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언젠가 통화중에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가 없을때 말야....'라고. 그때 나는 앞뒤 생각도 없이 반사적으로 그런소리하지 말라고 덜컥 화부터 냈다. 하지만, 엄마는 초연해진 음성으로 '언젠가 겪게될일 너도 이제 생각해야 한다'던 말에도 소리 소리를 지르며 말문을 막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게 있어서는 안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규정짓고 강력하게 항의했던 순간들이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으며 문득 깨닫는다. 나는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본적 없는 '죽음과 이별'이라는 감정을 엄마는 이미 오래전에 엄마의 엄마로부터, 혹은 엄마의 아빠로부터 이미 경험했노라고. 그 지옥같았던 순간들을, 예고없이 찾아오는 악몽같은 순간속에 남겨질 자식들에게 엄마 스스로 삶을 정리하듯 이야기하며 일찍 노출시키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 '죽음'에 대한 느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의 5단계적 의미 즉,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나 가족에게서 나타날 수 있고 그 고통스런 터널은 끝이 없음을 머리로만 이해 할뿐이다. 그런데 롤랑 바르트의 일기를 읽으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란,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면 끝내 살아갈 수 없는 처연한 고통의 실체임을 느낀다.

 

 

'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런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움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p90

 

'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p62'

 

 

나는 책을 읽기 전부터 단단히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궈뒀다. 이 책은 롤랭 바르트라는 사람이 자신의 엄마를 애도하기 위해 작성된 일기일뿐이라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나의 엄마와 아빠는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꺼라는 헛된 꿈을 간직한채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처연한 슬픔을 조금씩 들여다보며, 그가 느끼는 슬픔에 조금씩 침몰하며 이미 정해져있는, 인간으로써 거스를수 없는 굴레가 있음을, 그 굴레가 언젠가는 찾아오게 되리라는 슬픈 예감에 전율하게된다.

 

 

' 슬픔 '

우울을 앞세워 무거운 마음을 약물에게 맡겨버리는 짓은 있을 수도 없는 천박한 짓거리다. 마치 이 무거운 마음이 무슨 병인 것처럼, 무슨 '집착'인것처럼. 그건 모두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자기 방기일 뿐이다. 이 무거운 마음이야말로 나만이 알고 있는, 나만이 갖고 있는 나의 재보임에도 불구하고...."p173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런 슬픔에 침몰하는것은 어떤 병적인 집착도 의미도 아니라는 것을. 온전히 슬픔 앞에 벌거벗겨진 인간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롤랑 바르트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뒷면에 실린 '해설'편에 '바르트의 슬픔'이란 제목의 글에 서글픔을 느낀다. 한 인간으로써, 평생 끊을수조차 없는 탯줄로 연결된 자식과 어미의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을, 프로이트의 이론을 들어 낱낱이 해부해내는 '현대'인들의 시각이란 무엇인가. 그가 고통을 거스를 수 없는 한 인간으로써 처절한 슬픔과 고통의 아릿함을 우리는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현대'라는 잣대는 이렇게도 잔인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각 조각 내며 뭔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탐욕적인 시선으론  절대로  롤랑 바르트의 슬픔에 침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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