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수필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문학의 한 장르지만 이렇다할 형태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대로, 시는 시대로, 희곡은 희곡대로 그 나름의 형태가 주어지는데 수필만큼은 이렇다할 규격이나 틀이없다. 물론 그러니큼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수필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만큼 이 수필이란 문학장르가 폄하되어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형식의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형식의 자유로움 때문에 잡문과 수필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그 형식의 자유로움 때문에 우린 흔히 잡문을 수필이라고 착각하고 읽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수필은 문학의 고급한 형태로서 저자의 삶과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수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저자는 박학다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만의 통창적인 시각과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있는 탁월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거기에 보통이라면 손색이 없을 것도 같다.

이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독특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 나갔던 보통이 <동물원에 가기>란 본격 에세이물로 독자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특별히 일상성에 관한 저자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는데, 내가 <왜 나는 너를...>에서 지켜 보았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독창성과 위트는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어느 부분은 좀 이해하기가 버겁기도 하다. 이거 무슨 말 하는 거야?할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 얇은 책에 관한 불평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금방 시간내에 뚝딱 읽어지는 책도 아니니 얇은 책에 관한 불평은 그냥 접어 두기로 한다. 

보통의 글이 어렵다고 해서 읽기를 포기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위트와 독창성을 함께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유식함을 겸비했다. 미술 작품을 보는 그의 자세는 확실히 부르조아적이다. 또한 <왜 나는 너를...>의 문장에서 익히 보아 왔듯이 소설과 수필의 중간형태 그리고 희곡에서 봄직한 대사 전달 방식 등은, 내가 익히 보아왔던 수필에서 새로운 형식을 가늠케 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장의 유희를 맛보게 하는 것이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무엇을 통해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적극성과 자유로움, 성실함도 엿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보통의 글을 좋아한다.그래도 그의 가장 큰 미덕은, 보통만큼 사랑에 대해서 이만큼 재치있고 독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진정성'이란 부분에서 클로이를 사랑하게된 과정을 나는 제일 재밌게 읽었으니까. 실제로도 보통은 이 책에서 이 부분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전작을 다 읽어보고 싶은 작가들이 가끔 있다. 나에겐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알랭 드 보통이다. 이번이 두번째로 읽는 책이긴 한데, 그의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절대로 빨리 읽을 수 없다는 것이고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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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10-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었어요.
에세이를 그닥 안좋아해서 말이죠.
추천밥 드세요. 간만에 스텔라님 글 읽으니 좋으네...^^

stella.K 2006-10-0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플레져님, 사랑해요! 나는 리뷰는 쓰느라고 쓰는데 님만큼 잘 쓰지도 못하지만, 사람들의 반응도 시큰둥해요. 이럴 때 듣는 플레져님의 댓글은 나에게 힘을 주죠. 흐흐
보통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안 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매니아라면 사는 게 좋구요.^^

비로그인 2006-10-2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보통을 좋아하면서도 이 책을 망설였습니다), 장바구니로 가져갑니다.

stella.K 2006-10-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주드님! 반가워요. 근데 보통 거 다른 거 안 읽은 거 있으시면 그거 다 읽으시고 맨 나중에 읽으셔도 좋을 듯 해요. 좋긴 하지만 꼭 읽어보라고는 권하긴 좀 그렇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