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아래의 책 5권을 연달아 읽었다. 한 권만 읽고는 그 책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 같아서 다 읽은
후 비교하며 한꺼번에 간단히 리뷰 남긴다.
십자군 전쟁 :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W. B. 바틀릿 지음 / 한길 히스토리아
십자군 :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 / 토마스 F. 매든 지음 / 루비박스
십자군 이야기 2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문학동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 아민 말루프 지음 / 아침이슬
살라딘 :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 스탠리 레인 폴 지음 / 갈라파고스
이 중,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레바논 출신으로 파리에 정착한 저자가 아랍인의 시각에서 서술한 책이다. 기존
서구식의 1차 2차 3차,,,, 가 아니라 아랍 입장에서 1부 침략, 2부 정복, 3부 반격, 4부승리(살라딘 등장), 5부 유예(3차 십자군.
살라딘과 리처드), 6부 추방(몽골 침략과 아크레 이후 프랑크인 철수)로 구성된 목차부터가 다른 시각을 느끼게 해 준다.
당시 아랍 측 역사가와 연대기 저자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인용해 썼기에, 기존 서구 저자들의 십자군사에서 자세히 읽지 못한 부분을 접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예를 들어, 현지조달 방법으로 대책없이 몰려온 십자군 침략자들이 식량이 떨어지자 포롣르의 인육을 먹는 '마라의
식인종' 부분 등 놀랄만한 사실이 줄줄이 소개된다. 그렇다, 기본적으로 십자군 전쟁은 침략전쟁이었던 것이다. 200년 후 아랍이 이들을 몰아내어
결과적으로는 승리한 전쟁이라해도, 마치 임진왜란과 같이 침략당한 측의 피해의식은 현재까지 현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무조건 아랍측을 피해자로 그리지는 않는 점이 이 책의 더 큰 장점이다. 당시 아랍권이 분열되었던 현실, 투르크와 아랍의 민족 문제,
시스템보다 걸출한 인물에 의존하는 문제, 암살집단 아사신 등 아랍 측의 문제도 확실히 다뤄준다. 아랍 쪽은 이때만해도 확고한 성전 개념이
없었기에 지역에서의 이권을 위해 십자군 측과 협력하여 다른 지역 이슬람교를 믿는 지배자와 전쟁을 벌이기도 일쑤였다. 이 점은 십자군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그 지역에 정주하는 사람의 입장과 멀리서 이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의 입장은 달랐다는 것.
마찬가지로 천여년 전의 십자군 전쟁사를 읽고 이용하는 현대인들의 입장도 각각 처한 현실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이 점을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밝혀 준다. 사실 당시 이슬람권에서 가장 경악할만한 정체절명의 사건은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 몽골의 바그다드 함락이었고, 당시 이슬람 역사가들은
현장에서 목격하지 않는한 십자군 전쟁을 대수롭잖게 여겼다고 한다. 살라딘 역시 19세기에 다시 서구의 침략이 시작되자 재조명된 민족 영웅이다.
많은 부분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르다.
아랍 쪽 인명 지명 관직명과 거의 춘추전국인 당시 실정이 익숙하지 않아 잘 읽혀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는 지적 기쁨은 확실히
주는 책이므로, 이런 점은 그냥 참고, 진한 커피 마셔가며 내려앉는 눈꺼풀 밀어올려 읽어가면 된다. 현재 수준의 나에게 가장 큰 성과는 기존
서구 저자들이 십자군사를 다룰 때 자신의 의도에 맞춰 사료에 뻔히 있는데도 말하지 않거나 얼머부리는 부분의 원 사료를 알게 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