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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 좋은 여성들 - 용기와 극복에 관한 가슴 떨리는 이야기들
힐러리 로댐 클린턴.첼시 클린턴 지음, 최인하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을 몇 가지로 놀라게 된다.
우선 두께에 놀란다. 종이책 좋아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두꺼운 책을 좋아한다는 묘한 함수관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두꺼워 들고 읽을 수는 없다는 거다. 안 그러면 손목받아들면이 나가는 수가 있다. 또한 저자에 대해서 좀 놀라게 된다. 맞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대통령의 영부인인 힐러리와 영예 첼시가 공동 지필을 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모녀가 그렇게 한가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언제 또 이런 책을 냈을까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게다가 뼈대 있는 가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생각이 든다. 책 초반 어딘가에 보면, 이 두 모녀는 힐러리의 어머니 다시 말해 첼시의 외할머니와 셋이서 독서토론(또는 스터디)를 정기적으로 해 왔다는 얘기를 한다. 혹자는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 모녀 3대가 그러기는 아무리 미국이라고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나라 보다 생활이나 교육 수준이 높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여성 3대가 모여서 뭔가를 했다는 건 특별한 추억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때의 추억이 토대가 되어 나온 책이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에 등장한 여성과 그녀들의 업적을 다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겠지만 주로 미쿡의 여성을 다뤘다. 물론 일부 동양이나 제3 세계 여성들을 다루긴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한 인물에 대해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긴 장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단점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요즘은 뭐든 짤로 통하는 세대니 기획이나 편집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단순히 어느 책에서 발췌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실제로 만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쓰기도 해 의미를 더했다. 이런 시도는 확실히 좋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이 두 사람은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아왔겠는가.
이 책은 여성사에 관한 책이다. 여성사는 또한 투쟁사이기도 하다. 투쟁은 또한 쟁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인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건 또한 인간의 DNA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의도적으로라도 자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단순히 퇴보하고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된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래서일까? 해리엇 터프만의 생애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녀는 1820년 메릴랜드 주에서 태어난 노예였다. 모르긴 해도 그녀의 부모도, 그 부모의 부모도 노예였을 것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 노예로 살았다면 운명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떠나고 또 떠났다. 자유의 몸이었다면 떠났는가 보다 하겠지만 노예였으니 잡혀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떠난 것이다.
해리엇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기도만 해서는 부족하다. 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믿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제 스스로 생각해낸 것예요. 자유롭게 살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나한테 있거든요. 어느 하나를 가질 수 없으면 하나를 갖게 되는 거죠." 인간의 역사는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기존의 제도와 평화를 깨는 것. 그건 여자에겐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 길을 내지 않으면 그 길을 따라올 사람은 없다. 나 아니면. 그리고 그건 단순히 정치나 사회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전반적인 분야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길을 내왔는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동시에 읽다 보면 문제가 되었나 싶은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국에 여자 화장실이 만들어진 건 1960년대가 들어와서나 가능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 천문대에. 있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엔 여성 연구원이 없었으니까. 1948년에 대학을 졸업한 베라 루빈이 1960년 대에 천문대에 들어가서 남자 화장실만 있었던 한 칸을 치마 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붙여 여자 화장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나마 그녀는 백인 여성이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자는 백인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다. 인권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런 만큼 여자를 위해서 스스로 알아서 목소리를 높여주는 남자는 없다. 뭐 극히 일부는 동조해 줄 수는 있어도.
그나마 여자가 바지를 입을 수 있었던 건 1832년에 태어난 메리 에드워즈 워커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외괴 의사다. 그녀는 일할 때 꽉 끼는 코르셋과 풍성한 치마 보다 바지가 편해 항상 입고 일을 해 왔고 바지가 너무 좋은 나머지 결혼할 때도 바지와 연미복을 입었다고 한다. 당시론 파격적이다 못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남자를 사칭했다고 여러 번 체포됐다고. 미쳐야 미치고, 미쳐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또한 이거야말로 배짱이구나 싶다.
조금 아쉬운 건, 내가 여성사를 그리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여성 보다 모르는 여성이 너무 많다는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알면 재미있을 텐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반 이상이라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미국의 38대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의 영부인인 베티 포드 부분을 읽었을 땐 나름 좋았다. 솔직히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대통령에 가려 영부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지 않은가. 읽으면서 꽤 멋있는 여자였구나 싶다.
미국의 여성들이 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것이다. 진취적이라는 거.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힐러리도 영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백악관을 떠났어도 명예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퇴임 후에도 장관을 역임했고,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없지 않으니 이때쯤 미국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우리나라 보다 늦는다. 비록 실각은 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앞서 여성을 대통령에 앉혀 보지 않았는가. 더구나 이 나라 보수가 그랬다는 건 놀랍기도 한데,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 역사적인 사실만으로도 여성 정치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의 상황이 상황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체육계의 멜라니 그리피스 아줌마도 오랜만에 들어 본 이름이라 반가웠다.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은 결코 모르겠지만. (그냥 읽어 볼 테면 읽어 보라고 밑밥 깔아놓는 거지 뭐.) 소년은 야망을 가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여성은 배짱을 가져야겠다. 사람이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으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건 다윗은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었다. 믿음과 배짱 즉 용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 이제 더 이상 쭈뼛대지 말고 배짱 좋게 살아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