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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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한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마법사가 있었다. 마법사는 사람들이 자주 마시는 우물에 미치는 마법의 묘약을 풀어놓았다. 다음날 아침 그 물을 기러먹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쳐 왕국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왕국엔 왕의 일가가 사용하는 우물은 따로 있었고 왕의 일가는 무사할 수 있었다. 백성들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 왕은 칙령을 선포하여 나라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미쳐버린 백성들은 도리어 왕이 제정신이 아니라며 궁전으로 몰려와 왕권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실의에 빠진 왕이 모든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곁을 지키던 왕비가 말했다.

 

" 우리도 이 우물 물을 마셔요, 우리도 이들과 똑같아 질 거예요"라고

 

돌발 퀴즈~~!!

우물 앞에 선 왕은 과연 물을 마셨을까? 마시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파울로 코엘료의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일부분이며 퀴즈의 정답은 우물 물을 마신 왕이 죽을때까지 왕좌를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마법사만 불쌍한 꼴이 되어버렸다. 기껏 왕국을 무너뜨리고 왕좌를 차지할 욕심이였을텐데 왕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미쳐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법사는 왕의 신념을 너무 믿고 있었던것이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분명 처리해야하는 일을 알면서도 함께 모르는 척 해야할때 혹은 분명히 처리해야 하는 일을 혼자라도 처리하고 있을때 느껴지던 따가운 눈초리에 포기하게 될때,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눈치가 보여 그 행동을 포기해야 할때, 그럴때마다 나는 시커먼 우물 앞에 섰던 왕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우물 앞에 당당히 맞선 사람을 알게 되었다. 아니 '당당히'라는 말은 좀 부족한거 같다. '신랄하게' 이게 좋겠다. 책 읽기를 가장한 정치, 의학, 교육, 민생, 종교까지 세상사 다루지 못하는 분야가 없는 그의 이름은 '서민'이라 쓰고 '기생충 학자'라 읽는다.

 

얼굴이 못나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얼굴도 못나고 학업도 형편 없던 나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싶어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지만, 뭐 어째든 책을 관통하는 세상읽기는 이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민 저자의 통찰력은 놀라웠고, 그의 신념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는 뿌리 깊은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쉽게 꺼낼 수 없었던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들. 쌍용 자동차,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사건, 노무현 대통령서거, 4대강 사업의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또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관행, 교회들의 부정부패, 황우석 배아 줄기세포의 내막, 부러진 화살로 살펴본 법조계의 불편한 진실등 몇년동안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책읽기는 겁이날 정도로 날카로웠다.

 

마치 눈을 뜨지 못한 심봉사에게 세상의 밝기를 알려주는 것처럼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생각들을 또 무관심했던 의식들을 흔들며 이 우물 물은 절대 마시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좀 달라보였다. 내가 읽어온 어떤 책 속에도 이런 신랄한 비판은 들어본 적 없었는데 현직 대통령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도 모자라 유머러스한 풍자까지 그려내는 그의 독서내공이 마냥 부러웠지만, 비판의식이 없고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도 없는 젊은 세대p46들을 끊임없이 질책하는 것만 같아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반발심에도 단 한마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건 그간 너무 무심했던 세상살이가 내게 어떤 시각도 틔여주지 못했고 민 저자의 이야기만 쫓아가기에도 너무 벅찬 시간일 뿐이였다. 현대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한 내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걸 느꼈다. 이 우물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할 수 있을 만큼과 서민 저자의 이야기에 조목 조목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들이. 그때 까지 틈틈히 오염된 세상에 맞서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볼 생각이니  서민 저자는 부디 그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고, 깊은 샘물이 되어 마르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지켜 주시기를!

 

마지막으로 정찬우님의 추천사가 참 인상적이다 

 

" 민이 형이 여러분에게 책을 권유 한다면 책이 아닌 세상을 권유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원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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