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 필독서 50 -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14
박균호 지음 / 센시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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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을 이리 써 놓으면 안 그래도 고전을 잘 안 읽는 사람은 더 안 읽을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읽지 말라는데 어떻게 읽느냐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띨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뜻에서 쓴 말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전문학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턱대고 읽겠다고 덤비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큰코 다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도 이 말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무슨 책을 읽어도 저자의 들어가는 말이나 프롤로그를 읽게 된다. 하물며 우리는 고전을 읽을 때 그 나라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그럴 때 먼저 이런 좋은 해설서를 읽고 읽으면 실패하지 않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전을 읽으려고 하면 먼저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때 고전을 열심히 읽으라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외치기만 했지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따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두 가지 정도로 현타가 왔다. 그건 그렇게 선생님이 고전을 읽어라, 읽어라 할 때 청개구리처럼 안 읽었던 것 같은데 또 돌아면 아주 안 읽지만은 않았다는 것. 반복 효과 때문이었을까? 또 좀 놀라웠던 건, 옛날 같으면 감히 알지도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이 되었다는 거다. 당연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전의 범위는 넓어지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21세기다. 앞으로 어떤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다음 세기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저자가 50권을 선정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정리를 잘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이 작품을 썼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감탄했다. 또 그런 만큼 내가 몰랐던 지식을 전해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과연 저자는 언제 이런 것들을 다 알아내어 썼을까 놀랍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단점도 없지 않다. 그건 아는 척하기 딱 좋다는 것. 고전문학 한 번 읽으려면 큰 숨 한번 내쉬고 읽어야 하는데 이건 날로 먹기 딱 좋다 싶다. 물론 고생스럽게 고전을 읽는 사람이 보면 얄미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해설서만이라도 읽는다는 게 어딘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다는데 읽은 척하는 것도 능력이다. 아무리 천하에 없는 독서광이라도 세상에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러니 누가 읽은 척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줘라. 그게 읽은 사람의 겸양이고 덕목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장점이 더 많다. 오히려 반대로 이 책을 읽다 고뤠? 하며 그동안 한 번도 읽어 볼 생각이 없는 원본을 펼쳐 볼 확률이 더 많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작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해 준다. 사실 난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안 좋았다. (공교롭게도 난 아직 책으로 읽지 못하고 영화로 봤다.) 특히 난 주인공 험버트가 작가인 나보코프의 페르소나는 아닐까 그런 의심을 했더랬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세계 명작이 될 수 있는지 한때 금서가 되기도 했다는데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이 책에서도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문학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게 대부분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에 대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소설은 소아성애자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소아성애자를 비판하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고. 험버트가 자신의 소아성애적 행각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지만, 이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독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더 나아가 나보코프는 소설로 도덕이나 철학 따위를 주장하는 작가를 혐오했으며 자신의 소설이 단순히 소설 그 자체로 읽히기를 원했고, 작품으로 교훈을 주기보다는 문학적 실험과 탐색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했다. 내가 좀 팔랑귀이긴 하지만 저자가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내가 좀 예민했나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문학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나보코프를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만간 진짜 나보코프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례적(?)인 건 저자가 하루키를 50의 명단에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거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오히려 제외하는 게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모든 독자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마냥 좋아라 하는 작가는 아니다. 본국에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대중적으로 인기는 많지만 순수문학 분야의 최고봉인 아쿠타가와상을 아직 받지 못한 것과 일본이 당면한 현실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 등.

사실 하루키는 이제 '하루키 월드'라는 하나의 문화를 구축했지만 그렇게 하루키를 즐기려 할 뿐 그에 대한 변변한 평론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하루키 성격에 누가 자기 작품을 가지고 평론을 쓰던 뭘 하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 같이 초기에 약간의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거의 냉담으로 돌아선 독자로선 그를 좀 객관적으로 알아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내 취향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학은 취미로 읽을 수 있지만 종국적으론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뽑아든 책이 문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품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는데 어느 만큼의 시야를 확보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고전 읽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든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나 '모비 딕'같은 작품은 너무 두꺼워 읽기가 꺼려진다. 게다가 언젠가 누가 썼는지도 모를 리뷰에 부정적인 말 한마디 발견했다고 아예 접어둔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완독까지 이어진다면 뿌듯하겠지.

한 가지 발견한 팁 아닌 팁이 있다면 고전문학도 거의 대부분 작가의 경험이나 본 것을 가지고 썼다는 것. 당연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읽으면 독자가 되고, 쓰면 작가가 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갈수록 편견과 편독이 심해지고 있다. 그건 하루에도 몇십 권씩 쏟아지는 책의 바다와 그에 비해 나이 들수록 읽을 수 있는 책은 점점 한정되어 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때가 되면 자기만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난 아직도 읽지 못한 고전들이 너무 많다. 정말 내가 죽기 전에 이 책들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도 이 책이 더 고맙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게 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책을 읽는다는 거 아닌가? 짐승은 책을 읽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건데 책은 읽어 뭐하나 하는 건 짐승같이 살다 죽겠다는 말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그보단 한 권, 아니 한 페이지라도 더 읽기 위해 작은 몸부림이라도 치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저러 한 이유로 그 책 목록에서 일찌감치 제외했던 책들을 슬그머니 끌어와 목록 속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다 읽고 나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을 뷔페로 즐긴 듯 포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전 명작이 50권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다음 50권엔 어떤 책을 포함시킬지 궁금하다.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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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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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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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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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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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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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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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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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고전이다 하지만, 그 소설이 나왔을 때는 대중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를 잘 나타내고 어떤 건 재미있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읽을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 거 모르고 봐도 괜찮은 것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고전은 별로 안 보는군요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보면 읽고 싶은 고전이 생길 것도 같네요


희선

stella.K 2024-03-26 14:47   좋아요 1 | URL
저도 전엔 뭐 읽겠나싶은 책들 이 책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책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4-03-27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이렇게 많이 내시다니... 박균호 님은 능 력 자, 이십니다.
노력이 중요하지만 타고난 능력이란 게 있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stella.K 2024-03-27 16:36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부럽기도 합니다. ㅋ

transient-guest 2024-04-05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이 또 책을 내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깊이있는 독서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책을 꽤 많이 읽는 저도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듣도보도 못한 책이 많음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잘 쓴 정리를 보면 원전에 대한 흥미가 생겨 더 찾아보게 됩니다.

박균호 2024-04-05 08: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이번엔 괜찮은 책이어야 할텐데요 ㅎ

stella.K 2024-04-05 19:45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래서 이런 해설서가 필요하더라구요. 박 작가님 정말 부지런 하시죠?^^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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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 전에 사 놓고 잊고 있다 최근 읽었다. 꽤 괜찮은 책이다. 

우리가 알만한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들을 저자의 탄탄한 문장이 담았다. 

이런 류의 책이라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나 <여전히 미쳐 있는>을 떠올릴 것이다. 또한 이 절판된 책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싶기도 하지만 위의 두 책은 두껍다. 여성 작가를 다룬 좀 두껍지 않은 책을 원한다면 이 책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  

읽고나서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그득한 느낌을 받았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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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3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정판으로 나왔군요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이것도 품절이에요 예전에 읽고 쓰기도 했어요 찾아보니 안 보여요 여기엔 안 썼나 봅니다 나중에 쓴 거 올려보고 싶기도 하네요 못 썼지만...


희선

stella.K 2024-02-23 09:50   좋아요 0 | URL
아, 희선님도 이 책을 읽었군요.
그러게요. 두 책 다 절판이라 아쉬운데 중고샵엔 아직 있는 거 같더군요.^^

페크pek0501 2024-02-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바뀌어서 큰글씨책으로 나와 있는 게 있네요. 그런데 큰글씨책은 비싸요.ㅋㅋ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갑니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오래전 읽었어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면 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stella.K 2024-02-24 18:1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래서 더 이상 눈이 나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ㅋ
이 책 읽으면서 뿌듯했어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어 보고 싶었는데 넘 두껍기도 하고 넘 비싸서 중고샵에 나오길 바라고 있는데 기회가 없네요. 😂
 
작가를 짓다 - 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최동민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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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판형은 좀 작은 편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작가의 어원이 짓다라고 하던데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당대 유명 작가와 그를 있게 한 보이지 않은 조력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조력자는 편집자일 수도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자매나 형제일 수도 있다. 또 아주 드물게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2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더구나 문학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작가로 주목받기에도 힘든데. 그래도 저자가 이렇게 다뤄줬다는 게 새삼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도 일견 든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링은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작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특별히 싸울 상대도 없고, 그저 링에 올라 멀뚱히 앉아 백지를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런 규칙뿐이기에 승리나 패배가 기록되질 않는다고.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니 작가는 뭔가의 천형이 있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처럼 많은 작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데뷔작 내지는 초기작을 내고 조용히 사라지는지 알 것도 같다.


사실 우린 몇몇 작가들이 계속 오래도록 작품을 내니까 그 일도 할만 한가보다 싶지만 알고 보면 그런 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업작가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느 직업 세계에서나 별이 된다는 건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그걸 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 보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단지 다른 건, 저 사람은 해냈다는 것이고 나는 아직 안 했거나 못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읽다 보면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사람은 평생 한 번 정도는(그보다 몇 번은 더 할 수도 있고) 은인을 만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혼자 쓰는 고독한 작업자들 아닌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번째로 나오는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보이지 않은 조력자이자 그의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의 조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가 왜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조명했는지는 알 것도 같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좀 조심스럽지만) 니나는 자신의 아들을 조력했다기 아들이 엄마에게 작가가 되도록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으면 좀 더 근사하고 강력한 뭔가에 당할 일이지 작가가 뭐 볼 일 있다고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쫓아서 다 했다. 그나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 장관이 됐으니 여한은 없겠지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니나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모자 사이엔 뭔가의 간극이 있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흥미롭긴 하다. 작가가 저 혼자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다루지 않았지만 하루키도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좋은 편집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주고 냉정하게 조언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혼자 쓰지 않고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와 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긴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면을 다룬 책들 말이다. 유려한 문체도 좋고, 무엇보다 저자의 시도가 참신해서 읽어 볼 만하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 뒷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력자를 다루기보단 작가에 대해 다루고 대충 마무리하는. 뭐 대체로 책들이 그렇긴 하다. 끝까지 뒷심 좋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공들인 흔적은 느껴져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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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역시 되어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전업-’이라는 접두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선망의 접두어기 아닌가 싶네요. 전문성을 보다 강조하여 ‘전업백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그냥 혼자 살아야겠죠? ㅋ

stella.K 2024-01-16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지금 초란공님이 하시는 일도 전업 아닌가요?
제가 전업 백수입니다. 전업 백수도 쉽진 않죠. ㅋㅋ

초란공 2024-01-16 21:50   좋아요 1 | URL
뒷심 있는 전업 백수가 되는 일은 더욱 쉽지않을 듯 합니다.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하고요. ^^ 건강 잘 챙기세요~!

stella.K 2024-01-17 10:29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뒷심이...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초란공님도 건강하시길.^^

페크pek0501 2024-01-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력은 필수, 그리고 버티기, 가 중요한 것 같아요. 버티다 보면 좋은 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작가는 능력을 키우며 기다리는 자. 인내하는 자, 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24-01-17 17:06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도 맞네요.^^

hnine 2024-02-1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최동민이라는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제가 한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 진행하시던 분이네요. 거의 매일 들었었는데.

stella.K 2024-02-11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이 사람 글은 잘 쓰더군요.
브런치에서 무슨 상 받고 책으로 낸 줄 알고 있는데
팟캐스트도 한다고 듣긴했어요.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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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수산 작가의 책을 이제야 처음으로 읽었다.

책을 산다면 주로 중고샵을 이용하는 편인데 오래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고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와 있길래 횡재다 싶어 덥석 샀다.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사 놓고 쟁여 두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비교적 빨리 손이 갔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봤더니 오랜만에 8, 90년 대의 서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이 책은 2006년도에 나왔지만 명백히 한수산 작가는 8,90년 대 한창 활동했던 작가다.

난 아직도 8,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것보다 안 읽은 것이 더 많은데 그래도 그때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하면 소설 꽤나 읽었던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싶은데, 그땐 지금만큼이나 매체가 다양하지 않아 기껏해야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가 전부였다. 그러니 그중에 내 귀를 간질이고 눈에 들어오는 책이래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의 5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한수산 작가도 나름 꽤 유명했는데 왜 난 책 한 권 읽어 볼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엔 이문열이나 황석영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을 요즘의 언어로 말하면 문단계의 상남자들이다. 그런데 비해 한수산 작가는 황태자라고나 할까? (물론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앞서 말한 두 분에 비하면이다.) 아무튼 결이 좀 다른 작가란 느낌이 있다. 당시로선 역시 상담자답게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소설이 소위 먹어줬던 때라 한수산 작가는 나에겐 늘 예외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창 문명을 떨치고 있을 때 읽었으면 난 좀 시큰둥 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 내가 산문집을 그리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아직 덜 여물 때니 무엇을 제대로 알았겠는가. 소설도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읽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린 동시대의 것을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평가한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놓고 보니 아, 이런 작가였구나!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중고샵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샀다고 마냥 좋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복간해 제값 내고 사 봐야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러면 나 같은 얌생이는 안 볼 확률이 아주 없진 않다.ㅠ )

산문집도 시대마다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다양한 결을 갖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그 시절의 서정이 배어있는 책이 좋다. 이 책이 그렇다. 뭔가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든다. 역시 문학은 세월을 약간 비껴서 봐야 더 잘 보이는 건 아닌가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 요즘 핫한 소설이나 산문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그만큼 책은 역사적 산물이고 살아 숨을 쉰다. 10년 뒤에도 잊히지 않고 읽히는 책이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일 것이다. 독자가 10년 뒤에도 찾아 주지 않으면 그 책은 유명무실하다. 아니 외로울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작가가 자신의 은사를 기리며 쓴 글이다. 작가가 대학시절 국문학에서 영문학으로 전과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박용주 교수를 기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여간한 은사가 아니면 이렇게 챕터 한 장을 통째로 쓰는 건 드물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사제지간이 꽤 끈끈했던 모양이다. 작가는, 교수님은 '생활은 평범하나 이상은 드높게(Plain Living High Thinking)'라는 말을 흑판에 쓰면서 낭만주의의 핵심을 기억시킨 분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소설가들 중엔 술을 그것도 미국 작가들이 많이 마시는데 왜 그런가에 대해 교수님은 누가 작가가 글을 쓴다는 건 발가벗는 것 같은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카더라며 그러니 글 쓴다고 너무 술을 많이 먹지 말라며 경계해 주셨다고도 쓰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박용주 교수는 한수산 작가를 아들같이 챙겼나 보다. 또한 그분은 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토머스 울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겠다며 토머스 울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울먹인다. 그리고 훗날 교수님의 아드님이 결혼 주례를 작가에게 부탁받았을 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잠시 주춤했다고 쓰고 있다. 순간 얼마나 은사님이 생각났을까 싶다. 그 글을 읽고 있는데 나에게도 과연 그런 은사님이 계셨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 계신다. 작가의 은사님만 같지 않을지라도.

책은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쿠바 유민사와 고려인을 찾는 시베리아 8천 킬로미터 대장정의 기행문을 담기도 했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 이 책 사 보길 잘했다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 작가들은 이렇게 자료수집이란 명목하에 취재하기 바빴다. 취재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작가들은 엉덩이의 힘이라며 취재보단 서재나 연구실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 취재는 기자나 르포나 기행 작가만 하는 것 같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요즘의 산문집과 다르게 뭔가의 힘이 느껴지면서 작가가 참 치열하게 글을 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문체도 나름의 격조가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리의 악사'란 작가의 원작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는 어떨지 몰라도 요즘 보기엔 다소 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어서 다소 아쉬웠다.) 확실히 원작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많다. 뭐 선택이고 취향이지만 난 역시 책 보다 나은 원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유명한 작가의 필화 사건도 언급했는데 그로 인해 작가는 잠시 한국을 떠나 살기도 했다. 누구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그 시절 필화 사건 하나쯤 연루되지 않은 먹물들이 어디 있겠는가. 철없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때 친구 하나가 운동권이었는데 그 때문에 알만한 명문 여자 대학에서 잘리고도 시대가 바뀌자 오히려 그것이 훈장이 되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지금은 예전 같은 필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최근까지도 책을 내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참 보기가 좋다. 아무리 작가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지만 젊었을 때 치열하게 쓰고 노년이 되어서는 즐기면서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모쪼록 강건하셔서 오래도록 글을 써 주셨으면 좋겠다.

부디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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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0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수산 작가가 감성적인 글을 쓰신 분인데 남산인가 어딘가로 끌려가 고문당한 걸 생각하면 기가 찹니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stella.K 2024-01-11 11:5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아마 그 때문에 일본으로 가셔서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고 쓰셨던 것같아요.
제가 요즘 이렇습니다. 돌아서면 깜빡하거나 가물가물 입니다. 이해하시길. 이 책 읽은지 좀 되거덩요. ㅋ

2024-01-11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4-01-1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작가의 <가을 나그네>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소설 속 딸 이름이었던 동영, 서영, 남영. 줄거리는 도통 생각나지 않고요. ㅎ

stella.K 2024-01-11 12:0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딸 셋만 낳길 다행이네요. 넷이었으면 뭐라고 지였을까요? 북영에세 ㄴ을 뺐을까요? ㅋ
제목 말씀하시니까 한수산 작가와 비슷한 결을 가진 작가가 최인호나 박범신 작가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마음 같아선 이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쫘악 읽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마음 뿐이네요. ㅠ

blanca 2024-01-1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 특유의 서정성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어요...아련하네요. 저는 요새 무려 80년대 전원일기를 다시 보고 있답니다.

stella.K 2024-01-11 15:1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한때 그랬어요. 리모컨 운전하고 있으면 옛날 고릿적 드라마 를 하는데 아, 저런 때가 있었지, 아련해 지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브라운간을 채웠던 배우들이 하나 둘씩 진짜 저 하늘의 별이되는 걸 보면 쓸쓸해요. 그래도 이렇게 옛 작가의 글을 더듬어 읽는 것도 꽤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랑카님도 한 번...!^^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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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엔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여기 책으로 구원을 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남준이다.


글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좀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책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독서 회의론자는 왠지 김빠지는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그래도 책으로 개안을 하고 구원에 이르는 건 아직도 유효하다. 비근한 예로 역대로 성경을 읽고 회심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가 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언젠가 TV에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서였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이 책을 꼭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사춘기 시절 엄청난 정신적 방황을 하다 21살에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숙한다. 이 책은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을 뽑아 글을 썼다. (8문장은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물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 여덟 문장을 뽑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누구인가. 가톨릭과 기독교를 통틀어 사제와 목회자들이 가장 존경하고, 서양 사상을 논할 때 그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탁월한 사상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불멸의 저서 '참회록'에 보내는 연가(?) 내지는 해설서를 낸 사제나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중 저자 김남준도 당연 이름을 올렸는데,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란 일종의 묵상집(?)을 내므로 참회록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런 만큼 이 책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가지고 썼다는 건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시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이미 '참회록'을 120번,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100번을 읽고 썼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이젠 안 보고도 외울 정도일 것 같다.


문득 내가 언제 100번, 120번까지는 아니어도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있던가 싶다. 사춘기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까지 성경은 20번도 읽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100 독은 고사하고 50 독도 읽지 못할 것 같다. (성경은 1년에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목사이기도 한데 성경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싶다.) 난 아무리 좋은 책도 세 번 이상 읽었던 적이 없다. 나도 저자처럼 성경 외에 평생 거듭해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쯤 가지고 싶다. 그것이 참회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이 짙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말끝마다 아우구스티누스다. 자꾸 그러니까 왠지 지금이라도 '참회록'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나도 20대 시절 강의 시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그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듣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기를 건너 여기서 맞닥뜨리다니. 마치 저자는 나를 만나려거든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만나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낯간지럽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중첩될 뻔하다 비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무척 싫어해 책 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나와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난 잠시라도 내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한때 허무주의에 빠졌던 것도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학교는 다녀 뭐하고, 힘들게 살아 뭐하나 그게 호르몬의 변화일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름 진지했다. 하지만 저자와 내가 다른 건, 저자는 자살을 꿈꿨지만 나는 꿈꾸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그건 자살을 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난 아직 세상에 못다 읽은 책들이 많은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사춘기 시절을 꿈동산처럼 보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난 그 시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자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정신적 방황은 제법 길고 깊었다. 책 제목도 보라.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그나마 청년이 되어서야 톨스토이를 읽고 신앙에 귀의할 생각을 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부활'을 읽고 이거 뭐지? 했다가 정작 톨스토이의 주요 저작은 읽지 못하고 멀어졌다. 참회록도 그렇다. 저자는 나와 비슷한 20대 때 그 책을 읽었지만, 나는 그 나이 때 볼 생각을 아예 접고 말았다. 어떻게 비껴가도 이렇게 비껴갈 수 있을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걸 쓴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주 조금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위대한 지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건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었다.

내가 그를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심지어 플라톤보다 더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아, 위대한 지성, 드높은 사랑이여! (80쪽)


저자는 그렇게 방황을 하다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방황을 멈춘 것 같다.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라니. 보통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알아보는 저자의 안목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지적 욕구를 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저자는 그 깨달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된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 같기도 하다(물론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겠지만). 나도 한때 겉멋이 들어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듯) 졸업 후 전공 서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저자는 상당한 장서가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수 천권의 책을 가지고 있어도 알아주는 장서가가 되는데 그는 수 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책으로 구원을 받고 수만 권의 책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한국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받게 된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저자의 삶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


하지만 알다시피 그렇게 책만 읽는 사람의 단점이 있다. 그건 너무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책상받이니 교조주의자란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저자도 그것을 짐작했을까? 어느 순간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얘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받이를 면치 못하고, 다행인지 남에게 비판을 받을 만큼 독서를 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 또한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나 저자나 방황이 크면 남다른 포스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시도 아닌 산문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흔한 형태의 산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라고 하기엔 산문 같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 같다. 깊은 사유적 문장이라 이 책으로 저자에 대해서 알기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개인적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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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먼저기는 하지만, 그 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보고 아주 아우구스티누스만 많이 좋아한 듯 합니다 120번, 100번 읽은 책이 있다니... 대단합니다 많이 읽어도 겨우 두번인데... 세번까지 보는 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나를 그렇게 파다니 대단합니다 지금은 목사군요

책이 저자 삶을 많이 바꿨네요 그런 책을 만나다니... 세상엔 그런 사람 있기도 하겠지요 그런 거 부럽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stella.K 2023-12-22 19:26   좋아요 1 | URL
저는 거의 유일하게 부활을 세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가능해요. 그래서 고전을 읽으라는 것 같기도 하구요.ㅎ

아까 잠시 나갔다 들어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그래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나마 낫지 싶네요.
내일부턴 서서히 풀릴 모양이니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네요.
또 추워질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싶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길요.^^

페크pek0501 2023-12-22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이상을 읽다니요... 저는 한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봤고 그게 신기록이에요. 두 번 읽은 책은 있지만 백 번은커녕 열 번 읽은 책도 없어요. 어느 한 분야의 책을 파 보는 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은 공부가 될 듯합니다.
스텔라 님은 부활을 꽤 일찍 읽으셨네요. 저는 삽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에 읽은 것 같아요.
6학년 때는 책이 아니라 오자미를 갖고 놀았던 게 생각납니다. 4학년 때는 공기놀이. 히히~~ 어릴 때 너무 놀아서 이젠 노는 게 시시하고 독서가 좋아졌나 봅니다.
리뷰 쓰신 책, 유익한 책 같습니다.^^

stella.K 2023-12-22 22:04   좋아요 0 | URL
오자미. ㅎㅎㅎㅎ 진짜 그런 게 있었죠? 추억 돋네요.
뭐 어린이 세계 명작으로 마침 나온 게 있어서 무심코 본 건데
그게 그렇게 대단할 줄은...
와, 7번! 대단하네요. 솔직히 저자는 넘사벽인 게 넘 많아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심위일체론이란 책은 누구도 범접 못하는 책인데
읽으면서 거의 황홀경에 빠졌더라구요.
책 보다는 혹시 기회되시면 이 분의 설교 시청을 권합니다.
나름 깊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