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 나의 삶 -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조남희 지음 / 오마이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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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집어든 제주 여행기. 아니 이번엔 여행기가 아닌데? 정착기 그래 '착륙기'다. 서른해를 서울에서 보내던 나름 고연봉의 서울 뇨자( 타짜의 '나 이대나온 뇨자야~'의 명대사가 갑자기 떠오르지?)가 주말에 필사적으로 다녀오던 제주도에 푹 빠져 그곳에 정착해버린 이야기. 그런데 이 책은 다른 책들과 좀 달랐다. 왜냐면 '리얼'하니까.

 

 

 

 

어느날 지도까지 펼쳐들고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신랑이 물었다. 도대체 왜 제주도에 가고 싶으냐고. 쳇. 몰라서 물어?  ' 여길봐봐.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도로와 옥색빛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를 품에 안고 기기 묘묘하게 생긴 바위와 돌들을. 그리고 셀 수 없이 펼쳐진 오름들의 천국! 허씨들을 위한 여행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문화유산기 7권 제주편에 보면 '허씨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으로 출발하는데 여기서 '허'씨는 렌탈 카를 뜻한다.)의 천국이라는 말도 모르는감! 라며 얼버무렸지만, 막상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정말 나는 왜 제주도를 이토록 꿈꾸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우리의 수백년의 역사 속에선 유배지의 한서린 땅, 발길이 닿는 곳 마다 전설과 사연으로 슬픔이 스며든 땅을 나는 왜 이토록 간절히 원하게 되었는가를 깊이 깊이 생각해보면 결론은 단 하나. 내 걱정과 고민스럽던 마음이 그곳에가면 모두 해소가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랄까. 천혜의 자연 앞에서 또 무구한 역사의 숨결 앞에서,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마음과 드넓은 바다를 품에 안고 살아가면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며 일상을 호호 아줌마 처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것 같은 나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노라 고백 해야할것 같다.

 

 

저자 조남희씨 역시 다르지 않았다. 회사 7년차 생활.  황금비율의 소맥 말기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어깨통증 그리고 일상에서 좀처럼 생겨나지 않던 삶의 여유. 해뜨면 집을 나섰다가 깜깜한 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면서 자주 다녔던 대평리의 게스트 하우스를 기점으로 작은 연세집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을 얻는 것 부터 쉬웠던건 아니다. 요즘은 부쩍 오른 제주의 땅값 때문에 적은 돈으로 원하는 집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간 인연을 맺어온 게스트 하우스 식구들이 아니였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을 그녀의 집 얻기 프로젝트는 역시 어딜가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제주에 보금자리를 틀어놓고 그녀가 좋아하는 오름에도 오르고, 지인들이 찾아오면 맛집으로 데려가 한라산 등반( 한라산 소주를 마시는 일을 한라산 등반이라고 한다고) 을 하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길 몇달 후. 문득 삶속에 젖어드는 외로움들과 저자처럼 제주도에서 정착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과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고 픈 마음에 셰어하우스(한 집에서 여러개의 방을 나눠 쓰는 일) '오월이네 집'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마음이 맞는 입주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마음적으로 상처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된 저자. 다행스럽게도 좋은 입주자와 좋은 이웃을 만나 그 인연으로 함께 밴드 활동도 하며 지내는 모습이 흐믓하게 바라봐 지기도 했다. 고사리도 모르던 서울 뇨자가 오름에 올라 저자에게 손짓하는 앙증맞은 고사리의 자태에 빠져 한보따리 끊어다 마당에 널어놨더니 다음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된 사연이나, 한밤중에 쾅쾅 문을 두드리며 소개팅을 주선하시던 앞집 할머니의 이야기, 집게 벌레, 지네, 바퀴벌레등 시시때때로 출몰하던 벌레에 관한 이야기와, 계절마다 집을 단장하며 더위와 추위, 태풍에 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은 여느 시골집 풍경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나와 동갑인 그녀의 책을 읽으며 또 나와 같은 희망을 품고 앞선 제주도에 착륙해 우여곡절을 겪은 그녀의 삶을 엿보며 유토피아를 꿈꿨던 나의 환상이 얼마나 덧없던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천혜의 환경을 품에 안고 살아가기에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닳게 하는 쉼터의 공간. 질식할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번쯤 살아가고 싶은 자연을 품에 안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환상의 섬'이 되었지만, 역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일 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울뇨자와 제주뇨자의 기로에 서서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선그어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나의 고향은 전라도, 신랑의 고향은 서울.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곳은 경북. 서로 다른 지역의 남녀가 연고지 없는 지역에 둥지를 틀어 생활하길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에 대해 한번도 낯설다는 생각을 갖어본 적 없었던거 같다.(물론 제주도는 이곳과는 다른 특수성(언어,문화, 환경)이 있지만) 다만 '우리'라는 존재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소중할뿐. 그러니까 남희씨도 그런 오묘한 경계에서 방황하지 말고 그저 '조남희'라는 자신을 잊지 말고, 더욱더 리얼하게 일상을 만들어가는 모습, 좋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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