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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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에 이동수단으로 우리 가족은

기차와 버스를 이용한다.

 

올해 인터넷 기차예매 날짜는 9월1일 경부선.

9월 2일 호남선을 예매할 수 있다.

예매시간은 오전 6시부터 15시 까지다.

해마다 전쟁이 아닐 수 없다.

 

기차예매하는 날이면 5시 40분쯤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앉는다.

그리고 6시 정각 코레일에 접속해

예매를 시도하지만, 그 시각 함께

접속한 사람들이 1000명 가까이

될때가 많아 인내심을 요한다.

자칫 창을 나갔다 들어오면 낭패.

처음부터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창을 절대 나가서는 안된다.

 

거기다 예매할 수 있는 시간은 3분.

우물쭈물 뭔가 확인할 틈도 없이

후다닥 헤치우고 나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나에 친정과 시댁은

극과 극의 거리.

1일에는 경부선을 2일에는 호남선을

예매해야 하는지라 날이 서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에

가기위해  그 새벽시간

예매창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애잔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색다른 시각으로

본 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안도현 저자다.

 

 

' 귀향'

 

지난해 늦가을에 연어는 1만 5000킬로미터의 여정을

마치고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1월 말,

그때 산란해놓은 알 속에서 새끼 연어들이 깨어나 부화를

할 때다. 강물 속에서 봄을 기다리면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새끼 연어들 중에서는 입신양면을 꿈꾸는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3~5년 후에는 다시 모천

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설이 코앞이다.

연어가 모천의 냄새를 쫓아 돌아오듯이 전국의 고속도로에는

'연어 자동차'들이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p86

 

고향을 향해 이동하는 행렬을 '연어'에 비유한 시인의

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고향을 가기 위해 분주해질

'사람'들의 모습이 더 이상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천킬로미터의  어미품을 쫓는

'연어떼'가 되어버렸다.  꽉 막힐 도로의 정체시간이,

수많은 인파의 행렬로 명절이면 어김없이 밀려들던

짜증이 더 이상 짜증스러워질것 같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고 나는 '연어'가 된것이다.

 

 

책을 읽으며

글맛에 빠진다는게 이런것일까?

 

무심코 스쳐던 일상이,

저자의 눈길이 닿는 순간

새로운 세포들로 깨어나는 것만 같다.

 

' 기별'

 

그렇게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잠잠해지자

벚나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잎사귀를 빨리 땅에 떨어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잎사귀 끝까지 연결돼 있던 수분

공급선을 끊는 일이 시급했다. 물과 영양을 싣고 가던

잎맥 속 모든 트럭의 운행을 중지시켰다. 그렇게 한 가지

조처를 내리는 데도 벚나무는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나뭇잎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찮았다. 영원한 것은 없는거야. 나뭇잎들은

앙앙대며 차갑게 울었다. p30

 

 

얼마전부터 베란다 텃밭엔 시들어 버린 가지와

잎들이 떨어져 지져분하게 보였다.

작은 바람결에도 우수수 떨궈내는

잎 때문에 짜증이 밀려오곤 했다.

 

그런데 '기별'을 읽는 순간,

가지마다 앙앙거리며 차갑게 이별을

준비했을 그 순간들이 느껴져

식물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안도현의 발견>을 읽으며

가지 가지 수 많은 발견들이 마음에

스몄다. 매사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고

느껴진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감이

없어 늘 고민스러운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진다.

 

저자가 발견한 일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지 않지만, 깊게 발효된 글맛이

취하는듯, 아리는듯 머리속을 자꾸만

맴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읽는다는것은

그것은 책을 읽기 이전의 상태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어떼'와 '기별'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언어적 세포를

흔들어 깨워주는 일상의 번개불과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느꼈다.

 

'눈은 더이상 내리는게 아니라, 나리는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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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8-2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눈은 나리는거죠^^

해피북 2015-08-28 11:21   좋아요 1 | URL
오로라님^~^
백석평전을 읽기전 먼저 안도현저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읽어봤는데 상당히 매력적인 분이신거 같아요 팬이 되었답니다 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8-28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 힘이 있는 사람 있어요. 그 힘을느끼면 전율이 느껴져요~^^

해피북 2015-08-28 11: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요!
그 전율을 느낄때 책을 더이상 읽을 수 없고 머리속을 온통 채울때의 느낌이란! 한번 맛보면 헤어나기 힘든 느낌인거 같아요 계속 찾게만 되는 그런 맛같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