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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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씩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책을 읽고나니 너무 좋은 분임을 알겠고 우리 나라 문화유산의 수호신이라는 말도 가슴에 와서 콕 박혀버렸건만, 글로써 담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게는 『간송미술 36』이라는 책을 읽으며 보았던 서화들이 가득했고 많게는 책에서 보지 못했던  불상, 도자기, 석탑등을  만나게 되었는데도 아! 하며 써내려가지 못한 이 답답한 심정을 뭐라 말해야할려나.

 

대략적인 설명을 하자면 간송 전형필선생님의 전기를 쓰신 이충렬 저자는 2005년도에 열린 ' 개관25주년 진경시대전'에 관람 후 큰 감명을 받고 저술하기까지 많은 자료수집과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는 전기문 형식으로 진행될꺼라 생각했는데 소설 형식으로 꾸려져 이해하기는 한결 쉬었고 곳곳에 삽입된 사진과 자료들로 이충렬저자의 고충과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 간송 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선생은 나이 스물네 살 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유유자적 편안하게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많은 재산과 젊음을 바쳐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들을 수집해서 이 땅에 남겼다.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 중에서도 꼭 찾아와야 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값을 따지지 않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했다'p4

 

언제나 허허허 하고 웃어주실듯 푸근해보이는 인상의 이분은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님이시다. 간송은 산골짜기의 흐르는 물과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처럼 살라는 위창 오세창 선생님이 지어주신 호인데 전형필 선생님은 정말 일생을 흐르는 물처럼, 푸른 소나무 처럼 사시며 우리 문화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시는 분이였다.

 

아무리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도 일제 치하 시절이라면 그 돈을 온전히 사용하기가 어려웠을텐데 선생님은 약관이 나이에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아낌없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사용하셨다. 그럴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유산을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데 쓰시지 않고 오직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길이 민족의 혼과 얼을 지키는 길이라 여기시며 후손들에게는 온전히 돌려주겠다던 신의가 더해져 일본인들 조차 선생님의 숭고하신 뜻을 방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셨던 선생님의 성품 덕분에 늘 곁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복이였노라 이야기하고 싶다.

 

어릴적부터 자주 드나들던 한남서림을 인수하면서 부터 이순황이란 믿음직한 거간과 일본인 거간 신보와 인연을 맺고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던 간송은 스승 오세창 선생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근역화휘>와 <근역서화징>을 토대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한남서림으로 찾아오는 거간꾼들을 살뜰히 맞아주며 매물로 나온 유물부터 경매에 나온 물건들까지 살피며 온전히 문화재를 수집하는데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다. 우리 문화재를 찾는데는 국경이 없었다. 때론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아슬아슬하게 되찾아온 <혜원의 풍속화첩>이야기들도 흥미 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였다. 일본인들의 눈을 속여가며 짓게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 '보화각(빛나는 보물로 가득한 집)'이 완공되어 개관식을 기다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돌아와보니 힘겹게 모아놓은 유물이 약탈되어 다시 거리로 내몰린 모습을 볼땐 울컥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일대기로만 보기보단  우리나라 문화사를 공부하기에도 좋았고, 전쟁이 발발했던 시대적 묘사 덕분에 한때 손에 땀을 쥐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였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더 깊고 풍부하게 담아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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