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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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왜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해보아도 명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정리해보기로 했다. 내가 본것은 무엇이고 놓치고 있는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인정한 작품을 나는 왜 읽어내지 못하는것일까? 이런 내 기분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란 물음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내가 파트릭 모디아노를 알게된건 구독하는 신문 때문이였다. '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이란 글 귀를 보는 순간 강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겨났는데,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란 단어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2차 세계대전의 끝무렵에 태어난 파트릭 모디아노는 유대교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2차 세계대전과 우리의 아픈 역사가 서로 닮아있어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여겼다.  어려운 시절이였기에 함께 의지하며 지냈던 동생 루디의 죽음은 그의 유년기 시절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아득한 기억의 저편><도라 브루더><신원 미상 여자><작은보석><한밤의 사고><혈통>등의 작품들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자'라는 수식어가 생겨났다.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역시 과거로의 여행을 담은 작품이였다. 책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화자로 등장하는 '기 롤링'은 10년이라는 세월을 잃어버린 탐정이였다. 그와 함께 탐정일을 했던 '위트'라는 인물과 마지막 탐정 사무소의 일을 마무리 하며 기롤링은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자신에 대한 단서라곤 전혀 없는 불리한 조건에서 오직 사람들의 기억 속  그의 모습만이 유일한 단서였다.  매운향수냄새, 삐걱거리던 소리, 낯선 거리들에서 느껴지는 불안의 요소들을 통해 서서히 찾아가는 기억의 조각들로  자신이 위조 여권을 사용 했다는것과 프레디.게일,빌드메르의 친구들과 어둡고 위험했던 거리의 상점들로 부터 멀리 떠났었다는것, 그리고 사랑했던 드니즈에 관한 행복했던 추억들, 그리고 그 끝이 추악한 배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독자로써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을때 드는 허무감과 실망감 더 나아가 모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된다. 도대체 기 롤링은 왜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이렇게 담담하게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것 처럼 회상하는 것일까란 강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했기 때문이였다.

 

 

 그 대답은 다시 읽어본 1장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전체적 이야기가  압축되어진듯한 문구들이 눈에 띄었는데 첫번째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과, 두번째로 '나는 그것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군요'라는 위트의 말, 세번째로 '과연 헐어빠진 외투를 입고 검고 뚱뚱한 서류 가방을 든 채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저 피로한 늙은 남자와 왕년에 테니스 선수였던, 콘스탄티 폰 위트라는 이름의 미남 금발머리 발티크 남작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멀어져가는 위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하는 기의 생각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문장은 과거를 잃어버린, 존재를 잃어버린 모습에 대한 회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꼭 이해 받아야 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였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도달했을때 보여지는 초연한 모습이나 첫 문장의 담담한 대사는 기 롤링이 살아내야했던 시대성의 상징으로 생각해봤다. 과거를 추적하며 만나게되는 월드브런트(피아니스트)가 혹시 모를 미행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부분이나, 친구들의 살인사건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망수르의 모습은 기 롤링의 과거로부터 소환된 또 다른 기 롤링인셈이였다. 불안의 공간을 살아야했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자, 보호도구가 '위조 여권(가짜신분을 만들어)'을 구비해 다니는 것이뿐이였으므로. 첫 문장의 초연함, 결말의 담담함등은 그가 어찌해볼 수 없었던 시대로 부터 생겨난 무기력함이 내지, 시대로 부터 받아들인 화해였던게 아닐까?

 

 

그렇게 찾아낸 과거로부터의 기억을 마주하고 나서 위트의 문구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과연 과거를 소환할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란 물음은  '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그들은 어느날 무(無)로 부터 반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다음 무로 돌아가버린다고 말하며, 해변가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끝내 아무도 그를 알아봐주지 않았던 해변의 한 사나이 p75) 라고 했던 위트도, 기 롤링의 친구 게이나 프레디, 드니쥐 모두가 모래 위에 반짝 찍힌 발자국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철학적인 요소가 듬뿍담겨 표현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무(無)로 왔다가 무(無)로 돌아가는 시간속에서 생겨나는 아픔, 분노, 슬픔등의 기억으로부터 아파하지 말고 그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것이 좋지 않을까란 대답을 생각해봤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라는 표현은 앞의 이야기와 상반된다. 도대체 왜 이런 표현했을까. 내 독서력의 부족함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것일까?

 

 

마지막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란 물음에 대한 답은 기 롤링의 다른 이름 ' 패트로 맥케부아'나 '스테른, 지미 페드로'의 관계로 설명된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로 부터 만났던  인물들에 대해 각기 다른 평가를 받고 살아간다. 어떤 이에겐 한 없이 자상한 인물로 기억될 수 있고, 때론 불같은 성격의 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부유했던 어린시절에서 현재 실패한 사업가의 아들로 살아갈 수도 있으며, 지난날 가난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 현재의 부유속에서 살아가며 과거속에 수많은 기억들을 묻어두고 살고자한다. 과거에서 소환된 현재의 모습에 느껴지는 절망감, 슬픔, 좌절, 고통 등등으로 부터 기 롤링은 말했다. 지금의 모습과 과거의 기억을 애써 연결짓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 역시 좀 어려웠다. 생소한 어투와 '잃어버린 과거의 추적'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스릴러 다운 모습도 없을 뿐더러,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의 부분을 확실히 표현해주는 구성요소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말 담담히 쓰인 소설이였다. 그럼에도 놓치 않고 읽을 수 있었던것은 " 과거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수 있는가"란 주제 때문이였던거 같다. 평소 생각지 않던 장소에서 때론 향기로, 때론 소리로 시시각각 깨어난 과거의 소환으로 부터 당당히 맞설 수 있겠는가 란 주제는 위트가 말했던거 처럼 '무로 왔다 무로 사라지는 존재' 이므로 아파할 필요 없다 는 결론을 내려보며 고전의 맛은 시간을 두고 되풀이하는데 있는데, 이 소설도 1년후 5년후 10년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색깔의 맛을 전해주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책은 늘 사서 읽어야 한다고 수많은 저자들이 목놓아 가르치나 보다. 늘어가는 포스트잇 만큼이나 단단해질 독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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