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은수연 지음 / 이매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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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성폭력에 시달렸어도 미투 고발을 할 수 없는 피해자들이 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이다. 성폭력이 낯선 사람에 의해 위험한 집밖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편견이다. 대부분은 아는 사람에 의해 집 등 익숙한 일상의 장소에서 일어난다.  많이 발생하지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친족 성폭력에 대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이 생각났다. 전에 임승수 작가의 책에서 은수연 저자 인터뷰 기사를 읽었기에.

 

저자 은수연(가명)은 초등학생 때부터 9년 동안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세세한 내용은 옮기지 않겠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14쪽)'며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새살이 자리를 잡은 상처가 더는 아프지 않은 것처럼, 성폭력이라는 상처도 그렇게 내 삶에 받아들이려 한다. 나는 그런 과정의 하나로 이 글도 쓰고 있다. 성의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자리잡는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좀더 마음 편하게 신고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 20쪽에서 인용

 

미투 운동에 대해 'with you'하는 방법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성폭력의 원인은 참기 힘든 남성의 성욕이나 여성의 옷차림이 아닌 바로 '가해자'라는 인식.

 

저자분의 글을 더 읽고 싶다. 글을 다루는 재능이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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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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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은의 변호사의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서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후, 37살에 전남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다. 이 책은 자신이 피해자로 겪은 경험과 변호사로 겪은 경험에 기반한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법정 싸움에 대한 정보보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화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솔직히, 예상 외로 잔잔하고 순한 글이었다.

 

'처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표면적으로 피해자의 적극적 소명이나 가해자의 반성에 의해 좌우될 것 같지만, 실상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다.

- 37쪽에서 인용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강제추행 같은 일들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문제다. (중략) 쉽게 말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 예의의 문제다. (중략) 사회 구성원은 갑을을 둘러싸고 을의 시선이 아닌 갑의 시선에 감정이입해 이러한 사건을 바라본다. 희한한 일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갑이기보다 을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을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위치에 감정이입한다. 그것이 유리하기 때문일 테지만, 분명히 잘못된 교육의 산물이다.

- 75쪽에서 인용

 

저자는 말한다. 우리 대부분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는 그들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가해자의 시선에 동일시되어 있는 현상을 고쳐야 성폭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아, 성폭력은 성희롱추행폭력을 다 합쳐 부르는 개념이다. 강제성기결합만 성폭력인 것은 아니다. )

 

성희롱은 '힘희롱'이니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저자는 권력, 계급 관계에 주목하지만 난 성평등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평등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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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 경찰조사에서 합의, 재판까지 사건별 시간별 대응 전략
박원경 지음 / 지식공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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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추행폭력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놀라운 현실이 보인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 대상 책인 경우에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실제 재판 대응 매뉴얼은 없다. 그런데 성인 남성 독자 대상인 책들은 내가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책은 당연히 없고, 내가 성범죄자가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책도 없다. 그런데 성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잘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은 꽤 있다. 서점 말고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성범죄자에게 상담해주는 카페가 무진장 쏟아진다. 햐, 대한민국에 이렇게나 많은 성범죄자들이 있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쓸데없이 학구적인 성격이다보니, 도대체 이런 책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서 그중 한 책을 찾아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은 마치 피해자의 법적 대응방법을 알려 주는 매뉴얼북 같다. 그런데 이 책도 범죄자를 위한 책이다. 신고나 고소 전에 사건을 마무리하거나 검찰 조사 단계에서 끝낼 방법을 찾거나 법정에 가더라도 처벌을 최소화하기위해 발악하는 온갖 팁들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미성년 여성과 성매매해서 걸렸을 경우에 나이를 모르고 했다고 우기는 방법, 같은 것. 강간 했다가 걸렸는데 정액 디엔에이 같은 빼박 증거가 나오면 형을 감량하기 위해 매일매일 반성문을 써 내랜다. 피해자가 아니라 판사님께! 맙소사!( 새끼들아, 처벌받기 싫으면 아예 처음부터 안할 생각을 하란 말이다! 그리고 반성은 피해자에게 해야지 왜 판사님께 하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가 고소를 하면 저 새끼가 이렇게 나오겠군, 하는 수를 미리 읽는 방법으로 이 책을 사용하면 되겠다.

 

여튼, 피해자 입장에서 성범죄 사건과 고소, 재판에 대응하는 매뉴얼북이 절실하다. 관련 기관에서 비매품으로 낸 책은 있지만, 대중적으로 서점에 유통되는 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페미니즘적 해설이 붙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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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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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신간에 읽지도 않고 별점 테러하는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나? 부지런한 페미요정들 같으니라구! 덕분에 고민 없이 바로 주문해 읽었다. (아참, 동녘 출판사 포에버! ) * 추가: <젠더, 만들어진 성>과 같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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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 돋을새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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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 컬럼니스트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체중이나 첫사랑의 고민, 불편한 하이힐 등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도 있고 초경이나 음모 기르기, 섹스, 포르노그래피, 자위, 인공임신중절 수술 경험 등 대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내용도 있다. 저자는 명랑하게 자신의 흑역사를 까놓기도 한다. 레이디 가가 등 멋진 언니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도 있다. 여튼 저자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통해 이런 조언을 한다.

 

중요한 것은 현대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면서 마주치는 온갖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소리를 지르거나 내재화하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하 !"하고 코웃음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 28쪽에서 인용

 

이런 원칙에 입각, 저자가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직장 성희롱에 대응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분과 에디터가 자기 무릎에 앉아 '승진'에 대해 상의하고자 했을 때, 그를 놀리고 싶었던 나는 그의 무릎 위에 있는 힘을 다해 푹 눌러앉았고, 그 상태로 담배를 피웠다.

"혈액순환 안  되시죠?" 나는 명랑하게 물었고, 그는 땀을 흘리며 기침을 했다.

- 183쪽에서 인용

 

어떤 책을 읽든 시대적 배경과 연관해서 읽는 나로서는, 1978년생 저자가 성장한 당시 영국 사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책 <비밀 일기>와 영화<디스 이즈 잉글랜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들이 성장하던 대처 시대의 암울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메인 그리어의 책들과 다이애너비의 삶이 당시 영국 소녀들에게 얼마나 큰 각성의 계기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론서가 아니고 유명인의 경험을 담은 칼럼 모음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영국식 유머다.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이 종종 있다. 10대부터의 환각제 흡입이나 섹스 등등의 에피소드가 와 닿지 않는다. 이거, 내가 어느덧 꼰대 세대가 되어 나만 이해 못하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포르노그래피 자체가 아니다. 포르노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네안데르탈인 - 어느 행복한 날, 그는 원숭이 허물을 벗고 나타났다 - 의 첫 번째 행위는 동굴  벽에 거대한 성기를 지닌 남자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어쩌면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첫번째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성기와 장식에 큰 흥미를 갖고 있으니까.

- 56쪽에서 인용

 

성적인 언급이 많은 편인데, 위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이지 흥분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네안데르탈인의 거대한 성기 그림이라니! 우리 그이를 이렇게 왜곡하다니! 구석기 시절 유럽의 동굴 벽화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크로마뇽인이 그렸다고요! (네안데르탈인도 동굴벽화를 그렸다는 주장이 최근 나오고 있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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