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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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스무살을 지나며 인생의 모진 풍파를 알지 못했던 나의 사랑은 <<천장지구 2( 진목승.1992년)의 아부나 <<모던보이 (정지우. 2008)>> 해명의 사랑과도 같았다. 'endless love'가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했던 나의 청춘은 단 하나의 사랑,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고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의 기준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읽었던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트와 캐서린은 사랑의 기준을 넘어선 집착, 위선, 미련등이 엉클어진 미치광이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서로 사랑했음에도 다른 이들과 결혼하고, 처절한 복수로 자신과 주변의 모든것들을 파멸시켜버리는 모습은 내 사랑의 기준에서 탈락해버린 셈였다. 그렇게 나는 설익은 사랑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었다.

 

 

세월의 모진풍파를 얼굴에 새기며 서른 중반의 가파른 언덕을 넘고 있는 지금. 나의 사랑은,  프렌체스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버트 제임스 윌러.시공사.2002)>>를 이해하게 된 원숙(圓熟)한 사랑이 되었다. 한때 불륜이라 찌푸렸던 마음들을 건너와 세월만큼 빛바랜 사랑을 견디다보니, 사랑의 열정으로 타올랐던 순간들이 그리워 지고 있는 내 모습에서, 프렌체스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나의 벗으로 부터 온 한통의 편지에서  <폭풍의 언덕>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토록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였던가 싶은 생각에, 원숙해진 사랑의 기준들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 펼쳐들게 되었다.

 

   

" 그때 그 언덕 너머로 폭풍이 맹렬히 불어왔어요. 천둥뿐만 아니라 바람도 사나웠고, 그 어느 쪽인지 집 모퉁이에 선 나무를 마구 부러뜨렸어요. 커다란 가지 하나가 지붕에 떨어져서 동쪽 굴뚝 한 모서리가 무너졌고, 돌이며 검댕이 부엌 난로 속으로 와르르 떨어졌답니다.(중략) 저도 그것이 정녕 우리에 대한 심판일 거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p140~141

 

 

 

베르디의 '레퀴엠(Requiem)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사랑했던 캐서린이 에드거 린튼과 결혼할 것임을 엿듣던 히스클리프가 사라지던 날의 모습을 묘사한것이다. 세입자 록우드에게 그날 맹렬히 불어오던 바람소리를  회상해주던 가정부 엘렌의 술회(述懷)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만큼, 변덕스런 날씨로 주제를 표현하며 주인공 히스클리프가 거센 복수극을 시작할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을 나타낸다.

 

 

 

“ 인간이란 얼마나 허황한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세상과 모든 관계를 끊으려 결심하고 마침내 관계를 가지려야 가질 수도 없는 장소를 발견하여 내 운명에 감사한 나였건만, 약한 인간인 나머지 어두워질 때까지 우울과 고독과의 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p55

 

 

“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할 필요도 없는거지.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p133

 

 

황홀한 꿈을 꾸는듯 풍요로운 감정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게 사랑이라지만, 사랑은 현실 속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아마도 서른을 넘어서면서 인거 같다. 갓 스무살 시절엔 사랑을 저울질 하던 캐서린의 못된 모습이, 서른을 넘어서고 보니 현실과 이상사이에서의 갈등 이였음을 느낄 수 있게된 것이다. 사랑 후 찾아오는 다양한 현실의 문제들은 결코 사랑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과, 그 끝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아들때 느껴지는 고통들을 생각해본다면 결코 그녀의 행동이 나빴다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이 선택한 에드거에게 마음을 쏟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사랑을 고백한 캐서린의 이기심이 히스클리프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은 변할수 없는 사실인거 같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이 빚어놓은 결말이며 변덕스럽던 사랑의 열정들과 그 파편들로 스산해진 마음이, 지독히도 잔인스럽던 히스클리프를 만들어놓았던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신랄한 비판과 죽음에 관한 통찰력들도 엿볼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 집에서도 일요일 저녁에 어른들은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웃고 눈알이 탈 정도로 불을 쬐는데 아이들은 구석에 서서 떨고 있나 보고 싶어졌어. 당신은 그렇다고 생각해? 아니면 설교집을 읽고 머슴한테 교리 문답을 받아서 옳게 대답 못 하면 사람 이름이 잇달아 나오는 성경 한 대목을 외우라고 할 것 같아?"p79~80

 

 

“ 고약한 사람을 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야. 우리는 용서를 배워야지”

“ 아니야. 하나님은 내가 맛볼 만족감을 맛보시지는 못할거야... 나를 가만히 놔둬. 생각해 내게. 복수를 생각하는 동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p101

 

 

“ 싫어! 반대로 그것을 만든 조물주를 벌하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쯤 지옥에 보내는 일이라도 기꺼이 할 용의가 있어. 내 영혼의 온전한 파멸을 위해서 건배!”p125

 

 

 1847년에 출간된 <폭풍의 언덕>이나,  1884년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 1932년 로라 잉걸드 와이어의 <초원의집 1>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것은 1800~1900년대 초반까지 해석되고 있는 종교적 관행을 엿볼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절대적인 어른들의 권위와, 취약했던 아이들의 인권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스클리프가 느꼈을 소외감과, 잦은 폭력으로  생겨난 분노와 좌절감, 사랑의 배신으로부터 오는 절망들이 잔인한 복수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시대적인 부분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껴지는것은 이 때문일것이다.

 

 

“ 미친 듯이 또는 절망에 빠져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만 않으면 저는 시신이 있는 방을 지키고 있는 동안 대개 행복을 느낀답니다. 이승의 괴로움도, 저승의 괴로움도 깨뜨릴 수 없는 안식이 있거든요.... 린튼 서방님이 아씨의 그러한 복된 해방을 몹시 서러워하는 것을 보고, 그분이 지니고 있는것과 같은 애정에조차 얼마나 많은 이기심이 깃들어 있는지를 보았답니다."p270

 

" 죽음이 두렵다고? 천만에!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거니와, 그런 예감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것도 없어. 왜 죽어야 하지? 이렇게 튼튼한 몸에 절제 있는 생활을 하고 위험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마땅히 내 머리에 검은 머리가 없어질 때까지 살아 있어야지"p541

 

 

꽃같은 나이 서른에 결핵으로 요절(夭折)했던 저자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엔 유독 죽음의 그림자가 짙고 무겁게 드리웠다. 소설 출간 후 1년 만에 생을 마감했던 에밀리의 삶을 짐작 해 보건데 , 당시 그녀를 둘러싼 고통에서 오는 절망감이 음산함이 워더링 하이츠를 더욱 스산하고 쓸쓸하게 만들었으리라 느껴진다. 또한 죽음에 직면했던 그녀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안식'과 '해방'에 관한 표현으로 위로하다가도, 히스클리프의 말을 빌어 절규하던 모습을 통해 그녀 내면에서 겪었던 심한 갈등과 두려움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서른살을 채 맺지 못한 나이에도 에밀리 그녀는 생의 깊이를 느낀듯 하다. 삶과 죽음, 사랑과 복수, 사회적 관념까지 아우르며 생동감 넘치는  에밀리의 작품은 설익었던 스무살의 사랑을 건너와 조금은 원숙해진 현실로  읽을 수 있었던것이 가장 큰 매력이였던거  같다. 그녀의 유작(遺作)된 이 소설을  세상에 흔들림이 없을 나이라는 불혹에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깊어진 시선으로 에밀리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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