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인도사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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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나의 인도라는 문인들의 여행 에세이를 읽어서인지 이 책이 이벤트로 나온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고 책과의 대면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안쪽 표지의 저자 소개를 읽고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순진무구한 저 눈빛과 표정은 말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약간 수줍은 듯 밝은 웃음의 얼굴은 경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책을 읽는 중간에도 앞으로 와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의 힘, 바로 이런 느낌이 인도라는 나라의 신비가 아닐까. 또한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인도라는 나라를 이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흡족한 기대감으로 읽어나갔다. 약간 큰 판형에 매끈한 종이의 재질과 선명한 색조의 풍부한 그림과 사진의 자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을 기획한 의도에서 밝혔듯이 역사의 서술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각 나라를 직접 탐방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생생하고 흥미로운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은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의 하나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장선에서 기획되었으며 2010년 터키사를 시작으로 미국사, 인도사, 일본사, 중국사를 펴냈고 인도사는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개정판으로 출간했다한다. 인도를 떠올리면 일단은 카스트제도나 남녀차별, 종교분쟁 등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한 나라가 장점이 하나도 없는 일은 없을 텐데도 말이다. 이는 역시 교과서의 서술 방식에 있음을 프롤로그에서 설명하고 있다.

 

 분량으로 볼 때 서양사에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하거나 내용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서양사에 비해 남부 아시아사는 여전히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종교 중심의 서술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 카스트제도에 대한 것도 원래는 직업구분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이나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부분은 인정하는 교과서는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역사의 서술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본래의 내용이 희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렇게 지엽적으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고 인더스 문명이 탄생한 시점부터 근현대까지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학생시절의 역사 공부를 떠올리면 단편적이고 암기식 학습이어서 뭔가 알다만 것 같아 갈증이 났는데 인도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생하고 꽃을 피웠던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을 맞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자연환경의 변화, 홍수, 가뭄 등의 자연재해와 아리아인의 이동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은 아수라장이 된다.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아리아인의 유입이 이어지면서 기존의 인더스 문명 사람들과 자주 다투게 되면서 그들을 쫓아내고 아리아인이 북서부의 중심 세력이 되어간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주로 목초지와 가축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잦았는데 숫자적으로 우세하게 되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이 기존 인도인들이 내쳐진 것이다. 본래는 직업적 의미가 강한 무사, 사제, 평민만 있었는데 아리아인들의 계급의식이 강해지면서 네 개의 바르나(산스크리트어로 색깔이라는 의미.)가 만들어졌는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이다.

 

 인도에 들어온 아리아인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농사를 인도인에게 배우고 철을 이용해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다. 점점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로 성장하는데 기원전 6세기경에는 16개의 도시국가가 생겨나고 이들은 서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전쟁을 벌이고 국왕의 권위가 강화되는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장의 권위도 따라서 강화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는 브라만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사의식을 크고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언제나 힘든 사람은 계급의 하위 층이다. 권력층에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계급제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그 차별을 받는 것이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인도인의 삶이 요즘 시대와 대비되어 짠하게 느껴졌다. 권력층을 위한 하나의 시스템이 체제가 되가 되어 관습으로 굳어진 셈이다. 이에 브라만들의 횡포와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어지면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새로운 종교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제국의 통치자에 따라 종교도 달라진다.

 

 기원전 4세기경 난다 왕조 시기의 마가다 왕국은 최초의 제국 마우리아 왕조의 기초를 만들어준 나라다. 한 나라가 멸망하는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요인은 백성이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마가다 왕국도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세금을 부과한 것이 화근이 되었고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게 마우리아 왕조를 선사한 셈이 되었다. 그의 손자 아소카는 마우리아 제국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그 영역은 남부의 일부를 제외한 인도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다.

 

 뒤를 이어 페르시아 계열의 쿠샨족이 세운 쿠샨 제국은 카니슈카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민족 출신이었지만 인도의 여러 종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에 기존의 인도인들에게도 인도의 지배자로 인정받았으며 불교 진흥에 힘쓸 만큼 독실한 불교도이기도 했다. 번영했던 쿠샨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4세기 초반에는 찬드라굽타 1세가 굽타 왕조를 열고 갠지스 강 일대를 모두 차지한다. 굽타 왕조의 전성시대를 연 것은 찬드라굽타 2세로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넉넉해지면서 학자와 예술가들을 보호하는 등 이들에 대한 후원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문학 부분에서는 인도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라마야나>가 오늘날의 형태로 정리된 것도 이 때라고 한다.

예술 분야는 아잔타 석굴 사원에서 이전의 간다라 불상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고 한일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자연과학, 수학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아라비아숫자로 불리는 숫자의 기원이 인도였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인도 특유의 사회 체계인 카스트의 유래를 설명하는 그림이 있는데 각 역할이 있다. 머리, , 배와 넓적다리, 발로 나누어진 그림인데 브라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카스트제도를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도에 들어온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로 포르투갈어로 가문, 또는 혈통을 뜻하는 까스타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기에 복잡한 제사 의식과 제물을 간소화해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 브라만교는 힌두교로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힌두교가 널리 확산되면서 브라만의 권위 또한 강화된다. 엄격한 신분 질서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의 구분이 명확해지는데 <마누 법전>은 종교적 계율인 동시에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가장 강력한 규범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굴 제국 때 지어진 타지마할의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미는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타지마할은 이슬람 문화의 꽃으로 평가된다. 힌두교의 나라에 이슬람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모습에서 인도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 여러 제국이 생성되고 전성기를 이루다가 무굴 제국에 이르러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는데 서양 열강이 들이닥치면서 인도는 영국에 의해 식민지가 되는 고통을 겪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두세를 받기 시작하면서 반발이 이어지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제국 멸망의 타당한 이유로 본다.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려든 영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벼이 보았다는 것이다. 영국은 인도의 악습인 사티를 금지시키며 자신들이 인도주의자인양 행세하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것이 인도인에게 근대화라는 축복이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또 인도의 다양한 세력을 이간질하거나 반목하게 하고 종교와 카스트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법으로 분리 통치 정책을 하면서 야금야금 인도를 집어 삼키려고 하였다. 언제나 작게 얕보고 무시하는 일에서 큰일은 시작되는 법이다.

 

 간디, 네루 등 지각 있는 지식인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200년 동안의 식민지하에서 벗어나지만 종교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독립을 이룬 몇 안 되는 나라이기에 인도의 독립은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간디는 끝까지 하나 된 인도를 외쳤으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립 이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네루는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외교정책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독립 이후 40년 가까이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며 나라의 재건에 힘썼지만 정치적으로는 딸에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세습된 네루 왕조라는 비난을 받으며 인도 민주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인도를 언급할 때 다양한 인종과 언어의 다양성을 든다. 너무 다양하다 못해 복잡한 언어는 1652개에 이르고 있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될 정도여서 국어가 없고 공용어만 있다고 한다. 언어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정치, 경제, 종교적인 배경까지 아우른 인도 통합이란 무척 요원한 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 종교와 광대한 땅의 인도연방공화국과 남부아시아의 면적은 유럽의 모든 나라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하여 흔히 인도 아대륙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인종, 언어, 종교, 계층을 가진 인도의 다양성과 다원성은 때로는 충돌하기도 했지만 인도인들은 이를 포용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 인도사회의 문화는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인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나라의 생성과 발전을 거듭한 역사가 안팎으로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읽는 인도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인도라는 국가의 시스템과 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거리감을 좁혀주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계 각국에서는 아직도 종교 문제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IS 등의 행동에 항상 혐오감이 먼저 앞섰는데 종교 선택으로 인해 나라가 분리되는 인도의 경우를 보면서 그들에겐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분쟁으로 인해 무고한 인명의 살상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인도의 역사 이야기는 국가에겐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개인에겐 한 사회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 장이 되리라 생각해 보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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