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는 영어로부터 도망다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영어공부에 무심하게 보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겠다고 다짐해놓고 어영부영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원서들도 나름 몇권씩 사 모았지만 단지 사 모은것에 불과했다. 사실 나는 부끄럽지만(실력이 별로라) 몇 년간 영어로 과외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야말로 돈을 벌었었다. (지금은 워낙 손 놓은지 오래기에 어디가서 잘 말하지 않지만) 내가 대학생이었을 즈음 중학생이던 사촌동생이 영어시험지를 보여줬는데 40점이었던일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영어가 조금 재밌다고 생각하던 때였고 수능도 영어는 제법 잘 봤기에 동생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내 기억에 두 세번 가르쳐 줬던 것 같은데 영특하게도 녀석이 70점을 받아왔다. 그래서 '최소한 아이들에게 재미는 붙여줄수 있겠다'싶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가르친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면 내 성적이 오르는것 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당시 강북에서 학구열이 높다는 중계동?까지 진출했다. 그랬는데... 후...역시 언어는 손 놓으면 끝장이다.
북플에는 원서 읽는 분들도 많아서 항상 자극이 된다. 방송대도 등록했었는데 작년에는 영 공부가 되질 않았다. (방송대 영문과는 최고다. 강추!!)나도 읽어봐야지 하고 원서를 사놓고 왜이렇게 읽기가 싫던지,왜이렇게 글씨가 작아보이고, 인쇄가 불만스럽고, 두께가 두꺼워 보이는지...하....
그래서 결국 집에 있는 원서 친구들을 배신?하고 도서관에서 아주 늘씬한 녀석을 데려왔다. 언젠가 읽어보고 싶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Strangers on a train'이었다.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라 55페이지밖에 안되고 심지어 중간중간 흥미를 돋우는 그림도 삽입되어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지만 그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리플리'는 봤기 때문에 기대가 됐다. 역시 이 작품도 영화만큼 상당히 스릴넘쳐서 몰입하며 읽었는데 히치콕도 과거에 원작을 읽고 반해서 조금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워낙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야기는 두 남자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이'와 '브루노'는 열차에서 처음 만난다. 건축설계사인 '가이'는 몇년간 별거중인 아내와 이혼하길 바라는 상태였고 새로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브루노는 거칠고 안하무인인 성격탓인지 아버지와 사이가 나빴고 알콜중독이었다. 어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속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고 브루노는 서로 부담이 되는 인간을 하나씩 죽여주자고 제안한다. 열차에서 만난 낯선 사이므로 경찰이 동기를 밝혀내기 힘들 것이라면서.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본인은 '가이'의 별거중인 아내를 죽이겠다고 말이다. '가이'는 당연히 거절한다. 하지만 일주일 후 '가이'의 별거한 아내는 살해당한다. 그리고 브루노로부터 전화가 온다. "이번에는 네 차례라고. 그 후로도 계속 해서 집요한 요구와 협박이 이어지고 급기야 '가이'는 너무나 지쳐 '브루노'의 뜻대로 살인을 하고만다. '브루노'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는데 완전히 악인이라고 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이 드러나 안타까웠다.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아 악행으로 자신과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성격이다. 그는 줄곧 '가이'를 자신의 절친이라고 표현한다. '가이'가 좀더 다정하게 대해줬더라면 '브루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금방 빠져들 정도로 세부묘사가 뛰어나서 재밌었다. 특히 쉬운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어서 영어 원서읽기를 시작하기에 부담이 없어 더 좋았다.올해는 영어로부터 더이상 도망다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