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죄인 박열과 가네코 - 천황 폭살을 기획한 조선의 아나키스트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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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한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삶이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가. 항일투쟁의 독립투사라고 했다. 유관순열사, 안중근, 윤봉길의사는 알고 있었지만, 박열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웃 블로그에서 영화 박열로 만나서 알게 되었고, 궁금하던 차에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조선과 일본, 국적은 다르지만 하나의 뜻을 품고 동지, 연인, 부부로 그야말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떠난 이들이 있다. 열혈청년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다.


 천황부자를 폭살하려는 계획을 갖고 실행에 옮기려는 중에 관동 대지진이 터지고, 대역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거쳐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이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박열은 경상북도 문경출신이며 3.1일 독립시위를 목도하게 된다. 일본인이 세운 학교에 다닐 수 없다며 학업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하기 위하여 1919년 도쿄로 건너간다. 고학을 하면서 흑우회, 흑도회, 불령사라는 항일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한다. 여기서 가네코 후미코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의 충북 청원군 부강리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는, 조선인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는 자유여성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후미코의 이모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어머니도 여러 남자를 전전하는 불안정한 가정 분위기였다. 더구나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무적자’였다. 조선에서 고모와 할머니와 살면서 식모와 같은 대접을 받으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 어쩌면 이렇게 온 몸으로 견뎌야 했던 고통스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혁명을 향해 싹을 틔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평소처럼 정우영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박열과 마주대하게 되고, 교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포기할까 할 무렵 박열이 찾아온다. 당차게 교제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만남을 거듭하며, 동지로 뜻을 모아 서서히 연인이 되고 부부의 인연을 만든다.


 이 두 사람의 생각이나 활약상이 잘 나타나 있다. ‘천황제’와 군국주의 대한 반감을 연대로, 당당하게 일본 정부에 맞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 사회를 발칵 뒤흔들었다. 그들의 동거 계약서는 그 당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 동등한 입장에서 동지로서 동거한다.

2. 아나키스트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하여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동거생활을 청산한다.

 

 후미코는 고학생으로 일하면서 사회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진보서적과 잡지를 탐독한다. 그녀가 박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조선 청년>에 실린 제목도 민망한 ‘개새끼’라는 시를 본 후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후미코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는 단가나 박열, 후세 다츠지 변호사 등 재판장, 지인들에게 쓴 편지와 일본 특유의 하이쿠를 느낄 수 있는 3행시들이 들어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조선 청년>의 ‘개새끼’

 

                                 지금까지 맛본 인생

                                 이제 끝인가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네-173p 맨 위의 시


 23년의 짧은 생애 중 20여 년은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적학대의 고통. 씻을 수 없는 상처였을 게다.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 지은 3행시로 추측된다. 사형선고를 받고 만세를 불렀다는데. 옥중에서 목을 매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같이 살고 같이 죽자고 맹세했다고 했는데, 자살이라니 처음엔 의아했다. 후에 사형을 면해준다는 말을 듣고, 천황 따위가 뭔데 나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느냐며 반박했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 당하던 반발심으로 자신의 목숨을 자신이 거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책임을 벗어나려

                                 버둥대는 살인자의 모습

                                 정말로 끔찍하구나-180p 세 번째 시


  위의 시는 일본 천황 이하 군국주의자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후 조선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그에 대한 반발이 예상되자 박열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그들의 비열함을 비꼰 것 같다. 자신의 국가를 떠나서 의로운 일에 초점을 두고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 한 사람,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가 있다. 두 사람을 위해 열성적으로 변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양심의 소리를 가진 이 사람은 그 외에도 많은 조선인을 위한 일에 앞장섰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의로운 일을 향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세상에 맞서 해쳐나가는 삶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더 이 두 사람의 일생이 조명 받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국가의식도 많이 옅어진 세상이다. 그만큼 세상은 할 일도 넘쳐나고, 관심거리도 많아졌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세상의 일들을 인터넷의 바다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의인들은 사람들 마음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의인들도 있을 수 있다. 사사로운 자신을 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뜻을 두고 살다가, 떠난 사람들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고통으로 얼룩진 그들의 삶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들에게 빚진 것을 갚는 방법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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