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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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보았던 일드 <고스트 라이터>에 꽂혀서 동명의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흔들었던 책을 만나게 되었다. 2013년 장편소설『망원동 브라더스』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데뷔한 김호연의 작품이다. 걸쭉한 입담에서 벌써 보통이 아님이 느껴진다. 작품의 화자 김시영은 몇 해 째 유령작가로 살면서 ‘창작지원금’이라는 명목의 돈도 제때 받지 못하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다. 드라마 작가, 만화가, 소설가들이 창작을 위해 고심하는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유명 작가가 되기 전 단계의 유령작가, 고스트라이터즈에 대한 애환이다. 정작 등단을 하고 데뷔를 한 작가라도 쓴 책이 계속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생활을 꾸려갈 수 없기에 주변의 유혹을 받는다. 어느 분야의 사람이든 돈 문제를 떠나서는 삶을 논할 수가 없다. 굵직한 스캔들로 침체에 빠진 여배우가 큰 사례를 하겠다면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미래의 자서전을 써 달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아했지만, 자신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할 수밖에 없었고, 신기하게도 여배우의 앞날이 잘 풀리면서 자신에게 고스트라이팅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능력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손에게 납치를 당한다.


김시영이 납치된 장소, 럭셔리한 주상복합아파트를 집필실로 쓰라는 대목에서는 불쑥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났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상의 공간이지만 여긴 아니다. 강압에 못 이겨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라는 것은 굴욕이며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데스노트가 나온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한 참 유행이었던. 어쨌든 그 목록에 오른 사람은 모두 죽어나갔다는 이야기. 여기의 무리들도 원한을 그렇게 푼다. 자료를 주고 그렇게 책으로 써서 죽어나가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신도 아닌 다음에. ‘건강하게 죽음을 기원하는 글을 쓰라니’(p176)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동원하여 증언을 하는 등 분노를 느끼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쓰는 대로 되는 걸까. 드디어 차유나와 오진수의 도움으로 그 호화로운 ‘감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주 흔한 것이 되어버린 버킷리스트. 목록을 써놓고 간절히 원하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고 했다. 어떤 개그우먼의 미래일기도 겹친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렇게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바라는 일을 이루고 싶었음 일거다.



 고스트라이터의 손을 거치면 천박한 사람도 고상하게 변한다. 처음 만나 배우 차유나는 거침없이 반말을 내뱉는 안하무인이었다. 천재만이 자신의 고스트라이터를 알아본다는 말. 이건 고스트라이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천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후 그렇게 변했다. 언행과 자태에서 여신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내가 알던 그 여자가 맞나 할 정도로. 마치 원하는 대로 갈고 닦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거라면 긍정적이지 않을까.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되고 싶은 대로 쓰면 된다. 고스트로 살던 김시영, 성미은 등이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을 깨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쓰게 되었으니, 이 또한 고스트라이팅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셈인가. 아마도 세상에는 이러한 고스트들이 넘치는 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룬 성과를 주변의 누군가에게 빼앗기고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그러고도 박차고 나오지도 못하며, 전전긍긍 울분을 삭이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에 내가 본 <고스트 라이터>라는 제목의 일드와는 좀 다른 내용이다. 이 책은 고스트라이터가 타인의 운명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내용이어서 좀 황당한 면도 없지 않다. 단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대필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니. 그런 일은 신의 영역이 아닌가. 원한을 갚고 복수의 대가로 쓰는 부정적인 면은 좀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의 타인의 꿈을 이루어주고 과거의 상처를 정화해주는 차원의 고스트라이팅은 괜찮은 발상 같다. 누가 누구의 고스트라이터를 하는 것보다, 내가 내 자신의 그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서 자신만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격이나 원하는 것, 미래의 삶까지도. ‘작가’나 ‘작가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그 세계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작가는 그냥 운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마냥 써야 된다는 사실. 나도 위대한 작가들의 빛나는 조언을 인용해 본다.

 

 


              쓴다는 것은 기도의 한 형식-프란츠 카프카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아이작 디네슨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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