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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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월기>는 당나라의 기담 <인호전人虎傳>의 제재를 모티브로 작품이 된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일본 교과서에 1951년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그 후로 60년이 넘도록 수록된 국민작품이다. 짧은 글 속에 섬뜩한 교훈을 주는 강렬함이 매력이다. 아무리 타고난 수재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갈고 닦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즉 호랑이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당 현종 때의 이징(李徵)은 박학다식에 출중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오늘날의 경찰 및 군사 담당 관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곧 관직에서 물러난다. 고향에 머물면서 남들과 교제도 모두 끊고 오로지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시인으로서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생활은 점차 궁핍해지고 초조해진다. 그 무렵부터 얼굴은 험상궂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여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지방의 관리직을 얻었는데,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그 일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1년 후 어느 날, 결국 발광하여 호랑이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진사에 급제했던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원참이 감찰어사직을 수행하러 길을 떠나는 중에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지난날을 하소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째서 호랑이가 되었을까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왜 이전에 인간이었던가 생각을 하게 된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p11)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중략)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詩友)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p16)


 호랑이의 모습을 한 이징은, 굶어죽을 지도 모를 처자보다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 따위를 먼저 염려한 남자이니 이런 짐승의 몸으로 전락한 것이라며 통곡한다. 우리는 살면서 남과 비교하며 저울질 한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보다 못했던(자신의 생각에) 사람이 어느 날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인생, 생각에 따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루하루 보낸 날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이니.


<이릉>은 한나라의 장수 이릉과 그를 두둔했다가 궁형을 받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 그리고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고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19년 만에 돌아온 소무라는 세 인물의 삶을 보여 준다. 흉노족에 패하여 항복한 이릉은 분노로 평생을 살고 사마천은 쉰이 다 된 나이에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서사의 편찬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이것이 정답이니까 그대로 따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 즉 문학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절대적인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자로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밤에 “봉황도 나오지 않고 황하는 그림도 내지 않도다.(성왕이 출현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나도 끝이런가” 라고 혼잣말로 공자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 자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공자가 한탄한 것은 천하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로가 운 것은 천하를 위함이 아니라 공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p97)


 여기서 자로는 결심한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p98)공자의 제자 중 자로만큼 스승에게 많이 혼나고 거침없이 반문한 자도 없었다고 한다. 긴 방랑과 고난을 함께 했고 맡은 일에 최후까지 열정을 다하고 산화한 인물이다. 사제간의 정, 그 뜨거움이 마음에 감동으로 일렁였다.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조선인 순사 조교영의 눈에 비친 풍경이다.

전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운전수와 순사를 깔보고 무시한다. 일본인 부인과 조선인이 싸운다. 친일 조선인의 연설을 듣고 일본 청년이 욕을 한다. 일본 신사의 정중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우쭐해하는 조선인 순사가 있다. 강우규 의사의 사이토 총독에 대한 의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의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창녀의 목소리.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종순의 덕을 말하는 장면(일본에 있을 때는 독립자존의 정신을 말하던)이 나온다.


 1923년. 겨울은 더럽게 얼어 있었다.

모든 것이 더러웠다. 그리고 더러운 채로 얼어붙었다. 특히 S문(서대문)밖의 골목에서는 더욱 심했다. 중국인의 아편과 마늘 냄새, 조선인의 싸구려 담배와 고추가 섞인 냄새, 으깨진 빈대와 이의 사체 냄새, 길거리에 버려진 돼지 내장과 고양이 가죽 냄새, 그것들이 그 냄새를 보존한 채 길 위에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p240)


보통학교의 일본역사 시간, 다소 당혹스런 표정의 교사가 있다.

“이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치 딴 나라 이야기인가 하는 아이들의 둔한 반응.

“그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지막 장면은 순사 조교영이 식산은행 옆에서 ‘돌맹이’처럼 자고 있는 지게꾼들을 깨우며 한탄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너는, 너희는.”

돌연 무언가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는 한 번 몸을 떨고, 그들의 누더기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울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희는. 이 반도는... 이 민족은...”(p250)


 정말 더러웠다. 더러워진 채로 얼어버린 겨울 풍경. 지금의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일본인 작가의 눈에 비친 비참한 조선의 현실과 일본제국주의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상 일본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작품은 더욱 더 읽어볼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나카지마는 일본에서 제2의 아쿠타가와로 불린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뒤늦게라도 문예출판사를 통해 나온 점, 내가 이 작품을 만난 것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예출판사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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