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기괴하고 이상한 전설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전설이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에밀레종 설화다. 아마
<손순매아>나 <심청전>과 더불어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이야기 탑 3에 들지않을까싶을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 왜 어른을 위해
아이를 죽이는 건대? 그래도 <손순매아>나 <심청전>은 해피엔딩이기나 하지, 에밀레 설화는 종만 완성되었을뿐 아무런 숭고한
주제 없이 아이가 엄마를 죽어서도 저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나. 소름끼친다.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120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왜 이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생명력을 갖고 전해지는 것일까?
난 일단 종(鐘)자를 째려 봤다. 에밀레종, 종각, 할 때의 종은 쇠북 종(鐘)이다. 金 더하기 童이다. 물론 형성문자이므로 童은 의미
없이 소리를 담당하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그게 다일까? 왜 아이 童가 쇠랑 같이 종으로 만들어질까? 이상하지 않나? 일단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신화, 상징, 연금술 쪽 답을 얻었다. 하지만 엘리아데 선생의 해석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설화에 다 적용되는 원형적 화소이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 있는 종에도, 중국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는 성덕대왕신종이 에밀레종의 대표 종이 되었을까? 뭔가 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설화는 민중의 역사다. 이때 역사는 정형화된 사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설화 향유층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이 적층, 구전되는
역사다. 그렇다면 에밀레종 설화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더 추적할 능력이 없다.
다행이다. 이런 의문을 품은 분이 계셨다. 자, 이번에는 성낙주 선생님의<에밀레종의 비밀>이다. 저자는 에밀레종 전설을
성덕대왕신종이 만들어진 혜공왕 당시 신라 역사와 결부시켜 해석한다. 말을 경망스럽게 하는 어머니, 희생된 아이, 종 만드는 장인인 외삼촌.
이들은 각각 혜공왕의 모후인 만월부인, 혜공왕, 혜공왕의 외삼촌인 김옹(元舅)이며, 섭정을 맡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전횡에 희생된 혜공왕을
애처롭게 여기는 당대 신라인들의 여론이 반영되어 형성된 이야기가 에밀레종 설화라고 본다. 즉 에밀레종 설화는 신라 중대왕실인 무열왕계 왕실의
몰락을 고발하는 정치적 암시가 넘치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런데 다음 장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친다.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이 평화의 시대를 다스리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신기(神器)의 역사가 이어진다. 저자는 당시 신라 왕실이
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 평화와 화합을 원하는 염원을 만파식적,흑옥대와 더불어 에밀레종 제작에 담았다고 본다. 에밀레종을 비롯한 신라 중대
이후 종들의 용뉴에 보이는 원통, 이것이 바로 만파식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문무왕의 수장릉, 감은사,,,, 많은 이야기와 유물, 유적이
달려와 하나에 모인다.
이상, 책의 내용이 설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참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히스토리아, 라틴어권 남유럽언어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지 않은가. 제도권 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볼 지 몰라도, 에밀레종 설화는 원래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공통 화소를 가진 인신공희담이다. 이
화소가 특히 신라 혜공왕대 만들어진 에밀레종에 유독 설화화되어 전승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판도 많고 공들여 만든 책이다. 그런데 일본어 지명, 인명이 모두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적혀 있다. 헤이안 시대가 평안시대, 하는
식으로. 한자 병기도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어 읽으면서 평소 익숙한 인명 지명이 아니어서 좀 힘들었다. 대개 일본어 표기는
일본발음으로 적는데, 이건 푸른역사 출판사의 독특한 스타일인가? 같은 출판사의 다른 책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 사소한 지적 : 사실 범종이나 신라사 관련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세계사 부분에서 좀 이상한 내용임.
1 158쪽. 측천무후가 '후궁이 된 다음,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목 졸라 죽이고 그 혐의를 자신을 총애하던 황후에게 뒤집어씌워 돼지우리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끝내 황후의 사지를 잘라버린 악의 화신이었다'라고 된 부분. 좀 의아하다. 무후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곤장을 친 후
술항아리에 넣어 죽인 것 같은데. 한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후가 척부인의 손발을 잘라 돼지우리에 넣지 않았나?
2 369쪽. 알렉산더 대왕이 '뫼비우스의 띠'를 단칼로 내리쳐 끊었다고 적혀있다. 이상하다. 이 일화에 나오는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