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재만 옮김 / 라티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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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양촌리 주민 아니 글벗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1988년에 세계 출판사에서 나오고 26년간 절판되었던 전설의 그 책! 24세의 피 끓는 엥겔스 선생이 불끈거리는 성질 달래가며 엄청난 수치를 들어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그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국내 번역본이 다시 나왔습니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고전 책 욕심 있으신 분은 무조건 사서 쟁여 놓으십시오. 이번에 절판되면 또 26년간 기다려야할 지도 모릅니다. 특히, 근대 산업혁명 시기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 관련 글쓰기를 하며 인용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필독, 사재기에 나서십시오.

 

이 책은 1845년, 24세의 엥겔스 선생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현지 답사한 후 세세한 수치를 들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보고한 책입니다. 군데군데 욱!하는 젊은 엥겔스 선생의 분노가 느껴지는 문장이 많아, 읽기에 그리 구닥다리 같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시 영국 현실이나 우리가 겨우 20, 30년전에 겪은 현실이나 마찬가지여서 시간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기에 더욱 생생하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서술, 현재 한국에 대입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할 때, 영국 노동계급이 점차 영국 부르주아지와 완전히 다른 인종이 되어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그들을 둘러싼 노동자들보다 지구상의 다른 모든 민족들과 공통점이 더 많다. 영국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방언을 말하고, 다른 생각과 이상, 다른 관습과 도덕 원칙, 다른 종교와 정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는 상이한 두 인종인 것만큼이나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두 민족이다.

- 본문 174쪽에서 인용

 

엥겔스 선생은 전체적인 산업 혁명 시기 노동자들의 상황을 서술한 후 도시 문제, 빈곤, 이주 노동자 문제, 여성과 어린이 노동 문제를 고발합니다. 세세한 수치 인용이 많아 이 시기에 대한 글을 쓰는 분께는 거의 사전처럼 옆에 끼고 들춰 볼만한 책입니다.  특히 이 시기 여성 노동자들에게 관심 있으나 관련 사료 구하기 어려워하는 저에게는 보물같은 책이죠. 공장주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초야권(200쪽)이나 여성 노동자들은 당시 사람들, 같은 노동자 계급 남성들에게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며 멸시를 받았다는 것 등등을 읽어보면 성적 억압과 계급적 억압을 동시에 받던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뭐 지금도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그 내용보다 성적 도덕적 꼬투리부터 잡고 공격하고 있으니, 역시 당시 영국이나 현재 한국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젠장젠장젠장젠장!(아니, 마이크가 고장났나? )

 

그동안 절판 되어서 노구를 이끌고 도서관 왕래하며 읽었는데(귀한 책이라 대출도 안 됨), 이제야 내 품에 간직하고 내 맘대로 박박 줄 치며 읽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출판사에 그저 고마운 마음이죠. 자, 마지막으로 한번 외쳐보고 마이크 끌게요. 라티오 출판사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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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초 영국 농촌사회 연구
김호연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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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영국사 번역자로 몇 번 이름을 보았던 김호연 교수의 연구논문서적이다. 울산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라 주문 후 며칠 걸려 받아 보았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시기는 18세기인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정확히 근대초, 16~17세기의 영국 농촌 사회를 주로 다루고 있다.  크게 보아 19세기까지 나오기는 한다. 16~18세기 영국 농촌사회의 신분 서열은 토지소유자이자 장원의 영주였던 젠틀맨, 농경에 종사하던 요먼과 허스번드먼, 오두막농과 농업 노동자로 구성되었다. 1590년 흉작 이후 영국 농촌사회는 빈부차가 심해진다. 대토지 소유자가 등장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농업노동자로 전락한다. 1873년 실시된 한 토지조사에는 영국의 토지 중 89%가 7000명 이내의 사람이 소유한 것으로 나올 정도이다. 이 시기는 사회, 계급적 유동성뿐만 아니라 지리적 유동성도 심했던 시기다. 일종의 내부 이민이 등장한다. 특히 15세에서 24세 정도 결혼 연령사이 청년들은 일거리를 찾아 근처 마을을 이동해 다니는 'servants in husbandry (농사 머슴)'신분이었다. (테스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녔을까? 그렇다! 테스 역시 농업 노동자였던 것이다. ) 왜 이렇게 소농들이 빨리 붕괴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믿을만한 통계 자료가 없기도 하다.

 

이런 영국 근대 초 변화하는 농촌사회의 모습은 사회 갈등으로 나타난다. 농민사회가 빈부로 양극화되메 따라 사회적인 가치관도 달라져 서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판 기록의 통계를 보면, 이 시기 농촌사회의 지배계층으로 부상한 부농들은 젠트리의 가치관을 습득, 가난한 농민들의 법률 위반에 대해 빈번히 기소하는 경항을 보인다. 농촌 사회는 촌락민의 합의에 의해서 운영되던 공동체가 아니라 지배계층에 동화된 부농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변모한다. 마지막 4부는 미들랜드 농민사회의 변화에 대해 각종 도표를 인용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밥그릇 갯수까지 세어 보여준다.

 

책은 당시 유언장, 재판기록, 토지거래문서 등을 사료로 이용하여 이 시기 농촌 사회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영어와 한자를 괄호 안 아닌 본문에 그대로 쓰고 한글로는 조사 정도만 달아놓은 문장도 많다. 딱, 공부하는 자세로 읽으면 되는 책이다. 내겐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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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 까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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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다. 1900년전, 트라야누스 황제가 집권하던 기원후 115년전 로마의 하루를 6시부터 24시까지 따라가보는 식으로 서술했다. 접근 방법이 흥미롭다.

 

저자는 6시 부자들의 저택인 도무스에서 시작해서 로마인들의 아침 준비와 몸단장, 아침식사 장면을 서술한다. 도무스 외에 현대의 아파트 격인 인술라, 로마 거리, 상점과 작업장, 학교, 포룸, 공중 목욕탕, 노예시장, 신전, 콜로세움, 화장실, 만찬 파티장 등등을 마치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접 내래이션까지 하는 듯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로마인들의 하루를 보여 준다. 독자의 이목을 끄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저자다. 매매춘 장면을 보여주다가 그때 오가는 동전에 주목하여 '탐구 : 세스테르티우스의 가치는 얼마일까?'하는 서술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정말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서점에서는 타키투스를 만나기도 한다.

 

각 공간(그러니까 유적지)에서의 일상을 다루지만 곳곳에 기존 통사식 로마사에서 볼 수 없었던 기술이 숨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원전 1세기 내전으로 인해 상류 계급 여성들의 지위가 상승한 부분, 뜻밖이었다. 원로의원들은 내전 중에 로마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목숨믈 잃으면서 이들의 돈과 재산이 카이사르 같은 독재자의 손에 들어갈까봐 여성들에게도 유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소유물처럼 취급당하던 기혼 여성의 지위가 좀 높아졌다고. 부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형태로 남편과 결합하고, 부친 사망시 유산을 상속받으며 경제적 독립이 가능, 이혼이 쉬워졌다고. (366쪽)

 

곳곳에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와 비교하는 대목이 많다. 약간 서구 지식인 남성이 갖는,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시선이 보인다. 현대의 기준으로 이해 안 되는 고대 로마의 풍습 등을 서술할 때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비교하는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노예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가전제품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에너지는 30명의 노예가 하는 일에 맞먹는다고 한다. 198쪽)을 예로 드는 것 같은 부분은 신선했다. 

 

쓰는 입장에서, 참 방대한 자료를 보며 배치하느라 머리 아팠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로마사 쪽은 유적도 자료도 많으니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것일까.

 

 

- 책의 저자, 알베르토 안젤라 

"나는 고대 로마 세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항상 서점에서 찾고 싶던 책을 직접 쓰려고 시도했다.(14쪽)"라는 서문을 읽으니, 갑자기 이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져서 찾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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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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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베르토 안젤라의 빨간 역사책이다. 그의 고대 로마사 시리즈 3부작 중에서 이 책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뭐 내가 특별히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체질이어서가 아니고,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폼페이 전>를 봤기 때문이다. 폼페이의 도무스에서 뜯어온 에로틱한 벽화를 보고 학구적으로 고대 로마인의 삶을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라고 믿어 주세요)

 

이 책은 고대 로마인들의 성과 사랑, 결혼과 이혼, 모든 종류의 성관계에 대한 세밀한 사실을 다룬다. 책의 서술 방식이 흥미롭다. 115년의 어느 하루 동안 로마의 광장을 지나치는 10여 명의 사람들의 행적을 따라 가서 그들의 사랑과 성의 현장을 슬쩍 엿보는 구성이다. 각 장의 처음 부분은 소설 식이지만 곧 그 장면과 이어지는 문헌과 비문헌 자료의 인용으로 '학구적이고 건조한' 서술이 이어진다. 예를 들자면 원형 경기장 지하 통로를 걸어가는 귀부인을 따라 갔더니 남성미 넘치는 검투사 노예를 만나서,,,, 이어 당시 로마 귀부인의 복장이나 외도, 결혼 풍습 등등을 서술하는 식. 표지만 빨간 책이고 제목만 침 넘어갈 뿐, 뭐 그리 낯뜨거운 내용은 없다. (그래도 다른 역사책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은 확실하다. )

 

특히 76년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 유적 발굴 자료를 폭넓게 인용한 부분이 흥미롭다. 빅토리아 시대 도덕률이 지배하던 19세기 후반에 이런 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와 유물을 접한 유럽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안그래도 고대 로마 제국을 이교도 집단으로 여겨 그들의 성생활을 환락적 변태적으로 묘사하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책을 보면 현대인의 성생활과 비교해 봤을 때 뭐 그리 쇼킹한 것은 없다. 영화나 대중 역사서에 고대 로마인들의 성적 방종이 묘사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당시 기준에 맞게 보지 못하기에 생긴 일이다. 또한, 정적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적힌 당대 1차 사료를 너무 곧이곧대로 믿은 탓이다. 어차피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을 죄악에 물든 이교도집단으로 매도한 중세 기독교 인들도 했고, 근엄한 빅토리아 인도 했고, 지금 우리도 다 하고 있는 일. 그들 고대 로마인들이 성과 사랑에 솔직했다고 해서 타락했다며 도덕적으로 더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출토된 유물과 벽에 그려진 그림에 여성 상위 체위가 많이 등장한다고 하여 고대 로마 여성들의 권리가 높은 편이었다는 서술은 좀더 조심스러워야할듯. 어찌 되었든 모든 여성은 그들이 속한 계급의 아래쪽에 속하지 않은가. 로마 귀부인 소수가 암암리에 연애와 혼외정사를 즐겼다고 하지만 하층 여성들의 기록이 없기에 속단할 일이 아니다. 내가 좀 예민해서인지, 난 이런 점을 가지고 침소봉대하여 여성이 성적 매력으로 권력을 누리고 어쩌구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고 어쩌구 하는 일부 저질스런 대중 역사서 필자들의 헛소리가 싫다. 아, 이 책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로마 여성의 지위는 그리스 여성과 비교해서 딱 알맞은 정도만 논한다.

 

여튼, 책에는 소소하게 읽을 거리가 많다. 거룩한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사창가에서 화대를 지불하기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동전이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나 다양한 체위가 그려진 그림판 등등. 대부분은 거의 오늘날 현대인들의 성생활 모습과 비슷하다. 뭐 동영상 대신 창문에 체위 그림판을 노예가 열나게 갈아 끼웠다는 차이 정도? 확실히 다른 점은 고대 로마인들은 남성의 양성애를 허용?장려?하는 분위기였다는 것. 그런데 성인 로마 남성이 14세 이하 자유민 소년과 관계하거나, 남-남 관계에서 수동적 역을 맡는 것은 법으로 처벌받는다는 것. 그러나 노예나 남창을 상대로 남성 역할을 하는 것은 허용되었단다.

 

로마 시대 남성은 양성애자였다. 사실 로마 시대의 도덕은 사내아이를 이런 방향으로 교육하고 이끌었다.

(중략) 왜냐하면 지배에 대한 남성의 생각은 여성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모든 것을 지배해야 했다. 로마 남성은 승리자가 되어야 하며, 자신의 의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국의 백성에게는 무기와 법을 통해서, 다른 로마인들에게는 재산이나 사회적인 신분을 통해서, 하층민들에게는 성생활을 통해서 말이다. 요컨대 그의 남성다움은 그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타인을 복종하게 하는 도구인 것이다. 여기서 타인이라 함은 모든 사람들, 즉 남자, 여자, 아이들을 의미한다. (중략) 로마시대 남자는 성적으로 절대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패배한 적군의 병사들과 남색 행위를 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 본문 65~66쪽에서 인용

 

남성의 동성애는 '징벌'의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포로와 적, 노예, 해방노예 혹은 외국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들과 남색 행위를 했다. 타인의 남성성을 복종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권력과 지배의 형태이지 쾌락은 아니었다.

- 본문 317쪽에서 인용

 

이런 점은 놀랍다기 보다, 성관계가 갖는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한 면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말하자면 페니스 제국주의 아닌가. 이렇게 어느 면에서는 지금과 매우 달라 낯설고 이상한, 다른 시공간의 풍습이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본질을 더 적나라하게 밝혀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책을, 미시사를 읽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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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Paperback) Oxford World's Classics 1
Engels, Friedrich / Oxford Univ Pr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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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로 읽지 않았지만 예스 검색이 안 되어 외서에 리뷰 썼음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엥겔스 지음, 세계, 1988년.

 

 

말하자면, 이 책은 전설이다. 이 책을 인용하고 언급한 책은 많은데 현재 절판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도서관에도 이 책은 없다. 검색해보면 이 책으로 세미나하는 모임도 많은데, 다들 어디에서 구해 읽으시는지 모르겠다.  설마, 다른 분들은 원서로 읽는 것일까?

 

산업혁명기 여성 노동자의 삶에 대한 내 글을 쓰면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구할 도리가 없다. 다른 책에서 인용된 부분을 재인용해도 되지만, 그건 사기다! 내가 읽지도 않고 읽은 척 쓸 수는 없다. 게다가 재인용하는 그 책에서 잘못된 맥락으로 인용했을 수도 있다. 단 한 문장이라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전체 한 권 다 읽은 후에라야만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다. 글을 쉽게 쓸 생각은 말야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스스로 내 자세에 감동받아 코 한 번 푼다. )

 

맘 먹었으니 읽기는 읽어야할텐데, 원서 주문하고 읽는 시간 계산해 보니, 한 달은 걸리겠다. 한 달이면 담당 에디터님을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자, 시간이 없다. 26년 전에 나온 번역본 책을 찾자!

 

서울시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전체 22군데 중 이 책이 딱 한 곳, 정독 도서관에 있었다. 1시간 멀미하며 찾아가보니, 오래 되고 한 권밖에 없는 책이라 서고에 있었고, 대출 불가 대상 서적이었다. 할 수 없이 열람실에 앉아 다 읽고, 내 글에 인용할 부분 챙겨서 돌아 왔다.

 

어라? 일기 아니고 리뷰인데, 다른 이야기가 더 많네. 그런데 내용은 뭐 쓸게 없다. 다 구체적 사례 모음이어서 요약이 안 된다. 일단 목차 사진.

 

 

홉스봄도 아니고, 무려 홉스보움 선생의 서문이 붙은 책. 나와 같이 늙어가는 책.

 

 

네 편이나 되는 엄청난 서문을 읽어나가면, 본격적 내용이 나온다. 1845년, 24세의 엥겔스 선생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답사하고 다른 이의 보고서를 종합하여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정밀히 보고한 책이다. 보고보다 고발에 가깝다. 젊은 엥겔스 선생은 산업 혁명 시기, 기계의 발명과 개선이 노동자들을 어떤 상황으로 몰아갔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서술한 후 노동자 계급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을 고찰한다. 도시 문제, 아일랜드 이주 노동자 문제도 같이 다룬다. 이후는 면직공업을 중점으로 하여 각 분야 노동자들의 상태를 보고한다. 세세한 수치 보고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이 1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거였다.

 

젊은 엥겔스 선생은 스스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현실을 고발한다. 여성, 아동 노동 현실 서술 부분에 각별히 주의하며 읽었다. 각 장마다 마지막에 가면 긍정적으로 노동계급의 각성, 봉기와 낙관적 미래를 말하고 있는데,,,, 이건 글쎄다.

 

사실 읽으면서 <전태일 평전>을 비롯, 내가 그동안 읽은 우리 현대사와 너무도 같은 내용이어서 책이 술술 읽혔다. 이 상태가 160여년 전 영국 노동자들의 상태인 것 같지 않다. 난 산업 혁명이 이 시기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서,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여전히 산업 혁명은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이며, 노동계급의 상태는 기본적으로 동서고금 어디나 다 같다고 생각한다. 지배계급 역시. 예를 들어, 아래 인용부분. 19세기 중반 영국이나 21세기 초 대한민국이나 오십보 백보다.

 

특히 부르조아지에게는 법률이 신성한 것인데, 그 까닭은 그들 자신이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승인하고, 그것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부르조아지는 설사 몇몇 특정한 법률이 그들의 이익을 손상시킬지라도 전체 법률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 본문 271쪽 '노동운동'에서 인용

 

더우기 공장노예들은 중세의 농노들이 영주에게 초야권을 빼앗겼던 것보다 훨씬 심하게 순결을 유린당한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공장주들은 그들에게 고용된 소녀들의 인격과 용모에 대해 전일적 지배를 행사한다. 십중팔구 해고의 위혐은 별로 순결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소녀들의 반항을 억압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만약 공장주들이 아주 타락한 사람이라면(보고서는 이런 경우를 몇가지 언급하고 있다) 공장의 여성들은 모두 공장주의 처첩과 마찬가지가 된다. 모든 공장주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소녀들의 지위는 변함이 없다.

- 188쪽 '주요 직물 산업의 공장 노동자'에서 인용

 

위 문단, 내가 읽은 다른 책에서는 단정적으로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 의하면, 산업혁명기 공장주는 초야권을 가졌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확인하고자 책 전체를 다 읽었는데, 책에는 위와 같이 나와 있었다. 이 책을 확인하지 않고 내 글에 인용했더라면 큰 실수할 뻔했다. 천만다행이다.

 

여튼, 두고두고 인용할 부분, 근거로 사용할 예 등이 많아서 한 권 집에 두고 싶은데,,,, 어쩌나.

 

*** 혹시 이 글 보시는 분 중에서 이 책 갖고 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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