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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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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역사가 주루룩 생각난다. 나는 아버지 박대통령 시대에 태어나 현재 딸 박대통령 시대에 살고 있다. 별로 오래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생각해보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여러번 겪은 것 같다. 이러다 또 판을 새로 짤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 하다 보니 10,26과 김재규가 생각났다. (4,19까지는 아니라구요, 나 어리다구, 이 양반들아.)

 

서거 뉴스 나오자마자 '그 새끼, 잘 뒈졌다!'라고 일갈한 아버지 덕분에, 나는 10, 26당시 어린 나이에도 김재규를 국부 시해범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북한이 쳐들어 올까봐 무섭기는 했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과 모르는 진실이 더 있는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김재규가 의로운 선비, 의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국에 그에 대한 책을 찾아 보았다. 유가족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유일하게 유가족이 인정한 전기가 이 책이라 하여 문영심 작가가 쓴 책으로 찾아 읽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책은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살해한 이유를 김재규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평전이다. 전태일평전이나 츠바이크가 쓴 평전들과는 결이 다르니, 혹시 읽으실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일대기식 구성도 아니고 오직 그 사건의 전후와 의도만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혁명가로 여기고 있는 김재규를 역사가 재평가해주기를 원한다. 아래, 저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부분 인용한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를 제거할 기회가 있었지만, 박정희를 본뜬 전두환처럼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것은 김재규가 바보여서가 아니라 유신의 핵심 권력자로서 유신을 부정했다는 역설 때문이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케 하는 등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는 내란을 일으키지 앟았기 때문에 내란죄로 처형된 것이다.

- 13~14쪽 서문에서 인용

 

그런데, 서문에서부터 콱, 치밀어 오른다.  

 

지금 김재규가 누구인지 다시 묻는 이유는 유신의 악몽이 우리 머리 위에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 15쪽

 

이 책은 2013년 출간된 책이다. 당연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와 박근혜 탄핵 이전에 씌여져서 세상에 나온 책인데,,, 아아,,,

 

책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겠다. 1979년 10월, 중앙정보부(구 국정원) 부장인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부산에 내려가 민심을 살펴보고 온다. 박대통령에게 사실을 보고하나 그는 독재자답게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다. 측근 차지철은 국민들에게 발포할 것을 부추긴다. 김재규는 국민과 정부 사이에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이 사상당할 것이라 우려한다.  4.19의거 때 이승만과 비교해 본다. 그래도 이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른다고 판단하고 안가의 소행사(여인 동반 소규모 술자리)때 박대통령 살해를 결심한다. 그리고 10, 26.

 

그러나 김재규는 오판했다. 그는 거사만 하면 국민이 봉기하여 자신의 행위가 지지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보안사의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김재규가 영웅시 될까 두려워 그를 내란죄인으로 몰아간다. 유신체제에 길들여진 재판부는 기존 관행을 유지하여 재판 삼세판을 서둘러 마치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상관에 복종한 다른 부하 직원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박대통령의 죽음으로 유신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유신 체제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체제를 유지하여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전두환은 계엄을 선포하고 언론 검열에 들어간다. 재판 관련 보도는 제한되었다. 김재규와 부하들이 아니라 유신 체제를 청산하기는 커녕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가로막은 전두환 일당이 대역죄인이었는데도 1980년 5월 24일, 혁명가 김재규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 즈음, 그가 목숨을 바치며 막으려했던 국민 학살이 광주에서 전두환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책에는 함세웅 신부와 강신옥 변호사의 글은 물론, 김재규의 공판 기록과 최후 진술 자료가 다 실려 있다.  최후진술에서 김재규는 10월 26일 혁명 목적을 '1 자유 민주주의 회복 2 보다 많은 희생 방지'라고 말했다.  내란죄 혐의에 대해 '나는 군인이고 혁명가이며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하지 않았다. 군인이나 혁명가가 정치를 하면 독재를 하기 마련인데 독재를 마다하고 혁명을 한 내가 독재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다'며 당당히 말했다. 사형당할 것을 각오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거사했음을 밝혔다.

 

김재규 처형 후 전두환은 대통령이 된다. 전대통령은 박정희 유가족이 아니라 김재규 유가족들에게 집요한 보복을 가한다. 김재규의 진의에 국민이 관심 가지는 것도 막는다. 정치인들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적 계산을 하던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일정이 시작된 것이 자기들의 투쟁 덕분이라고 비쳐지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책은 10, 26의 재평가를 요구하며 김재규 장군 명예 회복 추진 위원회가 그간 해온 업적을 소개한다. 그래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를 재평가할 제 4심의 전망은 밝다고 쓰며 저자는 책을 마친다.  

 

다 읽고 나니, 김재규에 대한 부분은 물론, 현재 딸 박대통령과 관련한 문제의 뿌리까지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273쪽에는 김재규가 거사한 동기 중 하나가 구국여성 봉사단과 관련하여 최태민과 전횡을 일으키는 큰 영애의 문제였다고 적은 항소이유서가 실려 있다.  항소이유보충서에는 국가 기밀이라며 2차적 혁명 동기는 대통령의 사생활인 여자 문제와 자식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 그때 김재규를 제대로 재판하고 유신 체제 떨거지들을 싹 청산했더라면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이후 박근혜까지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까지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신의 심장이 멎고 나서도 유신의 손발에게 나라를 맡긴 결과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나타난 것이다.

- 355쪽에서 인용

 

그러니, 지금 우리는 여전히 무늬만 바꿔 유신 체제 유지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무리들의 본색을 똑바로 봐야만 한다. 비슷한 상황이 왔는데 또 죽 쑤어 개에게 바치지 말고, 지난 역사를 읽고 깨어서 행동해야만 한다. 김재규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 지키려했던 민주주의를 위해. 딸 박대통령 시대에 희생된 많은 동료 시민들 아니 생명들을 위해.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날 김재규 묘지에 참배객들이 두고 간 물품들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3_201612131650069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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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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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자들이 쓴 서양사 읽다보면, 서양 궁정의 시녀(Ladies in Waiting )를 동양의 궁녀 개념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우리나라 궁녀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 보았다.

 

여성 관련한 역사를 흥미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궁녀에 대해서도 왕의 잠자리 상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궁녀 관련한 역사 에세이 류를 보면 저자가 음란서생인가 싶을 정도다. 이 책은 그런 오류 없이 왜곡된 궁녀 이미지를 바로 잡고 궁녀 선출 방법과 등급, 업부 분장, 월급 체계,,, 등등 국가 공무원이자 조선의 전문직 여성이었던 궁녀의 모습을 서술한다. 뭐 마지막 장에 궁녀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챕터가 있긴 있다만, 저질스럽지 않아 좋다. 확실히 이 책은 궁녀에 대한 허접한 야사담이 아니다. 참고 자료로 공부삼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는 곧 영조 이후의 궁녀는 각사의 공노비나 본방의 사노비 출신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다가 순조 대 이후 공노비가 혁파되면서 양인 출신의 여성들이 충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컨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궁녀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공노비와 사노비 등 노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112쪽(2005년 구판으로 읽었기에 페이지 수는 다를 수도 있음)  

 

위와 같은 결론을, 저자는 통계 도표 분석을 한 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눈에 거슬린 부분이 있다. 세종의 후궁이 된 공노비 출신 신빈 김씨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신데렐라 운운한다든가, 왕비인 소혜왕후 심씨가 질투하지 않아서 사랑을 받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글의 흐름 상 그리 필요하지 않은 여성혐오(misogyny)적 편견으로 볼 수 있는 논평이 종종 끼어든다. 이 부분이 의아해서 저자 약력을 살펴보았는데 1965년생이셨다. 11년전 이 책을 쓰실 때는 40세 전후였다. 전쟁 이전에 태어난 꼰대도 아니고,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일베도 아닌데 왜 이러시는지 내 입장에서는 심히 의아하다. 나름 재미있고 친숙하게 서술하시려 하신 것 같은데,,, 이런 점은 원고 완성 후 주위에서 피드백 받으면서 걸러낼 수 있는 부분인데, 안타깝다. 

 

본문 42쪽에서 '숙종의 무수리로 들어갔다가 훗날의 영조를 출산한 최숙빈'이란 서술이 있다.  이 부분, 무수리가 아니라 궁녀의 하녀인 '각심이'출신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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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의 비밀 - 소리로 세상을 다스려라
성낙주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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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괴하고 이상한 전설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전설이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에밀레종 설화다. 아마 <손순매아>나 <심청전>과 더불어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이야기 탑 3에 들지않을까싶을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 왜 어른을 위해 아이를 죽이는 건대? 그래도 <손순매아>나 <심청전>은 해피엔딩이기나 하지, 에밀레 설화는 종만 완성되었을뿐 아무런 숭고한 주제 없이 아이가 엄마를 죽어서도 저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나. 소름끼친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120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왜 이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생명력을 갖고 전해지는 것일까?

 

난 일단 종(鐘)자를 째려 봤다. 에밀레종, 종각, 할 때의 종은 쇠북 종(鐘)이다. 金 더하기 童이다. 물론 형성문자이므로 童은 의미 없이 소리를 담당하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그게 다일까? 왜 아이 童가 쇠랑 같이 종으로 만들어질까? 이상하지 않나? 일단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신화, 상징, 연금술 쪽 답을 얻었다. 하지만 엘리아데 선생의 해석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설화에 다 적용되는 원형적 화소이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 있는 종에도, 중국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는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의 대표 종이 되었을까? 뭔가 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설화는 민중의 역사다. 이때 역사는 정형화된 사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설화 향유층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적층, 구전되는 역사다. 그렇다면 에밀레종 설화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더 추적할 능력이 없다.

 

다행이다. 이런 의문을 품은 분이 계셨다. 자, 이번에는 성낙주 선생님의<에밀레종의 비밀>이다. 저자는 에밀레종 전설을 성덕대왕신종이 만들어진 혜공왕 당시 신라 역사와 결부시켜 해석한다. 말을 경망스럽게 하는 어머니, 희생된 아이, 종 만드는 장인인 외삼촌. 이들은 각각 혜공왕의 모후인 만월부인, 혜공왕, 혜공왕의 외삼촌인 김옹(元舅)이며, 섭정을 맡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전횡에 희생된 혜공왕을 애처롭게 여기는 당대 신라인들의 여론이 반영되어 형성된 이야기가 에밀레종 설화라고 본다. 즉 에밀레종 설화는 신라 중대왕실인 무열왕계 왕실의 몰락을 고발하는 정치적 암시가 넘치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런데 다음 장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친다.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이 평화의 시대를 다스리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신기(神器)의 역사가 이어진다. 저자는 당시 신라 왕실이 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 평화와 화합을 원하는 염원을 만파식적,흑옥대와 더불어 에밀레종 제작에 담았다고 본다. 에밀레종을 비롯한 신라 중대 이후 종들의 용뉴에 보이는 원통, 이것이 바로 만파식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문무왕의 수장릉, 감은사,,,, 많은 이야기와 유물, 유적이 달려와 하나에 모인다.

 

이상, 책의 내용이 설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참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히스토리아, 라틴어권 남유럽언어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지 않은가. 제도권 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볼 지 몰라도, 에밀레종 설화는 원래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공통 화소를 가진 인신공희담이다. 이 화소가 특히 신라 혜공왕대 만들어진 에밀레종에 유독 설화화되어 전승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판도 많고 공들여 만든 책이다. 그런데 일본어 지명, 인명이 모두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적혀 있다. 헤이안 시대가 평안시대, 하는 식으로. 한자 병기도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어 읽으면서 평소 익숙한 인명 지명이 아니어서 좀 힘들었다. 대개 일본어 표기는 일본발음으로 적는데, 이건 푸른역사 출판사의 독특한 스타일인가? 같은 출판사의 다른 책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 사소한 지적 : 사실 범종이나 신라사 관련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세계사 부분에서 좀 이상한 내용임.

 

1 158쪽. 측천무후가 '후궁이 된 다음,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목 졸라 죽이고 그 혐의를 자신을 총애하던 황후에게 뒤집어씌워 돼지우리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끝내 황후의 사지를 잘라버린 악의 화신이었다'라고 된 부분. 좀 의아하다. 무후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곤장을 친 후 술항아리에 넣어 죽인 것 같은데. 한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후가 척부인의 손발을 잘라 돼지우리에 넣지 않았나?

 

2 369쪽.  알렉산더 대왕이 '뫼비우스의 띠'를 단칼로 내리쳐 끊었다고 적혀있다. 이상하다. 이 일화에 나오는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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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3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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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엄마의 편지 관련한 글을 찾아 읽고 있다. 아무래도 원이 엄마의 편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한국방송의 역사 스페셜 프로그램이었기에,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사실, 이 책과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 정도 외에는 논문 아닌 일반 단행본, 대중 역사서에서 원이 엄마 이야기를 다룬 책은 아직 없다. (혹시 있는데 내가 못 찾았다면 댓글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흥미롭게 서술되었다. 국사 교과서에서 깊이 다루지 않고 지나쳐간 이야기를 찾아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도 책이라 그런지 매우 올드 패션드한 느낌이다. 이 책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의 모태가 되는 프로그램의 기획 상,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포석사 기와나 원이 엄마 편지 발견처럼, 당시에는 최근에 새로 발굴되고 알려진 일이었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후에 새로운 독자가 읽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이 경우에도 독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왜구하면 훈도시 입고 뗏목 타고 쳐들어오는 오합지졸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4. 백제 최후의 날, 일본은 왜 지원군을 보냈나' 항목과 '5. 고려 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 항목은 신선한 충격을 줄 테니까. 역사 쪽 독서 처음 입문하는 독자가 워밍 업 식으로 읽기에는 좋은 책이다. 하지만 내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별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한 문제 제기도 주지 못했다. 그냥 그랬다.


같은 2000년대에 나온 다른 대중 역사서들의 경우, 현재까지 스테디하게 읽히는 책들도 꽤 많은 것으로 봐서, 이 책이 가진 고유한 한계는 어쩌면 문제의식의 부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정보 제공 위주로 가다가 이따금 뜬금없이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는 면이 좀 있다. 역시, 대중 역사서를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은 그 방향으로 귀결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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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기 - 세계가 높이 산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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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는 정교하고 뛰어난 문물이 아주 많다. 특히 문자, 활자, 역사 기록에 관련해서 세계적으로 最古이자 最高인,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남겼다. 그래서 최준식 저자는 이러한 우리 민족이 가진 세련된 문화의 기운을 文氣란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책에는 그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이 왜 자랑스러운지를 밝혀주는 내용이 알차게 담겨 있다. 첫째마당에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 세계최초의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등 경이로운 우리의 인쇄문화를 소개한다. 둘째마당에서는 불교를 믿는 아시아국가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인 <고려대장경>과 세계 최대의 단일 왕조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인 <승정원일기>를 통해 우리의 기록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세째마당에서는 한글의 창제원리와 우수성,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소개하고 있다. 한글은 단순한 표음문자 중 음소문자인 것만이 아니라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이기에 핸드폰 문자 입력 방식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정보화 시대에 더 그 우수성이 빛나는 문자라고 한다.

저자 말씀대로, 우리는 자금성의 규모에 비교하여  경복궁의 초라함만을 부끄러워했지, 경복궁이 유네스코가 선정한 한국 보유 문화유산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화성성역의궤><훈민정음>의 네가지가 만들어진 곳이기에 외형적 크기와 상관없이 자랑스런 곳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이렇듯 이 책은 책 내용으로 담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그 나라의 문화를 보려면 크기나 양만을 보고 단순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 속에 담겨진 문화의 내용을 보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준다. 이는 꼭 우리 문화문물만 볼 때 적용되는 것이 아니리라.

중학생부터 일반 성인독자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깊이까지 갖춘 좋은 책이다. 이 분야 전문 서적을 이미 읽으신 분께는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강의식으로 조곤조곤 설명해주시는 저자의 말솜씨에 그리 따분한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와 <의궤>를 발견하시고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님, 한국전 당시 해인사 폭격 명령을 목숨걸고 따르지 않으신 김영환 대령님, 주시경, 최현배, 이희승 선생님 등 일제시기 한글을 지켜주신 여러 선생님 등 여러 문화 영웅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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