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4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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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이야기에 관한 책을 접하고 보니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떠오른다반짝이는 이마에 안경을 쓴 도통 음악선생님 분위기가 나지 않았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항상 노란색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셨다예를 들어 그날 교과서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왔다면 그 음악을 짧게라도 들려주시곤 했다아마도 그렇게 접했던 기억으로 띄엄띄엄이라도 클래식 음악 듣기를 계속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를 넘는 책 쓰기와 번역까지 한다는 저자의 이력이 정말 놀라웠다이 브런치’ 시리즈로 이미 철학세계사세계문학이 나와 있다얼마만큼의 책읽기와 그것을 어느 정도 좋아해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감탄스러울 뿐이다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내밀한 삶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곁들여진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이 책 덕분에 저자의 다른 시리즈가 궁금해질 정도다.


1. 바로크 음악으로의 초대 2. 고전주의 조화균형품격의 음악 3. 낭만주의 음악 4. 전환기의 클래식또 그 너머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클래식의 향연에 우리를 초대한다책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언급하거나 궁금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읽었는데 역시 이래서 고전음악이구나 싶었다암기식 공부의 기억도 없지 않았던 만큼 음악 작품의 제목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또 잘 몰랐던 작품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어서 나중에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더 잘 이해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로는 비발디와 바흐헨델을 이야기한다비발디의 사계는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곡인가비발디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화가 마르코 리치의 풍경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란다평생 작곡한 협주곡이 500여 곡이나 되며 이외에도 오페라칸타타에 더해 소나타합주곡종교 음악까지 엄청난 분량을 썼다그런 전성기를 누리다가 낡은 음악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비발디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총애를 발판삼아 빈 음악계에서 도약의 야심을 품었지만 황제의 급서로 멘붕을 겪으며 급기야는 빈털터리로 객사하기에 이른다.


 오늘 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듣는 사계나 화성의 영감이 비발디 타계 후 이백 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1948년 미국에서 사계≫ 전곡이 음반으로 제작되고, 1950년 프랑스에서 최우수 클래식 음반상을 받으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비발디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음악이라는 창작물도 문명의 발전과 그것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책이 읽혀져야 팔리듯이 음악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영원히 울려 퍼지는 것.


 흔히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여기서 바흐를 음악의 장인에 헨델을 음악의 기업가’ 혹은 벤처 사업가로 보는 비유가 흥미를 끈다바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수와 조건이 나은 곳을 찾아 고용주를 갈아타기도 했다는데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입장이란천재적인 음악가의 삶도 근본적인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헨델은 당대 음악 양식의 가장 뛰어난 사용자이자 최고의 수혜자였음을 알게 된다비발디가 화성의 영감을 헌정했던 메디치 가문의 후광을 업고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탈리아 활동의 절정을 맞이하고 다시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음악가로서 돈과 명성대중적 인기를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였다이렇게 걸출한 당 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만나서 음악적 교류를 했을까 궁금해진다바흐쪽에서 헨델을 만나려고 관심을 기울였지만 헨델의 거절로 만나지 못했단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음악가들도 라이벌 의식을 느꼈을까어쩌면 더욱 풍성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전주의 음악에서는 모차르트하이든베토벤의 음악과 삶 이야기가 펼쳐진다모차르트 음악만큼 우리 생활에 친숙한 음악이 또 있을까흔히 많은 예비 엄마들이 태교를 할 때도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흐베토벤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우리는 주로 그 속에 깃들인 인간 정신의 깊이와 힘에 감탄한다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신성한 본성이다앞서 언급한 거장들과는 달리그가 그의 재료를 빚은 형식에서는 어떤 고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모차르트는 마치 놀이를 하듯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천진난만한행복한알라딘과 같은 본성을 지녔다.’(P114)


 이것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가 모차르트에 대한 평가다다른 것은 몰라도 천진난만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정서는 금세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겨우 35세의 이른 나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 설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문헌이나 정황의 증거로 볼 때 과로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부분은 마음이 짠해진다이것이 서양 음악 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고전주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는 음악가의 뒷모습이라니.


 낭만주의 음악가로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멘델스존, ‘피아노의 시인’ 쇼팽 등 많은 음악가들을 이야기한다무엇보다 낭만주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인 베르디와 바그너를 비교 분석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1813년 동갑내기이며 두 사람 모두 생전에 조국의 통일을 목격한 점대기만성 형 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예술의 성향을 어떻게 구분 지을까서구 문명이 내놓은 가장 뛰어난 예술 양식이라는 오페라그 속에 담긴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베르디의 음악을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를 엿보는 기회세계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 부호그 속에 담긴 음악을 비밀의 문을 여는 주문으로 여긴다면 바그너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기말 유럽 음악의 풍경과 러시아 음악미국의 클래식 음악과 역사를 이야기한다위대한 음악가와 그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당대의 문화역사문학심지어 철학적인 접근과 사유로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클래식 음악은 특정한 시대를 결정짓는 흐름이었을까석유 고갈을 걱정했던 20세기 후반의 에너지 전문가들처럼 영국의 철학자 스튜어트 밀은 음악적 조합의 유한성(exhaustibility of musical combinations)’을 들어 음악적 자원의 고갈을 걱정했다고 한다. 5개의 온음과 2개의 반음으로 구성된 옥타브한정된 방식의 조합이기에 오직 소수만이 아름답다는.


 이러한 우려에도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 루이스 토마스는 진화의 관점으로 보는 고작’ 100만 년의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로 바흐의 음악을 예로 들어 인류의 미래를 낙관했다고 한다이 정도라면 충분하지 않을까클래식 공백의 시대라고는 해도 바로크 시대부터 고전주의낭만주의현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음악만으로도 풍요로우며 저변확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저자의 말처럼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데 특별한 문턱이 존재하거나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들어 가보자평범한 일상에 활력소를 주고 조금은 특별한 삶의 멋을 주는 클래식 음악은 먼 데 있지 않다이 책은 우리가 그런 멋을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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