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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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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기대 외로 이 책 참 좋다. 저자는 어느 스님처럼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용서해야 니 맘이 편해진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타고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생각도 없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절대 안 바뀌니 당신이 바뀌어야 산다,라고.  나르시스트 엄마의 유형과 사례 등등 분석도 많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리뷰를 검색해보실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은 해결책일 것이니 해결 쪽 내용을 길게 쓰겠다.

 

당신이 엄마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니 애초에 마음을 접어라. 엄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사전에 변화란 말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엄마 때문에 받는 정신적 상처가 클 경우에 말이다. 

 - 243쪽에서 인용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가벼운 관계 맺기'다. 딸인 당신이 연락을 더 적게 해서 모녀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것. 절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각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하라는 것. 이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여성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권한다.

 

보통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경계선 긋기를 주저하지만 사실 그것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구분 짓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앟으면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돌아서곤 하며 생각외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호한 어조로 못 박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가 딸인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든 그건 엄마의 문제일 뿐이니까. 엄마의 감정을 딸이 모두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언성 높여 싸우지도 말고 엄마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대화 방법이 있다. 딸이 본인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딸의 마음을 돌보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반응을 보이는 나르시스트 엄마의 경우,

 

엄마 : 세상에 이혼이라니! 대체 결혼생활을 뭘 어떻게 한 거야? 어디 창피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있어야지!

당신 : 엄마, 제 삶은 제가 결정해요. 지금 가장 마음 아픈 사람은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위로는 커녕 나무라기만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 253쪽에서 인용

 

일단 경계선을 긋고 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특히나 엄마가 사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경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덧붙인다. 선을 설정해 놓고 엄마가 그걸 무시하면 그 상황에서 단지 빠져나오고 감정 대립 없이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이 그은 선을 지켜내도록 하라고 권한다.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딸인 자신의 감정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알리라고. 언쟁하지도 말고 엄마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그 선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쓰라고 한다.

 

물론 엄마의 과거 학대나 폭언 등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내 감정도 자유를 얻기는 하다. 저자는 엄마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만 용서해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버려 스스로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르시스트 엄마 아래에서 학대받고 자란 딸들이 처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엄마 자격을 고민하게 되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고. 말보다 행동과 태도에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폭력적 언행을 자제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더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본인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너무 자책 말라고 위로한 후,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단지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뿐이니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권한다.

 

치유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순식간에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 마법은 없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또 수치심을 느끼지도 마라.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거듭나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자아다.

- 274쪽에서 인용

 

이렇듯 이 책에는 나르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라서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 있다. 유용했다. 약 기운이 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애써 봐야겠다.

 

읽어가다가 계속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남존여비사상(잠시 분노하고 지나간다. 뭐 좋은 거라고 '사상'이라는 이름 붙이나 모르겠다. 강간'문화'에는 그렇게 경기하는 사람들이!!!)이 창궐하여 한국만 유독 모녀 관계가 어려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서양에서도 이렇게나 망한 모녀 관계가 많다니. 뭐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서양  저자가 쓴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이건 보편적인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딱 패턴이 어머니 본인이 부모, 남편, 사회로부터 여성 약자로서 받은 억압과 스트레스를 더 약자 여성인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는 악순환이다. 그 강력한 증거가 이 책에도 나와 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자기 엄마가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인줄 모르며 엄마와 이런 관계의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여성 혐오 문화 아닐까. 아놔, 대대로 후진 패턴이 반복되며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이 문제를 어찌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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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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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융심리학의 대가 가와이 하야오를 교토로 찾아가 두 밤 동안 이야기 나눈 기록이다. 두 대가는 한신 대지진과 전쟁 등 커다란 재난을 당하며 변한 일본인들 전체 혹은 개인의 마음 상태라든가 결혼 같은 개인사를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실의 삶 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무라카미 : 인간은 누구나 병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예술가나 창작을 하는 사람도 병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가와이    : 물론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 거기에 대해 건강한 상태여야 하는군요.

 

가와이    : 그것은 표현이라는 형태의 힘을 가져야만 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예술가는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는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병을 앓으면서도 개인적인 병을 얼마간 초월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병을 초월해서, 시대의 병이나 문화의 병을 떠안음으로써 그 사람의 표현이

 

               보편성을 갖게 됩니다.

 

- 본문 88쪽에서 인용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마지막 꼭지인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을 읽고, 도대체 하루끼란 이 남자가 이토록 절절히 인간적 매력을 그리워하여 애도하는 하야오란 이 남자는 누군가, 하는 생각에 찾아 읽었는데,,, 나 역시 이 남자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뭐랄까, 바탕은 다정한데 산전수전 다 겪어 삶이 심드렁해졌기때문에 단순한 조언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괴물들의 입에 먹이를 물려주며 달래는 능숙한 조련가같기도 하고,,,,  아아,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기빨리거나 나쁜 영향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

 

대화는 덤덤한데, 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라카미가 자신의 집필 전환점이 된 <태엽 감는 새>를 쓰게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딱 그 작품부터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무라카미의 팬인 글벗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다 <상실의 시대>의 재탕 아닌가요? 라고 말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이런 나의 무식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대화를 나눠준 친구들은 나의 하야오 선생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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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3-24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이 책이 생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20대때 무라카미 책을 열심히 재밌게 봤고, 융심리학 책도 조금씩 봐둔터라, 기대가 컸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라카미 소설의 활기나 융심리학의 어떤 활기를 많이 깊히 느끼기는 어려웠고, 그런 활기들을 느낀 책들(무라카미의 소설 자체와 융 분석심리학파의 심리학자들의 주옥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인거 같습니다. 그래도 일본의 융 심리학 소식은, 제게는 엄청 흥미로운 영역인 거 같습니다. 예전의 인류학적인 관점인 <국화와 칼>이나, 일본스러움을 다양한 관점으로 소개하는 책들 속에서도 흔치 않은 관점인거 같습니다.

껌정드레스 2018-03-28 11:13   좋아요 0 | URL
조금 아쉬운 부분 말씀에 이어서, ‘그런 소재를 대하고 다루는, 일본인스러운 태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쓰신 부분에 동감합니다. 저도 윗글 본문에‘두 섬세한 남자가 어려운 화제를 유리 구슬을 던지듯 조심스럽게 (편견이지만 일본인답게) 주고 받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썼는데, 비슷한 느낌이지 않나 싶습니다.
말씀하신 <국화와 칼>처럼 외국인 저자가 일본에 대해 쓴 책이 더 일본스러움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기호의 제국>도 그렇고. 아, 최근에 읽은 책 중, <인간 증발>에서 독특한 일본스러움을 느꼈어요. ( 읽고 리뷰는 안 썼어요.)
그건 그렇고, 마일즈님과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은 늘 재미있네요. ^^
 
콤플렉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4
가와이 하야오 지음, 위정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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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심리학(분석심리학)을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가와이 하야오 선생이 쉽게 설명해주는 콤플렉스 이야기다.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답게 얇고도 내실있다. 그동안 읽었던 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의 오타쿠같은 책들과 다르다. (물론 그런 책들도 나는 매우 좋아한다)

 

1장에서는 콤플렉스란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며 시작한다. 이어서  콤플렉스 현상과 해소 방법을 말한다. 내게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는, 흔한 여러 문제를 갖고 갈등하는 사람들의 예가 나온다. 예를 통해 가와이 선생은 조언을 해 준다. 우리는 누구나 콤플렉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억압하지만 말고 자아 체계에 통합하라고.  억압하고만 있으면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린다고.

 

이렇게 보면 자아는 존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과 스스로를 변혁하려는 경향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아는 언제나 미완의 상태이자 발전하는 경향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 28쪽에서 인용

 

자아라는 것이 완성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자아의 불안정성이 비롯된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어딘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완결되어 있는 것에는 발전이 없다. 그러나 열려 있는 것은 동시에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자아와 콤플렉스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 31쪽에서 인용

 

우리가 콤플렉스의 인격화를 여실히 경험하는 것이 꿈 체험이다. 꿈에서는 우리의 많은 콤플렉스가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 151쪽에서 인용

 

콤플렉스의 내용은 감정으로 굳어져 있다. 그것은 사실 해소라기 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현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극복된다 .

118쪽에서 인용

 

꿈이나 신체 이상 증상은 콤플렉스를 받아들여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암시이자 기회라는 말을 해주는 제5장 꿈과 콤플렉스 부분이 인상 깊다. 해마다 겨울이면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꿈 속 등장인물에게 아무 미련이 없는데 왜 자꾸 내 무의식이 불러내나, 하는 점이 의아했는데 이제 알았다. 그가 내 콤플렉스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책을 읽은 후  단단히 벼르고 있다가 드디어 또 꿈에 나타나기에 "꺼져!"라고 말해 주었다. ㅋ)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집인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를 읽고 가와이 선생에게 마음이 끌려서 찾아 읽었다. 책으로 만났지만 좋은 인연이었다. 이분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싶다. 덤덤하면서 겸손하고 따뜻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저자다.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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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 시대 - 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
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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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40대에 남편과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이혼은 않은 채 남편과 따로 살아본다.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다가 다른 부부들의 결혼 생활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이혼은 하지 않고 따로 살거나, 동거해도 상황에 맞춰 부부 관계와 역할을 바꿔 사는 부부 6쌍의 이야기를 책에 담으며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이란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책 표지에 도발적으로 인쇄된 '졸혼 시대', '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 '나와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관계 혁명'이란 말에 혹해서 읽어 보았다. 기대했던 엄청난 새시대의 징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별거 부부, 주말 부부, 역할 바꿔 사는 부부 이야기였다. 좀 도발적이라고 해 봤자 전통적인 주부 역할에 질린 아내가 이혼은 싫지만 다른 삶을 살고 싶어 기존 결혼 관계를 벗어나서 살자고 요구하는 부분이 조금 있을 정도. 그런데, 그게 뭐가 대수일까? 아래 인용부분처럼,  

 

 

우리는 한 팀이기 때문에 누가 풀을 베러 가든 누가 강에 빨래를 하러 가든 상관없습니다.

- 187쪽에서 인용 

 

졸혼이든 뭐든 둘 사이에 합의만 되면 그들의 생활이니 별 문제 아닌듯 싶다. 위의 말은 아주 상식적이지 않은가? 남편 가토는 자신의 직업을 갖지 않고 요리 연구가인 아내 와키를 뒷바라지하며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면서 위와 같이 말한다.

 

그러니까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하는, 이혼 대신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고정된 성별 분업에 바탕한 결혼을 졸업하고 부부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무리데쓰. 가토는 20대에 해외에서 살았기에 저런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된 거였다는 게 함정. 열도와 반도의 흔한 남자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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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느린 춤을 - 아주 사적인 알츠하이머의 기록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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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메릴 코머는 미국 1980년대 방송 부분 여성 기자 첫 세대였다. 기자이자 토크쇼 진행자이며 제작자이기도 했다. 잘 나가던 그녀가 남편의 간병을 위해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고 19년간 간병한 기록이 이 책이다. 유능한 의사였던 남편은 50대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다. 책은 아래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와 한 집에 사는 이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그 사람이 아니다. - 13쪽

 

발병 초기 메릴이 겪은 고통이 눈물겹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치매가 발병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당시 알츠하이머에 대한 정보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메릴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남편 하비을 보며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한다. 남편을 관찰하고 일지를 기록해 병원에 가지만 의사는 메릴의 말을 무시하고 같은 동업자 남성인 하비의 말만 듣고 이상 없음 소견을 내린다. (이건 뭐 맨스플레인의 전형적인! ) 하비는 메릴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그러나 직장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학회 참가하러 런던에 갔다가 발표를 망치고 혼자 파리로 가서 실종되는 등 문제가 나날이 생긴다. 하비는 직장 여성 동료들에게 성희롱 혐의도 받는다. 결국 하비는 58세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직장을 사직하게 된다. 몸은 건강하기에 체격 조건 우월한 하비가 폭력적으로 굴면 메릴은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다. 입원도 시켜봤지만 차도가 없다. 메릴은 모든 정신적 기능을 잃고 몸만 살아 있는 하비를 거의 내내 집에서 간병한다. 간병인을 두지만 밤당번은 메릴이다. 직장 생활과 경제 상의 어려움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고립된다. 메릴 스스로 친구들에게 징징거려서 지겹게 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메릴은 자신이 느끼는 고립감을 일기에 틈틈이 적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버렸다. 하비가 예전의 그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나까지 같이 버려져야 하나?

- 190쪽

 

힘든 시기, 메릴은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하비도 나를 돌보기 위해 자기 직업을 희생할까? 라고 생각하던 메릴은 돈은 대 줄지라도 아닐 것이다,란 결론을 내린다. 치매 발병 직전 하비의 외도를 목격한 일이 메릴을 회의하게 만든다. 메릴은 남편 하비의 세번째 아내였다. 그녀가 19년간 간병하는 동안 하비의 친아들은 방문하지 않는다. 하비와 피 한방울 안 섞인 메릴의 아들과 며느리가 간병을 돕는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 메릴의 어머니도 치매가 발병한다. 메릴은 어머니 집에 간병인을 두고 두 집을 번갈아가며 간병하다가 어머니가 문제를 자꾸 일으키자 어머니도 모셔온다. 어쩌면 이런 삶이 있을까? 메릴의 남동생은 자살했다.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 남아서 정신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12년 살다가 돌아가셨다. 물론, 맏딸로서 메릴이 뒤치닥거리를 하고 어머니를 받아 주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니,,,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면서, 오래 묵은 감정의 응어리들도 함께 딸려왔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해묵은 상처들이 되살아났다.

 - 225쪽

 

아, 난 이런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겠다. 어떻게 메릴은 이런 상태에서 두 치매환자를 간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일기 쓰기의 힘일까? 메릴은 쓴다. '손자손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내가 남편과 어머니를 위해 해온 일을 내 아들이 나를 위해 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그녀는 자신이 길게 간병을 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거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방송 출연을 계기로 제프리 비 알츠하이머병재단을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도 메릴은 이렇게 쓴다.

 '내가 알츠 하이머 관련 활동을 하는 이유는 누구도 나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녀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는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하비와 나는 여러 해 동안 어떤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추었다. 알츠하이머는 하비와 나 둘 다를 사로잡았다. 그 병은 훌륭한 정신 하나를 파괴했고, 더불어 우리의 인생을 파괴했다. (중략) 내가 다음 춤 상대가 되는 건 단지 시간 문제인 걸까?

- 323

    

2016년 내내 엄마 문제로 힘들었다. 그랬던 2016년 마지막날에 읽은 책이다. 그런데 2017년 첫날에 눈 떠서 어제 다 읽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 이 책을 보니,,,, 메릴이 겪은 19년과 같은 시절이 내게도 20년간 계속될지도 모른다, 오늘이 그 첫날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끔찍했다.

 

책은 참 좋은데, 읽고 나니 막막하고 가슴이 휑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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