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너무나 재미난 풍자소설을 읽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세간의 주목을 잔뜩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당대 한가닥하던 소설가를 콕 찝어 묘사했기 때문이다. 풍자그림을 그려놓고 말풍선에 내부고발을 잔뜩 써놨는데 인물 그림이 하필 누구누구를 닮아도 너무 닮은 거지.
작가 서머싯 몸은 문단의 현실과 성공한 작가의 사회적 굴레를 가감없이 표현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이른바 '거장'으로 묘사되는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노작가는 '토마스 하디'를 묘사했다고 알려지고 있고 실력보단 인맥과 활발한 처세술로 명맥을 유지하는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로 등장하는 인물은 서머싯 몸의 20년 지기인 작가 '휴 월폴'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당사자인 '휴 월폴'은 이 소설을 읽자마자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월폴은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 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나의 초상화였다." p.299,작품해설
'토마스 하디'를 표현했다는 작품 속 노 작가 '드리필드'는 여러 노동직을 전전한 끝에 작가가 되어 계급과 출신을 중시하던 블렉스터블이라는 지역에서 그닥 대우받지 못했다. 게다가 자유분방한 성향인 그의 아내 로지는 술집에서 일했고 문란했던 과거 때문에 더욱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당시 어린 학생이었던 서머싯 몸의 작중 캐릭터 어셴든과 이들은 자전거를 시작으로 한동안 즐겁게 어울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부부는 주변에 잔뜩 외상을 진 체로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이후 노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쓰다가 70쯤 되어서야 트러퍼드 부인의 후원으로 작가로써 명성을 얻게 된다.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 가는 세금 징수원들, ...(후략)- P294
'왕관을 쓴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무명에서 '거장'으로 신분상승을 이루었지만 후원자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노작가의 삶은 그리 자유롭게 보이지 않는다. 또 유명세 만큼이나 비판도 거세져 작품활동의 자율성마저 침해받는 듯 느껴지는데 이런 여러요인과 작가 스스로의 고뇌등 명성있는작가의 굴레를 서머싯 몸은 이 책에 잘 담아냈다. 상대적으로 남들에게 비판받을 지언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어나가는 노작가의 첫 아내 로지의 삶은 독자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그런면에서 로지로 표현되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 P299
예나 지금이나 참 안된것이 정치인들은 막말은 물론 바보같은 소릴 잔뜩 늘어놓아도 대게는 그들이 원래 그런 작자들이거니 하고 잠시 욕을 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작 할말은 더 많을듯한 작가들은 대체로 그렇질 못한데, 그래서 일까 정치인들은 가장 장수하는 직업1위이고 작가들은 가장 단명하는 직업1위라는 통계가 있다고도 한다. 물론 비난을 감수하고 쓴소리 별소리 다하는 작가들도 드물게는 있다. 서머싯 몸은 이 책에서 냉소적이지만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성공한 작가를 '만들어내는' 대중과 평단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아마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탓에 그도 역시 99세까지 장수하지 않았을까. 조만간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는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5
서머싯 몸의 20년지기 휴 S.월폴의 작품이 포함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