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이 참 좋아 7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 우리집은 한 달에 두세번 목욕탕에 갔다.

 

언니, 나, 여동생, 남동생이 손에 손을 잡고 엄마 뒤를 종종거리며 쫓노라면 집 근처 목욕탕이 나왔다. 자식이 남들보다 두 배는 많았기에 엄마는 늘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내렸다. 누구는 욕탕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가 좋은 자리를 맡아야 했고, 또 누구는 깨끗한 의자를 식구 수만큼 안고 돌아와야 했으며 또 누구는 엄마가 도구를 꺼내놓는 동안 어린 동생을 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목욕 준비가 끝나면 엄마는 순번대로 우리의 등을 밀어주시곤 했다.

 

우리는 항상 순번이 될 때까지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온탕을 싫어했다. 살갗에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데임을 사람들은 어떻게 참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두 눈을 꼭 감고 태연하게 앉은 어른들이 등에 뜨거운 물을 들이붓고 뜨거운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혀올 즘이면 드디어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러면 의자에 앉아 나에 작은 등을 맡겼다. 언니를 끝내고 이어지는 차례인지라 엄마의 힘이 그렇게 많지 않음이 느껴지지만 언제나 때 타월은 아파 눈물을 찔금거렸다. 그렇게 내 차례가 끝나면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어린 동생들과 소꿉놀이 비슷한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형제들의 때밀이 시간이 끝나면 엄마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몸도 구석구석 씻어야 했고, 집에서 몰래 가져온 빨래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에 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렇게 사 남매의 목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하얀 빨대가 꼽아진 요구르트를 사주셨고 남은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던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바로 이 그림책 <장수탕 선녀님>을 만나고부터다.

 

요즘은 대중목욕탕에 가는 일이 부끄럽다. 함께 벌거벗고 씻으려니 영 엄두가 안 난다. 아마도 스무살이 거의 넘어서부터는 대중목욕탕에 가는 일이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목욕탕은 추억의 공간이 되었는데, 백희나 작가님의 그림책을 보고 얼마나 실실거리고 웃었던지 또 우리 사 남매가 엄마의 뒤를 종종거리며 쫓던 추억들이 즐겁게 떠올랐는지 모른다.

 

 

"큰 길가에 새로 생긴

스파랜드에는 불가마도 있고,

얼음방도 있고 게임방도 있다는데...."

 

 

오늘 덕지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장수탕에 왔다. 큰 길가에 새로 생긴 스파랜드라는 곳도 있는데 엄마는 늘 한결같이 장수탕에만와 심통이 난다. 그래도 한가지 이 장수탕에서 신나는 일이 있다. 그건 목욕을 끝내면 사주시는 요구르트와 냉탕에서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씻는 동안 덕지는 냉탕에서 신나게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이상한 할머니가 나타나 덕지에게 선녀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하늘나라로 못 올라간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셨지만 덕지는 왠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 함께 물장구치고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으며 놀이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을 가리키시며 저건 뭐냐고 물으신다.

 

 

" 그런데 애야, 저게 도대체 뭐냐?

아주 맛나게들 먹더구나."

선녀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가르키며 수줍게 물었다.

 

' 요구르트요."

"요.....요구릉?"

" 읍,,,잠깐만요!"

 

 

덕지는 할머니가 궁금해하시는 요구르트를 드리기 위해 뜨거운 온탕에서 때를 불리고 때를 미는데

 

 

 이 그림책에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덕지가 가장 좋아하는 요구르트지만,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드리려는 순수하고 순박한 마음이 이 두 장의 그림 속에, 덕지의 표정속에 고스란히 담긴 것만 같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이 그림책에 가장 코믹했던 장면은,

 

 

 

덕지가 수줍은 표정으로 내민 요구르트를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는 할머니의 표정이 아닐까 싶다. 이후의 이야기가 더 남았지만 생략하겠다. 그저 이 그림책을 내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펼쳐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그림책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다. 손수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사진으로 담아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장면마다 생기가 느껴졌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이 섬세하게 느껴져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한때 <구름빵>이라는 작품으로 출판사와 마찰이 생겨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는 백희나 작가님이 이제는 법의 보호를 받으며 활동을 하신다는 이야기에 안도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은근히 바라며 응원하게 된다.

 

어떤 그림책은 추억을 선물한다. 이 그림책이 그렇다.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떠올려주며 내게도 목욕탕이라는 추억의 장소가 있었음에 행복하게 했다.

덕지가 머리끈으로 사용한 사물함 열쇠며, 목욕 끝에 물었던 달달한 요구르트와 빨대의 감촉까지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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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0 0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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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0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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