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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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대전 발발 후 1941년 브라질에 정착한 츠바이크가 지난 시대의 유럽과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의 어느 것하고도 너무나 다르며 또 나의 상승과 전락이 너무도 기막히기 때문에, 나는 다만 하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완전히 서로 이질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이따금 생각할 정도이다.

- 본문 11쪽에서 인용

 

 

십년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다시 통독했다. 그동안 독서 이력이 좀 쌓여서 다시 보니, 의외로 많은 역사책들이 <어제의 세계>를 1차 사료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에세이이지만, 거의 역사서로 생각하고 읽어두면 좋을 듯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요약할 수 없는 성격의 책이다. 걍 읽고, 그의 운명을 만나야 한다.

 

이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비로소 나도, 시련은 사람을 자극하고, 박해는 사람을 굳세게 만들며, 고독으로 파괴당하지만 않는다면 고독은 사람을 드높여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본질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식도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운명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 421쪽에서 인용

또한 그가 관심가진 인물들의 운명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이 희곡은 소위 '영웅'의 편에 서지 않고 항상 패배자 가운데서 비극을 보고자 하는 나의 내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을 이미 담고 있었다. 나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늘 운명에 의해 쓰러진 자이며, 전기 작품에서도 현실적인 장()이 아닌 도덕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인간의 참된 모습에 마음이 쏠렸다. 즉 루터가 아니라 에라스무스,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메리 스튜어트, 칼빈이 아니라 카스텔리오에 쏠렸다.

- 본문 211쪽에서 인용

 

 

 

 

 

 

그의 마음이 쏠린 운명은 각각 '정신적 도덕적 히로이즘'을 체현하는 인물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어떠한 공격도, 어떠한 술책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두려움 없이 현명하게 세계의 혼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다른 히로이즘, 하나의 살아 있는 기념비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적 도덕적 히로이즘을 보았다. (중략) 광기의 발작에 빠졌던 유럽의 양심을 유지한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 본문 327

베르하렌, 엘렌 케이, 로맹 롤랑, 톨스토이, 고리키, 릴케,,, 등등 그와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당시 유럽의 지성들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현재 내 입장에서는 젊은 책벌레였던 그가 작품을 쓰고 무작정 투고하고,,,, 작가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나의 '어제의 세계'를 회고해 보니, 고교 1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어 그의 책과 보낸 세월이 어언 25년,,,, 그의 문장에 빠져 있다가도,,, 자유주의 서구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에 의도적으로 멀리하다가도,,, 언제나 그를 다시 읽으면 가슴이 뛴다. 10년 전의 나는, 양차 대전을 거치며 잃어버린 유럽만을 안타까워하는 그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 정도의 지성을 갖춘 남자가 유럽이 일으킨 전쟁에 신음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고통을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 그런 기질을 가진 사내가 있고, 그런 사내를 좋아하는 것이 뭐가 어떤가? 나는 그의 장점과 단점을 다 알고 사랑하는데!  앞으로 나는 아무 죄의식 없이 그를 읽고 사랑하리.

 

(2003년의 2판 2쇄로 읽었지만, 여기 2014년 개정판에 리뷰 남김. 인용문의 페이지는 이 개정판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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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타임라이프 세계사 18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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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 프란츠 요제프 황제 시절을 다룬 책이나 전시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책 <제국의 종말>은 타임라이프북스 세계사 시리즈의 전형적인 장점을 보여준다. 치우치지 않는 시각, 풍성한 도판, 다양한 각도의 접근과 당시 인물들과 문화 소개,,, 사실 시리즈의 다른 권은 좀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서 의무감으로 읽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 권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이 워낙 잘 되어 있어 그런지 내가 이 시기와 이 시기의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친구분들께 추천할 만한 책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합스부르크 가'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에레제베트 황후 위주로 황실 인물들을 다룬다. 1차 대전 발발과 관련한 황태자 이야기 등등. 이쪽 역사 이미 읽고 아는 분들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다만 좀더 생생하다고나 할까. 책의 장점은 2부에 있다. 2부 '백성들의 다양한 열망'에는 황실 가족 외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당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세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반전 작가 베르타 킨스키, 노동운동가 아델하이트 드보르자크, 빈 시장 카를 뤼거를 통해서. 특히 카를 뤼거가 지지를 얻는 과정을 보면, 이후 나치즘이 오스트리아에 '먹히게 된' 싹이 보여 흥미롭다. 3부 '오스트리아의 참된 소리'는  음악가인 요한 슈트라우스, 화가인 클림트, 작가인 츠바이크,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와 시대정신을 다룬다. 이 부분도 각각 이들의 책이나 전기를 읽었으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 '직조'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면면을 대략 볼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그래도 역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도판과 설명이다. 링 슈트라세 사진과 그 설명을 보자.

 

1857년, 황제의 명령을 받은 빈의 건축가들은 중세의 성벽을 허물고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옛 성벽의 토대 위에는 링슈트라세로 알려진, 구 시가지를 둘러싼 길이 3km 가량의 아름다운 환상 도로가 들어섰다. 그러나 1867년에 이르러 교회와 군대라는 불안정한 토대를 기반으로 한 유일 통치자로서의 지위가 무너지면서 전제정치는 종말을 고했다. 그 잿더미 위에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입헌 군주정의 상징물들이 들어셨으며, 신흥세력인 시민계급은 그런 건물들을 세속문화와 법치의 전당으로 여겼다.

링슈트라셰는 서구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 주었으며 (중략) 맨 왼쪽에 자리잡은 국회의사당은 고전시대 그리스 양식의 외관을 보여주며, 그 다음에 보이는 시청은 플랑드로 고딕 양식을, 대학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그 너머로 높이 솟은 성당은 프랑스 고딕 양식을, 육각형의 돔을 갖춘 극장은 바로크 양식을 각각 따랐다.

- 본문139쪽에서 인용

 

저물어가는 제국의 마지막 총역량 집중으로 보여준 모든 시대 유럽의 영광.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의미 부여라니! 이런 도판과 설명만으로도 그 시대 프란츠 요제프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성격을 에둘러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옮겨가며 이 장엄한 제국의 저녁 노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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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로랑 세크직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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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말년 150여일을 재구성해낸 소설이다. 츠바이크를 흠모하여 자신의 의학박사 논문까지 그에게 헌정했을 정도의 저자이니, 소설 행간 사이사이 엿보이는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모르는 여인의 편지><체스>등의 영향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빈의 황금시대에 태어나 그 문화적 유산을 계승한 츠바이크는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그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파괴를 목격한다. 그는 2차 대전 발발 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하지만 고향에서 들리는 친지들의 암울한 소식과 전쟁 확대, 브라질에서도 자행되는 유대인에대한 테러 현실에 절망한다. 끝내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22일, 늘 소지하고 다니던 약물로 자살한다. 27세 연하의 두번째 아내 로테와 함께.

 

이제는 신성한 안식처도, 고정 거주지도 없었다. 삶은 영원한 방랑의 장이 되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아득한 탈출기가 되었다.

- 본문 12쪽에서 인용

 

그가 알던 세상은 폐허가 되었다. 그가 살뜰히 여기던 이들은 죽었다. 그들에 대한 추억마저 무참히 훼손당했다. 그는 인류의 가장 풍요로운 시간을 증언하는 전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야만의 시대를 아무 생각 없이 기록만 하는 글쟁이는 될 수 없었다. 그에겐 너무 많은 기억과 너무 큰 두려움이 있었다. 노스탤지어는 그의 글쓰기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만 글을 썼다.

- 본문 47 -48쪽에서 인용

 

카스텔리오, 에라스무스, 몽테뉴,,,, 지난 시대 유럽의 야만에 맞선 역사적 인물들을 즐겨 그려냈던 그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유럽의 야만, 아니 전 세계로 확대되는 야만은 결코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츠바이크 신봉자가 쓴 이 책을 통해 나는 그의 아픔과 두려움을 읽는다.

 

하지만 그의 시대와 그가 그려낸 작품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나. 그란 남자와그란 남자가 숭상한 남자들을 그리워하는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츠바이크의 어린 아내 로테처럼 이 소설과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난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요. 현재와 과거 모두를요. 당신 인생의 매순간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품에 안겨 오롯이 당신에게 속하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베토벤 카페에, 부르크 극장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폴크스가르텐을 산책하고 막시밀리안플라츠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싶어요. 당신과 나란히 오페라 극장의 계단을 오르고 마리엔바트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어요. 운명이 나를 너무 늦게 태어나게 했으니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고 싶어요. 내가 당신과 떨어져 살았던 그 세월을 모두 다 이야기해줘요!“

-  본문 60쪽에서 인용

 

내게 먼 남자를 읽고 뒷북치며 사랑하는 일은,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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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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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는 실레의 1910년작 <이중 자화상>.

 

세기말에서 1차 대전까지, 프란츠 요제프 황제 말년 오스트리아의 빈에는 많은 천재들이 활약했다. 그중 한 사람, 에곤 실레. 1890년 태어나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분리파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를 만나고, 1909년에는 보수적인 분위기의 아카데미를 떠나 ‘새로운 예술가 그룹(Neukunstgruppe)’을 결성한다. 1912년에는 미성년자 유괴와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24일 동안 수감되기도 한다. 4년간이나 모델겸 연인인 발리와 동거하며 그 생애의 대표작들을 그렸으나 1915년, 발리를 버리고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다.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며 표현주의 젊은 예술가로 자리잡았으나 1918년 에스파냐 독감에 걸려 사망한다. 아내 에디트 사망한 지 사흘만이었다.  책은 이런 실레의 일생을 따라 그의 작품들을 해설해간다. 저자의 감상 위주라고 보면 된다. 도판이 심히 좋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볼 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된다.

 

1차 대전 전의 불안을 담은 요절한 천재라지만 내가 보기엔 그리 시대의 제약을 받았다고 볼 순 없고, '매를 벌었다'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리는 것같은 남자다. 여러 면에서 미숙했다고나 할까.  그의 그림은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말초적인 에로티시즘은 아니다. 그의 그림은 끝없이 불안해하고 강한 자의식을 주체할 줄 모르는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 자위하는 자화상이라니, 자기애의 절정을 보여주지 않는가.

 

다른 예술가들은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할 것인가. 예컨대 롭스 같은 사람은 전적으로 포르노 그림만 그렸다. 그러나 예술가를 감옥에 가두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아무리 에로틱한 작품도 그것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는 이상 외설은 아니다. 그것은 외설적인 감상자들에 의해 비로소 외설이 된다.

- 본문 160쪽, 외설죄로 수감되었을 당시 실레의 일기에서 인용

 

아무리 '맞을 짓'을 사서 하긴 했어도, 위의 '외설적인 감상자들에 의해 작품이 외설이 된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리고 그는 에로틱이나 외설보다는, 변화해가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주체못하는 10대 소년의 입장으로 평생 산 것 같다. 미숙하고 위태로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사과를 든 소년'을 떼어낸 자리에 실레 스타일의 그림을 거는 것을 보고 갑자기 클림트가 에곤 실레에게 미친 영향이 궁금해서 읽은 책인데, 이 부분에 대한 깊은 내용은 없다. 다른 책을 더 찾아 봐야겠다.

 

아래 오른쪽은 클림트의 1907-8년작<키스>,

왼쪽은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에곤 실레의 1912년작<추기경과 수녀>

자료 사진은 우먼 동아일보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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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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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1908, <키스> 캔버스에 유채, 빈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다가, 마담 D의 의상 디자인과 문양, 집 벽에 걸린 풍경화를 보고 클림트를 떠올렸다. 주인공 이름이 구스타프인 것도 역시. 자연스레 나는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의 오스트리아, 빈에 빠져 들어갔다. 타는 갈증을 안고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대한 책을 몇 권 찾았는데,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책의 장점은, 클림트를 에로티시즘 화가로 단적으로 정의내리지 않는 점이다. 아, 나는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의 키스를 보라. 뭐가 야한가? 숭고하기만 하다. 연인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둘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벼랑은 꽃밭으로 변한다. 사랑이 세상을 바꿔 놓는 위대한 순간이다. <다나에>도 얼마나 숭고한가?

 

그의 그림에는 에로틱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그가 남긴 235점의 유화 작품 중 60여점은 에로틱하기는커녕 마치 명상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적의 조화를 표현한 풍경화였고 나머지 대부분도 조용한 분위기의 초상화거나 상징적인 우의화였다. 그 우의화 중에는 에로틱한 그림도 있었지만 몇 점뿐이었고 그 마저도 숭고한 느낌을 준다.

- 본문 4~5 쪽에서 인용

 

클림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시대를 봐야 한다. 이 점에서 노동법을 전공한 저자의 시각이 빛난다. 전에 이 저자분의 다른 책 리뷰에도 썼지만, 난 이런 스페셜리스트의 시각을 갖은 저자분이 자신의 전공분야 아닌 곳에서 자신의 시각을 적용해서 쓴 책이 참 좋다. 꼭 박사 학위 가진 그 분야 강단 교수들만이 그 분야 책을 쓰란 법은 없다. 오히려 난 클림트를 미술 전공자들이 쓴 글을 보면 더 어렵고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에로티시즘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 즉 그의 여성 모델과의 관계나 에밀리와의 관계 그에대한 얼치기 프로이트식 분석 등등,,,, 난 클림트의 그림보다 그에대해 에로틱한 글 쓴 저자들이 변태같다. )

 

그가 황실이나 국가기관이나 부자나 대중을 위해 그림을 그렸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봉건적 장식과 색채를 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30세도 안 되어 그런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전통에서 분리되어 분리파전이라는 새로운 전시회를 열면서 그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관람제도를 실시했다. 당시 에로틱하게 보인 그의 그림보다도 그 무료관람이 사실 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보수층은 그 점에 더욱 분노했다.

- 본문 34 쪽에서 인용

 

당시 프로이트도, 에곤 실레도,,, 그들이 비난받은 것은 그들 학설이나 그림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제국 말기의 억압성과 그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귀족 관료 부루주아들의 이중성때문이었다.

 

19세기 말 빈은 20세기를 빛낸 천재들이 산 곳이었다. 그러나 그 천재들은 대부분 살아생전 빈에서 아예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중적인 판단에 의해 고통을 받아다. 프로이트도, 말러도, 클림트도 그러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의사, 음악가, 화가들이 그곳을 지배했고 대중들도 그들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지배계급과 대중에 도전하는 새로운 견해는 언제나 무시되었다. 그만큼 세기말 빈은 보수적인 도시였다. 클림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릴파르처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훈장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어

이런 체제에서는.

천재에게 십자가를 걸어주지 않지,

아니, 천재를 십자가에 매달지.

- 본문 66쪽에서 인용

 

클림트의 시대로부터 백여 년이나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까지 그런 과거 서구제국의 시선을 갖고 그를 볼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 심어진 서구위주 제국주의 시선의 영향 때문이다. 지나친 장식과 금박이 주는 거부감. 이 부분에서 저자분이 번역, 소개하신 <오리엔탈리즘>의 일관된 비판 정신이 보인다.

 

빙켈만 이래의 신고전주의가 그리스적인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주류를 형성하는 가운데 서양에서 장식미술은 무시되었다.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와서 디자인이 미술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리스적인 순수미술과는 다른 응용미술, 즉 순수미술의 미를 응용한 것이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 것에 불과했다.

여기서 특히 우리는 그 응용미술이라고 하는 것이 특히 비서양사회의 민족미술이나 종교미술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하 아라베스크가 그렇다. 아라비아 사람들의 공예품이나 건축물 장식에 쓰인 무늬로 만든 타일로 뒤덮인 모스크는 서양 기독교와 대립하는 이교도의 상징으로 경멸되었다.

- 본문 52쪽에서 인용

 

이 책은 클림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의 시대를, 그의 시대과 비슷한 시대에 살며 그를 비난하던 자들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갖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분의 다른 책처럼, 좀 거칠기는 하지만, 다른 클림트 관련 책들과 확연히 차별되는 장점이 있기에,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관심있는 친구분께는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클림트와 그의 시대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제국의 붉은 노을(구판은 세기말 비엔나)>, <제국의 종말>, <어제의 세계>를 함께 읽기를 권한다.

 

여담이지만, 난 내 선배님 선생님 또래의 중년 남성분들, 그러니까 70, 80년대 학번 남성분들 보면 이따금 안쓰럽다. 근대화 산업 전사로 청춘을 희생당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대의에 의해 개인적 취향과 시각을 억압하도록 강요당한 점에서 불쌍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초반부에서도 클림트를 싫어하다가 중년이 되어 좋아하게 된 저자분의 개인적 사연이 나오는데,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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