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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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3권에서는 표트르 대제,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 모차르트, 볼리바르, 나폴레옹 등 6명의 특출한 혹은 문제적 개인을,  해적들과 와트 등 산업혁명기의 발명가 겸 사업가들을 통해 두 분야의 사회 현상을 다룬다.  주로 18세기이고 혁명 혹은 혁명적 변화, 그러니까 '이중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 사실을 서술하는데 충실하면서 지나친(소설로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이는 '작가의 개입'같은) 논평은 없는 편이다. 널리 퍼져있는 편견이나 오류도 잡아 준다. 프랑스 혁명기 공포 정치가 온전히 로베스피에르만의 책임은 아니라든가,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낭만주의시대 영웅화된 면이 있는 것, 볼리바르는 해방자이며 독재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산업혁명은 와트 등 어느 뛰어난 발명가 덕분이 아니라 기존 기술이 꾸준히 개량되며 진행되었다는 것 등등.  

 

무엇보다 나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빵 없으면 케이크 먹어라'고 한 말은 사실 아니라든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악처로 서술하지 않아서 좋았다.

 

더구나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강경파 의원 장 폴 마라가 코르데라는 여성에게 살해당한 이후 혁명의 문위기는 여성 혐오로 돌아섰다. 과거 잔인했던 여성 지배자의 악행들을 거론하며 이를 앙투아네트와 비교했다.

-131쪽에서 인용

 

위처럼, 남성들만의 박애와 형제애를 추구했던 프랑스 혁명기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 좋았다. 사실, 주경철 선생님 정도 되면 역사를 몰라서 못 쓰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가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자료를 언급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중년 이상 나이드신 남성 저자분들이 프랑스 혁명 언급하면서 마리 앙트와네트를 희화하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역사 읽고 쓰시는 분들이 린 헌트도 안 읽었나? 알면서 안 쓰는 건가? ) 나는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때, 어느 역사학과 교수가 박근혜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교하면서 사치 때문에 혁명 어쩌구 빵 케이크 어쩌구하는 논평을 쓰는 것이 의아했다. 주경철 선생님 책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오면 어쩌나, 나는 그럼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한다지, 하고 고민했는데 쓸데없는 여성혐오 논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저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연민어린 시선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사적인 삶을 추구한 앙투아네트를 두고 구체제의 마지막 왕비라기보다는 최초의 근대적 왕비라고 주장한 샹탈 토마의 견해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불안정과 변덕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었다고 딱 잘라 평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세 개의 거대한 혁명이 대서양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바로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근대적 자유를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 중 하나였다. 1808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2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위계적 사회 질서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다른 지역들과는 매우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

- 251쪽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유럽은 아니지만 볼리바르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과 독립 역사를 소개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해적으로 3권을 시작하는 것이 좀 의외였다. <대항해 시대>에서 읽은 내용이어서 독자 개인적으로 아쉬웠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이 역시 근대 국가 형성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겠다. 해군의 역할을 대신 하고 급료는 알아서 약탈로,,, 하다가 국가가 해군력을 갖추고 나서 하청 면허를 거두며 소탕에 나서는 과정 말이다.

 

1차 근대 서술을 잔 다르크에서 나폴레옹까지로 마무리한다는 저자 서문은 알쏭달쏭하다. 시리즈가 2차 근대 3권으로 또 이어진다는 암시인가? 그러길 기대한다. 물론, 더 읽고 싶으니까 하는 말이다. <유럽인 이야기>가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능가하는 권수를 가진 시리즈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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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3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65
키스 토마스 지음, 이종흡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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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사료 제시를 통해 정통 종교와 민간 신앙 간 관계를 파헤친 역작이다. 1,2,3권 다 읽고 리뷰는 3권에 한꺼번에 남긴다. 

 

정통 종교는 늘 민간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자들을 탄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에 편승하여 세를 불린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성찬례의 빵이 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것을 묵인했다는 사실 등등.

 

어차피 사람들이 마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마술을 배척하기보다는 교회의 통제하에 두는 편이 더 유리하지 않은가.

- 114쪽에서 인용

    

문제는 종교개혁 이후다. 프로테스탄티즘 측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마술과 민간 마술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가 천년 넘도록 쌓아올린 신자 보호 수단들, 예를 들어 퇴마의례 등은 설 곳을 잃었다. 이에 평신도들은 기존 교회의 보호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악마나 주술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가축의 급작스런 발병, 기근이나 전염병, 홍수 등등 말이다.

 

16~17세기 영국 역시 그랬다. 특히 영국의 경우,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 이후 기존 가톨릭 교회의 구빈제도가 무너지면서 빈민, 과부, 노인 등 소외계층을 배려했던 공동체 시스템 역시 무너졌다. 이웃 사랑을 포기한 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소외된 자들의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음식 구걸하러 온 가난한 노파를 문간에서 내쫓은 직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이나 가족, 가축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고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이성적인 마녀 사냥의 배경이 형성되었다.,,, 등등, 저자는 근대초 영국을 배경으로 역사 같지도 않은 별별 황당한 기록에서 명쾌한 흐름을 잡아낸다.

 

다른 역사서 읽다가 참고 문헌 주석에 자주 등장하기에 찾아 읽은 책이다. 주경철 선생님 저서 등 다른 마녀 관련 서적에서 마녀 사냥의 요인 중 하나로 소개하는, '거부된 자선 모델 설(이웃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마녀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은 이 시리즈의 3권에 있으니 급하신 분들은 3권부터 읽으면 된다.

 

읽는 내내 이런 대단한 책을 쓴 저자는 물론, 팔리지도 않을 책을 내준 출판사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절판되면 중고서점에서 비싸게 거래될 책이 분명하니, 관심있는 독자분은 어여 사서 쟁여놓으시라.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허무맹랑한 마녀 관련 소품이 아니라 묵직한 역사 대물이다.

 

강추.

 

*** 이 책 외에 마녀 관련해서 내가 읽은 책들 중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책을 더 소개해본다면

<캘리번과 마녀> 자본주의 성립 과정, 특히 인클로저가 여성 억압과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과정 잘 서술

<유럽의 마녀 사냥> 유럽 사법 체계의 변천이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서술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유럽 민간 신앙과 엘리트 신앙의 관계를 잘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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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2-11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마술에 관한 인문학은 항상 마음을 끄는 소재입니다. 과학의 탄생을 얘기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도하고, 서양인들의 문화에 면면히 흐르는 기저를 확인할 수 있는 많지 않은 통로 이기도 합니다. 위 책의 역자인 이종흡 의 <마술, 과학, 인문학> 이나 다른 역서인 <코스모폴리스>에 그런 얘기들이 잘 나타나 있고, 그 책들에서 처음 그런 주장들을 접했을 때 지적인 즐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좀 방향은 다르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문화적인 접근도 또 다른 통로의, 서양의 마술에 상응하는 동양의 문화를 탐구한 인문학이라고 생각됩니다. 껌정드레스님 새글 항상 반갑습니다~~
`

자유도비 2018-02-12 11:13   좋아요 0 | URL
우와, 마일즈님! 저 어제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검색하다가 마일즈님 서재 갔는데 오늘 이렇게 와서 댓글 주시다니, 신기합니다. ^^
말씀해주신 <마술, 과학, 인문학>과 <코스모폴리스> 목차 읽어보니 매우 흥미롭네요.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어느 쪽에 관심 가지고 더듬더듬 찾아 읽고 으다다다 허접 리뷰 써 놓고 보면, 항상 마일즈님은 한 발짝 먼저 읽고 도와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마일즈 2018-02-2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은 아직 못봤습니다.ㅎㅎ. <마술, 과학, 인문학>에서 참고 문헌으로만 보고, 이런 책이있구나 하고 있었는데, 번역됐다나 잘 됐네요. 곧 다가올 구정에, happy new (lunar) year! 입니다~~

자유도비 2018-02-13 00:01   좋아요 0 | URL
1,2권은 사례 나열 위주에요. 3권 가면 좀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별 사악한 마법은 없는데 책 가격이 좀 사악해요. ㅋ
번번이 감사합니다.
 
문장으로 보는 유럽사 - 한눈에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유럽 문장의 비밀
하마모토 타카시 지음, 박재현 옮김 / 달과소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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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다시 읽은 책이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지만 유럽사 읽다보면 나오는 갖가지 상징이나 문장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기에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내용은 기본적인 면분할 같은 문장학 입문, 독수리나 사자 같은 주요 심벌과 모티브의 유래와 변천을 거쳐 중세 유럽 길드의 심벌 표식, 유대인이나 소수자 차별을 위한 표식 등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문장은 시민혁명을 거쳐 지배계급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사라진다. 각 상품의 상징 마크나 광고 배너에나 남아 있을뿐. 그래서인지 나는 뢰벤브로이 맥주 상표의 사자를 볼 때마다  뮌헨의 사자공 하인리히가 떠오른다.

 

도판이 조잡하고 흑백인 점이 치명적 흠이다.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으면 좋겠다.  

 

***

 

이하는 개인적 감상이다. 9년전에는 이 책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저자가 참 박학다식하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공부가 좀 쌓였는지, 이 저자가 미셸 파스투로, 조르주 뒤비, 아베 긴야 책에 있는 내용을 짜깁기해서 전달했다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일본 대중 역사서 중 서양중세사 문화사 부분은 유럽어, 특히 독어 되시는 분들(독문학과 교수같은)이 현지 자료에 접근하여 쓰거나, 혹은 전공 문학사 보다가 자투리 문화사 상식을 편집해서 쓴 책들이 꽤 보이는 경향이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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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역사
마크 마조워 지음, 이순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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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역사서를 찾다가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마크 마조워는 발칸 역사 분야의 권위자라 하여 골랐지만 발칸 국가들에 대한 역사책 자체가 많지 않아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공통 역사를 서술하다가 국가 성립 이후에는 발칸 반도 각국사가 나오겠지,,,하고 예상했지만, 책은 오스만 제국의 발칸 통치사 위주다. 발칸 유럽 주민들은 태반 이상이(80%라고 말한다) 비이슬람교도였으며 개종을 강요당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에는 수세기동안 인종적 갈등이 없었다. 농촌지역에서는 특히. 그것은 오스만 제국의 관용때문이 아니라 술탄의 신민들에게는 민족성이란 개념이 없었고, 기독교 역시 인종적 결속보다 신도들의 공동체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453년 이전에 이미 비잔티움의 엘리트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실리를 얻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최근의 인종 청소와 추방, 내전 등 극단적인 발칸 분쟁은 발칸의 특수성이 아니라 19세기에 비롯된 낭만적 민족주의, 영토 확장욕에서 기인한 제국주의 외세에 기인한다고 본다.  발칸을 '유럽의 터키'라고 부르던 서유럽인들의 발칸에 재한 편견과 무지가 개입되어 있을뿐, 서유럽이나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 내전과 같은 현상이라고 서술한다. 저자는 발칸 문제에 종교적 분열, 농촌의 전근대성, 인종 갈등과 같은 고질적 현상도 있지만 대중 정치, 도시화와 산업화, 새로운 국가 구조 등장, 읽고 쓰기 및 대중매체 기술 보급이라는 동시대적 요소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발칸 외 지역이 발칸에 그들 민족을 규정하고 파괴할 무기를 쥐어주었다고 말한다.

 

리뷰는 대강 이렇게 기록해놓는다만, 여러번 읽었어도 잘 모르겠다.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생기고 어떤 일이 터지고,,, 이런 연대기적 상황은 알겠는데 그 사건 전후의 얽히고 설킨 배경과 의미 부여,,, 이런 부분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이 저자분, 좀 추상적으로 서술하시는 것 같다. 아래 인용부분을 읽으면 다들 행간에 있는 무수한 사건들이 파바박 떠오르시는가? 난 안 그렇다.  

 

1923년까지는 동방문제가 일단락되었다. 1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세기 동안 발칸과 동부유럽 대부분을 지배한 제국들은 마침내 와해되었다. 하지만 제국들이 붕괴해도 서방 진보주의자들이 예상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계승 국가들이 민족성 원칙을 내세우며 이웃 국가들의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지회복주의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발칸의 국경들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민족성의 원칙에도 모호한 면이 있었다. 신생국에는 어느 나라나 다 있기 마련인 소수민족의 존재가 국가 이름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이 나라들의 주장에 손상을 입혔다. 유럽의 열강들 또한 1918년 이후, 전쟁의 원인이 된 차이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힜다. 차이의 불식은 고사하고 열강들의 경쟁은 이제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뿌리 내리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이데올로기로 더욱 첨예해졌다. 그 결과 19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기도, 발칸 분쟁과 열강들의 각축으로 인한 유혈충돌로 상처뿐인 세기가 되었다. 종교의 세기는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오고 있었으며 민족주의는 이 둘 다에 걸쳐 있었다.

- 본문 185~ 186쪽에서 인용  

 

그러니, 책장에 비치해두고 다른 책 읽으면서 계속 펼쳐봐야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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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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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와 <히로히토 평전>으로 유명한 저자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 여러 상황 전체를 서술하는 책이다. 현지 관련인 인터뷰가 많다. 차우셰스쿠의 일생 추적 위주만이 아니라 그가 정권을 잡게 되기까지, 그리고 근 25년간 독재하면서 나라를 망치게 되기까지 그를 도와준 역사와 시대를 고찰한다. 특히 비밀 경찰과 협력하는 중산층에 특권 부여 등 독재자에게 부역하게끔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파헤쳐 준다. 책의 부제인 '악마의 손에 키스를'이 딱 말해준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전체 24장 중 차우셰스쿠 집권 이전 루마니아 역사를 설명해주는 2,3,4장의 서술이 값져 보인다.

 

 

책은 한 독재자를 악마화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집중한다. 고대 로마제국,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터키 지배자와 비잔티움 제국의 뒤를 이은 그리스 지배자 등 외세에 오래 시달린 역사 때문에 루마니아 민중들은 민족주의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를 차우셰스쿠는 영리하게 이용한다. 그래서 반소 민족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인 것은 아닌데도 루마니아 민중들은 물론 서구 언론들까지 스탈린에 맞서는(것처럼 보이는?) 차우셰스쿠를 지지하게 되는 과정이 디테일하게 설명되어 있다.

 

위 문단까지는 이 책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이고, 아래부터는 그냥 내가 보기에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사실 나는 차우세스쿠와 드라큘라 관련한 내용을 찾으려고 이 책을 읽었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차우셰스쿠가 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이 나와 있어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독재자들처럼 국정 역사서 집필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역사서를 썼단다, 큭.

 

실제로 차우셰스쿠가 쓴 역사서들은 그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전문 역사가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내용은 루마니아 민족주의를 정당화시키고 오래 전에 이미 루마니아 문화가 뿌리를 깊숙이 내렸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우셰스쿠의 이름은 공동 집필자들의 이름을 대신해서 항상 책의 앞표지에 나와 있었다.

- 59쪽에서 인용 

 

또 웃긴 건, 차우셰스쿠는 소련에 저항하는 지도자인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레비스타, 데체발, 미하이, 드라큘라같은 민족 영웅들을 부각시켰는데 결과는 오히려 드라큘라의 악명만 계승했다는 점. 1970년대 도시 재개발 사업을 밀어붙일 때는 '불도저를 탄 드라큘라'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심지어 1989년 크리스마스에 처형된 후에는 아래 인용부분과 같은 루머가 떠돌았다고 하니. 

 

 

1990년 차우셰스쿠의 양복 재단사는 차우셰스쿠 사후 흡혈귀 드라큘라의 전설을 연상시키기 위해 차우세스쿠가 생전에 주기적으로 건강한 어린이들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이야기도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확인해 주었다.

- 270쪽에서 인용

 

위처럼, 저자의 꼼꼼한 인터뷰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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