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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일전에 부석사 무량수전에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땐 어떤 의식이 있다기보다, 유명 프로그램(1박2일)의
촬영지였던 호기심에 다녀왔던 때였다. 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 많았던지 무량수전 초입부터 발디딜틈 없이 번잡했고, 덕분에 진득한
관람을 하지 못하고 대충 훑어보고 돌아오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천왕문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과 좁다란 통로에서 서로 부딪치고 밀리면서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놨을까
싶은 짜증이 치밀었던 적이 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니 무식도 이런 무식이 없다 싶어 부끄러웠다. 두번째 답사기에
수록된 부석사 이야기에서 경쾌한 설명과 내력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비탈길을 끝나고 낮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에 이르면 여기부터가
부석사 경내가 된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은 도솔천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는 아홉 단의 석출 돌계단을 넘어야 한다. 그것은 곧 극락세계의 9품(品)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시킨
것이다.'p81~82
'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한 장엄한 화엄의 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 매체로 구현한 것이다'p76
돌계단 하나, 돌축단 하나에도 상징과 미(美)를 담은 이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 나는 단순히
번잡함으로 넓지않은 길을 탓했으니, 나의 생각이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런면에서 아는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느낀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며 '하나의 유적을 답사할 때면 그곳의 내력을 알고 모름에 따라 유물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 의의를 느끼는 데 엄청난 차이가
난다 p281'는 말처럼 배경지식 없는 답사는 그저 눈요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답사기는 첫 권과 내용이 사뭇 달랐다.
1권이 주로 탑과 사지(寺地)를 답사처로 삼고 그 내력과 함께 가람배치(자리앉음새)의 조화에 관한 언급이 주가 되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강줄기따라 펼쳐진 지리산의 동남쪽 탁족(濯足)의 명승지 부터 한(悍)이 서린 아우라지 강과 한탄강, 영풍 부석사, 토함산 석불사, 청도 운문사,
부안 변산 반도까지 민족의 얼과 한, 아픔을 노래한 답사기란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여량땅 아우라지강가에 서서 낙엽송 군락들이 줄지어 정상을
향해 달리는 저마다 다른 표정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수수만년을 저렇게 마주보면서도 단 한번도 만날 수 없음은 바로 그 자신들로 인하여
이루어진 강을 넘지 못함 때문이라는 무서운 역설(逆說)의 논리를 배우게 되었다' p124
' 강(江)!.
강은 대자연의 동맥이자 인간 삶의 젖줄이다. 인류의 문명은 강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거기서 꽃피었다. ..... 그러나 침묵의 강은 단 한번도
증언하는 일 없이 먼데 바다를 마주하고는 유유히 흘러 무한 속에 잠적해버릴 뿐이다. 그리하여 예부터 시인, 문사, 가객, 묵객 들은 강물의
도도한 흐름을 빌려 인생을 노래하고 역사를 이야기하였다'p237
석굴암 보존불에서는 일제치하의 아픔과 문화유산을 지키지못했던 치욕을 읽고, 사북의 탄광에서는 시대의
아픔을 읽었으며. 정선의 아리랑, 동학농민운동, 녹두 장군에서는 민족의 얼과 한(悍)이 서린 우리의 역사가, 뒤바뀐 정권마다 제대로 그려주지
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답사기가 담고 있는 20년의 세월과
오랜역사를 나는 오롯이 다 느끼노라 말할순 없겠지만, 불안한 시국의 한(悍)스럽던 세월과 그 땅을 딧고 살아야만 했던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였다. 비록 교수님 마음처럼 간절히 들여다봐주지 않고, 아프게
바라봐주지 않는 세대들때문에 걱정스러우실 지라도 이 책이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는 현실을 비춰 그 마음이 한 편의 위로가 되시길 바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가지
늘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술학도이신 교수님은 어떻게 이런 풍부한 감수성을 소유하시고 계실까 였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피운다'는 고운님의 찬사처럼, 보이지 않는곳, 말하지 않는것까지 세심히 들려주시는 정서적인 면은 어떻게 키우셨을까
하는 의문이였다.
' 이효석이라는 작가상은 우리 현대문학사상 빼어난 시정과 맑은
문체, 짙은 한국적 서정과 세련된 지성의 문인으로서 깊이 인상지어져 있을것이다. 특히나 문학 소년소녀 취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장
사랑스러운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서슴없이 꼽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p115
그런 의문을 이효석 생가에서 풀수 있었는데 문학을 사랑했던 소년이셨다는 해답을 얻게 되었다. 그로인해
자칫 거칠고 투박스러울 수 있던 답사기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운율과 같은 문체를 띄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고 학창시절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작은 손끝에도 터질듯한 감수성을 소유하게 되는 사춘기에 문학을 불어넣어준다면 그 감수성이 얼마나 광대할지,
풍부할지, 아름다울지 생각만해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학창시절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던 지나날들이 좀 아쉽다는 생각과
지금이라도 부단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