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 동네엔 마땅한 서점이 없는 나는 신간 구입을 자제하는 편이다. 호기심에 구입했다가 저자와 생각이 맞지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패를 경험한 책들은 손에 잘 닿지 않는 곳에 두는데, 한번씩 눈길이 머물때마다 모진 겨울 바람처럼 마음이 시렸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견뎌낸 책들 일명 '고전'이라 불리우는 책들을 구입하자는 신조를 다시금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송두리째 흔드는 기사를 볼때면 으레 나의 신조는 물거품 처럼 사라져 버린다. '창작의 비밀'이란 은밀한 단어가 전해주는 느낌이 그랬고, 어떤 문학 평론가의 단명 예감에도 20년 작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랬고, 무엇보다도 첫 문장이 주는 신선함이 그랬다.

 

 

" 올해의 계획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가 건성으로 소설을 쓰겠다. 다른 사람이 권하는 일은 반박하지 않고 무조건 해본다 등등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한다'가 되겠다. p9

 

 

'창작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던 작가의 첫 마디가 '건성으로 소설 쓰기'라는 사실이 왠지 좀 억울함 마음을 들게했지만, 마르셀 푸르스트의 책을 12개월로 나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마르셀 푸르스트를 앞두고 긴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읽어야 할까 란 고심에 고심을 하는 내 모습과도 같았고, 작가로써 보일수 있는 권위 의식이 전혀 없는 소탈한 모습이 되려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 암기빵이 있다면, 그냥 책 내용을 다 찍어서 자기 전에 먹으면 될 텐데....."p11

 

시시 껄렁한 이야기를 하는듯, 그저 무심한 이야기인듯 툭 던져놓은 말들로 가득했다.  마치 저자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것 처럼 큭큭 거리며 웃게되지만, 김연수 저자의 내공으로 소개되는 도서의 수가 대략 50권을 넘는다는(45권까지 적다가 포기해버렸다)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저 웃을수 있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가의 일이란 결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경험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과,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고찰기(考察記)라는 사실을 깨닫게되는 것이다.

 

 

"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 어떤 내용을 담았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인생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 이야기는 계속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리라"p42

 

 

 글을 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인생의 경험을 풍부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감각을 앞세워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살아가며 배우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네 인생에서 끊임없이 던져보았던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울림과 감동을 위해 촉수를 세워라 했던 박웅현 저자와도,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인다던 유홍준 교수님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걸 보면 우리의 삶이란, 매일 같이 진부한 하늘색이 아니라 다른 색깔의 하늘이, 다른 색깔의 나무와 풍경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각기 다른 경험들에서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생각들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은 소설을 쓰는데, 그게 바로 자기 인생의 이야기다."p134

 

 

 매일같이 들고 다니던  지갑이 세월속에 낡고 닳아져 제 빛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거 처럼. 매일 지나는 길의 풍경에 다른 인물들이 차올랐다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매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는 것처럼,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자세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은밀했던 '창의적 글쓰기'의 비밀의 문을 열어보면  그  첫째가  매사 의문( 왜 와 어떻게?)을 가지고 생생한(경험많은) 인생을 살기 였다." 결국 비밀은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린셈"p14. 김연수 저자가 처음 구상하게 되었던 소설의 주제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는 토고일지라도( 처음쓰는 글이 토가 나오는 글일지라도) 멈추지 말고 매일 같이  글을 쓰기 '(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문장 사이에는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있다"p19 ) 다. 책을 덮기전 마지막 페이지에 하루의 코멘트를 남긴다던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거나, 일기를 적거나 매일 한결같이 글을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렇게 모여진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되는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작곡가 베토벤이 메모 광이였다는 사실과 정약용, 이덕무, 정조 와 같은 당대 최고의 위인들도 책의 여백에 끊임없이 메모를 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또한 셋째는 뭉텅거린 언어로 표현하지 않기 " 그제야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형태와 색의 세밀한 차이를 본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소설가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리라. 화가가 울트라마린과 인디고를 구분할 있다면 소설가는 '휘청거리다'와 '지벅거리다'를 구분할 수 있어야만 한다."p176  이 부분에서 김연수저자의 독서 스타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언어 습득을 위해 기회만 된다면 다양한 사전을 구입해 본다고 한다. 그의 수많은 소설에서 사용된 생생한 언어들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리라 생각하니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네번째 사항은 역지사지(감정이입)의 필요성까지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소설 역시 이해관계에 얽힌 세계라는 관점을 이해한다면 역지사지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톡톡 튀는 공식들과, 조금은 엉뚱한 속담의 발상들 때문에 읽는 동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딱 한가지. 우리가 '미워 죽겠어'라고 표현할때 왜  당사자가 미워 죽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고 표현한 대목이 있다p113.  그 부분에 대한 답을 김연수 저자에게 전한다면 나는 <<용서에 관한 짧은 필름>>( 앤디 앤드루스. 세종서적)의 책을 권하고 싶다. 그곳에 김연수 작가가 궁금해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건 그가 50권에 육박하는 책을 소개하며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밀당을 했던것을 잊지않으며.. 김연수 저자도 구입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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