 면에선
좀 가볍게 쓴 느낌도 들어서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더라구요.ㅋ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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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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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시작될 때면 제가 초등학생도 되기 전인데 그때 스텔라님은 벌써 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계셨군요. 선구자시다.....

stella.K 2018-09-01 13:58   좋아요 0 | URL
ㅎㅎ 선구자는 나혜석 같은 양반이 선구자죠.
초등학교 땐 저도 페미니즘 똑같이 몰랐을 겁니다.ㅋ
솔직히 그 강의를 들었을 땐 조금 듣다 말려고 그랬어요.
그냥 교양 정도로 초큼 아는 거지 요즘처럼 이렇게
뜨거울 줄 알았겠슴니까?
암튼 페미니즘 홧팅입니다.ㅎㅎ

cyrus 2018-09-01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좀 읽는다는 남자들도 여성학을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학이 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같은 다양한 학문을 동원하면서 여성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데, 이걸 가지고 여성학이 문제 있다고 생각한 남자를 실제로 만나봤어요.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저랑 같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참여했어요.

stella.K 2018-09-0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여성학이 잘못 됐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한 거네. 쉽지 않을 걸?!
막 빨려들어가지 않니?ㅋㅋ

나 배울 때만해도 여성학은 그냥 일종의 사회운동
그런 인식이 많았어. 지금도 그렇지 않나?
그땐 그저 이론 정도만 공부하는 거라면
지금은 실천의 시대를 맞은 거겠지.
그때 해일이 일어도 조개는 주워야 했다고 봐.

cyrus 2018-09-01 14: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았어요.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는걸요.. ^^;;
 
아버지는 살아있다 - 아버지가 남긴 상처의 흔적을 찾아서
이병욱 지음 / 학지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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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가 '아버지가 남긴 상처의 흔적을 찾아서'다.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 그들의 부모가 그들의 생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추척한 것쯤으로, 이 책에 앞서 <어머니는 살아있다>가 나왔다. 나는 아쉽게도  전작은 못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다. 당연 오이디푸스컴플랙스적 관점을 견지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좀 무책임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오이디푸스컴플랙스도 오늘 날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어지고 비판할텐데 우린 무조건 아버지와 관련있는 건 오이디푸스콤플랙스로, 어머니는 일렉트라컴플랙스로 너무 도식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약간의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저자가 너무 많은 인물을 다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에 최성일 씨가 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란 책도 그렇지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룰 수 있을까? 무엇을 가지고 다뤘을까? 인명 사전이라도 옆에 끼고 썼던 걸까? 더구나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드러낼까? 의문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인물들이 그러한 삶을 살게된 것이 마치 아버지 때문인 양 몰고 가는 것 같아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게다가 한 사람을 다루는데 드는 쪽수의 분량도 들쑥날쑥이다. 이는, 그 사람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것이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간에) 타당성을 충분히 입증해야 하는데 과연 충분한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산 것이 정말 아버지의 영양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읽는 건 그럭저럭 무난했다. 그 사람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많았는데 새로운 측면을 제시하고 있어서, 이 사람한테서 이런 면이 있었나 놀라거나, 이래서 그 사람이 그랬구나. 이해되는 면도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된 사례도 있지만 그건 그리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로부터 그다지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고 불행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나는 저자가 왜 이런 사례들을 열거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 오이디푸스컴플렉스 관점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길 주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예로부터 자녀의 양육은 어머니의 소관이지 아버지의 몫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버지들은 늘 아이를 돌보는데 서툴렀고 늘 바깥으로 돌았다. 오죽하면 몇년 전 CF에서 출근하는 아빠에게 어린 딸이 또 놀러 오라고 했을까? 그게 어찌나 공감되던지. 반박할 수가 없다. 즉 씨만 뿌렷다는 것뿐 그것을 거두는 건 여자의 몫일 때가 더 많았다.그러니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요즘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도 알고보면 부모의 경제력을 빗댄 말인데 우리가 그런 걸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오이디컴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부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온전한 유산을 남겨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유산을 잘 유지 발전시키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까먹는 게 태반인다. 오히려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희망이 있다. 내 부모에게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으니 일찌감치 스스로 자본을 만들고 그것을 늘려갈 생각을 한다. 그런데 비해 부모의 재산을 물려 받아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은 잘못되면 세상 원망을 하고, 부모 탓을 한다. 게다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으려는 켕거루 족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 독립해야 하는 건 생애 필연적인 과제 같다. 요즘 아이들 철없는 소리로 그런다지 않는가? 부모님이 자기 키워 준 것 없다고. 다 내가 알아서 큰 거라고. 어찌보면 공없는 소리고, 야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자식도 어렸을 때나 자식이지 부모가 언제까지나 돌봐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일찌감치 독립시키는 것. 앞으론 이게 자녀 양육의 제일의 원칙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어찌보면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녀들의 불행한 개인사 겸 정신분석 사례집인지도 모르겠다. 참고해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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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산가 부모한테 효도하는 자식이 드문 것이 흥미롭습니다. 부모 덕에 풍족하게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돈 벌기 힘든 걸 배우기보다 먼저 돈 쓰는 맛부터 배워서인지.
확실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있는 것 같아요. 저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부모에게서 독립되지 않은 자식도 문제겠지만 우리가 늙을 때쯤이면 자식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부모가 될 확률이 커요. 90세나 95세까지 살아서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할지 몰라요. 병원 좀 같이 가 달라고 한다든지. 혼자 못 간다면서요. 외로우니 집에 좀 와 달라고 한다든지.
자식은 그런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고 싶을 거고요. 역전의 관계가 되는 것이죠.

stella.K 2018-08-16 12:51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난 자식에게 신세 안 진다는 말 거짓말이겠죠?
결혹 자식이든 부모든 홀로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적당히 의지가 되고, 또 적당히 의지하고
그러면서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균형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ㅠ

저도 엄마 안 닮았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아버지 닮았다고.ㅋ

후애(厚愛) 2018-08-17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시원해서 외출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책을 읽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ㅋ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stella.K 2018-08-17 16:36   좋아요 0 | URL
네. 한낮에도 습기가 없어서
한결 지내기가 편해졌습니다.
근데 이 무더위가 다음 한 주 정도는
더 간다죠? 그래도 지금까지 겪은 더위만 할까
싶기도 합니다.
후애님도 좋은 주말되시길...!^^
 
Law & Justice 2018.8
고정칼럼지 김관기 외 22인 지음 / 법률저널(잡지)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법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많이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건 법정 드라마일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도 많다. 그런데 (본다면 문학잡지 외엔 거의 안 보긴 하지만)이렇게 법률 잡지까지 나와주시니 새삼 놀랍고 고맙기도 하다. 

 

내용도 나름 충실해 보인다. 흥미롭기는 아크로폴리스 기행을 담은 내용이나, 영화로 본 법 이야기 맛있는 무비토크가 재미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요리로치자면 이런 코너들은 전체 요리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비해 메인은 청탁금지법에 관한 글이나 형사법의 사례와 해결을 다룬 것. 어느 법무법인의 국제중재 팀의 활략상을 다룬 글들이 될 것이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 요모조모 잘도 담았다.   

 

요즘 융합이니 통합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알고보면 법이 안 쓰이는데가 없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본 잡지는 그것에 부흥하고자 종횡무진 뛰어다녔겠구나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내용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이드로 다룬 것들이야 충분히 관심유발은 됐지만 정작 중요한 메인 테마들은 좀 그렇다. 그것은 이 잡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기 보단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 때문인 것 같긴 하다. 게다가 인간은 어렵고 복밥한 건 피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뭐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면 그 대상은 어느 땐가 문을 열게 되어있다. 법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이 법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이 잡지는 그 노력을 계속 경주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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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3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군요. 법정 드라마가 재밌듯이 이런 책도 한 번 빠지면 흥미로울 것 같군요.

stella.K 2018-08-13 18:25   좋아요 0 | URL
이런 잡지가 있었구나. 좀 관심이 가더라구요.
법률잡지가 있었나 싶더라구요.
디자인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는데
뭐 앞으로 더 좋아지겠죠.
날씨가 더우니까 리뷰가 잘 안 써지더군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