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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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승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뭐 나름대로 멋있는 말 한마디 구사하려다 보니 툭 튀어 나온 게 이 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얼마나 슬픈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솔직히 정치사나 리더십의 역사에서나 먹힐만한 얘기고,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까?

역사는 다양하다. 정치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사도 있고, 미시사나 일상사도 있다. 요즘엔 그나마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과시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와, 꼭 역사학도가 아니더라도 일반독자들에게도 흥미를 가질 법해 반갑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솔직히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더랬다. 주로 80년대 저 박제된 시절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역사는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해 시험 때면 줄창 외우기에만 급급했지, 역사적 사건을 봐도 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TV 역사 드라마를 봐도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의 아류작들만 쏟아져 나오고 그것은 조선 정치사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뭔가 이데올로기적 틀속에 갖혀있어 여러 많은 극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질 않았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지긴 했다. 예전 같으면 조선시대만을 다뤘을 역사 드라마가 지금은 고려나 고구려 더 나아가 발해의 역사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소론과 노론, 동인과 서인 패로 나뉘어져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보여주면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이젠 제법 긴박성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그러니 한마디로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건 확실히 TV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TV라고 한계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 드라마는 주인공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지마는 않는다. 그 인물이 살았을 사화적 배경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영상물이다 보니 당대 현실적 복원보단 미적 감각에 더 많은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나 소품 하나, 장소 하나는 화려하고 그럴 듯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저게 원래 저 모양이었을까? 나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주막은 후기 때 상거래가 발달이 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론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아무 때나 아무 시대나 주막이 보여지는 것은 좀 무리한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신돈>에서 보여졌던 주막과 술집과 작부들은 상당히 고급한 형태로 설정되어 있는 듯 하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방에 차려져 나오는 온갖 산해진미들은 너무 화려하다. 조선시대는 그렇게 못 먹고 못 살아서 죽어 나가는 양민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기생이 되어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배풀리 먹고 거드름이나 피우지 뭐 때문에 저렇게 굶어 죽어 가겠는가? 그렇게도 그 시대는 정조가 그리도 중요하였더란 말이냐? 그리고 기방에 차려 나오는 떡벌어진 술상은 결코 다 먹는 법이 없다. 주연급 배우들이 그 앞에서 주저리 주저리 몇마디 대사을 읊어주고 그 술상을 뒤로하고 나온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다던 그 시절에? 이런 모든 것들이 당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보다 시대의 일상사가 궁금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궁금증을 채워주는 게 또한 요즘 역사학자들의 소임이라면 소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엔 과거를 되새기며 보다 나은 미래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입신양명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거나, 오늘 날 판검사되 보겠다고 고시촌에 사람이 넘쳐나는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컨닝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그 옛날 조선시대 때 거벽이라고 하는 컨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역사는 아무리 돌고 도는 거라고는 하나, 과거와 현재의 닮은 꼴을 찾는 거라면 재미없는 것이 될 것이다. 단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그 시대의 풍습이고 생활 모습이다. "어머나, 그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그러면서 허벅지를 냅다 내려칠 수도 있고, 키득키득 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가끔 역사를 생각하면 현대를 사는 모습이 서글프기도 하고 섬짓할 때가 있다. 우리 역사는 5천 년이라고 하는데 현대화는 불과 100년 안팎에 다 이루어졌다. 아니 적어도 100년 전에 서울의 공기는 이렇게 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공해와 온갖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 보려고 하는 갖가지 행태들로 넘쳐난다. 여유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역사를 반추해 내면서 오늘의 우리네 삶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있어 보인다. 더구나 역사의 큰 소용돌이의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의미찾기란 제법 쏠쏠하지 않은가? 언젠가 우리네 삶도 역사의 한 귀퉁이로 밀려날텐데 우리 후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조명해 줄까?

덧붙이자면, 역사적 사료의 인용과 제법 많은 도판의 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 건조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읽기엔 그다지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 봄에 읽었던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란 책은 제법 읽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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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2-1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선의 미시사에 관한 것인가요? 저도 영웅이 아닌 일반 평민들의 그 당시 삶이 궁금한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인 것 같네요.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도 그런 기획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암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5000년, 아니 100년 역사에 비해서도 극히 최근에야 가능해졌다는 것을 평소에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06-12-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봐야겠죠? 한번 보셔요.^^
 
설화의 재발견 - 삶을 바꾸는 설화의 힘
모봉구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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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들어 부쩍 드라마를 봐도 사극이 좋고, 책을 읽어도 역사물에 관심이 간다. 그런데 이게 꼭 나이가 들어서만이겠는가?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반성하며 이쪽분야에서의 소장파들이나 젊은 감각이 있는 출판인들 또는 제작자들이 보기 좋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그렇게 공을 들이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쏠리게 마련이다.

오래 전 <전설의 고향>이란 TV 프로가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된 프로라 지금은 기억에 거의없지만 그래도 당시로선 꽤 인기있던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츰 인기가 없어지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옛날 이야기를 싫어해서일 것이다. 이야기는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 것이다. 특히 동화나 전설 같은 경우 그 이야기엔 반드시 권선징악이 있는데,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그것의 필요는 인정하지만,  커서도 권선징악을 우논하는 건 어린이의 소치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설혹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천편일률적 결말이 사람으로 하여금 식상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전설의 고향>이 생각보다 오래갔던 것도 기억한다. 그 시절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그 프로를 마주하게 되면 "이게 아직도 해?"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전설이 많았다는 것이리라. 옛날 이야기는 끝임없이 재해석 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을 재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라왔던 시대는 군사독재시절과도 맞물려 있었고 때문에 흑 아니면 백이고, 모 아니면 도인 식으로 사고가 편파적이었다. 또한 주입식 교육도 한몫한다. 그러니 무슨 능력이 있어 이야기 한편을 듣고 상상력의 나래를 피며 재해석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야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과연 비전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거기서 상상력의 나래를 필 수 없는 사람이 과연 자신의 현재를 올바로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를 가질 수 있을까? 이야기에 등을 돌려버렸는데 어찌 재해석이 가능할까?

구약성경을 보면 꿈을 해석하는 사람 둘이 나온다. 그는 요셉과 다니엘이다. 그들은 각각 왕의 꿈을 정확히 해몽해 나라의 앞날에 위기가 닥칠 때 그 어려움을 미리 대비할 수가 있었다. 꿈 역시 하나의 이야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정확히 해석 하기란 쉽지 않다.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예언도 할 수 있을텐데 사람들은 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순간에 집착하고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엔 이보다 더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름도 많은데, 그래도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니만큼 아무리 우스운 이름이어도 대놓고 우논하는 건 실례다. 그래도 이름이 참 예스럽다. 책날개를 보니 저자의 생년이 아직 할아버지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다. 못해도 20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꿈을 해몽해주듯, 이것의 뜻은 이것이야라며 간결하게 설화를 풀어 주는데 그것이 범상치가 않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나 '콩쥐팥쥐'는 흔히 권선징악의 대표 되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저자의 입담을 거치면 전혀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한자나 고사성어도 해석 또한 새롭다. 한마디로 우리설화의 현대적 해석 속에 지혜와 리더십,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조명하는 혜안이 깃들어 있다. 저자가 지금 이 정도의 필력으로 설화를 새롭게 해석해낸다면, 저자가 정말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20년쯤 후엔 얼마만한 혜안을 가지고 우리 설화를 재해석해낼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렇게 한 소장파 인문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데 21세기 <전설의 고향>도 이젠 권선징악의 틀을 과감히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그 모습을 들어내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는 정말 '전설의 고향'의 재탄생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사로잡혀 있는 이분법의 사고관을 털어내고 옛 이야기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보다 다각도로 사고하고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퍼뜨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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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12-0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화의 재발견, 스텔라님 리뷰에 대한 재발견이로군요! ^^
콩쥐팥쥐에서 스텔라님은 콩쥐해요. 난 추천하는 팥쥐할테니! =3

stella.K 2006-12-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죠. 팥쥐야 고마워. ㅎㅎ

레이디제인 2006-12-2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게 있는데요.. 차례순서에 "고려장"이 들어가 있는걸 보니 망설여지네요.. 고려장은 일본이 만들어낸 거짓된 역사인데 왜 저게 버젓이 들어가 있는걸까요??

stella.K 2006-12-2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가요? 첨 듣네요.
 
내 인생을 바꿔준 위대한 명언
진희정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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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있다. 남이 내게 잘한 건 물에 새기고, 남이 내게 잘못한 것은 돌에 새긴다는 말. 이 말은 남이 내게 잘한 것은 하찮게 여기고 금방 잊는다는 말로 이해할수도 있겠지만, 또 어찌보면 그만큼 긍정적이고 좋은 것은 빨리 잊고,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고 생각하는 인간의 속성을 의미하는 말로도 들린다.

사실 내가 이 책을 든 것은,  나에게도 있는 이런 오래되고 고질적인 습성을 조금이나마 상쇄시키고자 읽게된 책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줄 땐 나도 꽤 쓸모있는 인간인가 보다 하다가도, 어디에선가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땐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하고, 나를 그렇게 안 좋게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끊어오르는 분노가 있다. 젠장, 사람이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지옥과 천국을 오갈 수 있다니.  

예전에 나는 남이 뭐라건 그것이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오죽했으면 사람의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항우 장사의 힘을 제어하는 것 보다 세치 혀를 제어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 보다 깍아 내리고 무시하는 말을 잊는 것이 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말을 오래도록 간직할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을 잊지 못하고 곱씹는다는 것은 그말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영혼에 미칠 파장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므로 사람은 될 수 있으면 나에게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과 있는 것이 좋고, 책도 좋은 말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각장마다 두 사람씩 총 48명을 다루고 있는데, 동시대의 사람이건 그렇지 않던 같은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할만한 사람들을 비교해 놓은 책이다. 하지만 비교라고 해서 누가 누구 보다 이점이 좋고, 저점은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놓고 이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지금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 사람은 어떤 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다져서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가를 저자의 깔끔한 해설로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의 명단 가운데는 몇 세기를 관통한 세계적 위인만을 열거해 놓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랬다면 어른을 위한 위인전기 다이제스트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있는 알만한 친근한 사람도 눈에 띈다. 예를들면,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나,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영석,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나 야구의 박찬호, 산악인 엄홍길 등. 물론 그들도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 쳐놓고도 너무 유명인이라 약간의 거리감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세상은 유명인 보단 평범하게 사는 소시민이 더 많은데 이런 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부추긴다. 그러기엔 너무 식상한 소재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도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다는 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괜히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다이제스트로나마 접한다고 내가 바로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 못한 사람이 느껴야 하는 자괴감이란 얼마만한 것인가 헤아려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반의 반도 다 쓰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의 48명이 들려주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그런 볼멘 소리로 일축시키고 귀를 막고 살아도 되리만큼 내가 그렇게 내 삶에 떳떳하고 자랑스러울까?

이 책에 열거된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보고 한 말들이다. 이를테면, 산악인 엄홍길은 산은 공들여 올라가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고 말했고, 흑인이면서 사생아였고, 뚱뚱했고 미혼모였던 오프라 윈프리는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하며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서 오히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었다. 그밖에 박찬호나 마이클 조던도 처음부터 유명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던 나에게 다소나마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어느 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이럴 때 슬픈 음악이나, 염세주의적 책을 탐독했더라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최근 나는 한 모임을 나가고 있는데, 처음엔 도대체 이 사람들과 내가 뭘 할 수가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조금 있어보니,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정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별 볼 일이 없어도 사람네들과 함께하면 어느 샌가 나도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란 희망이 생겼다.

숲은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숲은 예외여서 내가 어떤 숲에 있느냐에 따라 내 운명이 달라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또한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선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나무가 될 것이다. 내가 있는 숲에 나처럼 거니는 사람이 있겠지. 그랬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어떠한 나무가 되고, 어떤 숲이 되어줄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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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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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수필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문학의 한 장르지만 이렇다할 형태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대로, 시는 시대로, 희곡은 희곡대로 그 나름의 형태가 주어지는데 수필만큼은 이렇다할 규격이나 틀이없다. 물론 그러니큼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수필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만큼 이 수필이란 문학장르가 폄하되어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형식의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형식의 자유로움 때문에 잡문과 수필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그 형식의 자유로움 때문에 우린 흔히 잡문을 수필이라고 착각하고 읽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수필은 문학의 고급한 형태로서 저자의 삶과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수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저자는 박학다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만의 통창적인 시각과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있는 탁월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거기에 보통이라면 손색이 없을 것도 같다.

이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독특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 나갔던 보통이 <동물원에 가기>란 본격 에세이물로 독자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특별히 일상성에 관한 저자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는데, 내가 <왜 나는 너를...>에서 지켜 보았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독창성과 위트는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어느 부분은 좀 이해하기가 버겁기도 하다. 이거 무슨 말 하는 거야?할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 얇은 책에 관한 불평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금방 시간내에 뚝딱 읽어지는 책도 아니니 얇은 책에 관한 불평은 그냥 접어 두기로 한다. 

보통의 글이 어렵다고 해서 읽기를 포기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위트와 독창성을 함께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유식함을 겸비했다. 미술 작품을 보는 그의 자세는 확실히 부르조아적이다. 또한 <왜 나는 너를...>의 문장에서 익히 보아 왔듯이 소설과 수필의 중간형태 그리고 희곡에서 봄직한 대사 전달 방식 등은, 내가 익히 보아왔던 수필에서 새로운 형식을 가늠케 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장의 유희를 맛보게 하는 것이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무엇을 통해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적극성과 자유로움, 성실함도 엿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보통의 글을 좋아한다.그래도 그의 가장 큰 미덕은, 보통만큼 사랑에 대해서 이만큼 재치있고 독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진정성'이란 부분에서 클로이를 사랑하게된 과정을 나는 제일 재밌게 읽었으니까. 실제로도 보통은 이 책에서 이 부분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전작을 다 읽어보고 싶은 작가들이 가끔 있다. 나에겐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알랭 드 보통이다. 이번이 두번째로 읽는 책이긴 한데, 그의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절대로 빨리 읽을 수 없다는 것이고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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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10-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었어요.
에세이를 그닥 안좋아해서 말이죠.
추천밥 드세요. 간만에 스텔라님 글 읽으니 좋으네...^^

stella.K 2006-10-0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플레져님, 사랑해요! 나는 리뷰는 쓰느라고 쓰는데 님만큼 잘 쓰지도 못하지만, 사람들의 반응도 시큰둥해요. 이럴 때 듣는 플레져님의 댓글은 나에게 힘을 주죠. 흐흐
보통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안 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매니아라면 사는 게 좋구요.^^

비로그인 2006-10-2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보통을 좋아하면서도 이 책을 망설였습니다), 장바구니로 가져갑니다.

stella.K 2006-10-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주드님! 반가워요. 근데 보통 거 다른 거 안 읽은 거 있으시면 그거 다 읽으시고 맨 나중에 읽으셔도 좋을 듯 해요. 좋긴 하지만 꼭 읽어보라고는 권하긴 좀 그렇거든요.^^
 
일상의 경제학
하노 벡 지음, 박희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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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러운 얘기일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경제에 대해서는 잼병이라할 정도로 모른다. 매일 받아 보는 신문에 경제면을 따로 떼어 섹션화 한게 언제부터며, 오전 9시대에 하는 뉴스 끝머리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그날의 거래품목을 시세대신, 증시와 나스닥, 원달러 환율을 증권 전문가가 나와 따로 진행한지가 얼만데, 나의 경제 지식은 맹하다 싶을 정도로 모르는 것일까? 내가 아는 사람들은 펀드를 권하기도 하는데, 이 펀드가 뭔지 알게된 건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그것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던 어느 날, 무지는 깨우쳐야겠다. 나도 노후에 거리에 나앉지 않으려면 경제에 대해 뭔가를 알아야하지 않은가? 이런 자각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펼쳐들게 만들었다. <일상의 경제학>이란 타이틀을 건만큼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경제원리를 저자는 꽤 꼼꼼히 프리즘을 데주고, 짚어 주고 있다.

확실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모든 것은 마케팅으로 통한다 하리만큼 세상은 온갖 술수와 수법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거기에 숨어있는 경제 논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고, 끼워서 준다는데 당장은 필요치 않아도 훗날의 쓰임새를 믿고 산 물건이 한 둘인가? 그런데 거기에 음흉한 기업의 마케팅과 돈을 끌어 모르려고 하는 야욕이 숨어 있는 줄 누가 알겠는가? 알아도 당장 눈 앞에 펼쳐진 공짜와 끼워 팔기의 유혹을 넘기가 쉽지가 않다.

사실 누구나 바라는 것이겠지만, 돈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 하다는 것을 또한 누구든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괴로운 것은 즐길 생각은 없다. 너무 가혹하고 메저키즘적이지 않은가? 그냥 피할 수 없다면 알고는 있어야지.

이 책은 어려운 경제의 원리를 일상 속의 예를 들어 쉽게 풀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일단 고마움을 느낀다.그래도 난 이 책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세상이 퍽퍽하고, 고단할수록 꿈 꿀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너무도 얄밉게, 네가 꿈꾸고 싶은 세상은 오지 않아. 오직 이런 경제 논리가 숨어있지.라고 짚어주는 게 좁쌀영감 같다.

그런데 미워할 수도 없다. 당장 보아라. 우리나라에선 독신자들에게 특별세를 물게 하려고 하는 법안을 추진하려고 한다. 웃기는 발상 아닌가? 뭐든지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무조건 말도 안된다! 독신도 서러워 죽겠는데 독신세가 웬말이냐! 시위 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저자가 책에서 역사상 러시아에선 집을 지을 때 창문을 내는데 세금을 내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 날, 우라나라에서 독신세를 왜 법안통과가 안되겠는가. 그래서 정치인들이 욕을 먹는 것이긴 하지만. 한 나라가 어떠한 법안을 통과시키느냐 마느냐는 시민의 목소리 보다 경제와 효율성의 논리가 더 앞선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저지하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경제를 따로 떼어 놓고 세상을 논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예전 사춘기 때처럼 캔디의 테리우스에 반하고, 노신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의 책을 더 탐독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보다 앞서는 게 돈이어야 하고, 효율성을 따져봐야 하니 어른이 되는 것은 하나도 좋은 일이 아니다.  

 아, 여기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인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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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08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훈이 그림이 눈에 뛰네요. 별이 3개면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것 같은데...

stella.K 2006-09-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책의 그림이 정훈이란 사람이 그린 그림이어요? 솔직히 이 책, 저자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썼다는 느낌은 오는데 그다지 마음에는 확 안 와닿더라구요. 잘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고...

비로그인 2006-09-0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훈이 <강유원의 공산당 선언에서> 그림을 그렸죠. 요즘 어려운 책에 이우일,정훈이 그림을 종종 봅니다.,..어렵다는건 번역책이어서 그런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