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영화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감독의 생각을 그린 것이다. 독자가 독서를 통해 글을 쓰듯 감독은 시나리오를 통해 받은 영감을 영상으로 만든 것 인데, 그렇게 볼때 영화는 감독의 독후 활동인 셈이다.

 

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의 원작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글이라는 매체로 만들어 놓은 공간에 영상이라는 옷을 입혀 재 해석시킨 영화는 원작과 다를 수 도 있고, 같을 수 도 있지만 전자가 훨씬 많음을 느끼게 된다. 그 만큼 '책' 이라는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영감은 모두에게 같을 수 없으며 우리가 영화를 즐기는 것 은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 영화와 원작이 있다면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영화를 보기 전 읽어도 좋고, 영화를 관람 후 읽어도 좋겠다. 전자는 각자 펼쳐놓은 상상의 나래와 감독의 상상력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비교할 수 있어 좋고, 후자는 영화에서 미쳐 발견하지 못해 놓쳤던 부분과, 받았던 감동들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수 있어 좋다.

 

 

이 소설 역시 원작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는데 인생의 홍역과도 같은 청춘의 열병(사랑, 일, 인생)을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의 단편과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소박한 이야기를 그린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 이라는 두 가지의 단편을 담고 있고, 영화에서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만 다루고 있었기에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뒷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 다카코와 삼춘 사토루의 대화를 통해 울림을 주는 글귀들이 많아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25살의 주인공 다카코는 연인이자, 회사 선배인 히데야키로 부터 결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상실감에 빠진다. 매일마다 부딪치는 고통으로 직장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그녀는 집안에 틀어박혀 현실에서 도피처로 잠만 자는 생활을 이어간다. 어느 날 삼춘 사토루로 부터 자신에게 와 달라는 전화를 받은 다카코는 진보초 헌책방 거리의 '모리사키 헌책방'으로 가게된다. 허리가 아픈 삼촌을 대신해 오전에 서점을 보며 2층에서 생활하게 된 다카코는 여유 시간이면 늘 잠만 자는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돈벌이도 좋지 않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헌책방을 운영하는 삼촌의 생활에 궁금증을 느낀 다카코는 삼촌에게 모리사키를 운영하게된 이유를 묻게되고, 삼촌은 자신이 지나온 '청춘'의 터널에서 '책'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한마디로 다양한 세계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 그래서 나의 여러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나만의 인생을 찾길 원했던  거지'p48 

 

 

많은 사람들이 책과 여행을 통해 부족함을 배우고 잠시 삶을 멈춰 되돌아보는 것 처럼 사토루 역시 혼란스럽던 청춘의 홍역으로 책과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려 노력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고, 다양한 책을 읽어 보아도  길은 그곳에 있지 않았음을. 돌아와보니 자신의 길은 자신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지금의 모리사키 헌책방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생이란, 길을 찾아 여행하는 여정이며 다카코는 잠시 그 길 위에 멈춰 쉬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그래서 외삼촌은 여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많은 걸 배웠나요?'

 ' 글쎄다. 실은 어디를 돌아 다녀도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거야. 늘 방황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다네다 산토카가 지은 '하이쿠( 일본 전통시가 문학의 하나)에도 있잖니? '헤치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푸른 산' 이라는 시구가 'p51

 

' 그렇지 않아. 인생이란 가끔 멈춰 서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너라는 배는 잠시 닻을 내린것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다시 출항하면 되지'p48 

 

인생의 홍역은 비단 청춘에게만 해당되는것은 아닐 것 이다. 이것도 저것도 해당되지 못할 미적미적한 내 나이 역시 청춘 못지 않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랑, 일, 인생에 관해 늘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딱히 꼬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답답함이 짓누르는 것인데 삼촌 사토루의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위안을 얻는다. 모든 인생은 그렇게 방황하는 길 위에서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주저 앉아 엉엉 울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 길을 따라 가보라는 격려를 받으며 나는 다카코의 이야기를 마져 읽었다.

 

 

삼촌의 위안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한 다카코는 처음으로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록 잠이 오지 않아 수면용으로 찾긴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필요에 의해 책을 펼쳐 들었는데  작가 무로 사이세이의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였다. 수면용으로 펼쳐들었던 책에 재미를 느끼게된 다카코가 그 다음부터 책에  빠져들게 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책의 재미와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날 출근한 삼촌에게 한 달음에 뛰어가 '이 책 재미있었어요!'라며 흥분하여 소리치던 모습이나, 모토 지로가 쓴 『어느 마음의 풍경』의 한 구절에 매료되어 기뻐하던 모습이였다.

 

' 본다는 것, 그것은 이미 그 무엇이다. 자신의 영혼의 일부분 혹은 전부가 그것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예전에 그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은 사람이 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았다. 나 역시 그 부분에 공감했기 때문에 모르는 누군가와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p57

 

 '인생의 어딘가에 우연히 책을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이 독서광이 되는구나'p62

 

 

내가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구절에 스며들때 받았던 감동이나, 책을 읽으며 느끼며 행동으로 옮겼던 부분들이 다카코의 모습으로 겹치면서 함께 흥분하고 뭉클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걷던 일, 진보초 헌책 축제의 날의 풍경들이 그려지면서 실제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거닐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더불어 헌책 도매 시장의 풍경과, 가정에 방문하여 헌책을 수거하던 모습과 길거리에서 우연히 옛 연인을 만나게된 모습들은 감독의 영감으로 그린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원작과 영화가 있다면 함께 보는 것이 즐거움을 상승시키며 더 오래 작품을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단편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 편은 5년동안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외숙모로 부터 그동안의 삶을 전해들으며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되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번째 단편에선 다카코가 외숙모와 '와다'라는 남성을 통해 서툰 다카코의 사랑이 원숙하게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헌책방을 중심으로 잔잔하게 그려지는 미묘한 변화들을 그린 이 소설엔 큰 결말이나 사건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성 싶다. 그러나 '책' 이라는 소재를 일상적인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해낸 소설이였기에 잔잔하게 울려오는 감동과 즐거움이 내겐 특별했던거 같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 마주할 감정이 두려워 혹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속으로 삭혀내거나, 응어리가 생길때 다카코가 전해주는 메세지를 떠올려 보고 싶다.

 

 

 

' 결국 나는 그 일을 그냥 놔둔 채 오로지 시간이 기억을 풍화 시켜주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반년이나 지난 지금 그의 목소리를 아주 조금 들은 것만으로도 내 가슴속이 이렇게 소란스러워지다니. 결국 응어리를 남겨놓은 채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일로 인해 겨우 깨달았다'p83 

 

삶 속에 불어닥친 문제는 시간의 풍화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힘들고 괴롭더라도 당당히 맞서 인생의 길 위에서 털썩 주저 앉아 포기하지 말자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가보자고 이야기 하고 싶다.

 

 오랫동안 인생의 휴가를 즐겼어요. 내가 있을 장소를 찾아 슬슬 여행을 떠나야죠. 그러지 않으면 아무거도 얻지 못한 채 끝나버릴 거예요.p97 

 

★ 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의 이야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34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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