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읽기 공부법 - 책 한 권이 머릿속에 통째로 복사되는
야마구찌 마유 지음, 류두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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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책벌레로 유명한 이가 있다면 당연 이덕무일테지만, 그 앞전 시대에는 <사기>의 '백의열전'만 무려 1억 3천번 읽었다는 백곡 김득신이 있었다. 10살에 글공부를 시작할 만큼 학습능력이 부족했고, 학습한것을 자주 잊어버려 주변에서 학습 포기를  권유할 정도로 공부를 못했던 그였지만, 남들이 한 번 읽는것을 열번, 백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학습법을 통해  59세에 과거 급제 라는 결실을 맺고 당대 명시인의 반열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학습에 그닥 관심이 없던 탓인지 내게도 특별한 학습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져 열심히 읽고 쓰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온전한 내 지식으로 만드는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알 뿐이다.  이번에 읽은 책 <7번 읽기 공부법> 역시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기>의 백의열전만 1억 3천번 읽었다는 김득신에 비할바 못되지만, 거듭 읽기를 강조하며 반복학습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7번 읽기의 핵심은 이렇다. 처음부터 깊이 파고들어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며  첫번째 통독(훑어읽기)을 통해 표제를 인식하고, 두 세번째 통독을 통해 전체적인 줄거리를 인식하고, 키워드를 인식하는 네번째를 끝내면  점차 심화과정을 거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며 읽어야 하고 일곱번째는 심화, 구체적 질문과 확인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반복학습법은 온전한 내 지식을 위한 학습법은 아닌듯 싶다.  통독(通讀)으로 책의 대략적인 줄기를 이해하고 반복 학습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단순한 암기 학습으로 연결된다. 김득신이 반복 학습을 통해 기억하고자 애썼던 시간들. 혹은 어린시절부터 학습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내가 망망대해의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또는 입으로 구전되는 신화에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세기를 관통하는 고전, 철학, 역사에 관심을 갖는건 배우고 싶다는 욕구, 한뼘더 성장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인데 이 책에서 말하는 학습이란 학교에서 가르치시는 선생님과 교수법만 다를뿐. 암기해야하는 것들을 좀 더 편하게 보이게 할 뿐 진정한 배움의 욕구로는 느껴지지 않아 실망스럽기도 했다.

 

 

 

물론 저자 야마구치 마유는 이 학습법을 통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사법시험에 통과하면서도 1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은 재무성에서 일하는 결실을 맺었다. 그녀의 꿈이 실현된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과정속에서 학습에 대한 열정이 진지한 배움의 욕구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읽혀지는 저자의 생각에 나는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하며  이집트 왕자의 일화를 떠올려본다.

 

한 이집트 왕자가 당시 위대한 수학자인 프톨레 마이오스에게 기아학을 배우러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왕자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군사 훈련과 사냥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기하학을 최대한 빠르고 쉽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왕자를 돌려 보냈다. " 세상에 수많은 왕도가 있지만,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 단단한 공부 / 윌리엄 암스트롱/ 유유출판사>

 

위의 일화처럼 공부에는 왕도란 없다. 다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접근하냐에 따라 즐거울 수 있고. 지옥이 될 수 있다. 내가 학생이 아닌 관계로 이 책을 쉽게 평가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 다시 학생이 된다면, 만일 내게 그런 시간이 주워진다면 나는 천천히 즐겁게할 수 있는 거북이 공부법을  택할 것이다.

 

 요즘은 서점가에가면 역사부터 철학, 과학, 수학등 재밌게 읽으며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즐비하며 쉽게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다. 어떻게 공부시간을 보내느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는 모두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같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도, 또 힘겹게 만드는것도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 노력했던 시간들이 한 순간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 세상을 살아가는 단단한 텃밭이 되어 자양분이 되어줄런지는 모두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다시한번 공부에는 왕도란 없다. 자신 스스로에게 배움의 원초적인 질문(왜 배워야만 하는가)을 찾아가는 첫 걸음이 바로 학습의 시작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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