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일본에 이런 단편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19458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진 조선 00시의 소학교. 일본인 국어선생(당연히 이때의 국어는 일본어다)이 이제부터 일본어를 못 가르치게 되었다고 아쉬워하면서 마지막 수업을 한다. 그는 목멘 소리로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조선인 학생들은 그동안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수업에 집중한다. 한 학생은 까치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앞으로 저 까치도 조선어로 울어야 할까?' 라고 생각하며 감상에 빠져 든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창밖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목이 멘 일본인 선생은 칠판에다 크게 "대일본제국 만세!"라고 쓴다.

 

게다가 이 소설이 패전국 일본의 아픈 마음을 자극하여 이후 일본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면? 이 소설을 읽은 일본의 우익들이 '국토(, 조선) 회복'이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면? 이 소설이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우리의 일제 강점기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된다면? 심지어 우리나라에 여행온 일본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이 00시를 방문하여 ", 이곳이 그 유명한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로구나! 역시 모국어는 소중한 것이야." 라는 헛소리를 해대며 기념 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조금 과격하지만 이런 가정을 프랑스와 독일의 이야기로 바꾸면 바로 그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알자스로렌 지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 영토였던 때보다 독일 영토였던 때가 더 많았으며 원래 이곳 민중들의 기본 언어는 독일 방언의 일종인 알자스어였다. 그런데 우리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소설을 우리의 일제 식민 지배 경험을 반영하여 읽으며 프랑스인의 왜곡된 민족주의 감정에 감동을 받아 온 것이다. 역사적 내막을 알고 보면 허무해도 이만저만 허무한 것이 아니다.

(중략)

우리가 마지막 수업을 읽고 감동받았던 것은 일제 식민지 경험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소학교에 있었던 '방언찰'을 아시는가? 일본어를 쓰지 않고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벌주는 용도로 사용했던 이 나무패는 조선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에서 표준 일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을 벌주기 위해 사용했다. 그것도 2차 대전에서 패하여 일본의 해외 식민지도 없어진 후인 1960년대까지 말이다. 이렇게 한 나라 안에서도 주변부 지역에 대한 중심부의 폭력적인 언어 권력 행사는 있었다.

 

나는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말"이라는 알퐁스 도데의 서술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자신의 모국어가 있으며, 그 모든 모국어는 전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확한 말이다. 또 같은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태어난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자기만의 모국어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배국가와 피지배 국가 사이에서, 자국 내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서, 다른 계급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며 다른 상대에게 강자의 언어를 강요하는 순간, 폭력은 시작된다.

 

그러니 나중에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 여행가게 된다면 "여기가 바로 그 명작 마지막 수업의 배경 도시래! 역시 언어와 민족혼이란,,,"이라며 감동 받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알고보면 참 허무한 명작, 남의 나라 극우파 작가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속아 감동을 받기 쉬운 소설이 바로 이마지막 수업이다.

-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 본문 242 ~ 250쪽에서 인용

 

그렇습니다, 또 광고입니다.

 

제가 쓴 책 <백마 탄 왕자 ~>는 책 제목 때문에 공주와 왕자가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동화와 고전 명작, 설화 등을 놓고 유럽사 전체를 한번 담아내고 있습니다. 앞에는 더 흥미 위주, 궁금증에 답하는 이야기를 배치했고 뒤로 갈수록 본격 역사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사 스타일로, 중세에서 근, 현대로 갑니다.

 

위에 인용한 모든 모국어는 가장 아름답다편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가 1871년에 발표한 마지막 수업의 공간배경인 알자스 로렌 지방의 역사를 통해 보불 전쟁(1870~1871년에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싸운 전쟁)부터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민족감정과 경쟁심이 야기한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알자스와 로렌은 17세기의 30년 전쟁 때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독일어권에 속해 있었기에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에도 일반 민중들은 독일어를 사용하였죠. 프랑스어는 도시 상류계급 일부만 쓰는 언어였습니다. 1871년 보불 전쟁 결과 알자스의 대부분과 로렌의 동쪽이 독일에 병합될 때까지도 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의 1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마지막 수업에 나온 상황이 얼마나 프랑스 쪽 입장에서 극우 민족주의적 감정을 갖고 왜곡해서 쓴 것인지는 짐작할 만하죠. 프랑스는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독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 나갔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체육시간에도 알자스와 로렌의 수복을 위한 체력 단련과 군사 훈련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과열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 바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는 모국어를 빼앗긴 경험이 있기에 이 소설에 감동하였지만, 실제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괜히 남의 나라 극우 작가의 펜 놀림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었죠.

 

광복절이기도 하고, 친일파에 토착 왜구를 남발하는 요즈음의 과열된 사회 분위기가 생각나서 광고 겸 소개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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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08-16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어려워 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더라구요. 동화를 통해서 세계사를 공부하는 이 책이 더욱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정판 내신 거 축하드려요 !! 십쇄까지 가시길...

자유도비 2020-02-06 09:57   좋아요 0 | URL
네, 박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덕담대로 스테디하게 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