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언젠가 터질 것 같은 머리와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붙여잡고 방안에 들어앉아서 이게 삶이냐고,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냐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 힘겨움 속에서 눈에 들어왔던 건 책장에 수북이 쌓여 먼지만 더해가던 책이었다. 그중 눈길을 끌던 책을 골라잡아 단숨에 읽어내리며 진통제 같은 글귀를 발견했던 그 체험은 내 몸속에 남아 숨 쉬는 시간이 책 읽는 시간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기억들은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으면 늘 깨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찾아낸 진귀한 글귀가 일상을 관통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유독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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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시간이다.(p13)

 

'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表象)이다.'

 

그해 여름과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안젤름 그륀과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에픽테토스는 그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치료해가고 있었다.'(p20)

 

'이토록 운명의 벽이 단단하다는 것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어. 투명 유리창에 머리를 꽝 부딪힌 것 같다고나 할까? 그때 선배 생각했어"

 

"내 생각을 왜?"

 

"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선배가 그런 말 했거든, 그 말 생각한 거야. 그래서 병가 내고 책 많이 읽었어. 읽었던 책도 또 봤는데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하나 더 열리는 그런 느낌. 그 문을 여는 열쇠는 고통이었어, 운명처럼 보였던"(p214) ###

 

고단했던 그녀의 삶 만큼이나 그 고단함이 느껴지는 글을 취하듯 읽다보면 글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에 강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2. 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듯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는 다섯 가지의 단편이 있다. 그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을 뺀 세 가지 <월춘 장구><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맨발로 글 목을 돌다>에 화자는 공지영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나는 읽는 중에 너무 어리둥절해서 몇 번씩 표지를 들여다보며 '공지영 소설'이란 문구를 곱씹어 보곤 했다.

 

 

이렇게 화자를 작가의 이름으로 써놓고서 자전적으로 버무렸는데 이게 정말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인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대의 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패를 읽어낼 수 없는 선수처럼 어리둥절해져  출판사 블로그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는 글을 읽으며 소설이긴 소설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소설이면 어떻고 에세이면 어떻냐만은 그래도 소설이라면 그 허구성에 대해 에세이라면 그 진실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으련만. 작가의 글에는 그만큼의 경계가 없어서 자칫 그녀의 소설을 그녀의 삶이었노라 오해를 사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아직 공지영 작가를 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나에게만 걱정스러운 부분이려나.

 

 

3. 타인의 취향을 안다는 것.

 

누군가의 취향을 안다는 건 그만큼에 거리가 살가워졌다는 뜻이겠지만, 또 그만큼의 삶에 무게를 얹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그 취향이라는 것이 내 취향과 겹칠 때는 문득문득 신경 써지는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나와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라면 거의 책일 텐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서점가에서 눈에 띄는 날이면 문득 그 사람이 떠올라 책을 구입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분야를 알게 되고 작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작가가 공지영 씨고 공지영 씨의 책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분은 우리 어머님이다.

 

아버님 댁의 서재에 유독 한 작가의 책이 많았는데 살펴보니 공지영 씨의 책이었고 그렇게 어머님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어 좋았다. 비록 그때까지 공지영 씨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어떤 취향이 일치할 때의 기쁨이 컸던 탓에 그 이후로는 공지영 씨의 신간이 나오면 서둘러 구입해서 읽고 어머님께 전해드리며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했던 순간들이 연등처럼 피어오른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으실 어머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지. 찾아뵙지 못한 어버이날에 죄송스러운 마음 한가득 담아서 책갈피 속에 고이 접어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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