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역사
토마스 퀴네 외 지음, 조경식 외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남성의 역사라니? 어차피 모든 역사가 남성사인데 뭘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제목이 좀 오해하기 쉽다. 이 책은 인류 남성들의 전반적인 역사가 아니라, 독일 연구자들이 자국내 남성의 역사에서 눈여겨 볼 부분을 집필한 논문 모음집이다. 각각 다른 저자가 다른 관심사와 시대에 대해 짧게 서술했지만, 전체적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해설자도, 출판사 책 소개 글도 '독일 남성들이라고 다 가부장제의 수혜자는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느껴지는 흐름은 '독일 군국주의 역사가 어떻게 독일 남성들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는가'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 독일 여성들이 독일 사회에서 갖는 특수한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나는 본다.

 

사실, 미국보다 유럽이 좀더 성평등한 사회이고, 같은 유럽 내에서도 가톨릭 쪽보다 프로테스탄트 쪽이 더 여권이 높은 편이라는 것이 젠더 연구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그런데 독일은 특이하다. 서북부 유럽 프로테스탄트 국가인데도 여성을 3K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중세적 구습에 묶어두기로 악명 높다. 3K는 아이(Kinder), 부엌(Kuechen), 교회(Kirche)를 말한다. 1970년대까지 여성의 직장 생활을 규정하는 법이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른 여성사 읽으면서 이 부분이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 독일 통일 과정과 군국주의 역사 서술한 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풀렸다. 특히, 좀바르트의 '남성동맹'부분은 이 책을 읽은 최고 보람이었다. 역시,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

 

나중에 생각나면 궁금한 부분을 또 찾아보기 쉽게 목차를 리뷰에 넣는다.

 

- 목차-

1. 해설: "남성"의 발명 / 임지현
2. 성의 역사로서 남성의 역사 / 토마스 퀴네
3. 가정에서의 남성성 / 안네 샤를로트 트렙
4. 애국적이고 전투적인 남성성 / 카렌 하게만
5. 병사. 국민으로서 남성성 / 우테 프레베르트
6. 스포츠와 이상적인 남성상 / 다니엘 맥밀란
7. 의상으로 본 시민계급의 남성성 / 자비나 브렌들리
8. 결투. 술 그리고 스위스 대학 서클들 / 린 블라트만
9. 남성동맹과 정치문화 / 니콜라우스 좀바르트
10. 남성의 멜랑콜리로서의 마약 / 위르겐 로일로케

11. 전우애와 남성성 / 토마스 퀴네
12.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 / 카스파 마제

 

독일은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면서 근대적 민족주의에 눈뜬다. 근대 민족 국가 형성과정에서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는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 애국적 헌신을 요구한다. 또한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해방전쟁에 동원된 독일 남성들을 위한 영웅 서사를 개발한다. 군사화된 남성 영웅이 민족 담론과 결함되어 전형적인 민중 영웅적 서사 구조가 완성되고, 이는 군사화된 남성 이미지로 이어져 19세기 내내 개인들에게 내면화된다. 한편 19세기의 보수적 성담론은 이성과의 사랑이 남성 정력 소진시켜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는 '정액의 경제'론은 내세운다. 이 웃긴 이론은 성차별, 여성 혐오, 남성동맹과도 이어진다. 

 

국가는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우정도 남성만의 것이었기에,  국가의 토대는 우정어린 남성들의 동맹이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기원을 살펴 본다면 부족 국가 시절 각 부족동맹에는 '남성의 집'이란 곳이 있었다. 부족 남성들은 그 곳에 모여 사교, 정치, 연대를 했다. 남성 전사들은 남성들 사이의 에로스에 전우애의 기반을 두고 여성 혐오를 통해 연대하는 관습이 있었다. 동성애가 권장되었다. 전사는 수도사와 기사단의 성격을 다 가진다. 다른 유럽 지역에서 기사단이 멸망한 후에도 독일은 북동부 유럽에서 기사단을 유지, 후에 독일제국이 되는 프로이센을 탄생시키게 된다. 프리드리히 2세 시절 프로이센 장교단은 순수한 남성 동맹 기사단의 행동 방식을 가졌다. 독일 제국 성립 후 빌헬름 황제 치하 독일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의 극단적 변형을 보였다. 남성동맹 신드롬이 독일 남성들의 심리적 성향을 지배했을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의 생활 방식과 삶의 질서를 결정하는 형식이 되었다. 이는 독일 대학의 학문도, 문화, 정치도 지배했다. 결국 '남성동맹'은 군국주의로 이어지는 독일 민족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독일 성차별의 강력한 원인이기도 한 것 같다.

 

남성 동맹은 생활 방식에서 검소하고 금욕적이며 독신을 지키고, 부드러움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우아한 여성스러움, 이 모든 것들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면서 자신의 생활관을 정의 내린다. 그리고 여자와 관련된 모든 것과 자신의 위험과 공포 그리고 유혹과 관련된 모든 것에 반해 경계선을 긋는다. 여성의 세계는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쾌락주의적이고 행복 주의적이며 '남성 동맹'이 편을 드는 남성의 세계는 정신적이고 영웅적이며 초자연적이다.

- 210쪽에서 인용

 

뭐, 위와 같은 심각한 이야기만 이 책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남성성과 패션, 음악에 대한 논문도 있다. 청년들의 음악을 통한 반항이 나오는 부분 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히틀러 시기 음악으로 반항하는 청년들 이야기는 영화 <스윙 키즈(우리나라에서는 스윙 재즈로 개봉)>가 생각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책에는 근대 국가 성립시기에 귀족이 아닌 평민 성인남성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가하면서 대신 참정권을 주었던 역사적 예가 잘 나와있다.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니까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니까 권리 주장하지 말라는 이상한 말 하는 사람들은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군대와 참정권은 이런 맥락이고, 천부인권은 또 다른 개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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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ny Mpingo 2017-06-1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열심히 하시는 건 좋은데, 왜 이렇게 배배 꼬였나요..


dongark 2019-06-14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역 의무는 남녀모두 가능합니다.
맞벌이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여
부과하지 않을 뿐입니다.

여성 사망시 : 인구 급락이 우려되고,
이스라엘, 러시아군에서 부대 사기 저하 및 남성 군인의 분노로 인한 작전수행 능력 저하 등이 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dongark 2019-06-1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 전투 참여와 참정권을 연관지었던 전통도,
2차 대전후 ˝보편적 인권˝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능력과 관계없이 권리는 부여된다고 선언(세계인권선언)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dongark 2019-06-1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법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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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항 : 천부인권 규정.
2항 : 제한O, 본질적 내용 침해X

dongark 2019-06-14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군조직 특성상 평시에는 폭언. 폭행등 인권 침해.
(TV에 나오는 간호사 태움과 양상이 비슷)
전시에 병사의 생명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인 만큼,
병역의 의무는 인권의 유보 내지 심하게는 정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참정권보다 침해정도가 크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