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난장이가 쏘아올린공 일명 '난쏘공'으로 유명한 이 책을 알게된 것은 구독하는 신문의 기사를 보고서다. 당시 신경숙 작가님의 기사가 실렸었는데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후 남는 3개월 시간동안 한국문학 전집 30권을 독파하고, 학창시절엔 이 책이 너무 좋아 여러번 필사했었다는 기사였다.(경향신문) 그때 이후로 틈만나면 이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여러가지 핑계들만 겹겹이 쌓여 퇴색되어버렸다가 요 근래에 읽을 기회가 생겨 읽게 되었다.

 

더 솔직히 생각해보자면,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도 했던것도 같다. 그것은 내 어린시절의 자화상과도 같았던 세월이 담겨있다는 것과 그 세월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났던 70년대 끝무렵인 80년대의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여섯식구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셔야했던 아버지로써는 버겁기만 한 세월이였고, 힘겨웠던 시절을 헤치며 살아야했던 우리에겐 아픈 세월이였다.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아팠던 그 시절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보았던 것이다.

 

 

총 12편의 단편을 묶어 만들어진 소설의 내용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난장이, 앉은뱅이, 곱추 라는 특징을 씌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소외'라는 단어는 이 책의 내용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폭압의 시대, 비상 계엄과 긴급 조치가 내려지며, 무참히 짓밟히던 인권, 희망이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를 막연한 '소외'로 담기엔 부족함이 크지만, 그 이상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담아본다.

 

 

등장 인물 중에 인상적인 사람들은 난장이, 신애,  윤호와 지섭이다. 소외당한 이웃을 보면 참지 못하고 그들의 불온전한 삶에 분노했던 지섭은 다시 말해 저자 조세희 씨의 모습이기도 했다. 난장이 아저씨의 집이 강제 철거될때 함께 밥을 먹고 있었고, 철거인이 철거를 시작할때 싸움을 했던 모습은 실제 저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노트를 한 권 샀고 '칼' 대신 '펜'을 들어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저항하는 모습을 담아낸것이다.

 

 

"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 일은 안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적은 없으세요?"

" 없어"

"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 기도도 올렸지."

"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평생동안 일을 해도 악취풍기는 재건축 지역에서  말린 고추를 찍어먹으며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불안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아질 수 없는 삶. 끝없는 구렁에 갇혀버린 모습은 정말 잔혹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비단 7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에 소름 돋는다. 떠올리기도 조심스러운  참사 사건들을 접할때 마다 세월앞에 숫자만 바뀌어 갈뿐 또 다른 형태의 착취가, 억압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왜 난장이가 되어야만 하는지, 그 아픈 이야기를 명쾌하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스스로 부족하기때문에,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화살은 안으로 돌려질뿐.

 

"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다양한 난장이로 변주되는 단편들이 유기적이든 무기적이든,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묶여 살아가고 있으므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가 되는것이며 70년대의 자화상이 되는것이다. 난장이 아저씨에게 표현했던 신애의 마음은  또 다른 이름의 난쟁이인 내  아버지가 듣고 싶었던 위로이자, 표현하고 싶었던 울분이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시대가 위로 받고 싶었던 손길이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물, 물 어디를 보나 물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p127

 

바다위에 떠 있으면서도 물을 마실 수 없는 애타는 심정처럼, 거대한 산업혁명과 그들의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눈앞에 보이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 공평한 이익 배당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질타와 구속 그리고 폭력과 억압은 끝나지 않는 시대의 이야기이며, 변화해야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윤호의 모습은 조금 위험스럽다. 자신의 옆집에서 살고 있는 경애와 경애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은강공장을 비판하는 과정속에 보였던 모습이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경애의 할아버지가 이뤄놓았던 삶의 부유함이 착취와 억압에서 오는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거짓으로 고문했던 장면은 자칫 위험한 발상이며, 이 책이 청소년 권장 도서임을 생각할때 생각해볼 문제 라는 생각이 든다.

 

 

윤호가 표현했던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죄를 처단하기 위해 고문이라는 방식은 폭압 시대를 부정하는 사람으로써의 모습이기보다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이들며,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처벌한다는 생각은 많은 위험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뫼비우스의 띠 처럼, 구분없이 돌고 돌아가는 쳇 바퀴 같은 시대의 아픔을 끊어내고 21세기의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상을 또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찾아오기를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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