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개정판 손철주의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사 뒷 이야기 만큼 솔깃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되며 부풀어진 내용은 이미 앞 일의 형태를 구분할 수 없고, 일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일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후 솔깃한 이야기들만 두리뭉실 떠다니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의 모음이 야사(野史)다. 손철주 저자의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는 전세계의 동서양 미술사의 뒷골목을 종횡무진 다니며 떠도는 풍문을 한데 묶어놓은 책인데 특이점은, 미술 평론가이자 미술 담당 기자 생활로 단련된 내공으로 사실에 입각한 풍문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전한 읽을 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저 한담이나 진배없을 이 이야기는 그러나 미술의 철옹성에 틈입하는 데 쓸모 있는 연장이 되리라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이 글들이 미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오히려 변방에서 들리는 소식에 가깝지만 미술과 가깝게 지내려면 이 정도의 소식도 보탬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p11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칼럼들을 묶어놓은 책이기에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도 적절한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천재의 끼인듯, 희대의 미치광이인듯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세계와  칼을 들어 사회 혁명을 꿈꿨던 '콜비치'의 판화, 휴머니즘에 기초하여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밀레'의 작품들, 주체할 수 없는 과한 표현력으로 도리어 빈축을 사야했던 '프리다 칼로'의 <나의탄생 > ,무수한 염문과 풍문을 일삼다가 잔이라는 아내를 맞이하며 사랑의 결말로 치닫았던 '모딜리아니'의 작품이야기등 짤막한 글귀에 담겨진 미술사는 마치 인생사의 축소판을 보는듯 했다.

 

 

'예술의 혼은 고뇌하는 영혼이며,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이라던 서멋싯몸의 표현처럼( 『달과 6펜스』. 민음사)  고뇌의 흔적이 영력한 추상화<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의 뒤생의  작품을 만날때면 나의 안목으론 해석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세계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뚜렷하게 각인되어버린 형상들'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일종의 편견처럼 자리잡은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미술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미술계에서 젠체하는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아방가르드'라는게 있다. 열린 마음, 트인 감각, 앞선 정신이란 뜻이 들어있는 용어다. 당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신의 질주를 따라잡기 힘들다. 아방가르드는 그래서 거부당한다, 인정받지 못한다, 안 팔린다는 말도 된다'p279

 

' 내가 초록색을 칠한다고 해서 풀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파란색을 칠한다 해서 하늘을 그린것은 아니다..... 기억속에 뚜렷이 인간된 형상은 실물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p116

 

동서양의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동양화가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었는데 여백의 미, 선의 미, '먹'이라는 컬러에서 표현하는 육채(六彩)의 아름다움이였다. 유홍준 교수님을 통해 무수히 들었던 동양화의 아름다움이 먹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과, 우리 선조만의 독특한 기법이였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도 했다.

 

' 먹은 컬러가 나태내지 못하는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다. 그냥 검은색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칠하지 않은 종이는 흰색이다. 먹을 더하면 검은색. 그리고 바짝 마른 색과 축축한 색, 마지막으로 진하고 옅은색. 그래서 먹은 '육채(六彩)라고 했다'p204

 

                                  < 무제 >  자유푸.  1997.

 

책을 읽다보니 동서양 미술 야사들로 재밌는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각 챕터마다  던져지는 화두(話頭)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아 무작정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마치, 미술작품을 감상할때 화가의 이름을 먼저 알면 선입견이 생겨 작품에 영향이 미치는것 처럼, 던져지는 화두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가만히 돌아보고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라는 저자의 깊은 배려가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덕분에 책의 빈 여백마다 생각을 정리하며 의문점을 적어보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 책의 여백이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기도 했다.

 

 

' 보는것은 아는 것이다. 아는 방식으로 회화는 눈이 선택하고 싶은 부분만 골라내는 원근법을 채택했다. 화가가 그린 그림 속에는 그가 선택한 욕망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감상자는 화가의 욕망에다 자기 욕망의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 초점이 삐긋긋할때, 감상자와 화가의 차이가 발생한다.p289

 

' 미술관에 들렀을 땐 작품 아래 붙은 이름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감동의 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누구 작품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고전이 뭔가. 시대가 지나고 패선이 달라져도 여전히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이 바로 고전 아닌가.p275 

 

 

 

음악이나 책과 달리 미술은 그 희소성에 가치를 두는듯 하다. 쉽게 흉내내지 못할 그 창조적인 행위에 대한 일들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순 없지만, 그동안 나와는 별개의 세계였던 미술사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손철주 저자의 다음 책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통해 '편견'과 '독단'속 그림 감상법을 배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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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26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판으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구판 출판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영원히 절판본이 되어 다시 못 나올 줄 알았어요. 오랜만에 개정신판을 읽어보고 싶군요.

해피북 2014-12-26 07:55   좋아요 0 | URL
저두 이 책 검색해 보다가 구판을 알게되었는데 개정판에 실리지 않은 그림도 있고 내용이 첨삭된 부분도 있는거 같더라구요 ㅎ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나중에 확인해 볼까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