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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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냄새가 났다. 로 첫 문장이 시작된다. 제목에서 양과 강철의 조합이 대체 어울리기나 하는가. 의아했다. 부드러운 양의 털로 펠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머로 완성 한단다. 피아노 속의 해머로 인해 아름다운 선율로 울리는 것이다. 소나무의 일종인 가문비나무는 피아노의 일부가 되고. 여든 여덟 개의 건반에 연결된 강철 현. 아, 그래서 양과 강철의 숲이 되었구나.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였던 나(도무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손님을 체육관까지 안내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고향 홋카이도의 숲 냄새를 느낀 나는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때까지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던 내가. 그 조율사의 제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가 소개해 준 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있는 그 악기점에 취직하여 조율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은 조율 기술 외에도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선배 야나기의 말을 듣고, 클래식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모차르트, 베토벤, 소팽의 피아노곡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피아노를 만나고부터 나는 기억 속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울어대는 아기의 미간 주름. 있는 힘껏 힘을 준 새빨간 얼굴에 잡힌 주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의지를 품은 생명체 같아서 옆에서 보면 가슴이 뛰었다.’(p26)


"기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의사소통이야. 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그 이미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해.“(p45)


 도무라에게 있어 숲은 신이다.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숲 냄새를 느끼고 조율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피아노를 알고부터는 ‘소리’가 신이 되었다. 고객의 집에서 조율을 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동글동글한’ 소리, 활기찬 소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고객은 감동한다. 형체가 없는 ‘소리’에 ‘동글동글’한 형체를 연상하다니... 그 의미를 같이 공감하는 것. 그 과정의 고객과의 교감, 바로 소통인 것이다.


 “아름다운 라가 440헤르츠로 표현된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피아노는 한 대 한 대 다른데 소리는 서로 연결되어서 주파수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도 들어요.”(p116) 이런 말이 내 안에서 나오다니 하며 스스로 놀란다. 아직 한참 멀었다. 체육관에서 경험한 ‘심장이 떨리는’(p118) 그 소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것이 있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을 받고 크게 상심한다. 과연 재능만 가지고 내가 그 숲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재능을 논하기에도 아직 머나 먼 길이다. 경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정열로 대신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한다. 선배 조율사들의 일 하는 모습을 견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상상하고 도달하려는 숲에 이르기 위해 분발하고 분발한다.


 고객으로 있던, 피아노를 무척 사랑하는 쌍둥이 자매 유니와 가즈네의 이야기 또한 잔잔하고 애틋한 즐거움을 준다. 병으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조율사가 되고 싶다는 유니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감동에 사로잡힌다. 피아노 조율사는 피아니스트, 피아노와 어우러져 조화로운 소리로서 세상에 소통하는 것이다.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지만, 특유의 감성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는 끈기와 베짱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 그의 진심어린 태도에 감동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그 행복의 숲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읽어가는 내내 숲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버섯을 따러 다니곤 했다. 특히 장마 끝에 숲속 땅은 축축하게 물기가 배어 나왔으며 소나무 밑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돋아나 있었다. 싸아하게 느껴지는 서늘함과 소나무 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숲은 무엇일까. 내가 도달해야 할 숲은 어디일까. 내가 아주 좋아해서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숲은 무엇일까. 지친 영혼까지도 치유해주는 책 읽기.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더불어 글쓰기로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지향점은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p68) 이건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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